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전월세 계약이 끝나 이사를 나가려는 세입자분들 중, 집주인으로부터 “도배랑 장판을 새로 해서 나가야 한다”, “안 그러면 보증금에서 공사비를 빼겠다”는 말을 듣고 당황해 저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상담을 오신 분들은 대부분 “몇 년을 살았으니 벽지나 장판이 낡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십니다. 그런데 막상 퇴거일이 다가오면 집주인이 “계약서에 원상복구 특약이 있으니 전부 새로 해놓고 나가라”, “안 하면 보증금에서 공사비만큼 제하겠다”고 나서면서, 별다른 근거 확인도 없이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의 비용을 떠안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임차인의 원상회복의무 범위를 두고 통상적인 사용으로 생긴 손모는 임차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계약서에 원상복구 특약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임차인이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그 범위는 임대차계약의 내용과 목적물의 상태 등을 따져 구체적으로 정해집니다.
아래에서는 도배·장판 비용을 둘러싼 원상회복의무의 법적 기준과, 집주인이 요구하는 금액이 정당한지 확인하는 방법, 그리고 보증금에서 부당하게 공제됐을 때 대응하는 절차까지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1. 도배·장판이 낡았다고 해서 임차인이 전부 물어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임차 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사용해 생긴 마모는 이미 월세(차임)에 반영된 비용입니다.
민법 제654조는 임대차에 제615조를 준용해, 임차인은 임대차가 끝나면 목적물을 원래 상태로 돌려놓아 반환할 의무를 진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만 보면 임차인이 모든 손상을 복구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판례는 이 의무의 범위를 무제한으로 넓게 보지 않습니다.
판례와 실무는 임차인이 통상적인 방법으로 목적물을 사용한 결과 생기는 상태 악화나 가치 감소를 ‘통상의 손모’라고 구분합니다. 벽지가 햇빛에 바래거나, 사람이 오가며 장판에 자연스러운 눌림과 얼룩이 생기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손모는 애초에 임대인이 목적물을 사용·수익하게 하는 대가로 받는 차임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임차인에게 별도로 배상시킬 근거가 없다는 것이 판례의 시각입니다.
반대로 임차인이 못을 과도하게 박아 벽지를 찢거나, 물을 쏟아 장판을 들뜨게 방치하는 등 고의나 부주의로 생긴 손상은 통상의 손모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에는 임차인이 원상회복의무 또는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핵심은 ‘낡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낡음이 정상적인 사용의 결과인지, 아니면 임차인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구분하는 데 있습니다.
임차 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생긴 마모는 임차인이 아니라 임대인이 부담할 몫으로 이미 예정되어 있습니다.
2. 대법원은 통상적인 사용으로 생긴 손모까지 임차인에게 책임지우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도배·장판이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임차인에게 귀책사유를 물을 수는 없습니다.
이 원칙은 단순한 실무 관행이 아니라, 대법원이 임대차 종료 시 원상회복의무의 범위를 두고 반복적으로 확인해 온 법리입니다. 하급심에서도 이 기준은 임대인이 무리하게 공제한 보증금을 임차인이 돌려받는 근거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임차인이 임대차 종료 후 원상회복 범위를 두고 다툰 사건에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했습니다.
임차인이 통상적인 사용을 한 후에 생기는 임차목적물의 상태 악화나 가치의 감소를 의미하는 통상의 손모는 임차목적물을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임대차계약의 본질상 당연히 예정되어 있는 것이고, 이에 관하여는 임차인에게 귀책사유가 있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19. 8. 30. 선고 2017다268142 판결).
같은 판결은 원상회복의무의 구체적인 범위를 정할 때 임대차계약의 체결 경위와 내용, 임대 당시 목적물의 상태, 임차인이 실제로 수리하거나 변경한 내용까지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고도 밝혔습니다. 즉 “계약서에 원상복구라고 쓰여 있으니 무조건 새로 해줘야 한다”는 식의 일괄적인 요구는 그 자체로 법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실무에서는 집주인이 입주 당시 도배·장판 상태를 증빙하지 못한 채 “원래 새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때는 임차인이 입주 당시 찍어둔 사진, 중개사가 작성한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 하자 점검 체크리스트 등이 통상의 손모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핵심 증거가 됩니다.
도배·장판이 낡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임차인의 귀책사유를 인정할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3. 계약서의 “원상복구” 특약도 무제한으로 넓게 해석되지 않습니다
특약 한 줄이 통상의 손모까지 임차인에게 떠넘기는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임대차계약서에 “퇴거 시 도배·장판은 임차인이 원상복구한다”는 특약을 넣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런 특약 자체가 무효는 아니지만, 그 효력이 미치는 범위는 문구 그대로 무제한이 아닙니다.
대법원은 원상회복 특약이 있더라도 그 범위를 계약 체결 경위, 특약을 넣게 된 사정, 목적물의 당시 상태 등을 종합해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계약서에 단순히 “원상복구할 것”이라는 포괄적인 문구만 있는 경우, 그 특약을 임차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확장해석하지 않는다는 취지도 함께 밝힌 바 있습니다(대법원 2023. 11. 2. 선고 2023다249661 판결 등 참조).
즉 특약이 있다고 해서 임차인의 고의·과실과 무관한 자연적인 마모까지 전부 임차인 부담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특약이 유효하게 작동하는 범위는 임차인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인한 파손, 또는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항목에 한정된다고 보는 것이 실무의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특약이 있으니 무조건”이라는 주장은 그 특약의 실제 적용 범위를 따져본 뒤에야 성립합니다.
