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로 배상금을 받기로 조정이 성립했거나 판결까지 받았는데, 병원이 돈을 주지 않거나 폐업해 버려 손에 쥔 것이 종이 한 장뿐인 피해자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위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조정중재원)이 병원을 대신해 먼저 배상금을 지급하고 나중에 병원에 청구하는 손해배상금 대불제도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다만 아무 때나 신청하는 제도가 아니라 대불을 청구할 수 있는 집행권원의 종류, 대불 대상 금액의 범위, 심사 기준이 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대불을 청구할 수 있는 요건과 절차, 그리고 청구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함정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손해배상금 대불제도 — 병원 대신 조정중재원이 먼저 지급하는 구조
대불제도의 근거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조정법) 제47조입니다. 같은 조 제1항은 의료사고 피해자가 배상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근거를 갖고도 실제로 지급받지 못한 경우, 그 미지급금에 대해 조정중재원에 대불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핵심은 조정중재원이 피해자에게 먼저 돈을 지급하고, 그 뒤에 손해배상 의무가 있는 병원 개설자나 의료인에게 구상한다는 점입니다(같은 조 제7항). 피해자는 병원의 자력 여부를 따지며 강제집행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셈입니다.
대불에 쓰는 재원은 세금이 아니라 보건의료기관 개설자가 부담합니다(같은 조 제2항).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요양기관에 주는 요양급여비용의 일부를 떼어 조정중재원에 지급하는 방식도 법이 허용합니다(같은 조 제5항). 그래서 개별 병원이 망하더라도 제도 전체의 재원은 유지되는 구조이고, 피해자는 개별 병원의 지급능력과 분리해서 배상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병원이 돈이 없다고 버티는 상황이 오히려 이 제도가 필요한 전형적인 상황입니다.
대불은 병원이 배상 의무를 면하는 제도가 아니라, 조정중재원이 먼저 지급하고 병원에 구상하는 제도다 — 피해자는 병원의 자력과 무관하게 미지급금을 먼저 받을 수 있다.
대불 청구가 가능한 세 가지 경우 — 집행권원이 있어야 한다
대불은 병원이 안 준다는 사정만으로 청구할 수 없고, 배상 의무를 확인해 주는 문서가 있어야 합니다. 의료분쟁조정법 제47조 제1항은 청구 가능한 경우를 세 가지로 한정합니다. 하나라도 해당하지 않으면 대불 청구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므로, 자신이 어느 유형에 속하는지가 출발점입니다.
제1호 — 조정이 성립되었거나 중재판정이 내려진 경우, 또는 조정절차 중 합의로 조정조서가 작성된 경우(제37조 제1항).
제2호 — 「소비자기본법」 제67조 제3항에 따라 조정조서가 작성된 경우(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경유).
제3호 — 법원이 의료분쟁 민사절차에서 병원 개설자·의료인 등에게 금원 지급을 명하는 집행권원을 작성한 경우. 다만 국내 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경우에 한정됩니다.
세 번째 유형에서 주의할 점은 판결이 선고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확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항소나 상고가 진행 중이면 아직 대불을 청구할 수 없고, 청구서에도 판결확정증명을 함께 내야 합니다(시행령 제26조). 외국 법원의 판결은 대상에서 빠집니다. 이 요건은 병원이 판결에 불복해 시간을 끄는 동안 대불이 열리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확정 시점을 기준으로 일정을 잡아야 합니다.
조정으로 가는 길 — 병원이 응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못 한다
대불의 제1호 유형으로 가려면 먼저 조정중재원에 조정을 신청해야 하는데, 여기에 큰 걸림돌이 있습니다. 조정신청서를 받은 병원(피신청인)이 송달받은 날부터 14일 이내에 조정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통지하지 않으면 원장은 조정신청을 각하합니다(의료분쟁조정법 제27조 제8항). 병원이 조정에 나오지 않겠다고 하면 조정절차가 아예 시작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만 예외가 있습니다. 의료사고가 사망 또는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중증 장애에 해당하는 경우 병원의 응답을 기다리지 않고 조정절차가 바로 개시되며, 조정신청서를 송달받은 날이 개시일이 됩니다(같은 조 제9항). 이 경우 병원은 신청인이 의료사고를 이유로 의료법 제12조 제2항 위반 행위나 업무방해(형법 제314조 제1항)를 했다는 등 제한된 사유가 있을 때만 14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같은 조 제10항). 사망·중증 사고가 아니라면 병원의 동의가 조정의 전제이므로, 병원이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면 처음부터 소송을 선택하는 편이 낫습니다.
신청 기간도 봐야 합니다. 조정신청은 의료사고 원인 행위가 끝난 날부터 10년,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안에 해야 합니다(같은 조 제13항). 그리고 이미 같은 사안으로 법원에 소가 제기되어 있으면 조정신청은 각하되고(제27조 제3항 제1호), 조정신청 후에 소를 제기해도 각하되므로(제7항 제3호) 조정과 소송을 동시에 진행하는 전략은 통하지 않습니다.
