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혐의로 수사를 받다 보면, 정작 결정적 증거인 촬영물 USB를 피의자 본인이 아니라 피해자가 직접 경찰에 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원본 파일은 피의자 소유의 저장매체에 들어 있었는데, 그 안의 촬영물을 피해자가 스스로 선별해 자신의 USB에 옮겨 담아 제출했다면, 원본 소유자인 피의자는 그 압수 과정에 한 번도 참여하지 못한 채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셈입니다. 압수수색에는 당사자가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이렇게 얻어진 증거가 절차 위반을 이유로 배제될 여지는 없는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글에서는 피해자가 복제해 제출한 촬영물의 증거능력이 어떤 기준으로 판단되는지, 피의자의 참여권이 언제 인정되고 언제 인정되지 않는지를 최근 대법원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불법촬영물 USB 임의제출 — 영장 없는 압수와 참여권의 관계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물건을 압수할 수 있는 대표적인 근거가 형사소송법 제218조의 임의제출입니다. 소유자·소지자·보관자가 스스로 물건을 내놓으면 영장 없이도 압수가 가능하다는 것인데, 여기서 "임의제출이니 영장주의가 아예 빠진 절차"라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임의제출은 영장 발부 절차가 필요 없다는 것일 뿐, 압수수색에 붙는 다른 절차적 보장까지 통째로 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특히 촬영물이 담긴 USB나 휴대전화 같은 정보저장매체는 그 안에 수사와 무관한 사생활 정보까지 방대하게 담겨 있어, 법원은 임의제출된 정보저장매체에도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과 같은 수준의 절차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근거가 형사소송법 제219조입니다. 이 조항은 검사·사법경찰관의 압수·수색에 제106조(압수 범위와 방법), 제121조(당사자의 영장집행 참여권), 제122조(참여권자에 대한 사전 통지)를 그대로 준용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즉 임의제출로 정보저장매체를 넘겨받았더라도, 그 안의 전자정보를 탐색·복제·출력하는 과정에는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참여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이 왜, 그리고 누구에게 적용되는지를 정리한 것이 다음 항목에서 볼 실질적 피압수자 이론입니다.
임의제출은 영장이 필요 없다는 것이지, 압수수색에 따르는 참여권 등 절차적 보장 자체가 면제된다는 뜻은 아니다.
실질적 피압수자 이론 — 2016도348 전원합의체가 세운 원칙
정보저장매체 압수에서 참여권을 누구에게 인정해야 하는지를 처음으로 정리한 것이 대법원 2021. 11. 18. 선고 2016도348 전원합의체 판결입니다. 이 판결은 매체를 실제로 제출한 사람(형식적 피압수자)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전자정보를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고 처분할 권한을 가진 사람(실질적 피압수자)에게도 참여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법리를 세웠습니다. 예컨대 교제 상대방이 상대의 휴대전화를 몰래 들고 나와 그 안의 파일을 경찰에 제출한 경우, 제출자는 교제 상대방이지만 그 안의 정보에 대한 실질적 권한자는 휴대전화 원래 소유자이므로 그 소유자에게도 참여 기회를 줘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이 법리가 만들어진 이유는 명확합니다. 스마트폰이나 USB 같은 매체에는 수사 대상 범죄와 무관한 통화기록·메시지·사진까지 뒤섞여 있어, 제출자 한 사람의 동의만으로 탐색 범위를 정해버리면 정작 정보의 실제 주인이 자신과 무관한 자료까지 무방비로 노출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사소송법 제106조 제3항이 정한 선별압수 원칙(범위를 정해 출력·복제하는 것이 원칙, 매체 자체 압수는 예외)과 짝을 이뤄, 실질적 피압수자가 그 선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판결의 결론입니다.
형식적 피압수자 — 매체를 실제로 경찰에 낸 사람.
실질적 피압수자 — 그 안의 전자정보를 지배·관리·처분할 권한을 가진 사람(대개 매체의 원래 소유자).
원칙 — 실질적 피압수자에게 참여 기회를 주지 않고 이뤄진 전자정보 탐색·복제·출력은 위법수집증거로 배제될 수 있음.
