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사건 수사에서 경찰이 지갑 시드문구나 거래소·휴대폰 비밀번호를 알려 달라고 할 때, 머릿속에 있는 문구를 말하는 것은 '진술'이어서 거부해도 처벌되지 않습니다. 다만 종이에 적힌 시드문구와 기기 자체는 영장으로 압수될 수 있고, 거부해도 자금흐름은 다른 경로로 상당 부분 추적되기 때문에, 거부가 곧 보호는 아닙니다. 이 글은 그 경계선을 한 가지 쟁점으로 깊게 다룹니다.
코인 사기, 자금세탁, 계정 대여 사건의 경찰 조사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조사관이 "지갑 열어서 보여 주세요", "메타마스크 복구구문 적어 주세요", "거래소 앱 비밀번호 알려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순간입니다.
이때 많은 분이 두 가지 극단 사이에서 흔들립니다. 하나는 "거부하면 더 의심받을 테니 다 알려 주자",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찾겠지"입니다. 둘 다 절반만 맞습니다. 아래에서 법이 어디까지 강제할 수 있고, 어디부터 본인의 선택인지 차례로 정리합니다.
결론부터: 시드문구와 비밀번호를 '말하는 것'은 강제할 수 없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시드문구, 비밀번호, PIN을 수사기관에 말하거나 적어 주는 행위는 법적으로 '진술'입니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을 보장하므로, 이를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거나 강제할 근거는 현행법에 없습니다.
대한민국헌법 제12조 제2항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진술거부권 등의 고지) 제1항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를 신문하기 전에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알려주어야 한다. 1.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것 2. 진술을 하지 아니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아니한다는 것 3.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포기하고 행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 4. 신문을 받을 때에는 변호인을 참여하게 하는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시드문구 12개 또는 24개 단어는 그 자체가 지갑의 모든 권한입니다. 이를 알려 주는 것은 단순히 "열쇠를 건네는 것"이 아니라, 지갑 안의 모든 거래 내역과 자산이 어떤 사람의 것인지 스스로 확인해 주는 진술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조사관이 "협조 안 하시면 불리합니다"라고 말하더라도, 그 말이 법적 의무를 만들어 내지는 않습니다. 잠금 해제를 강제하는 별도 입법이 논의된 적은 있으나, 현재까지 피의자에게 비밀번호 제공 의무를 부과하는 법률은 시행되어 있지 않습니다.
진술거부권 행사 자체를 양형에서 불리하게 반영할 수도 없습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진술을 거부하거나 거짓 진술을 하는 것이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수사를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 한, 이를 가중 사유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수사기관은 왜 그렇게 집요하게 요구할까
코인 사건의 핵심 증거는 '돈이 어디서 어디로 갔는가'인데, 개인 지갑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면 피의자와 지갑의 연결 고리, 그리고 범죄수익의 현재 위치를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거래소 계정은 영장만 있으면 거래소가 가입 정보, 입출금 내역, 접속 기록을 모두 제공합니다. 반면 메타마스크나 하드웨어 지갑 같은 개인 지갑은 어느 회사도 관리하지 않습니다. 블록체인 위의 거래 기록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주소가 "이 사람의 것"이라는 점은 지갑을 열어 보거나 다른 간접 증거로 입증해야 합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범죄수익 보전입니다. 수사기관은 피해금이 섞여 있다고 보는 코인을 추징보전 대상으로 삼으려 하는데, 개인 지갑의 코인은 열쇠가 없으면 실제로 옮기거나 동결할 수 없습니다. 조사관이 시드문구를 원하는 배경에는 이 사정이 있습니다.
따라서 요구의 강도는 혐의의 강도와 비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참고인이나 피해자에게도 같은 요청이 오는 이유입니다.
