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로 고소당한 뒤 피해자에게 보내는 "미안하다"는 문자 한 통은, 사과가 아니라 자백 증거와 구속 사유가 되고 별도의 범죄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고소 이후 피의자와 가족이 하기 쉬운 행동 11가지를 금지·조건부·허용 세 단계로 나누어, 어디까지가 선인지 판정합니다.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경찰 연락을 받으면 많은 분이 가장 먼저 피해자에게 연락하려 합니다. 오해를 풀고 싶고, 사과하면 고소를 거둬줄 것 같고, 가만히 있으면 상황이 굳어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사기관과 법원은 그 연락을 전혀 다르게 읽습니다.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했다"는 사실 자체가 사건의 무게를 바꿉니다.
연락 한 번이 사건을 키우는 세 가지 경로
피해자 접촉은 ① 구속 사유 ② 별개의 범죄 ③ 양형 가중이라는 세 갈래로 동시에 작용합니다. 어느 하나만 걸려도 처음 사건보다 결과가 무거워집니다.
첫째, 구속입니다. 형사소송법은 구속 사유를 심사할 때 피해자와 중요 참고인에 대한 위해 우려를 고려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에게 연락한 기록은 그 우려를 증명하는 가장 직접적인 자료입니다.
형사소송법 제70조(구속의 사유) ① 법원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을 때에는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 1.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2.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3.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② 법원은 제1항의 구속사유를 심사함에 있어서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
둘째, 별개의 범죄입니다. 연락의 방식과 내용에 따라 스토킹처벌법, 협박죄, 강요죄, 위증교사, 명예훼손이 추가로 성립할 수 있습니다. 성범죄 혐의는 다투어 무혐의를 받더라도, 연락 과정에서 저지른 범죄는 그대로 남습니다.
셋째, 양형입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은 합의를 시도하면서 피해자에게 피해를 준 경우를 가중인자로 보고, 반대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를 감경인자로 봅니다. 잘못된 접촉은 감경 요소를 스스로 지우고 가중 요소를 만드는 행동입니다.
절대 금지: 하는 순간 사건이 달라지는 행동 5가지
아래 다섯 가지는 이유가 무엇이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의였다는 사정은 결과를 바꾸지 못합니다.
1. 사과·해명 문자, 전화, DM
결론부터 말하면 사과 문자는 자백 증거로 쓰입니다. "그날 일은 정말 미안하다", "내가 실수했다"는 말은 피의자가 그날 어떤 일이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진술로 조서에 첨부됩니다.
반대로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이러냐"는 해명 문자는 피해자를 압박한 정황으로 읽힙니다.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때 피의자가 사후에 보인 태도를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고 봅니다. 어느 쪽으로 쓰든 불리합니다.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메시지를 거듭 보내면 스토킹행위가 됩니다. 성범죄 피해자에게 보내는 연락은 내용이 정중해도 불안감을 일으키기 충분하다고 보는 것이 실무의 시각입니다.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 1. "스토킹행위"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다. 우편, 전화, 팩스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물건이나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스토킹행위가 지속되거나 반복되면 스토킹범죄가 되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고, 흉기를 이용하면 형이 더 무거워집니다. 2023년 개정으로 반의사불벌 조항이 삭제되어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도 처벌됩니다.
2. 집·직장·학교로 찾아가기
직접 찾아가는 행위는 접촉 중 가장 위험한 형태입니다. 피해자가 느끼는 공포가 크고, 그 자체로 스토킹행위의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피해자가 신고하면 경찰은 긴급응급조치로 100미터 이내 접근금지와 전기통신 이용 접근금지를 명할 수 있고, 법원의 잠정조치로 이어지면 유치장 유치까지 가능합니다. 성범죄 수사가 진행되는 중에 잠정조치를 받으면 구속영장 심사에서 사실상 돌이키기 어렵습니다.