병원이 14일 안에 응하지 않으면 조정은 각하된다 — 사망·1개월 이상 의식불명·중증 장애 사고만 예외로 병원 동의 없이 조정이 개시된다.
조정이 성립되는 과정 — 90일, 감정, 15일의 동의 기간
조정절차가 개시되면 조정부는 개시일부터 90일 이내에 조정결정을 해야 하고, 필요하면 1회에 한해 30일까지 연장할 수 있습니다(제33조 제1항, 제2항). 조정부는 감정부의 감정의견을 고려해 결정하는데(같은 조 제3항), 감정단은 과실 유무와 인과관계, 후유장애 여부를 규명합니다(제25조 제3항). 손해배상액은 환자에게 생긴 생명·신체·재산상 손해, 병원이나 의료인의 과실 정도, 환자의 귀책사유를 고려해 정해집니다(제35조).
조정결정서를 송달받은 신청인과 피신청인은 15일 이내에 동의 여부를 통보해야 하고, 15일 안에 의사표시가 없으면 동의한 것으로 봅니다(제36조 제2항). 당사자 양쪽이 동의하거나 동의한 것으로 보는 때에 조정이 성립하며, 성립된 조정은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있습니다(같은 조 제3항, 제4항). 병원이 침묵하는 방식으로 동의가 간주되는 구조이므로, 결정서를 받은 시점부터 15일이 언제 끝나는지 정확히 셈해 두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신청인 쪽의 함정은 15일을 놓치는 것이 아니라 결정 금액을 확인하지 않고 동의하는 것입니다. 성립된 조정은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조정결정서의 배상액이 후유장애 정도와 향후 치료비를 충분히 반영했는지 동의 전에 따져 봐야 합니다. 조정절차 진행 중 병원과 직접 합의해 조정조서를 작성하는 방법도 있는데(제37조), 이 조서도 재판상 화해 효력이 있고 병원이 합의금을 주지 않으면 대불 청구의 근거가 됩니다.
대불 청구의 절차와 서류 — 어떤 금액까지 받을 수 있나
대불을 청구하려는 사람은 대불청구서에 조정결정서·중재판정서·조정조서 중 해당 문서와, 대불의 필요성을 확인하기 위해 원장이 정하는 서류를 첨부해 조정중재원에 제출합니다(시행령 제26조). 판결 유형이라면 집행권원으로 판결문과 판결확정증명을 함께 냅니다. 병원이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를 소명하는 자료(입금내역 부재, 지급독촉 내용증명 등)를 준비해 두면 대불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쉽습니다.
대불 범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대불 대상은 손해배상금으로 한정되고, 조정비용·중재비용·소송비용은 포함되지 않습니다(시행령 제25조 제1항). 그리고 대불 범위는 손해배상금 중 미지급된 금액이며, 조정성립일·중재판정일·조정조서 작성일, 판결의 경우 판결확정일 이후의 지연손해금은 제외됩니다(같은 조 제2항). 즉 판결에서 인정된 원금과 확정일 전까지의 지연손해금은 대불 대상이 되지만, 확정일 이후 병원이 시간을 끈 기간의 이자는 대불로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병원이 일부만 지급한 경우에도 대불은 남은 금액에 대해서만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배상금 5,000만 원이 정해졌는데 병원이 2,000만 원만 냈다면 대불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은 미지급 3,000만 원입니다. 지급받은 내역은 통장 거래내역으로 남겨 두어야 청구서의 미지급 금액을 정확히 특정할 수 있습니다.
대불 심사에서 보는 것 — 상환 가능성이라는 기준
조정중재원은 대불청구가 들어오면 손해배상 의무자인 병원 개설자나 의료인의 대불금 상환 가능성, 상환 예상액 등 보건복지부령이 정한 기준에 따라 심사한 뒤 대불합니다(의료분쟁조정법 제47조 제6항). 제도의 취지가 병원의 자력 부족을 메우는 것이라 하더라도, 조정중재원은 나중에 구상권을 행사해야 하는 입장이므로 상환 가능성을 심사 항목에 넣는 것입니다.
이 규정이 갖는 의미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병원의 재산 상황이나 폐업 여부에 관한 자료가 대불 심사에서 중요한 참고가 됩니다. 둘째, 조정중재원은 구상 과정에서 국세·지방세, 토지·건축물·자동차, 건강보험 등 관계 기관 자료를 요청할 수 있고(제48조), 상환이 불가능한 대불금은 결손처분도 할 수 있습니다(제47조 제8항). 다만 이는 조정중재원과 병원 사이의 정산 문제이고, 피해자가 이미 받은 대불금을 돌려주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상은 조정중재원이 대불금 전액을 구상의무자에게 청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시행령 제28조). 피해자 입장에서 정리하면, 대불 청구 시 판결·조정서와 지급 부족 사실을 정확히 정리해 제출하고, 대불 결정 이후 받은 금액은 그대로 피해자 몫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병원과의 구상 다툼은 피해자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닙니다.