'물건'과 '기억'의 경계: 무엇은 압수되고 무엇은 안 되나
진술거부권은 기억 속의 정보를 보호할 뿐, 물건을 보호하지는 않습니다. 종이에 적어 둔 시드문구, 하드웨어 지갑, 휴대폰, 노트북은 영장이 있으면 압수할 수 있고, 그 안에 저장된 메모나 스크린샷은 포렌식으로 복원될 수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106조(압수) 제3항 법원은 압수의 목적물이 컴퓨터용디스크, 그 밖에 이와 비슷한 정보저장매체(이하 이 조에서 "정보저장매체등"이라 한다)인 경우에는 기억된 정보의 범위를 정하여 출력하거나 복제하여 제출받아야 한다. 다만, 범위를 정하여 출력 또는 복제하는 방법이 불가능하거나 압수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현저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정보저장매체등을 압수할 수 있다.
이 조항은 수사기관의 압수에도 준용됩니다. 실무에서 경계는 다음과 같이 나뉩니다.
압수될 수 있는 것: 시드문구를 적은 종이·카드, 하드웨어 지갑 기기, 휴대폰과 PC, 클라우드에 동기화된 메모, 시드문구를 찍어 둔 사진, 거래소 OTP 기기. 모두 영장에 기재된 범위 안이라면 가져갈 수 있습니다.
강제할 수 없는 것: 외워 둔 시드문구를 말하는 것, 비밀번호·PIN을 입력해 주는 것, 어떤 지갑이 본인 것인지 지목하는 것. 이는 모두 진술입니다.
다툼이 있는 것: 지문·얼굴 인식으로 잠금을 푸는 것. 신체 정보는 진술이 아니라는 견해와, 사실상 비밀번호를 대신하는 것이므로 강제할 수 없다는 견해가 맞서 있고, 영장에 생체정보 이용 문구를 넣어 집행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조사 전에 생체인증을 끄고 비밀번호 방식으로 바꿔 두는 것이 분쟁을 피하는 방법입니다.
정리하면, 시드문구가 종이에 적혀 있다면 그 종이는 압수 대상이고, 그 종이로 지갑을 복구하는 데에는 본인의 협조가 필요 없습니다. 반대로 기억에만 있다면, 수사기관은 포렌식으로 기기 안을 뒤지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됩니다.
거부하면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거부 자체로 처벌되지 않고 증거인멸죄도 성립하지 않지만, 수사기관은 다른 경로로 자금흐름을 재구성하고, 지갑을 열지 못해도 추징은 가액으로 선고될 수 있습니다. 즉 거부는 '시간을 버는 것'이지 '사건을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처벌 측면
자기 사건에 관한 증거를 숨기는 행위는 형법상 증거인멸죄의 대상이 아닙니다. 증거인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시드문구를 말하지 않는 것은 그 이전 단계인 단순 침묵이므로 더더욱 범죄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공범의 지갑 시드문구를 알고 있으면서 이를 파기하거나, 가짜 시드문구를 적어 주어 수사기관을 적극적으로 속이는 행위는 성격이 다릅니다. 전자는 타인 사건의 증거인멸, 후자는 방어권 범위를 넘는 적극적 수사 방해로 평가되어 양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수사 진행 측면
지갑을 열지 못하면 수사기관은 보통 다음 순서로 움직입니다. 거래소에 영장을 보내 피의자 명의 계정의 입출금 주소를 확보하고, 그 주소에서 나간 코인을 블록체인 분석 도구로 따라가며, 피해자 입금 주소와 만나는 지점을 찾습니다. 트래블룰에 따라 거래소 간 이동에는 송·수신인 정보가 함께 기록되므로, 거래소를 한 번이라도 거쳤다면 연결 고리는 대부분 드러납니다.
즉 수사기관이 시드문구를 얻지 못해 확인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 지갑 안의 잔고와 다른 지갑과의 관계' 정도이고, 피해금의 입구와 출구는 거래소 기록으로 상당 부분 복원됩니다.