3. 지인·가족·직장 동료를 통한 간접 전달
"내가 직접 하지 않았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친구를 시켜 "한 번만 만나 달라"는 말을 전하거나, 부모가 피해자 부모를 찾아가 사정하는 것 모두 피의자의 접촉으로 평가됩니다.
특히 그 지인이 사건 당시 함께 있던 사람이라면 문제가 더 커집니다. 참고인에게 "그날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해 달라"고 부탁하는 순간 위증교사나 증거인멸교사가 됩니다.
형법 제155조(증거인멸 등과 친족간의 특례) ①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또는 변조한 증거를 사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인을 은닉 또는 도피하게 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자기 사건의 증거를 없애는 것은 처벌되지 않지만, 타인에게 거짓 진술을 부탁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가족이 대신 참고인을 만나 입을 맞추면 가족이 처벌받고, 피의자는 교사범이 됩니다.
4. 고소 취하 요구, 거래 제안, 압박
"고소 취하하면 돈을 주겠다", "취하 안 하면 나도 무고로 고소하겠다"는 말은 협박죄 또는 강요죄가 됩니다. 형법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면 강요죄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에게 있는 약점을 언급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도 그날 먼저 들어오지 않았느냐", "사진 가지고 있다"는 식의 말은 그 자체로 협박이고, 사진이 성적 촬영물이라면 성폭력처벌법상 촬영물 이용 협박으로 1년 이상의 유기징역입니다.
무고 고소는 성범죄 사건이 무혐의로 끝난 뒤 변호사와 검토해 진행하는 것이지, 피해자를 상대로 협상 카드로 쓸 것이 아닙니다.
5. SNS·커뮤니티에 사건 글 올리기, 피해자 신상 언급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은 피해자 특정이 가능한 순간 명예훼손과 피해자 신원 공개 금지 위반이 됩니다. 이름을 쓰지 않아도 학교·직장·관계를 적으면 특정됩니다.
성폭력처벌법 제24조는 누구든지 피해자의 동의 없이 그 신원을 알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합니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은 사실을 적시해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고, 허위사실이면 7년 이하의 징역입니다.
글을 지워도 소용없습니다. 피해자 측이 캡처해 제출하면 "2차 가해"로 양형에 반영되고, 피해자가 처벌불원 의사를 밝힐 가능성은 사라집니다.
조건부 허용: 방법을 지키면 되는 행동 3가지
피해자와의 소통이 필요한 순간은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반드시 변호사와 수사기관을 거치는 경로로만 해야 합니다.
6. 변호사를 통한 합의 의사 전달
합의는 피의자가 아니라 변호사가 수사기관을 통해 피해자 측 의사를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경찰·검찰은 피해자에게 합의 의사가 있는지 묻고, 피해자가 동의하면 피해자 국선변호사나 피해자가 지정한 연락처로 변호인이 접촉합니다.
이 경로를 지키면 접촉 기록이 "합의 노력"으로 남고, 피해자가 거절하더라도 압박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피의자가 피해자 연락처를 알아내 직접 금액을 제시하면 같은 합의 시도가 가중 사유로 뒤집힙니다.
합의 조건에 "고소 취하", "진술 번복"을 넣자는 제안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처벌불원 의사 표시 외의 요구는 강요로 번질 수 있습니다.
7. 형사공탁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하거나 연락 자체를 원하지 않을 때 쓰는 수단이 형사공탁입니다. 2022년 말 시행된 형사공탁 특례에 따라 피해자 인적사항을 몰라도 사건번호만으로 공탁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공탁을 하더라도 피해자에게 공탁 사실을 직접 알리거나 수령을 재촉하면 안 됩니다. 법원은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밝힌 일방적 공탁을 진정한 합의와 같게 보지 않으며, 공탁금을 이유로 피해자에게 연락하면 오히려 2차 가해로 평가됩니다.
8. 사건 당시 함께 있던 사람에게 사실관계 묻기
그날의 상황을 아는 사람에게 "네가 기억하는 대로 말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방어권 행사에 속합니다. 선은 하나입니다. 기억을 묻는 것은 되고, 기억을 바꾸는 것은 안 됩니다.
