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입원하시고 간병이 길어지면 병원비와 간병비를 가장 가까이 사는 자녀 한 명이 먼저 떠안는 일이 흔합니다. 형제들은 "그때 말해줬으면 보탰을 텐데"라고 하고, 낸 사람은 "나눠 내자고 말하기가 어려웠다"고 하면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이미 지나간 비용인데 지금 와서 형제에게 돌려받을 수 있는지, 미리 청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막히는 것은 아닌지가 핵심 질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부양의무자가 여럿일 때 대신 낸 과거 부양료를 어떤 근거로, 어떤 절차와 기준으로 형제에게 청구할 수 있는지 법리 중심으로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부모 부양의무 — 자녀 모두가 함께 지는 책임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의 출발점은 민법 제974조 제1호입니다.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사이에서는 서로 부양할 의무가 있다고 정하고 있어, 자녀는 성별·혼인 여부·출생 순서와 관계없이 모두 부모의 부양의무자입니다. 장남이라는 이유로, 혹은 부모와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의무가 혼자에게 몰리는 구조가 아닙니다. 부모님의 입원비와 간병비는 부양에 필요한 비용에 해당하므로, 자녀 중 한 사람이 먼저 지출했다면 그 비용은 원래 의무자 전원이 나눠 져야 할 몫을 대신 낸 셈이 됩니다.
다만 의무가 곧바로 자녀들에게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법 제975조는 부양의 의무가 부양을 받을 사람이 자기의 자력 또는 근로로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이행할 책임이 있다고 정합니다. 부모님에게 예금·연금·보험금 등 충분한 재산이 있어 그것으로 병원비와 간병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면 자녀의 부양의무 자체가 줄어들거나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분쟁이 생기면 가장 먼저 "부모님 본인 재산으로 해결될 수 없었는가"가 다투어집니다.
부양의무는 자녀 전원이 함께 지되,부모 본인의 자력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면 자녀의 책임은 그만큼 줄어든다.
대신 낸 과거 부양료 — 형제에게 몫을 돌려받는 구상청구
자녀 한 명이 부양비를 먼저 지출했다면 나머지 형제를 상대로 과거 부양료의 상환, 즉 구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 1994. 6. 2.자 93스11 결정은 부양의무자가 여러 사람인 경우 그중 부양의무를 이행한 1인은 다른 부양의무자를 상대로 이미 지출한 과거의 부양료에 대해서도 상대방이 분담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범위에서 비용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사건은 성년 자녀의 치료비를 먼저 부담한 부모 한쪽이 상대방에게 분담을 청구한 사안이었고, 청구 이전에 상대방에게 미리 청구한 적이 없더라도 상당한 범위에서는 분담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같은 법리는 형제 사이의 부모 부양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대법원 2022. 8. 25.자 2018스542 결정은 자녀 중 1인이 어머니의 병원비 등을 지출한 뒤 다른 자녀를 상대로 과거 부양료의 구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위 법리를 확인하면서 분담비율이나 분담액은 과거의 부양에 여러 부양의무자가 기여한 정도, 부양을 받을 사람의 연령, 부양의무자의 재산상황이나 자력 등 여러 사정을 참작해 적절한 범위에서 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즉 "미리 청구하지 않았으니 이미 쓴 돈은 못 받는다"는 논리는 형제 사이 구상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이 점이 헷갈리는 이유는 부양을 받는 부모 본인이 자녀에게 과거분 부양료를 청구하는 경우와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부양권리자 본인이 청구하는 경우에는 이행청구를 받고도 이행하지 않은 이후의 것을 중심으로 보고, 그 이전의 과거분은 부양의무의 성질이나 형평상 허용할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에 한해 인정하는 것이 법원의 일반적 태도입니다. 반면 형제 사이의 구상은 이미 의무를 대신 이행한 사람이 다른 의무자의 몫을 정산받는 구조라 사전 청구가 요건이 아닙니다. 어느 쪽 청구인지부터 정리해야 청구 방향을 잘못 잡지 않습니다.
형제 사이 구상은 사전 청구가 요건이 아니다 — 대신 낸 사람은 상대방이 분담함이 상당한 범위에서 몫을 돌려받을 수 있다.
분담 비율은 균등이 아니다 — 법원이 보는 기준
자녀가 4명이니 4분의 1씩 나누면 된다는 계산은 법원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민법 제977조는 부양의 정도나 방법에 협정이 없으면 법원이 당사자의 청구에 의해 부양을 받을 사람의 생활정도와 부양의무자의 자력, 그 밖의 제반 사정을 참작해 정한다고 규정합니다. 구상의 분담액도 이 틀 안에서 결정되므로, 형제의 소득과 재산이 다르면 몫도 달라집니다.
부양의무자의 자력 — 소득·재산·부채·부양가족 수. 형편이 넉넉한 형제의 몫이 커진다.
기여한 정도 — 병원비를 낸 금액뿐 아니라 부모와 함께 살며 돌본 기간과 노력도 평가 대상이다.
