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규정 위반 계약, 어긴 당사자의 무효 주장도 신의칙엔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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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행규정 위반 계약, 어긴 당사자의 무효 주장도 신의칙엔 걸리지 않는다 

강대현 변호사

계약을 맺을 때 법이 정한 강행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면, 그 계약은 원칙적으로 무효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규정을 어긴 당사자 본인이 나중에 사정이 불리해지자 "이 계약은 애초에 무효였다"고 주장하면, 상대방은 흔히 "자기가 어겨놓고 이제 와서 무효라니 신의성실 원칙에 어긋난다"며 반발합니다. 실제로 이런 다툼은 회사의 영업양도나 담보 설정, 주주총회 결의가 필요한 거래에서 드물지 않게 벌어지고, 결론은 직관과 다르게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글에서는 강행규정을 어긴 당사자가 스스로 계약 무효를 주장할 수 있는지, 신의칙은 언제 이를 막을 수 있는지 대법원 판례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강행규정 위반 계약 — 왜 무효가 원칙인가

민법 제105조는 "법률행위의 당사자가 법령 중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계없는 규정과 다른 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그 의사에 의한다"고 정합니다. 이 조문을 뒤집어 읽으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계있는 규정, 즉 강행규정과 다른 내용으로 당사자가 아무리 합의를 해도 그 합의는 효력을 갖지 못한다는 뜻이 됩니다. 계약자유의 원칙은 민법의 대전제이지만, 특정 당사자를 보호하거나 거래질서 전체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법이 정한 최소한의 기준까지 당사자들의 합의로 바꿀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강행규정은 민법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법, 근로기준법,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비롯한 각종 특별법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예컨대 상법 제374조 제1항 제1호는 주식회사가 영업의 전부 또는 중요한 일부를 양도할 때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으로 하는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정하는데, 경영진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주주의 이익이 침해되는 것을 막기 위한 강행규정입니다. 이런 규정을 어긴 법률행위는 상대방이 그 사정을 몰랐는지 알았는지와 무관하게 무효가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강행규정이 지키려는 이익은 개별 거래 상대방의 신뢰가 아니라 그보다 상위에 있는 제도적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강행규정과 다른 내용의 합의는 상대방이 선의였는지와 무관하게 무효가 되는 것이 원칙이다 — 강행규정이 지키려는 이익은 개별 거래의 신뢰가 아니라 그 제도 자체이기 때문이다.

위반한 당사자가 무효를 주장하면 신의칙 위반 아닌가 — 원칙은 "아니다"

민법 제2조가 정한 신의성실의 원칙은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여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추상적 규범입니다. 이 조항을 근거로 상대방은 "당신이 강행규정을 어겨놓고 이제 와서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 위반"이라고 다투곤 합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논리를 원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대법원 2026. 1. 8. 선고 2025다210092, 210093 판결은 "강행법규를 위반한 자가 스스로 약정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는 권리의 행사라는 이유로 그 주장을 배척한다면, 이는 오히려 강행법규에 의하여 배제하려는 결과를 실현시키는 셈이 되어 입법 취지를 완전히 몰각하게 되므로,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러한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되거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법리의 핵심은 결과의 역설에 있습니다. 강행규정을 어긴 사람이 그 무효를 주장하지 못하게 막아버리면, 결과적으로 강행규정을 어겨서 만든 법률관계가 그대로 유지되는 셈이 됩니다. 이는 애초에 그 강행규정이 막으려고 했던 상태를 법원이 스스로 승인해 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판례는 "누가 위반했느냐"보다 "위반된 법률행위가 여전히 효력을 가지도록 둘 것인가"를 먼저 묻고, 그 답이 "아니다"라면 위반자 본인이 무효를 주장하더라도 이를 막지 않는 쪽을 택합니다.

대법원이 실제로 이렇게 판단한 사례 — 특별결의 없는 영업양도

위 2025다210092, 210093 판결의 사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甲 주식회사는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을 주주인 乙, 丙과 매매계약을 체결했고, 그중 1/2 지분에 관해서만 乙 명의로 지분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졌습니다. 이후 그 부동산에는 乙을 채무자로 하는 은행 등 명의의 근저당권설정등기까지 마쳐졌습니다. 그런데 甲 회사는 뒤늦게 이 매매계약이 영업의 중요한 일부를 양도하는 것이어서 상법 제374조 제1항 제1호가 요구하는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필요한데 이를 거치지 않아 무효라고 주장하며, 은행 등을 상대로 근저당권설정등기의 말소를 구했습니다.