안전하게 하려면 변호사가 참고인을 면담하고 진술서를 받는 방식이 낫습니다. 피의자가 직접 "이렇게 말해 줘"라고 한 카톡은 그 참고인의 진술 전체를 믿을 수 없게 만듭니다.
허용: 지금 당장 해야 할 행동 3가지
피해자에게 쓰려던 에너지는 내 사건의 기록을 만드는 데 써야 합니다.
9. 그날의 기억을 시간 순서로 적기
만난 시각, 장소, 이동 경로, 마신 술의 양, 오간 대화, 헤어진 방법을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적습니다. 결제 내역, 택시 호출 기록, 위치 기록, 당시 주고받은 메시지는 삭제하지 말고 그대로 보존합니다.
성범죄 사건의 핵심 쟁점은 대부분 동의가 있었는지, 피의자에게 고의가 있었는지입니다. 사건 전후의 대화 흐름과 행동은 그 쟁점을 다투는 유일한 객관 자료입니다.
10. 피해자와의 과거 대화 전체 보존
사건 이전의 메시지, 통화 기록, 사진은 지우지 않습니다. 일부만 남기면 선별했다는 의심을 받고, 상대방이 가진 원본과 대조되어 신빙성을 잃습니다.
11. 피해자가 공개한 게시물 저장
피해자가 사건과 관련해 공개 계정에 올린 글은 캡처해 두어도 됩니다. 단 저장까지만입니다. 그 글을 다른 곳에 올리거나 지인에게 보내면 유포가 됩니다.
이미 연락했다면, 수습 순서
이미 보낸 메시지는 되돌릴 수 없지만, 그 다음 행동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순서는 중단, 보존, 공개입니다.
즉시 중단 — 답장이 오지 않아도, 피해자가 화를 내도 더 보내지 않습니다. 반복이 스토킹범죄의 요건입니다.
삭제 금지 — 보낸 메시지를 지우면 피해자 측 캡처만 남아 맥락이 사라집니다. 원본을 그대로 보존합니다.
변호사에게 전부 공개 — 불리한 내용일수록 먼저 알려야 합니다. 조사에서 뒤늦게 드러나면 대응할 시간이 없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숨기지 않기 — 연락 사실을 물으면 인정하고, 더 이상 접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조서에 남깁니다.
피해자가 먼저 연락해 올 때
피해자 쪽에서 오는 연락도 피의자가 직접 답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감정적인 대화가 오가면 그 대화는 피해자 측 증거가 됩니다.
사과를 요구하면 "변호사를 통해 정식으로 말씀드리겠다"는 한 문장으로 끝내고, 그 내용을 변호사에게 전달합니다. 금전을 요구하면 금액이나 조건을 두고 흥정하지 말고 메시지를 보존한 뒤 변호사와 상의합니다.
통화가 걸려 오면 받지 않아도 됩니다. 받게 됐다면 상대방 동의 없이 녹음해도 대화 당사자 간 녹음은 처벌되지 않지만, 녹음 사실을 무기처럼 언급하면 협박이 될 수 있으니 조용히 보존만 합니다.
가족이 지켜야 할 선
부모와 배우자가 하는 행동도 피의자의 행동으로 평가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장 흔한 실수는 피해자 가족을 찾아가 사정하는 것, 그리고 자녀의 휴대폰을 정리해 주는 것입니다.
전자는 간접 접촉이고, 후자는 증거인멸입니다. 가족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연락하지 않도록 곁에서 막고, 변호사 선임과 자료 정리를 돕는 것입니다.
사건이 어떻게 끝나든 피해자와의 거리는 끝까지 유지해야 합니다. 그 거리가 피의자 자신을 지키는 선입니다.
※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구체적인 법률 조언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 개인의 상황에 맞는 정확한 법률 자문은 반드시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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