대불 심사는 병원의 상환 가능성을 보고, 구상은 조정중재원이 전액 청구한다 — 피해자가 받은 대불금은 구상 결과와 무관하게 유지된다.
대불과 강제집행의 선택 — 병원에 재산이 있다면
병원이 돈을 안 준다고 해서 항상 대불이 최선은 아닙니다. 병원에 예금·의료수가 채권 등 집행할 재산이 뚜렷하다면, 조정조서나 확정판결로 바로 채권압류·추심을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성립된 조정은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있으므로 조정조서 역시 집행권원이 됩니다. 반대로 병원이 폐업했거나 재산이 이미 담보로 잡혀 있어 집행이 헛돌 가능성이 크다면, 집행 시도에 시간과 비용을 쓰는 대신 대불을 먼저 청구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두 방법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대불은 미지급금을 대상으로 하므로, 일부를 강제집행으로 회수했다면 남은 금액만 대불로 청구하면 됩니다. 다만 이중으로 받을 수는 없으므로 회수 내역은 정확히 기록해야 합니다.
병원 재산이 확인되고 폐업 위험이 없다 — 채권압류 등 강제집행을 우선 검토.
병원 폐업·재산 부족 — 대불 청구를 우선하고 병원 재산 자료를 함께 정리.
일부만 지급된 경우 — 지급 내역을 특정해 미지급 잔액만 대불 청구.
판결 유형 — 판결 확정 이후에만 대불 청구 가능. 항소·상고 중에는 불가.
실무에서 가장 흔한 실수는 시점을 놓치는 것입니다. 조정 성립 후나 판결 확정 후 병원이 준다고 하며 미루는 동안 폐업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지급 약속을 믿고 오래 기다리기보다 미지급 사실이 확인되는 시점에 대불 청구 서류를 준비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조정을 신청했는데 병원이 응하지 않으면 대불을 받을 수 없나요?
A. 병원이 조정신청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14일 안에 응하지 않으면 조정신청은 각하되어 조정 경로의 대불은 열리지 않습니다. 다만 사망·1개월 이상 의식불명·중증 장애 사고는 병원 동의 없이 조정이 개시되고, 그 밖의 사고는 소송으로 판결을 받아 확정되면 대불 청구가 가능합니다.
Q. 소송비용이나 조정비용도 대불로 받을 수 있나요?
A. 받을 수 없습니다. 시행령 제25조 제1항에 따라 대불 대상은 손해배상금으로 한정되고 조정비용·중재비용·소송비용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소송비용은 별도로 소송비용액 확정 절차를 통해 상대방에게 청구해야 합니다.
Q. 판결이 나왔는데 항소 중이라도 대불을 청구할 수 있나요?
A. 청구할 수 없습니다. 법원 판결에 근거한 대불은 국내 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경우에 한정되고, 청구서에 판결확정증명을 함께 제출해야 합니다. 확정되기 전에는 병원이 지급하지 않아도 대불 요건이 충족되지 않습니다.
Q. 확정일 이후 늘어난 지연이자도 대불로 받을 수 있나요?
A. 받을 수 없습니다. 대불 범위에서는 조정성립일, 조정조서 작성일, 판결확정일 이후의 지연손해금이 제외됩니다. 확정 이후의 지연손해금은 병원에 직접 청구해야 합니다.
Q. 대불금을 받으면 나중에 병원에 돌려줘야 하나요?
A. 아닙니다. 조정중재원이 대불금을 지급한 뒤 손해배상 의무자에게 구상하는 구조이고, 상환이 불가능한 대불금은 조정중재원이 결손처분할 수 있습니다. 구상은 조정중재원과 병원 사이의 문제입니다.
Q. 조정 신청과 소송을 같이 진행할 수 있나요?
A. 동시에 진행할 수 없습니다. 이미 같은 사안으로 소가 제기되어 있으면 조정신청이 각하되고, 조정신청 후에 소를 제기해도 각하됩니다. 어느 경로가 유리한지 병원의 응할 가능성과 사고의 중증도를 기준으로 먼저 정해야 합니다.
맺음말
의료사고 배상금 대불제도는 병원이 돈을 주지 않거나 지급 능력이 없을 때 피해자가 받은 조정조서나 확정판결을 실제 돈으로 바꿔 주는 안전장치입니다. 다만 조정 성립·중재판정·조정조서·확정판결이라는 집행권원이 있어야 하고, 대불 범위는 손해배상금의 미지급 잔액으로 한정되며 조정·소송비용과 확정일 이후 지연손해금은 빠집니다.
그래서 대불을 염두에 둔다면 조정으로 갈지 소송으로 갈지를 처음부터 정해야 합니다. 병원이 조정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면 14일 안에 각하될 조정보다 소송이 나을 수 있고, 조정을 택하더라도 15일의 동의 기간과 결정 금액을 꼼꼼히 확인해야 합니다. 어느 경로가 자신의 사고에 맞는지 절차 초기에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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