원심은 甲 회사가 스스로 결의 흠결을 이유로 매매계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며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판단을 파기했습니다. 매매계약은 상대방인 乙, 丙의 선의·악의와 무관하게 무효이고,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마치는 과정에서 甲 회사가 은행 등에 어떤 신의를 공여했다고 볼 사정도 없으며, 주주 전원의 동의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결국 회사 스스로 절차 흠결을 지적하며 무효를 주장하고, 그 무효를 전제로 원인무효 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론입니다.

신의칙 항변이 통하려면 — 두 가지 요건이 함께 필요하다

그렇다고 강행규정 위반자의 무효 주장이 언제나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위 판결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권리 행사를 부정하려면 일정한 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점도 함께 밝히고 있습니다. 이 요건은 강행규정이 걸린 사안뿐 아니라 신의칙 항변 일반에 적용되는 기준이므로, 상대방이 신의칙을 내세울 때 그 주장이 요건을 실제로 충족하는지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 요건 ① 신의의 공여 — 상대방에게 신의를 공여하였거나, 객관적으로 보아 상대방이 신의를 가짐이 정당한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계약이 유효할 것이라고 기대한 사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 요건 ② 정의관념상 용인 불가 — 그 신의에 반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러야 합니다. 상대방이 다소 손해를 본다는 사정만으로는 이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 두 요건이 모두 갖추어지지 않으면 신의칙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강행규정 위반의 효과인 무효가 그대로 관철됩니다.

신의를 공여받았다는 사정과, 그 신의를 저버리는 권리행사가 정의관념상 용인될 수 없다는 사정 — 이 두 요건이 함께 갖추어져야 비로소 강행규정 위반의 무효 주장을 신의칙으로 막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예외는 없는가 — 신의칙이 강행규정을 이기는 극히 드문 경우

원칙에는 예외가 있고, 이 법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은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한 노사합의라도 신의칙이 이를 앞설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를 인정했습니다. 사안은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전제로 임금수준을 정했는데, 근로자 측이 뒤늦게 그 합의가 통상임금에 관한 강행규정에 반해 무효라고 주장하며 추가 법정수당을 청구한 사건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임금협상 관행이 장기간 일반화되어 있었고, 근로자 측이 합의 당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유로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이익을 구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그 청구는 신의칙에 위배되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다만 이 판결에서도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일반적인 요건을 갖춤은 물론, 강행규정성에도 불구하고 신의칙을 우선 적용하는 것을 수긍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무효 주장을 막을 수 있다고 명시했고, 별도의견에서는 "신의칙은 강행규정에 앞설 수 없다"는 반대 의견도 함께 나왔습니다. 예외가 인정된 사안조차 이렇게 치열한 다툼을 거쳤다는 사실 자체가, 신의칙으로 강행규정 위반의 무효 주장을 막는 것이 얼마나 예외적인 일인지를 보여줍니다. 실무에서 상대방이 신의칙을 내세운다고 해서 곧바로 무효 주장이 막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 판결이 뒷받침합니다.

실무에서 흔히 벌어지는 상황과 대응 방향

이 법리가 실제로 문제 되는 장면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회사가 필요한 내부 절차(주주총회 특별결의, 이사회 결의 등)를 거치지 않은 채 거래를 진행하고, 시간이 흘러 그 거래가 불리해지자 절차 흠결을 근거로 무효를 주장하는 상황입니다. 거래 상대방 입장에서는 배신감을 느낄 수 있지만, 앞서 본 법리에 비추면 상대방이 신의칙 위반을 이유로 무효 주장을 막으려면 상당히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놓인 당사자들은 각자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준비해야 할 것이 다릅니다.

  • 거래 상대방이라면 — 계약 체결 전 상대 회사의 정관, 주주총회 의사록, 이사회 의사록 등 내부 절차가 실제로 이행되었는지 원본 또는 인증등본으로 확인해 두어야 사후 분쟁에서 신의칙 요건인 "신의 공여" 사실을 뒷받침할 자료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 절차를 누락한 당사자라면 — 절차 흠결을 알고도 방치한 것인지, 뒤늦게 발견한 것인지에 따라 신의칙 판단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흠결을 인지한 경위와 시점을 정리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 이미 등기나 이행이 끝난 거래라면 — 무효를 주장하는 쪽은 원상회복이나 부당이득 반환을 함께 청구할 준비를 해야 하고, 상대방은 반사적으로 반환 범위를 다툴 여지가 있는지 검토해야 합니다.