그런데 피해자가 복사한 USB엔 왜 다르게 적용되는가 — 2023도3626 판결
위 원칙만 놓고 보면, 피의자 소유 USB에서 나온 촬영물인 이상 원본 소유자인 피의자가 실질적 피압수자이므로 참여권이 인정돼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피고인 소유의 USB에 저장돼 있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등 불법촬영물을, 피해자들이 그 안에서 자신과 관련된 부분을 직접 선별해 자신들 소유의 USB에 복제한 뒤 경찰에 임의제출한 사안에서, 1심과 2심은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원본 전자정보의 관리처분권자인 피고인이 실질적 피압수자인데도 탐색·복제 과정에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법원 2024. 12. 24. 선고 2023도3626 판결은 이 결론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복제 전자정보를 임의제출하는 사람에게만 참여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본과 복제본의 정보가 동일하다는 사정만으로 복제 전자정보 임의제출자 외에 원본 전자정보 관리처분권자까지 실질적 피압수자로 평가하여 참여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습니다. 원본과 복제본이 내용상 똑같은 파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원본 소유자에게까지 참여권을 자동으로 넓혀줄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판단의 배경에는, 피해자가 자기 판단으로 자신의 피해 사실과 관련된 파일만 골라 자신 소유의 매체에 옮겨 담은 순간, 그 복제본은 더 이상 원본 소유자의 관리·처분이 미치는 영역이 아니라 피해자 자신이 독립적으로 지배·관리하는 별개의 물건이 된다는 이해가 깔려 있습니다. 피해자 스스로 선별했다는 사정 자체가 원본 소유자의 참여권을 배제할 근거가 되는 셈입니다.
복제 전자정보를 임의제출하는 사람에게만 참여 기회를 주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본 소유자를 실질적 피압수자로 보아 참여권을 인정할 필요는 없다.
법원이 실제로 보는 기준 — 복제 경위·지배관리·원본 압수 가능성
2023도3626 판결은 단순히 "피해자 복제본이니 무조건 괜찮다"고 선을 그은 것이 아니라, 개별 사안마다 몇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살피라고 합니다. 첫째는 복제 전자정보의 생성 경위입니다. 피해자가 자신이 피해 당사자로서 자신과 관련된 파일만 골라 복제했는지, 아니면 저장매체 전체를 통째로 복제했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복제 전자정보의 지배관리 상태로, 그 복제본이 피해자 자신의 매체에 담겨 피해자의 독립적인 관리 아래 있었는지를 봅니다.
셋째는 원본 임의제출이나 압수수색의 가능성입니다. 수사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원본 매체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는데도, 굳이 피의자의 참여를 배제하려는 의도로 피해자의 복제본만 받아 처리한 정황이 있다면 이는 앞서 본 "특별한 사정"에 해당할 여지가 커집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얽혀 있어서, 복제 경위가 자연스럽고 지배관리도 독립적이며 원본 확보를 회피할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면 원본 소유자의 참여권을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반대로 하나라도 의심스러운 사정이 있다면 참여권을 인정하는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복제 경위 — 피해자가 자신과 관련된 부분만 선별했는지, 전체를 통째로 복제했는지.
지배관리 상태 — 복제본이 피해자 소유 매체에서 피해자의 독립적 관리 아래 있었는지.
원본 확보 가능성 — 수사기관이 원본을 임의제출받거나 영장으로 압수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회피했는지.
예외적으로 피의자 참여권이 인정될 수 있는 경우
반대로 "임의제출자에게만 참여 기회를 주는 것이 현저히 부당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면, 원본 소유자인 피의자에게도 참여권이 되살아납니다. 예컨대 피해자가 자신과 관련된 파일만 고른 것이 아니라 저장매체 전체를 무차별적으로 통째로 복제해 제출한 경우, 그 복제본에는 피해자 자신과 무관한 제3자의 사생활 정보까지 광범위하게 섞여 있을 수 있어 원본 소유자의 참여 기회를 배제할 정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수사기관이 원본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었음에도 피의자 참여를 피할 목적으로 일부러 복제본 제출을 유도한 정황이 드러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2016도348 전원합의체 판결의 사안 자체가 이런 예외 쪽에 가깝습니다. 그 사안에서는 교제 상대방이 피의자의 휴대전화에서 파일을 광범위하게 복제해 제출했고, 그 안에는 문제된 범죄사실과 무관한 전자정보까지 섞여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그 무관한 정보 부분에 대해서는 참여권 미보장을 이유로 증거능력을 부정했습니다. 즉 피해자·제출자의 선별이 자기 관련성 있는 범위로 한정돼 있었는지가, 참여권을 인정할지 여부를 가르는 실질적인 분수령입니다.
제출자의 선별이 자기 관련성 있는 범위를 벗어나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다면, 원본 소유자의 참여권 배제를 정당화하기 어렵다.
