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사기 혐의로 경찰 연락을 받은 뒤 텔레그램 대화를 지우거나 코인을 다른 지갑으로 옮기는 행동은, 자기 사건의 증거인멸죄로 처벌되지는 않지만 구속 사유와 양형 가중 사유가 되고, 코인 이동은 범죄수익은닉이라는 별도의 범죄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조사를 앞둔 피의자가 마주하는 세 갈림길, 즉 기록을 지울지, 코인을 옮길지, 남에게 부탁할지를 조건별로 안내합니다.
출석요구서를 받은 날 밤, 많은 분이 휴대폰을 들고 같은 고민을 합니다. 리딩방 대화방을 나갈까, 지갑 앱을 지울까, 거래소에 남은 코인을 일단 어디로 보내 둘까.
이 고민의 답은 하나가 아닙니다. 무엇을 지우느냐, 무엇을 옮기느냐, 누가 하느냐에 따라 처벌되지 않는 행동과 새로운 범죄가 되는 행동이 갈립니다. 그 선을 먼저 정확히 그어 드리겠습니다.
먼저 알아야 할 원칙, 자기 사건의 증거인멸은 죄가 아니다
형법상 증거인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없앴을 때 성립하고, 자기 자신의 사건 증거를 지운 행위는 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코인 사기 피의자가 자기 휴대폰의 대화를 지운 것만으로 증거인멸죄가 추가되지는 않습니다.
형법 제155조(증거인멸 등) ①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또는 변조한 증거를 사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대법원은 피의자가 자신이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해 자기 사건의 증거를 없앤 경우, 설령 그 증거가 공범의 증거이기도 하더라도 증거인멸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봅니다. 자기 처벌을 피하려는 행동까지 형벌로 막을 수는 없다는, 이른바 기대가능성의 문제입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안심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벌되지 않는다는 것과 불이익이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코인 사건에서 이 차이는 구속 여부와 형량으로 돌아옵니다.
갈림길 1. 텔레그램 대화와 지갑 기록, 지울까 남길까
결론부터 말하면, 지워서 얻는 것은 거의 없고 잃는 것은 분명합니다. 삭제한 기록은 상대방 휴대폰과 거래소 서버, 블록체인에 그대로 남아 있고, 내 휴대폰에서 지운 흔적만 "증거인멸 염려"라는 이름으로 구속영장에 적히기 때문입니다.
지워도 사라지지 않는 세 곳
코인 사기 수사에서 수사기관이 확보하는 기록은 피의자의 휴대폰 하나가 아닙니다.
상대방 기기. 고소인은 고소장에 이미 대화 캡처를 첨부했고, 삭제 시점 이전의 내용은 고소인 휴대폰 포렌식으로 그대로 복원됩니다. 텔레그램에서 "양쪽 모두 삭제"를 눌러도 이미 캡처된 화면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거래소 기록. 국내 가상자산사업자는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거래기록을 일정 기간 보존해야 하고, 수사기관은 영장으로 입출금 내역, 접속 IP, 연결 계좌를 통째로 받습니다. 앱을 지워도 서버의 기록은 그대로입니다.
블록체인. 지갑 앱을 삭제해도 온체인 이체 내역은 영구히 남습니다. 수사기관은 블록체인 분석 도구로 주소 간 자금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며, 지갑을 지운 행위는 오히려 "그 주소가 내 것이었다"는 점을 숨기려 했다는 정황이 됩니다.
삭제 흔적이 구속영장에 적히는 방식
형사소송법은 증거를 인멸할 염려를 구속 사유로 정합니다. 출석요구 직후 대화방을 삭제하거나 휴대폰을 초기화한 사실은, 수사기관이 영장청구서에 "피의자는 수사 개시 사실을 알고 증거를 삭제하였다"고 적는 가장 전형적인 근거입니다.
형사소송법 제70조(구속의 사유) ① 법원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 1.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2.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3.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포렌식 결과에는 삭제된 파일뿐 아니라 삭제된 시각이 함께 나옵니다. 출석요구서 수령 다음 날 새벽에 수백 건의 메시지가 지워진 기록은, 내용이 복구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불리한 정황이 됩니다.
유죄가 되었을 때 형량에 미치는 영향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사기범죄 양형기준은 "범행 후 증거은폐 또는 은폐 시도"를 형을 무겁게 하는 가중인자로 둡니다. 증거인멸죄로 처벌되지 않는 행동이, 사기죄 형량을 정할 때는 그대로 불리하게 반영된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기록을 남겨 두고 조사에서 스스로 제출한 피의자는 "수사 협조"로 평가받을 여지가 생깁니다. 같은 사실관계라도 지운 사람과 낸 사람의 출발선이 다릅니다.