소송에서 이 법리를 다툴 때 유의할 점

강행규정 위반을 이유로 계약 무효를 주장하는 소송에서는 두 단계의 쟁점이 순차로 등장합니다. 먼저 해당 규정이 단순한 행정적 단속규정에 그치는지, 아니면 위반 시 사법상 효력까지 부정되는 강행규정(효력규정)인지를 확정해야 합니다. 같은 법률 안에서도 조문마다 성격이 다를 수 있어, 이 구분 자체가 소송의 승패를 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강행규정성이 인정되면 그다음 쟁점은 무효 주장이 신의칙에 막히는지 여부로 넘어가고, 이때는 앞서 본 두 요건 — 신의 공여와 정의관념상 용인 불가 — 을 상대방이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실무적으로는 신의칙 항변을 하는 쪽이 막연히 "믿었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고, 어떤 언행이나 거래 관행이 그 신뢰를 정당하게 만들었는지를 구체적 사실관계로 제시해야 승산이 있습니다. 반대로 무효를 주장하는 쪽은 절차 흠결이 실제로 있었다는 객관적 증거(의사록 부존재, 결의 정족수 미달 등)를 먼저 확보하고, 상대방에게 특별히 신의를 공여한 사정이 없었다는 점도 함께 정리해 두는 것이 유리합니다. 사안에 따라 결과가 크게 갈리는 영역인 만큼, 소송을 진행하기 전에 관련 법리와 판례의 적용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강행규정을 위반한 계약은 항상 무효인가요?

A. 해당 규정이 사법상 효력까지 부정하는 강행규정(효력규정)인지, 위반해도 행정적 제재만 따르는 단속규정인지부터 구분해야 합니다. 효력규정이라면 원칙적으로 무효이지만, 단속규정에 그친다면 계약 자체는 유효하고 별도의 제재만 문제 될 수 있습니다.

Q. 계약을 위반한 당사자 본인이 무효를 주장하면 무조건 받아들여지나요?

A. 원칙적으로는 받아들여집니다. 다만 상대방에게 신의를 공여한 사정이 있고, 그 신뢰를 저버리는 무효 주장이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라면 예외적으로 신의칙 위반으로 배척될 수 있습니다.

Q. 상대방이 선의였다면 결과가 달라지나요?

A. 상법 제374조 제1항 제1호와 같이 주주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강행규정 위반의 경우, 판례는 상대방의 선의·악의를 불문하고 무효라고 봅니다. 상대방이 절차 흠결을 몰랐다는 사정만으로는 결과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Q. 어떤 경우에 신의칙이 강행규정을 이기나요?

A. 오랜 관행을 바탕으로 상대방이 정당한 신뢰를 쌓았고, 무효 주장을 받아들이면 상대방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등 예측하지 못한 심각한 불이익이 생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합니다.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판결이 대표적 사례이지만, 그 안에서도 반대의견이 나올 만큼 판단이 갈리는 영역입니다.

Q. 이미 이행이 끝난 계약도 무효 주장이 가능한가요?

A. 가능합니다. 강행규정 위반으로 무효인 법률행위는 이행이 끝났더라도 처음부터 효력이 없었던 것으로 취급되므로, 이미 지급하거나 이전한 것이 있다면 부당이득으로 반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Q. 신의칙 위반 항변을 받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A. 상대방이 주장하는 신의칙 항변이 신의 공여와 정의관념상 용인 불가라는 두 요건을 실제로 충족하는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요건을 구체적 사실로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항변은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맺음말

강행규정을 어긴 당사자가 스스로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얼핏 자기모순처럼 보이지만, 판례의 결론은 다릅니다. 무효 주장을 신의칙으로 막아버리면 오히려 강행규정이 막으려던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반자 본인의 무효 주장도 받아들여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신의칙이 이 원칙을 뒤집으려면 상대방에게 정당한 신의를 공여한 사정과, 그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 정의관념상 용인될 수 없다는 사정이 함께 갖추어져야 하고, 이 문턱은 실제 판례에서도 매우 높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계약 체결 단계에서 상대방의 내부 절차 이행 여부를 미리 확인해 두는 것이 결국 가장 확실한 예방책이고, 이미 분쟁이 시작되었다면 강행규정성 판단과 신의칙 요건 충족 여부를 각각 나누어 따져보아야 승산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절차 흠결로 계약의 효력을 다투게 되었거나 반대로 그런 주장을 받게 되었다면, 사안의 구체적 사실관계에 맞추어 법리를 적용해 보는 상담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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