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지하철·버스·길거리에서 일어났다는 강제추행 사건에서 경찰이 용의자를 특정한 뒤 피해자를 불러 “이 사람이 맞는지” 확인시켰다는 이야기를 상담에서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그 확인 방식을 물어보면 의뢰인분들은 “저 한 명만 앉혀 놓고 피해자에게 보여줬다고 하더라고요”, “사진 한 장 보여주고 맞다고 했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도 “피해자가 직접 저라고 했다는데 이제 끝난 것 아니냐”며 낙담하거나, 반대로 “절차가 이상했으니 무조건 무죄 아니냐”며 안심하는 두 갈래로 갈립니다.
최근 대법원은 용의자 한 사람만 목격자에게 보여주고 범인 여부를 확인하게 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진술의 신빙성을 낮게 본다는 법리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곧바로 무죄를 뜻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정황이 얼마나 있는지에 따라 결론이 갈립니다.
아래에서는 이런 단독 확인이 왜 문제가 되는지, 법원이 어떤 경우에 그래도 유죄로 보는지, 그리고 지금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한 명만 보여주고 한 확인은 범인식별 절차로서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범인 확인은 ‘여럿 중에서 고르게 하는 것’이어야 하고, 한 명만 보여주면 정답을 알려주는 셈이 됩니다.
성추행 사건은 CCTV나 목격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가 범인의 얼굴·옷차림·체격을 기억해 진술하는 것이 핵심 증거가 됩니다. 문제는 사람의 기억이 순간적이고 불완전하다는 점입니다. 범행 직후에는 모자·마스크·어두운 조명 때문에 뚜렷하게 기억하지 못했더라도, 경찰이 “이 사람입니다”라는 분위기로 한 사람만 눈앞에 세우면 피해자는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을 범인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수사기관의 범인 확인은 먼저 피해자에게 기억나는 인상착의를 상세히 진술하게 해 기록으로 남기고, 용의자와 비슷한 외모의 여러 사람을 함께 세워 그중에서 고르게 하는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피해자의 선택이 암시가 아닌 기억에서 나왔다는 점을 사후에 검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 한 명만 보여주고 확인했다”는 상황은 이 기본 구조가 빠진 것입니다. 용의자가 유일한 선택지이니 피해자가 고를 수 있는 답이 하나뿐이고, 확인의 의미가 크게 줄어듭니다.
범인식별은 여럿 중에서 고르게 하는 절차여야 하고, 한 명만 보여준 확인은 그만큼 증명력이 약해집니다.
2. 대법원은 일대일 대면과 사진 한 장 제시의 암시 위험을 인정합니다
단독 대면이나 사진 한 장 확인은, 다른 사정이 없으면 신빙성이 낮다는 것이 확립된 법리입니다.
대법원은 범인식별 절차의 방식에 관해 다음과 같이 판시했습니다.
용의자의 인상착의 등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에 있어 용의자 한 사람을 단독으로 목격자와 대질시키거나 용의자의 사진 한 장만을 목격자에게 제시하여 범인 여부를 확인하게 하는 것은 …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4. 2. 27. 선고 2003도7033 판결).
이 판결은 그 이유로 기억의 한계와, 용의자가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무의식적 암시의 위험을 듭니다. 그리고 예외로 용의자가 종전에 피해자와 안면이 있었다거나, 피해자 진술 외에도 용의자를 범인으로 의심할 만한 다른 정황이 있는 경우 같은 부가적 사정이 있을 때를 들고 있습니다.
이 법리는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대법원 2005. 6. 10. 선고 2005도1461 판결은 이 법리를 인용하면서, 절차에 하자가 있어 신빙성을 쉽게 인정하기 어려운 피해자 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또 대법원 2006. 9. 28. 선고 2006도4587 판결은 같은 취지를 사진이나 대면뿐 아니라 피해자에게 목소리를 확인시키는 경우에도 적용했습니다.
따라서 “저 한 명만 보여줬다”는 사정은 결코 사소한 절차상 흠이 아니고, 피해자의 지목 진술을 그대로 믿을 수 있는지를 따지는 출발점이 됩니다.
3. 그래도 ‘부가적 사정’이 있으면 유죄가 선고될 수 있습니다
식별 절차의 하자는 무죄를 보장하지 않고, 다른 증거가 얼마나 있는지가 결론을 정합니다.
앞서 본 2003도7033 판결 자체도, 식별 절차에 하자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휴대전화 사용 상황 등 다른 사정을 종합해 피고인을 범인으로 본 원심을 유지했습니다. 즉 법원은 단독 확인 진술을 곧바로 버리지 않고, 그 진술을 뒷받침하는 별도 증거가 있는지를 봅니다.
성추행 사건에서 실무상 이 ‘부가적 사정’으로 작용하는 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범행 장소 주변 CCTV에 피해자 뒤에 서 있는 모습이 찍혀 있는 경우, 교통카드·휴대전화 위치 기록상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있었던 것이 확인되는 경우, 용의자가 피해자와 이미 아는 사이였던 경우, 피해자가 처음 신고할 때 진술한 인상착의(옷 색깔·가방·키 등)가 용의자와 구체적으로 일치하는 경우 등입니다.