그래도 지워야 할 것 같다면, 조건별 판단
상담에서 실제로 받는 질문을 기준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건과 무관한 사생활 대화가 걱정될 때. 삭제하지 말고, 임의제출 시 범위를 사건 관련 기간과 상대방으로 한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맞습니다. 형사소송법은 전자정보 압수 시 사건과 관련된 범위를 정해 출력하거나 복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내게 유리한 대화가 섞여 있을 때. 더더욱 지우면 안 됩니다. "원금 보장은 아니다", "손실 가능성 있다"고 말한 기록, 투자자가 먼저 추가 투자를 요청한 기록은 사기 고의를 부정하는 핵심 증거이고, 이것을 지우면 고소인 쪽 캡처만 남습니다.
이미 지워 버린 뒤라면. 복구를 시도해 스스로 제출하는 것이 차선입니다. 삭제 사실을 숨기다 포렌식에서 드러나는 것보다, 조사 전에 변호인을 통해 삭제 경위와 복구 노력을 설명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갈림길 2. 거래소와 지갑에 남은 코인, 옮길까 그대로 둘까
이 갈림길은 앞의 것과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대화 삭제는 처벌되지 않는 불이익에 그치지만, 피해금으로 의심되는 코인을 다른 지갑이나 타인 명의로 옮기는 행위는 범죄수익은닉이라는 별개의 범죄가 될 수 있습니다.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에 관한 법률 제3조(범죄수익등의 은닉 및 가장)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범죄수익등의 취득 또는 처분에 관한 사실을 가장한 자 2. 범죄수익등의 발생 원인에 관한 사실을 가장한 자 3. 범죄수익등을 은닉한 자
왜 코인은 "숨기는 행위" 자체가 범죄가 되나
사기로 받은 돈은 범죄수익이고, 그 돈으로 산 코인이나 그 코인을 바꾼 다른 코인은 범죄수익에서 유래한 재산입니다. 이를 가족 명의 거래소 계정으로 보내거나, 믹서를 거치거나, 개인지갑 여러 개로 쪼개는 행위는 취득과 처분에 관한 사실을 가장하거나 은닉하는 행위로 평가됩니다.
대법원은 범죄수익은닉죄의 "가장"을 범죄수익의 취득 또는 처분에 관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외형상 다른 사실이 존재하는 것처럼 꾸미는 행위로 넓게 봅니다. 타인 명의 계정 이용, 차명 지갑 이체가 전형적인 예입니다.
즉 대화를 지우는 것은 "불리한 정황"에서 끝나지만, 코인을 옮기는 것은 공소장에 죄명 하나가 추가되는 일입니다. 사기죄와 범죄수익은닉죄는 별개의 죄로 함께 기소되고, 형량도 그만큼 올라갑니다.
옮기면 수사기관이 보는 것
수사기관의 블록체인 분석은 피의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구체적입니다.
이체 시점. 출석요구서 수령일, 고소장 접수일, 거래소의 정보제공 통지일 직후의 대량 이체는 그 자체가 은닉 의도의 증거로 읽힙니다.
경로의 복잡성.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금액을 여러 지갑으로 나누고, 다른 코인으로 바꿨다가 다시 합치는 패턴은 분석 도구가 가장 먼저 표시하는 유형입니다.
종착지. 결국 현금화하려면 국내 거래소의 실명계좌를 거쳐야 하고, 그 순간 명의자가 특정됩니다. 가족이나 지인의 계정으로 받았다면 그 사람까지 범죄수익은닉 공범으로 조사받습니다.
몰수·추징보전과 피해 회복의 관계
코인을 옮기지 않고 두면 수사기관이 추징보전으로 묶어 둘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불이익으로만 보는 분이 많지만, 사실은 반대의 면이 큽니다.
보전된 코인은 피해자와의 합의나 피해변제 재원이 되고, 재판에서 "피해금이 보전되어 있다"는 사정은 실질적 피해 회복 가능성으로 양형에 반영됩니다. 반면 옮긴 코인이 추적 끝에 발견되면, 은닉죄 추가에 더해 피해변제 의사가 없었다는 평가까지 함께 받습니다.