부모의 연령과 상태 — 연령, 질병의 경중, 요양 필요 기간이 분담의 상당성에 영향을 준다.
이미 부담한 몫 — 다른 형제가 직접 낸 병원비·생활비가 있으면 그만큼 차감된다.
부모 본인과 배우자의 자력 — 부모의 재산이나 부모의 배우자가 지는 1차적 부담이 먼저 고려된다.
가정해 보겠습니다. 어머니의 입원 기간 중 장녀가 병원비와 간병인 비용으로 합계 2,000만원을 지출했고, 동생 둘은 한 푼도 내지 않았으며 차남은 안정된 직장이 있고 막내는 소득이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이때 법원은 단순히 3등분하지 않고 차남의 자력과 막내의 형편, 장녀가 직접 돌본 기여를 함께 따져 차남에게 더 큰 몫을, 막내에게는 작은 몫을 정할 수 있습니다. 결국 청구하는 쪽도 금액만 내밀기보다 형제별 자력 자료를 함께 준비해야 설득력이 생깁니다.
간병비와 직접 돌봄 — 어디까지 부양료로 인정되나
간병비는 간병인에게 실제로 지급한 비용이 있으면 영수증과 이체내역으로 입증할 수 있어 비교적 명확합니다. 병원비, 요양병원 입원료, 약제비, 간병인 사용료는 모두 부양에 필요한 비용으로 청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녀가 직접 간병한 경우입니다. 직접 돌본 시간을 금전으로 환산해 그대로 청구할 수 있는지는 사안마다 평가가 갈리고, 실무에서는 별도의 금액 청구보다 분담비율을 정할 때 기여한 정도로 반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직접 돌봄을 한 자녀는 그 사실을 입증할 자료를 모아 두어야 합니다. 부모와 동거한 주민등록 기록, 병원 보호자 등록 기록, 면회·간호 일지, 간병 때문에 휴직하거나 근무시간을 줄인 사정을 보여 주는 자료가 그 예입니다. 반대로 직접 간병을 하지 않은 형제는 "나는 돈을 보태지 않았지만 병원비 일부는 이미 부모님 재산에서 나갔다" 같은 주장으로 분담액을 줄이려 하므로, 낸 쪽은 지출 재원이 누구의 재산이었는지도 정리해야 합니다.
한편 상속 단계의 문제와는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부모님 사망 후 상속재산 분할에서 특별한 부양이나 간호를 한 상속인은 민법 제1008조의2의 기여분을 주장할 수 있지만, 이는 상속분 산정의 문제이고 형제를 상대로 지출한 비용을 돌려받는 구상과 청구 근거가 다릅니다. 상속재산이 거의 없거나 공동상속인이 아닌 경우를 포함해, 어느 경로가 실익이 있는지는 따로 따져야 합니다.
입증 자료 — 무엇을 어떻게 모아야 하나
구상청구의 승패는 지출 사실과 금액, 그리고 형제별 자력을 얼마나 객관적 자료로 보여 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출은 현금보다 계좌이체·카드 결제처럼 흔적이 남는 방식이 좋고, 병원이 발급하는 진료비 납입확인서나 간병인 소개소의 사용 내역을 함께 받아 두면 신빙성이 높아집니다. 부모님 통장에서 인출된 돈이 섞여 있다면 어느 부분이 자녀의 자기 돈인지 구분해 두어야 합니다.
진료비 납입확인서와 병원 영수증 — 입원 기간별 총액과 본인부담금을 한 번에 확인.
계좌이체·카드 내역 — 누가 언제 얼마를 지급했는지 지출 주체를 확정.
간병인 계약서·지급 내역 — 일당과 기간, 지급 방식 확인.
부모의 소득·재산 자료 — 연금 수령액, 예금 잔액, 보험금 입금 내역으로 부양의 필요 정도를 판단.
형제 간 대화 기록 — 문자·메신저로 비용 분담에 관해 오간 말이 협정이나 인정의 근거가 된다.
형제 간 대화 기록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병원비 반반씩 내자"라는 합의가 있었다면 협정의 존재를 보여 주고, 반대로 "나는 낼 형편이 안 된다"는 답이 있었다면 그 형제의 자력에 대한 자료가 됩니다. 소송이 시작되고 나서 자료를 구하려 하면 병원 보존기간이나 통신사 보관 문제로 놓치는 경우가 있으므로, 분담을 요구하기 전에 증빙부터 정리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청구 절차 — 가정법원 심판청구와 조정전치
부양에 관한 처분은 가사소송법상 마류 가사비송사건으로 가정법원의 전속관할입니다. 93스11 결정은 과거 부양료의 구상청구도 이 규정에 따라 가사비송사건으로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일반 민사소송의 대여금 청구처럼 지방법원에 구상금 소송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가정법원에 부양료 지급을 구하는 심판청구서를 내는 구조로 접근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상대방이 여러 명이면 각각을 상대방으로 하여 몫을 청구합니다.
