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고 나면, 재산을 자녀 중 한 명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요?"
상속상담에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유언장을 쓸 수도 있지만, 요즘은 유언대용신탁이라는 방법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유언대용신탁을 이용해 재산을 자녀 한 명에게 몰아주려다 다른 자녀들과 소송으로 이어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법원이 2024. 4. 16. 선고한 2022다307294 판결입니다.
저는 이 판결을 서울지방변호사회 판례연구발표에서 평석했고, 『판례연구』 제39집(1권)에도 논문으로 수록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 평석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1. 먼저, 유언대용신탁이란?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가 자신의 재산을 수탁자에게 맡기고, 사망 후 그 재산이 누구에게 돌아갈지를 미리 정해 두는 신탁입니다. 신탁법 제59조가 정하고 있습니다.
유언처럼 방식의 제약이 크지 않고, 생전에는 재산 관리를, 사후에는 승계를 한 계약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2. 사건의 개요
• 위탁자 A는 자녀 중 1명인 B와 신탁계약을 체결했습니다. (B가 수탁자)
• 생전에는 A가 수익을 누립니다.
• 사망 후에는 B가 수익을 취득하고, B를 사후수익자이자 귀속권리자로 지정했습니다.
• A가 사망하자 나머지 자녀들이 "B 명의 등기는 인정할 수 없다"며 말소등기 또는 진정명의회복을 원인으로 한 이전등기를 청구했습니다.
쟁점은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수탁자가 사후 유일한 수익자이자 귀속권리자라면, 그 신탁은 유효한가?
3. 대법원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계약을 통째로 유효 또는 무효로 보지 않고 세 부분으로 나누어 판단했습니다.
① 수탁자를 사후 유일한 수익자로 정한 부분 → 무효
• 신탁법 제36조(수탁자의 이익향수 금지)와 제5조 제2항(탈법 목적 신탁 금지)에 반합니다.
• 수탁자 한 명만 이익을 누리는 신탁은 신탁으로 인정할 실익이 없고, 사실상 유증이나 사인증여와 같은 효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② 생전 수익자를 위탁자로 정한 부분 → 유효
• 생전에 A가 재산의 수익을 누리도록 한 부분은 그대로 인정됩니다.
③ 수탁자를 귀속권리자로 정한 부분 → 유효
• A가 사망하면 신탁은 종료되고, 계약에 따라 재산이 수탁자 B에게 귀속됩니다.
• B는 정당한 귀속권리자로서 재산을 고유재산으로 취득했고, 다른 자녀들의 청구는 기각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B는 재산을 지켰지만, 그 근거는 "유효한 사후수익권"이 아니라 "유효한 귀속권리자 지정"이었습니다.
4. 평석: 이 판결의 실무상 시사점
1) 생전 수익자는 자유롭게 정할 수 있습니다. 위탁자 본인을 수익자로 하는 설계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2) 사후에 수탁자를 유일한 수익자로 둘 수는 없습니다. 수탁자 외에 다른 수익자를 함께 두는 공동수익자 구조라면 달리 볼 여지가 있습니다.
3) 그러나 수탁자를 귀속권리자로 지정해 재산을 넘기는 것은 가능합니다. 계약서에서 "수익자 지정"과 "귀속권리자 지정"을 어떻게 구분해 쓰느냐가 결과를 가릅니다.
4) 신탁이 유효해도 상속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신탁이 유효하더라도 다른 상속인이 유류분을 주장할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이 판결은 유류분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5. 유언대용신탁을 설계할 때 점검할 것
• ☐ 생전 수익자는 누구로 할 것인가
• ☐ 사후 수익자와 귀속권리자를 각각 누구로 할 것인가
• ☐ 수탁자가 자녀(상속인)일 때 신탁법 제36조 문제는 없는가
• ☐ 다른 상속인의 유류분을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
• ☐ 위탁자의 의사가 계약서 문구에 정확히 반영되었는가
6. 함께 읽어보세요
뉴스웍스 기고 「유언대용신탁으로 1명에게 재산을 줄 수 있을까?」 (뉴스웍스 오피니언, 2025. 7. 12.)
기고 글에서는 유언대용신탁이 유언·증여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이 판결이 실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간략히 정리했습니다.
맺으며
유언대용신탁은 상속과 증여의 중간 지점에서 재산 관리와 승계를 함께 설계할 수 있는 좋은 도구입니다. 다만 신탁법과 상속법이 만나는 지점에서 문구 하나로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계약 체결 전 법률 검토가 꼭 필요합니다.
신탁계약서 작성이나 상속 설계가 고민이시라면 상담을 신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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