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상대방이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들고 온 대리인과 계약을 맺었는데, 나중에 본인이 "그런 대리권을 준 적 없다"고 나오면 누구에게 청구해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본인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대리권이 없다는 판단이 나오면 이번에는 대리인을 상대로 새 소송을 해야 하고, 그 사이 시간과 비용이 두 배로 들 뿐 아니라 두 재판의 결론이 서로 어긋날 위험까지 생깁니다. 이런 상황을 한 번의 소송으로 정리하는 장치가 민사소송법 제70조의 주관적 예비적 공동소송입니다. 이 글에서는 대리권이 있으면 본인에게, 없으면 대리인에게 책임을 묻는 청구를 어떻게 한 소송에 묶는지, 법원은 무엇을 보는지, 준비할 증거는 무엇인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대리권 다툼이 소송을 두 번 하게 만드는 이유
대리인이 맺은 계약의 효과는 대리권이 있을 때에만 본인에게 귀속됩니다. 민법 제130조는 대리권 없는 자가 타인의 대리인으로 한 계약은 본인이 추인하지 않으면 본인에게 효력이 없다고 정하고, 같은 법 제135조 제1항은 이 경우 대리인이 상대방의 선택에 따라 계약을 이행하거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고 정합니다. 결국 대리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책임질 사람이 본인이냐 대리인이냐로 갈리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계약 상대방이 소송을 내는 시점에는 어느 쪽이 맞는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본인은 대리권을 준 적이 없다고 다투고, 대리인은 본인에게서 받은 위임장과 인감이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상대방이 본인만 상대로 소송했다가 대리권 부존재로 기각되면, 그 뒤에야 대리인을 상대로 소를 다시 내야 하는데 이때는 이미 변론과 증거조사에 1년 가까이 쓴 뒤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대리인만 상대로 먼저 소송하면 대리인이 "대리권이 있었다"고 다투어 이기는 순간 이번에는 본인에게 청구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더 위험한 것은 별개 소송에서 법원이 서로 모순되는 판단을 내리는 경우입니다. 본인 소송에서는 "대리권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고, 대리인 소송에서는 "대리권이 있었다"는 이유로 지면 상대방은 양쪽에서 모두 패소하고 맙니다. 한 소송에서 두 사람을 함께 상대로 하면 같은 법원이 같은 증거로 대리권 유무를 한 번만 판단하므로 이런 결과가 구조적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대리권이 있으면 본인에게, 없으면 대리인에게 책임이 간다 — 두 청구는 동시에 이길 수 없는 관계이므로 한 소송에서 함께 판단받아야 한다.
주관적 예비적 공동소송 — 민사소송법 제70조의 요건
공동소송은 원래 소송목적인 권리·의무가 여러 사람에게 공통되거나 같은 원인으로 생긴 경우에 허용됩니다(민사소송법 제65조). 제70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동소송인 일부의 청구가 다른 공동소송인의 청구와 법률상 양립할 수 없거나 일부에 대한 청구가 다른 사람에 대한 청구와 법률상 양립할 수 없는 경우를 별도로 규율합니다. 본인에 대한 계약이행(또는 대금·손해배상) 청구와 대리인에 대한 민법 제135조 책임 청구는 정확히 여기에 해당합니다. 전자는 대리권이 있어야 인용되고, 후자는 대리권이 없어야 인용되기 때문입니다.
"법률상 양립할 수 없다"는 말은 한쪽이 인정되면 논리적으로 다른 쪽이 인정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두 사람 중 누군가에게는 책임이 있을 것 같다는 사실상의 사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대리권 유무는 하나의 사실관계에서 나오는 양자택일 쟁점이므로 이 요건을 충족하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공동소송 요건 — 같은 계약 체결 사실에서 비롯된 청구일 것(제65조).
법률상 양립불가 — 본인 청구 인용과 대리인 청구 인용이 동시에 성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법원 관할 — 본인과 대리인 모두에게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관할이 있을 것.