재산 측면
대법원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이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재산으로서 몰수 대상이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수사기관이 지갑을 열 수 없어 코인 자체를 몰수하지 못하는 경우, 법원은 그 가액을 추징합니다. 추징금은 본인의 다른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으로 이어지므로, 지갑을 닫아 둔다고 해서 재산적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도 같은 구조입니다. 피의자가 지갑을 열지 않아 코인을 직접 환부받지 못하더라도, 배상명령·민사소송과 추징을 통해 금전으로 회복을 구하는 길은 남아 있습니다.
"임의로 제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영장 없이 휴대폰이나 하드웨어 지갑을 임의제출하라는 요청은 거절할 수 있습니다. 제출하기로 결정했다면, 제출하는 정보의 범위를 서면으로 특정하고 탐색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반드시 행사해야 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18조(영장에 의하지 아니한 압수) 검사, 사법경찰관은 피의자 기타인의 유류한 물건이나 소유자, 소지자 또는 보관자가 임의로 제출한 물건을 영장없이 압수할 수 있다.
임의제출은 말 그대로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제출 안 하면 영장 받아서 집까지 가겠다"는 식의 압박 속에서 이루어진 제출은 임의성이 다투어질 수 있고, 그렇게 확보된 전자정보는 위법수집증거로 배제될 여지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임의제출된 휴대폰이라 하더라도 수사기관이 그 안의 모든 정보를 무제한 탐색할 수는 없고, 혐의사실과 관련된 범위로 압수 대상이 제한되며, 탐색·복제·출력 과정에서 제출자에게 참여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참여권은 영장 집행에 관한 아래 조항에서 나옵니다.
형사소송법 제121조(영장집행과 당사자의 참여)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은 압수·수색영장의 집행에 참여할 수 있다.
그래서 임의제출을 택한다면 다음을 지키는 것이 안전합니다.
범위를 글로 남기기: "○○거래소 앱의 2025년 ○월~○월 입출금 내역"처럼 제출하는 정보의 종류와 기간을 임의제출 확인서에 적습니다. 빈칸이나 "휴대폰 일체"는 피합니다.
탐색에 참여하기: 포렌식 일정을 통지받고 본인 또는 변호인이 참석합니다. 참여를 포기한다는 서명을 요구받으면 신중히 판단합니다.
목록 받기: 복제·출력된 전자정보 목록을 교부받아 보관합니다. 범위를 벗어난 정보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이의를 적습니다.
비밀번호는 별개: 기기를 제출했다고 해서 비밀번호까지 알려 줄 의무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둘은 별개의 결정입니다.
내 위치에 따라 답이 달라집니다
같은 요구라도 피해자, 계정을 빌려준 사람, 운반·현금화 역할을 한 사람, 운영자로 지목된 사람은 각각 협조의 이익과 위험이 다릅니다. 거부냐 협조냐는 원칙이 아니라 위치에 따라 결정할 문제입니다.
피해자로 조사받는 경우
피해 입증을 위해 본인 지갑의 송금 내역을 보여 주는 것은 대체로 도움이 됩니다. 다만 시드문구를 통째로 넘길 필요는 없습니다. 해당 거래의 트랜잭션 해시, 송금 주소, 거래소 출금 내역 캡처를 제출하는 것으로 충분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지갑 전체를 열어 보여 주더라도 화면을 함께 보는 방식으로 족합니다.
거래소 계정이나 지갑을 빌려준 경우
이 위치의 핵심 쟁점은 "범죄에 쓰일 줄 알았는가"입니다. 계정 내역 자체는 거래소가 수사기관에 제공하므로 비밀번호를 숨기는 실익이 거의 없고, 오히려 빌려준 경위를 보여 주는 대화 기록을 먼저 정리해 두는 편이 유리합니다. 다만 상대방이 넘겨준 다른 지갑의 시드문구를 보관 중이라면, 그것은 타인 사건의 증거이므로 임의로 지우거나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코인 운반·현금화 역할로 지목된 경우
본인 지갑 안의 흐름이 "지시받은 대로 옮겼을 뿐"임을 보여 줄 수 있다면 협조가 유리할 수 있고, 반대로 지갑 안에 설명하기 어려운 자산이 섞여 있다면 변호인과 먼저 내역을 검토한 뒤 제출 범위를 정하는 것이 맞습니다. 조사실에서 즉석으로 열어 보여 주는 것은 어느 쪽이든 피해야 합니다.