피의자·변호인이 지금 확인해야 할 것
수사 기록에 피해자가 복제해 제출한 USB가 증거로 들어와 있다면, 우선 그 복제 경위와 범위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피해자 진술조서나 임의제출 확인서에 언제, 어떤 기준으로 파일을 골랐는지가 기재돼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자기 관련성 있는 범위로 한정됐는지 아니면 저장매체 전체가 통째로 넘어간 것인지를 먼저 가려야 합니다. 통째로 복제된 정황이 있다면 형사소송법 제106조 제3항의 선별압수·관련성 원칙 위반을 별도로 다툴 여지가 생깁니다.
다음으로는 수사기관의 원본 확보 경위를 봐야 합니다. 원본 매체 자체도 나중에 압수됐다면, 그 원본에 대한 압수수색 절차에서는 피의자 본인이 실질적 피압수자이므로 참여권이 원칙대로 인정됩니다. 원본 압수 과정에서 참여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 부분만 따로 위법성을 다툴 수 있고, 복제본과 원본 각각의 절차적 하자를 분리해서 검토하는 것이 실무상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수사 초기 단계라면 변호인을 통해 압수수색·임의제출 관련 서류 열람등사를 신청해 복제 경위를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부터 확보해 두는 것이 이후 증거능력 다툼의 출발점이 됩니다.
피해자 진술·임의제출 확인서에서 복제 범위(자기 관련분 한정 여부) 확인.
원본 매체가 별도로 압수됐다면 그 압수 절차의 참여권 보장 여부 별도 검토.
임의제출·압수수색 관련 서류 열람등사로 복제 경위 뒷받침 자료 확보.
자주 묻는 질문
Q. 피해자가 복사해 제출한 USB는 무조건 증거로 쓰이나요?
A. 그렇지는 않습니다. 원칙적으로는 피해자에게만 참여 기회를 주면 충분하다고 보지만, 복제가 자기 관련성 있는 범위를 벗어나 통째로 이뤄졌거나 수사기관이 피의자 참여를 회피할 목적이 있었다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다르게 판단될 수 있습니다.
Q. 저(피의자)에게 압수 과정 참여 기회를 안 준 게 명백한데 왜 위법이 아닌가요?
A. 참여권은 원칙적으로 그 전자정보를 지배·관리하는 실질적 피압수자에게 인정되는데, 피해자가 스스로 선별해 자신 소유 매체에 담아 제출한 복제본은 그 순간부터 피해자의 독자적 관리 영역으로 보기 때문에 원본 소유자의 참여 기회가 자동으로 요구되지는 않습니다.
Q. 원본 USB도 함께 압수됐다면 그건 어떻게 되나요?
A. 원본 자체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면 그 원본에 관해서는 피의자 본인이 실질적 피압수자이므로 참여권이 원칙대로 인정됩니다. 원본 압수 절차에서 참여 기회가 없었다면 그 부분은 복제본과 별도로 위법성을 다툴 수 있습니다.
Q. 참여권 위반을 주장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A. 복제가 이뤄진 시점과 범위, 수사기관이 원본을 확보할 수 있었는지 여부, 복제본에 자신과 무관한 제3자 정보까지 섞여 있었는지를 수사기록에서 확인하고 뒷받침할 자료를 확보해 두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Q. 이 판례가 나오기 전에는 이런 사안이 어떻게 처리됐나요?
A. 2016도348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실질적 피압수자 이론이 자리 잡으며, 하급심에서는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는 사례가 이어졌습니다. 이번 2023도3626 판결은 그 이론이 피해자 복제본 제출 상황에까지 무조건 확대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Q. 피해자가 아니라 무관한 제3자가 복제해서 제출했다면 다르게 보나요?
A.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피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자기 관련성 없이 저장매체 전체를 무차별적으로 복제해 제출한 경우라면, 제출자에게만 참여 기회를 주는 것이 현저히 부당한 특별한 사정에 해당할 여지가 커져 원본 소유자의 참여권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맺음말
피해자가 스스로 촬영물을 골라 복사해 제출했다는 사정만으로 증거능력을 무조건 부정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2023도3626 판결 이후에는 복제 경위와 범위, 지배관리 상태, 원본 확보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따져야 참여권 위반 여부를 가릴 수 있습니다. "참여 기회를 못 받았다"는 사정 하나만으로 곧바로 위법수집증거라 단정하기보다, 그 복제가 어떤 경위로 이뤄졌는지부터 수사기록에서 확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수원지검이나 인계동 인근 경찰서에서 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고 그 증거가 피해자 명의의 복제 USB라면, 복제 경위와 원본 압수 경과를 함께 살펴 절차적 하자를 다툴 여지가 있는지부터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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