같은 소송절차 — 청구마다 심리 방식이 달라 병합이 불가능한 사건이 아닐 것.
소장 구성 — 본인에게 주위적, 대리인에게 예비적으로
예비적 공동소송에서는 청구에 순서를 매깁니다. 대리권이 있다는 쪽이 원고에게 가장 유리하므로 통상 본인에 대한 청구를 주위적 청구로, 대리인에 대한 청구를 본인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하는 예비적 청구로 구성합니다. 소장 청구취지에도 "피고 대리인은 피고 본인에 대한 위 청구가 기각될 것을 조건으로 …를 지급하라"는 식으로 조건을 분명히 적습니다. 청구원인은 계약 체결 경위와 대리권 관련 사실, 대리인의 책임을 구하는 근거 조문을 함께 적습니다.
가정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매수인 A가 대리인 C와 B 소유 상가 매매계약을 맺고 계약금 5,000만원을 C가 안내한 계좌로 보냈는데, B가 "C에게 대리권을 준 적이 없다"며 소유권 이전을 거부한다고 해보겠습니다. A는 B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하는 한편, B에 대한 청구가 기각되면 C에게 민법 제135조에 따른 손해배상을 지급하라는 예비적 청구를 함께 냅니다. B가 이기면 C가 책임을 지고, B가 지면 C에 대한 청구는 판단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이때 원고가 두 피고에 대한 청구에 같은 사실관계와 증거를 쓰므로 변론 준비도 한 번에 끝납니다. 별도 소송 두 건이면 증인신문과 감정도 각각 해야 하지만, 한 소송에서는 대리권 관련 증인을 한 번만 신문하면 됩니다. 각 소송의 소장 송달, 변론기일 지정, 판결 선고까지 도는 시간도 중복해서 쓰지 않게 됩니다.
본인을 상대로 한 청구 — 대리권·추인·표현대리 중 무엇을 다투나
본인에 대한 청구가 인용되려면 계약의 효과가 본인에게 돌아와야 합니다. 첫 번째 길은 정당한 대리권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위임장, 본인 인감 날인, 위임 사실을 확인한 통화·메시지, 대리인과 본인 사이의 평소 거래 관계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두 번째는 대리권이 없었더라도 본인이 사후에 계약을 인정한 추인(민법 제130조, 제133조)입니다. 추인은 계약 시로 소급해 효력이 생기며, 본인이 계약 대금의 일부를 받거나 이행 절차에 협조한 사실이 있다면 묵시적 추인으로 평가될 여지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표현대리입니다. 실제로는 대리권이 없지만 본인이 대리권을 준 것처럼 보이는 외관을 만들었거나(민법 제125조), 권한 밖의 행위를 했는데 상대방이 정당한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었거나(제126조), 대리권이 소멸한 뒤에 대리행위를 한 경우(제129조)에 본인에게 책임을 지웁니다. 상대방이 대리인을 믿은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는 본인 인감·인감증명서 소지 여부, 대리인의 지위, 대금 거래 방식, 상대방의 본인 확인 노력 등을 종합해 법원이 판단합니다. 그래서 원고는 확인 노력을 보여주는 자료를 반드시 갖춰야 합니다.
본인이 대리권 자체를 다투는 이상, 대리권 존재의 입증 부담은 이를 주장하는 원고에게 있습니다. 위임장 한 장만으로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일도 흔하므로, 원고는 본인과 대리인이 연락한 기록과 위임 경위를 증명할 증인까지 확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리인을 상대로 한 청구 — 민법 제135조의 무권대리인 책임
예비적 청구의 근거인 민법 제135조 제1항은 대리권을 증명하지 못하고 본인의 추인도 받지 못한 대리인에게 상대방의 선택에 따라 이행 책임 또는 손해배상 책임을 지웁니다. 선택권은 상대방에게 있으므로 원고가 이행과 손해배상 중 어느 쪽을 구할지 정합니다. 대리인이 계약 목적물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이행 책임은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손해배상 청구가 중심이 됩니다. 이때 손해는 계약이 유효하게 이행됐다면 원고가 얻었을 이익을 기준으로 따집니다.