반대로 피해자의 최초 진술에 인상착의가 거의 없었는데 경찰 조사 뒤에야 구체적인 특징이 늘어났다면, 단독 확인 과정에서 암시를 받아 기억이 덧입혀졌다는 정황이 됩니다. 이 차이는 최초 112 신고 내용, 사건 직후 작성된 진술서, 조사 영상 녹화물을 대조해 보면 드러납니다.
식별 절차의 흠은 방어의 출발점일 뿐이고, 그 진술을 뒷받침하는 다른 증거가 있는지가 결론을 가릅니다.
4. 유죄가 되면 처벌과 함께 신상정보 등록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목 진술 하나가 벌금형과 실형, 그리고 신상정보 등록 여부까지 좌우합니다.
강제추행은 형법 제298조에 따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지하철·버스처럼 사람이 밀집한 장소에서의 추행이라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1조의 공중밀집장소추행죄가 문제될 수 있고, 이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더 큰 부담은 형량 외의 사정입니다. 유죄가 확정되면 성폭력처벌법에 따른 신상정보 등록 대상이 될 수 있고, 취업제한 등 부수 처분이 함께 문제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벌금형으로 끝날 사건이라도 유무죄 자체를 다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식별 절차의 문제는 법정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는 핵심 논거가 됩니다. 단독 확인이 있었다는 점, 그 이전 진술과 이후 진술의 차이, 부가적 사정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하나씩 짚어 검사의 입증이 합리적 의심을 넘지 못했다는 점을 주장하게 됩니다.
다만 반성이나 합의, 초범 여부 같은 사정은 유무죄를 다투지 않을 때 양형에서 참작되는 것이므로, 혐의를 부인할지 인정할지는 사건 초기에 자료를 보고 신중히 정해야 합니다.
5. 경찰 조사부터 재판까지, 절차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첫 조사 전에 식별 경위를 정확히 기억해 두고 진술하는 것이 사건 방향을 정합니다.
성추행 사건은 통상 ①관할 경찰서(수원 지역이라면 수원남부·수원중부경찰서 등) 신고 접수와 피의자 조사 → ②피해자 대면·사진 확인 등 범인식별 절차 → ③공소청(수원지방공소청) 송치 및 기소 여부 결정 → ④기소 시 법원(수원지방법원) 재판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단독 확인은 대부분 ②단계에서 이루어지므로, 이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확인이 이루어졌는지가 기록에 남아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경찰에서 “피해자가 당신을 지목했다”는 말을 들었다면, 감정적으로 반박하기보다 아래 순서로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대면·사진·영상)으로 확인이 이루어졌는지, 다른 사람이 함께 있었는지를 기억나는 대로 날짜와 함께 적어 둡니다.
사건 당일 내 동선을 교통카드 내역, 결제 내역, 휴대전화 위치 기록, 주변 CCTV 등으로 객관적으로 정리하고, 보존 기간이 짧은 영상은 서둘러 확보합니다.
수사기관이 가진 최초 신고 내용과 피해자 진술 조서, 식별 과정 기록을 변호인을 통해 열람·등사하여 진술의 변화를 확인합니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식별 절차의 하자와 부가적 사정의 유무를 함께 검토하면, 조사 단계부터 일관된 방어 논리를 세울 수 있습니다.
마치며
“내가 하지 않았으니 곧 밝혀지겠지”라는 생각 때문에 첫 조사에서 준비 없이 진술하고, 이미 굳어진 식별 진술을 뒤늦게 뒤집으려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범인으로 지목된 입장에서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보다 식별이 어떤 절차로 이루어졌고 어떤 증거가 그 진술을 뒷받침하는지를 정리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반대로 피해를 입은 입장에서도 정확한 범인 특정이 이루어져야 처벌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암시 없는 식별 절차는 오히려 진술의 힘을 지켜 줍니다.
저는 성범죄 사건에서 피의자와 피해자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식별 경위 하나가 사건의 결론을 바꾸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지금 어떤 방식으로 지목됐는지가 마음에 걸린다면, 그게 바로 상담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진술이 굳어지기 전에,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피해자가 저를 직접 지목했다는데 그러면 유죄가 확정되나요?
A. 아닙니다. 지목 방식과 시점, 최초 진술과의 일치 여부가 함께 판단됩니다. 한 명만 보여주고 확인한 경우에는 신빙성이 낮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Q. 한 명만 보여준 절차는 위법해서 증거로 쓸 수 없나요?
A. 증거능력이 당연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고, 대법원은 주로 진술의 신빙성 문제로 다룹니다. 부가적 사정이 있으면 유죄 인정에 쓰일 수 있습니다.
Q. 피해자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면 어떻게 되나요?
A. 서로 아는 사이라면 단독 확인의 위험이 훨씬 줄어들어 법원이 신빙성을 인정하기 쉽습니다. 이 경우 쟁점은 행위가 있었는지와 고의가 있었는지로 옮겨 갑니다.
Q. CCTV가 없는데도 처벌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다만 CCTV가 없으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핵심이 되고, 식별 절차의 하자와 진술 변화를 다투는 의미가 더 커집니다.
Q. 벌금형이 나와도 신상정보 등록이 되나요?
A. 유죄가 확정되면 형의 종류와 관계없이 등록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대상 여부와 기간은 적용 죄명과 선고 내용에 따라 달라집니다.
Q. 경찰 조사 통보를 받았는데 변호사는 언제 선임해야 하나요?
A. 첫 조사 전이 가장 좋습니다. 초기 진술이 이후 방어의 틀을 정하고, 식별 경위에 관한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 확인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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