정리하면
코인을 옮겨도 되는 경우는 사실상 하나뿐입니다. 변호인과 협의해 피해자에게 반환하거나 합의금으로 지급하는 경우입니다. 그 외의 이동, 특히 타인 명의로의 이동은 어떤 사정이 있어도 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갈림길 3.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탁할까, 직접 할까
세 번째 갈림길은 가장 위험합니다. 자기 손으로 지우면 처벌되지 않던 행위가, 남에게 부탁하는 순간 증거인멸교사죄가 되고 부탁받은 사람은 증거인멸죄의 정범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신 지워 줘"가 범죄가 되는 구조
대법원은 피의자가 자기 사건의 증거를 타인을 시켜 인멸하게 한 경우 증거인멸교사죄가 성립한다고 봅니다. 자기 증거를 직접 지우는 것은 기대가능성이 없어 처벌하지 않지만, 타인을 범죄에 끌어들이는 것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는 논리입니다.
코인 사건에서 흔한 장면은 이렇습니다. 리딩방을 함께 운영한 직원에게 "운영 단톡방 나가고 기록 지워", 거래소 계정 명의를 빌려준 친구에게 "앱 지우고 모르는 척해", 가족에게 "내 노트북 포맷해 줘". 모두 교사에 해당할 수 있는 말들입니다.
가족이 대신 지웠을 때의 특례, 그리고 그 한계
형법은 친족이나 동거 가족이 본인을 위해 증거를 인멸한 경우 그 가족을 처벌하지 않는 특례를 둡니다.
형법 제155조(증거인멸 등) ④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이 본인을 위하여 본조의 죄를 범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이 특례는 가족 본인에게만 적용됩니다. 가족에게 부탁한 피의자의 교사 책임이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가족이 피의자의 코인을 자기 계정으로 받아 두었다면 증거인멸이 아니라 범죄수익은닉의 문제가 되어 특례 자체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공범이 있을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
리딩방이나 다단계 구조의 코인 사기는 피의자가 여럿입니다. 이때 "우리 다 같이 입을 맞추자"는 제안이 나오기 쉬운데, 이것은 삭제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낳습니다.
말 맞추기 자체가 증거. 입을 맞추자는 대화는 상대방 휴대폰에 남고, 수사기관은 이를 공범 간 사전 모의와 범행 인식의 증거로 사용합니다.
이해관계가 다르다. 모집책과 운영자, 계정 명의자의 책임은 다르고, 먼저 사실대로 진술하는 쪽이 유리해지는 구조입니다. 입을 맞춘 쪽은 나중에 번복할 때 진술 신빙성 전체를 잃습니다.
허위 문서는 별개 범죄. 사후에 투자약정서를 만들어 날짜를 앞당기거나 대화 캡처를 편집하는 것은 증거위조, 경우에 따라 사문서위조가 되어 사기 혐의와 무관하게 처벌됩니다.
조사 전에 실제로 해야 할 일
세 갈림길의 결론은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지우지 말고, 옮기지 말고, 부탁하지 말 것. 대신 아래 순서로 준비하면 됩니다.
기록을 보존하고 정리한다. 고소인과의 대화 전체, 투자금 입출금 내역, 리딩방 공지 원문을 시간순으로 정리합니다. 특히 손실 가능성을 고지한 기록, 투자자가 자발적으로 추가 투자한 기록, 수익금을 실제 지급한 기록은 고의를 다투는 핵심입니다.
자금 흐름을 스스로 그린다. 받은 돈이 어디로 갔는지를 먼저 파악해 두어야 "편취 의도가 없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습니다. 실제 투자나 운영비로 쓴 내역이 있다면 그 증빙이 곧 방어 자료입니다.
제출 범위를 미리 정한다. 휴대폰 전체가 아니라 사건 관련 기간과 대화 상대로 한정한 임의제출을 준비하면, 사생활 노출을 줄이면서도 수사 협조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코인은 그 자리에 둔 채 변제 계획을 세운다. 보전될 가능성이 있는 코인이라면 그 코인을 피해 회복 재원으로 쓰는 방향이 가장 유리합니다.
조사를 앞둔 밤에 휴대폰을 붙잡고 무언가를 지우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코인 사건의 증거는 내 휴대폰 밖에 더 많이 있고, 지우는 손가락 하나가 구속 사유와 추가 죄명으로 돌아옵니다. 그 손을 멈추고 기록을 정리하는 쪽이 언제나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집니다.
※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구체적인 법률 조언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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