이 책임은 대리인에게 고의·과실이 없어도 인정되는 책임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대리인이 진짜 대리권이 있다고 믿었더라도 대리권을 증명하지 못하면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제135조 제2항에 따라 상대방이 대리권 없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 또는 대리인이 제한능력자일 때는 책임이 없습니다. 이 면책 사유는 책임을 면하려는 대리인이 주장·증명해야 하므로, 원고는 계약 당시 대리권을 확인한 방법(위임장 대조, 본인 직접 전화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두어야 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상대방이 본인에게 추인 여부를 최고하는 제도(제131조)와 철회권(제134조)을 활용해 책임 구도를 정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인이 상당한 기간 안에 확답하지 않으면 추인을 거절한 것으로 보므로, 소송 전에 내용증명으로 최고해 두면 대리인 책임을 물을 요건 하나가 정리됩니다.
대리인에 대한 제135조 책임은 대리인의 과실과 무관하게 인정되고, 상대방이 대리권 없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사정은 대리인이 증명해야 한다.
재판 진행의 특칙 — 한 사람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범위
제70조 제1항은 필수적 공동소송에 관한 제67조부터 제69조를 이 소송에 준용합니다. 그 결과 공동소송인 가운데 한 사람의 소송행위는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경우에만 효력이 있고(제67조 제1항), 상대방의 소송행위는 모두에게 효력이 미치며(제67조 제2항), 한 사람에게 소송절차 중단·중지 사유가 생기면 모두에게 영향을 줍니다(제67조 제3항). 예를 들어 본인이 대리권을 부인하는 주장을 하고 이를 대리인이 다투지 않아도, 대리인의 불리한 자백이 본인에게 곧바로 효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제70조 제2항은 이 소송에서는 모든 공동소송인에 관한 청구에 대해 판결을 하도록 정합니다. 법원은 본인 청구만 먼저 판단하고 대리인 청구를 남겨두는 식의 일부판결을 할 수 없고, 한 사람이 항소하면 나머지에 관한 청구도 함께 상소심으로 넘어가 같이 심리됩니다. 한 피고만 항소했다는 이유로 다른 피고와의 관계가 1심에서 확정돼 버리는 어긋남이 생기지 않도록 한 장치입니다.
다만 제70조 제1항 단서는 청구의 포기·인낙, 화해, 소의 취하에는 준용하지 않는다고 정합니다. 즉 원고는 본인과 먼저 합의하고 본인에 대한 청구만 취하하는 등 각자 따로 처분할 수 있습니다. 합의가 성립해도 나머지 청구를 계속 유지할지, 대리인에 대한 책임까지 정리할지를 따로 정해야 합니다.
피고를 놓쳤다면 — 소송 중 예비적 피고 추가
소장을 낼 때는 본인만 피고로 삼았는데 변론 중에 대리권이 없다는 증거가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70조 제1항이 제68조를 준용하므로, 법원은 제1심 변론을 종결할 때까지 원고의 신청에 따라 결정으로 피고를 추가하도록 허가할 수 있습니다(제68조 제1항). 허가결정이 나면 허가결정 정본과 소장 부본이 추가될 피고에게 송달되고, 추가된 피고에 대해서는 처음 소를 제기한 때에 소가 제기된 것으로 봅니다(제68조 제3항). 따라서 소멸시효 중단 등 소 제기의 효과도 처음 소를 낸 날로 소급해서 보호받습니다.
다만 이 길은 제1심 변론종결 전까지만 열려 있고, 법원이 허가해야 합니다. 법원은 추가 신청의 시기와 소송 지연 우려 등을 살펴 결정하므로 대리권 다툼이 보이는 즉시 신청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소장 단계에서 처음부터 대리인을 예비적 피고로 넣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소송 전 준비 — 증거 확보와 보전처분
대리권 다툼에서는 계약 당시 자료가 소송의 승패를 좌우합니다. 계약서 원본과 위임장, 본인 인감증명서의 발급 일자와 용도, 대리인의 신분증 사본, 대리인과 나눈 문자·메신저 대화, 대금 이체 내역과 입금 계좌 명의를 모아야 합니다. 계좌 명의가 본인 소유인지 대리인 개인 계좌인지는 대리권 유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정입니다. 본인에게 직접 계약 의사를 확인한 기록이 있다면 가장 강력한 자료가 됩니다.