4. 거주 기간과 손상 정도에 따라 실제로 물어야 할 금액은 크게 달라집니다
오래 살수록, 그리고 손상이 가벼울수록 임차인이 부담할 금액은 줄어듭니다.
임차인에게 일부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라도, 도배·장판 비용 전액을 그대로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등 실무에서는 시설물마다 정해진 내구연한을 기준으로 감가상각을 적용해 부담 비율을 산정합니다.
도배·장판의 내구연한은 통상 10년으로 잡습니다. 예를 들어 내구연한 10년인 장판을 8년간 정상적으로 사용했다면 잔존가치는 20%에 불과하므로, 실제 임차인이 부담할 금액은 전체 시공비용의 20% 수준에 다시 귀책 비율을 곱해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계산식으로 정리하면 ‘임차인 부담액 = 시공비용 × 잔존가치 비율(경과연수/내구연한을 제외한 나머지 비율) × 임차인 과실비율’이 됩니다.
따라서 2~3년 거주하다 나가는 경우와 8~9년 거주하다 나가는 경우는 같은 손상이라도 부담해야 할 금액이 크게 다릅니다. 또한 손상 부위가 벽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 그친다면, 방 전체나 집 전체의 도배·장판 비용이 아니라 손상된 면적에 비례한 금액만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집주인이 전체 재시공 비용을 그대로 청구한다면 이 비례 원칙에 맞는지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5. 보증금에서 부당하게 공제됐다면 이렇게 대응하시면 됩니다
근거자료부터 정리한 뒤 순서대로 대응해야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집주인이 도배·장판 비용을 이유로 보증금 일부를 돌려주지 않으려 한다면, 통상 ①집주인에게 공제 근거(견적서·영수증·입주 당시 상태 자료)를 요청해 협의 → ②협의가 안 되면 내용증명으로 반환 청구 의사와 법적 근거를 명확히 통지 → ③그래도 반환이 안 되면 이사 후에도 대항력·우선변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 → ④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조정 신청 또는 관할 법원(예: 수원 지역이라면 수원지방법원)에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는 순서로 진행됩니다. 보증금 액수가 3,000만원 이하라면 소액사건심판법에 따른 소액사건으로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소송이나 조정까지 가지 않더라도, 아래 자료부터 정리해두면 협의 단계에서부터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임대차계약서의 특약 문구를 원문 그대로 확인하고, 도배·장판을 구체적으로 지정했는지 살펴봅니다.
입주 당시 찍어둔 사진이나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로 최초 상태를 확인합니다.
집주인이 제시한 견적서·영수증에 재시공 범위와 금액 산출 근거가 명확한지 대조합니다.
이렇게 정리한 자료를 바탕으로 통상의 손모 여부와 감가상각을 반영한 정당한 금액을 판단받는다면, 부당하게 공제된 보증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마치며
도배·장판 비용 문제는 “집주인이 그렇다고 하니 맞겠지”라는 생각으로 별다른 확인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정작 따져봤어야 할 금액을 그대로 지불하고 나서야 억울함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하는 임차인 입장에서는 감정적으로 항의하기보다, 통상의 손모인지 임차인의 과실인지, 그리고 거주 기간에 따른 감가상각이 제대로 반영됐는지를 자료로 정리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반대로 임대인 입장에서도 특약 문구만 믿고 전액을 청구했다가는 조정이나 소송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어, 입주 당시 상태와 실제 손상 정도를 객관적으로 남겨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임대차보증금 반환 분쟁에서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하는 임차인과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임대인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같은 금액이라도 어떤 자료를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을 여러 번 확인해 왔습니다.
이사 날짜가 다가오는데 공제 금액이 석연치 않으시다면, 지금이 바로 확인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계약서에 “퇴거 시 도배·장판 원상복구”라는 특약이 있으면 무조건 따라야 하나요?
A. 특약 자체는 유효하지만 그 범위가 무제한은 아닙니다. 통상적인 사용으로 생긴 자연스러운 마모까지 임차인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확장 해석되지는 않으며, 임차인의 고의·중과실로 생긴 손상이나 구체적으로 명시된 항목에 한정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Q. 5년 넘게 살았는데도 도배·장판 비용을 다 물어야 하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도배·장판의 내구연한은 통상 10년으로 보고 감가상각을 적용하므로, 거주 기간이 길수록 임차인이 실제로 부담할 금액은 줄어듭니다.
Q. 집주인이 견적서만 내밀며 보증금에서 바로 공제하겠다고 합니다. 그대로 따라야 하나요?
A. 아닙니다. 통상의 손모인지, 감가상각이 반영됐는지, 손상 면적에 비례한 금액인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근거가 불충분하면 공제에 동의하지 말고 자료를 요청하세요.
Q. 입주 당시 사진을 안 찍어뒀는데 불리한가요?
A. 불리할 수 있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 당시 문자·카카오톡 대화, 관리사무소 기록 등으로도 입주 당시 상태를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Q.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은 꼭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나요?
A. 소액사건(3,000만원 이하)은 본인 진행도 가능하지만, 금액이 크거나 공제 근거를 둘러싼 다툼이 복잡하다면 초기에 법률 자문을 받는 것이 유리합니다.
Q. 이사부터 하고 나중에 소송을 제기해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나요?
A. 가능하지만, 전입신고·확정일자로 유지되던 대항력·우선변제권이 이사와 동시에 사라질 수 있으므로, 이사 전에 임차권등기명령을 마쳐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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