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법률사무소 더든든 조수진 변호사입니다.
"퇴근해 보니 아이도, 배우자도 집에 없었어요."
이혼 상담을 하다 보면 이 말을 정말 자주 듣습니다.
반대편 의뢰인에게서는 "제가 아이를 데리고 나왔는데
불리해지나요?"라는 질문을 듣고요.
두 분의 걱정은 닮아 있습니다.
먼저 움직인 쪽이 낙인찍히는 건 아닌지,
가만히 있다가 아이를 빼앗기는 건 아닌지.
오늘은 그 이야기에 대해 말씀드려보려 합니다.
이혼조정이 진행 중인 부부였습니다.
초등 고학년 첫째와 다섯 살 안팎의 둘째가 있었고요.
어느 날 아내가 둘째만 데리고
친정이 있는 지방으로 내려갔고,
남편은 법원에 사전처분을 신청했습니다.
둘째를 돌려보내 달라,
조정이 끝날 때까지
자신을 임시양육자로 지정해 달라는 내용이었죠.
신청서에는 '탈취'라는 단어가 반복됐고,
아이를 데려간 행위가 정서적 학대에
준한다는 주장까지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의 대리인이었습니다.
먼저 데려갔느냐보다,
지금까지 누가 키웠느냐를 봅니다
사전처분은 본안이 끝날 때까지
아이를 누가 임시로 맡을지 정하는 절차입니다.
이때 법원이 기준으로 삼는 건
부모의 잘잘못이 아니라 아이의 복리예요.
왜일까요?
임시양육자를 정한다는 건 누군가에게 벌이나
상을 주는 일이 아니라, 내일 아침 아이를
누가 깨우고 먹이고 재우느냐를 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탈취' 같은 강한 표현은 상대를 비난할 수는 있어도,
아이를 맡을 수 있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이 사건에서 저희가 보여드린 건 돌봄의 이력이었습니다.
아내는 출생 이후 줄곧 주 양육자였고,
남편은 야근과 출장이 잦아 귀가하면
아이가 이미 잠들 시간이었어요.
남편 쪽이 보조양육자로 내세운 조부모님은
다른 손주를 이미 돌보고 계셔서
어린 아이를 더 맡기가 어려웠고요.
반면 아내 곁에는 아이를 함께 돌볼 외조모가 있었고,
아이는 새 어린이집에도 적응하고 있었습니다.
어릴수록 익숙한 주 양육자와의
애착을 끊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가 통화 중에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한 녹취도 제출됐지만,
다섯 살 아이의 한마디는 말이 나온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어서
선호의 증거로 쓰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형제를 떼어 놓은 선택도,
이유가 분명하면 달리 봅니다
형제는 함께 자라는 게 원칙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막상 형제가 나뉜 사건에서
법원이 먼저 묻는 건 분리 자체가 아니라
왜 나뉘었느냐입니다.
분리가 목적이었는지,
아이 한 명 한 명의 사정을 따르다 보니
생긴 결과인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거든요.
법원이 판단하는 단위는 가족 전체가 아니라
아이 각자의 복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첫째의 뜻이 컸습니다.
사춘기에 막 들어선 첫째는 친구들이 있는 학교를 떠나
낯선 지방으로 전학 가는 걸 분명히 싫어했고,
어머니는 그 뜻을 꺾지 않았어요.
둘째만 데려간 건 아이들을 갈라놓으려는 계획이라기보다,
첫째의 의사를 존중하다
남은 선택지였다는 점을 설명드렸지요.
더 중요한 건 어머니가 분리를 고정하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가사조사 결과 첫째가 엄마와 살기를 원한다면
두 아이를 모두 키우겠다고
처음부터 밝혀 두었어요.
변화 가능성을 열어 둔 양육 의사는
법원이 이 부모가 아이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지 가늠할 때 도움이 됩니다.
이 사건은 소송까지 가지는 않았고,
조정을 통해 법원은 분리 양육을 허용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첫째를,
아내가 양육을 허용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이겼다 졌다로 읽으시면 곤란합니다.
다만 같은 상황에 놓인 분들께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있습니다.
아이가 이미 집을 나갔든, 내가 나가기 직전이든,
법원에서 힘을 얻는 문장은
상대를 향한 분노가 아니라
아이의 하루를 설명하는 사실이라는 점이에요.
이혼 문제로 고민이 많으시다면 언제든 전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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