상대방이 재산을 빼돌릴 우려가 있다면 소송 전에 가압류 등 보전처분을 함께 검토합니다. 본인과 대리인 모두를 상대로 한 가압류는 각자의 재산 상황에 따라 별도로 신청합니다. 대금 반환이나 손해배상 소송 판결을 받아도 집행할 재산이 없으면 실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인에게 추인 여부를 묻는 내용증명을 보내 둔 기록은 추후 대리인 책임을 입증하는 자료가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본인만 피고로 소송했다가 지면 대리인에게 다시 소송할 수 있나요?
A. 별도 소송으로 대리인을 상대로 제135조 책임을 물을 수는 있습니다. 다만 앞선 재판에 쓴 시간과 비용이 중복되고 소멸시효 문제도 따로 점검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예비적 공동소송으로 묶는 편이 시간·비용·모순 판결 위험 면에서 유리합니다.
Q. 본인과 대리인 중 누구에게 먼저 청구해야 하나요?
A. 통상 대리권이 있다는 전제의 본인 청구를 주위적으로, 대리인 청구를 예비적으로 구성합니다. 청구 순서는 원고가 정하며, 소장의 청구취지에 예비적 청구의 조건을 분명히 적어야 합니다.
Q. 대리인이 진짜 대리권이 있다고 믿었어도 책임을 지나요?
A. 민법 제135조 제1항의 책임은 대리인의 고의·과실을 요건으로 하지 않습니다. 대리권을 증명하지 못하고 본인의 추인도 받지 못하면 책임이 성립합니다. 다만 상대방이 대리권 없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면 제135조 제2항에 따라 책임이 없습니다.
Q. 소송 중에 본인과만 합의하면 대리인 청구는 어떻게 되나요?
A. 제70조 제1항 단서에 따라 청구의 포기·인낙, 화해, 소의 취하는 각 공동소송인별로 할 수 있습니다. 본인과 합의해도 대리인에 대한 청구는 별도로 유지하거나 정리해야 하므로, 합의서에 대리인 청구 처리 방법을 함께 정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Q. 소장을 낸 뒤에 대리인을 피고로 추가할 수 있나요?
A. 제1심 변론종결 때까지 법원에 피고 추가 신청을 할 수 있고, 법원이 허가하면 처음 소를 제기한 때 소가 제기된 것으로 봅니다. 다만 허가는 법원 재량이므로 대리권 다툼이 드러난 즉시 신청해야 합니다.
Q. 어떤 증거가 가장 중요한가요?
A. 위임장·인감증명서처럼 계약 당시 대리권을 뒷받침하는 서류와, 상대방이 대리권을 어떻게 확인했는지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본인에게 직접 확인한 문자·통화 기록, 대금이 입금된 계좌 명의 자료도 대리권 유무와 정당한 이유 판단에서 비중이 큽니다.
맺음말
대리권 유무는 계약이 누구에게 효력을 미치는지 가르는 양자택일의 문제이므로, 본인과 대리인에 대한 청구를 별개 소송으로 쪼개면 시간·비용·모순 판결의 위험을 모두 떠안게 됩니다. 민사소송법 제70조의 주관적 예비적 공동소송은 이를 한 재판에서 정리하게 해 주며, 모든 청구에 대해 판결이 내려지고 상소심에서도 함께 심리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계약 상대방으로서는 계약 당시 대리권을 어떻게 확인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가 본인 청구와 대리인 청구 양쪽의 성패를 가릅니다. 소 제기 전에 추인 여부 최고와 증거 정리, 필요한 보전처분까지 순서대로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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