운영자·주범으로 지목된 경우
이 경우 시드문구 제출은 사실상 자백과 같은 무게를 가집니다. 진술거부권 행사를 전제로 전체 전략을 세우되, 피해 변제와 합의를 통해 양형을 다투기로 방향을 정했다면 지갑 자산을 변제 재원으로 쓰는 순서와 시점을 변호인과 설계해야 합니다. 어떤 자산을 어느 단계에서 공개할지가 결과를 크게 좌우합니다.
압수된 하드웨어 지갑·휴대폰은 언제 돌려받나
수사기관이 필요한 정보를 복제해 확보했거나 더 이상 압수를 계속할 필요가 없다면, 피압수자는 환부를 청구할 수 있고 수사기관은 응해야 합니다. 거부되면 법원에 준항고로 다툴 수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18조의2(압수물의 환부, 가환부) 제1항 검사는 사본을 확보한 경우 등 압수를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되는 압수물 및 증거에 사용할 압수물에 대하여 공소제기 전이라도 소유자, 소지자, 보관자 또는 제출인의 청구가 있는 때에는 환부 또는 가환부하여야 한다.
하드웨어 지갑은 기기 자체보다 그 안의 코인이 문제이므로, 수사기관이 추징보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환부가 늦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갑에 범죄와 무관한 자산만 있고 그 점이 소명된다면 환부 청구의 근거가 분명해집니다.
휴대폰은 포렌식 이미지가 확보된 뒤에는 돌려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복제본에서 혐의와 무관한 정보는 삭제·폐기되어야 하므로, 환부 시 압수 전자정보 목록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사 전에 정리해 둘 것
요구를 받는 순간 결정하려 하면 대부분 후회합니다. 출석 전에 아래 항목을 점검해 두면, 조사실에서 어떤 요청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답할 수 있습니다.
내 명의 거래소 계정과 개인 지갑이 각각 몇 개인지, 어떤 자산이 들어 있는지 목록을 만들어 둡니다. 수사기관이 거래소 기록으로 이미 알 수 있는 부분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 위해서입니다.
시드문구가 종이, 사진, 메모 앱 중 어디에 있는지 확인합니다. 압수 가능성이 있는 형태라면 그 점을 전제로 대응을 정합니다. 수사 개시 후에 이를 옮기거나 지우는 행위는 그 자체로 불리한 정황이 될 수 있으므로 하지 않습니다.
휴대폰 잠금을 생체인증에서 비밀번호 방식으로 바꿔 둡니다.
조사관의 제출 요청에 대한 답을 미리 정합니다. "변호인과 상의한 뒤 범위를 정해 서면으로 제출하겠습니다"라는 한 문장이면 충분하고, 이는 거부가 아니라 절차 요구입니다.
피의자신문조서에 "지갑 공개를 거부하였다"는 취지의 문장이 들어가면, 조서 열람 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였다" 또는 "변호인과 상의 후 결정하겠다고 답하였다"로 정정을 요구합니다. 표현 하나가 재판에서 다르게 읽힙니다.
시드문구를 둘러싼 요구는 결국 "무엇이 진술이고 무엇이 물건인가", "거부해서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두 질문으로 정리됩니다. 이 두 질문에 자신의 위치를 대입해 답을 정한 뒤 조사실에 들어가는 것이, 이 쟁점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준비입니다.
※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구체적인 법률 조언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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