마류 가사비송사건은 가사소송법 제50조에 따라 심판청구에 앞서 조정을 먼저 거치는 조정전치주의가 적용됩니다. 조정에서 형제들이 분담액에 합의하면 조정조서가 작성되고, 합의가 안 되면 조정불성립으로 심판 절차로 넘어갑니다. 조정 단계에서 부모의 병세와 지출 내역을 함께 확인하고 형제별 부담 가능액을 조율하는 일이 많아, 처음부터 자료를 갖춘 쪽이 유리합니다.
심판에서 법원이 분담액을 정하면 상대방은 그 금액을 지급해야 하고, 지급하지 않으면 집행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청구 금액을 필요 이상으로 높게 잡는 것입니다. 법원은 형제의 자력과 기여를 따져 상당한 범위로 줄여 정하므로, 전액을 요구하기보다 근거를 설명할 수 있는 분담 구조를 먼저 설계하는 것이 낫습니다.
실무 유의점 — 부모 재산 지출과 사전 정산
가장 흔한 함정은 부모님 통장에서 병원비를 인출해 쓰고 정작 자녀 자신의 지출로 착각하는 경우입니다. 부모 재산에서 나간 돈은 자녀가 대신 낸 부양료가 아니므로 구상 대상에서 빠집니다. 거꾸로 자녀가 자기 돈으로 낸 뒤 부모님 재산에서 일부를 돌려받았다면 그 부분도 정산해야 하고, 이를 빼놓으면 청구액이 부풀려진 것으로 보여 신뢰를 잃습니다.
또 하나는 청구 시점의 문제입니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는 동안 형제와 정산을 요구하기가 어려워 사후까지 미루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영수증이 사라지고 형제 간 기억도 달라집니다. 2022년 결정 사안도 어머니가 사망한 이후에 지출한 병원비를 형제에게 청구한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사후에도 구상이 가능하다는 취지를 확인할 수 있지만, 입증 부담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집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지출 당시부터 형제에게 상황을 알리고 분담을 요청한 기록을 남기는 편이 좋습니다.
대신 낸 비용은 사후에도 청구할 수 있지만, 증빙은 지출 당시에 갖춰 둘수록 몫을 인정받기 쉽다.
자주 묻는 질문
Q. 형제에게 미리 병원비를 나누자고 말한 적이 없는데 청구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대법원 93스11 결정은 사전에 청구한 적이 없더라도 부양의무를 이행한 자녀가 상대방이 분담함이 상당한 범위에서 과거 부양료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사전 요청 기록이 있으면 분담의 필요성을 입증하기가 쉬워집니다.
Q. 형제가 4명이면 무조건 4분의 1씩 받을 수 있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법원은 형제의 자력, 부모에 대한 기여 정도, 부모의 연령과 상태 등을 참작해 분담액을 정하므로 균등 분할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소득이나 재산이 큰 형제의 몫이 더 커지고, 직접 돌봄에 기여한 자녀는 그만큼 분담이 줄어듭니다.
Q.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청구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대법원 2018스542 결정 사안도 어머니의 병원비 등을 지출한 자녀가 다른 자녀들을 상대로 과거 부양료의 구상을 청구한 사건이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영수증과 기록이 사라지기 쉬우므로 가능한 한 빨리 증빙을 정리해야 합니다.
Q. 제가 직접 간병했는데 그 노동도 돈으로 받을 수 있나요?
A. 직접 돌본 노동 자체를 별도의 금액으로 청구하는 것은 사안별 평가가 갈립니다. 실무에서는 분담비율을 정할 때 기여한 정도로 참작되는 경우가 많아, 동거·간호 기간과 방법을 입증할 자료를 모아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Q. 부모님 통장에서 쓴 병원비도 형제에게 나눠 달라고 할 수 있나요?
A. 어렵습니다. 부모님 본인의 재산에서 지출된 비용은 자녀가 대신 낸 부양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민법 제975조에 따라 부모에게 자력이 있다면 그것으로 먼저 충당되는 것이 원칙이고, 자녀의 부양의무는 그 부족분을 기준으로 따져집니다.
Q. 어느 법원에 어떤 절차로 청구하나요?
A. 부양에 관한 처분은 가사소송법상 마류 가사비송사건으로 가정법원의 전속관할이고, 심판청구에 앞서 조정을 먼저 거치는 조정전치주의가 적용됩니다. 조정에서 합의가 되면 조정조서로 종결되고, 합의가 되지 않으면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맺음말
부모님의 간병비와 병원비를 한 사람이 먼저 감당했다면, 그 사실만으로 형제에게 정산을 요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양의무자가 여럿일 때 의무를 이행한 한 사람은 다른 의무자에게 이미 지출한 과거 부양료의 분담을 청구할 수 있고, 사전 청구 여부는 그 요건이 아닙니다.
다만 금액은 균등이 아니라 형제의 자력과 기여, 부모님의 형편을 따져 상당한 범위로 정해집니다. 지출 자료와 형제별 자력 자료, 부모님 재산의 사용 내역을 구분해 정리해 두는 것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정산을 어떻게 구성할지 막막하다면 자료를 모아 두고 전문가와 먼저 구조를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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