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회사나 주식회사를 서류상으로만 세운 뒤 그 법인 명의로 은행 계좌를 개설해 통째로 넘기는 이른바 '대포통장' 유통 사건이 매년 끊이지 않습니다. 계좌를 개설할 때 사업자등록증 등 서류를 제출하고 정상적으로 사업을 하는 것처럼 답변했다면, 은행을 속여 계좌를 개설하게 만든 것이니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당연히 성립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런 사건에서 업무방해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놓았습니다. 허위 서류를 낸 신청인이 아니라 왜 은행의 심사 방식이 쟁점으로 지목되는지, 그리고 업무방해죄가 무죄라고 해서 다른 책임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닌 이유를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유령법인 대포통장 — 어떤 방식으로 계좌를 여는가
대포통장 유통 사건은 대개 비슷한 흐름을 거칩니다. 성명불상의 총책이 명의를 빌려줄 사람을 구해 유한회사나 주식회사를 형식상 설립하게 하고, 사업자등록증·법인인감증명서·사업자등록증명원 등 계좌 개설에 필요한 서류를 갖추게 합니다. 이후 은행 창구를 찾아 법인 명의 계좌 개설을 신청하면서, 마치 그 법인이 정상적으로 영업 중인 것처럼 사업 목적과 거래 내역을 답변합니다. 담당 직원이 접근매체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 안내해도, 본인이 계속 사용할 것처럼 답하고 계좌를 개설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개설된 계좌와 통장·카드·OTP·인터넷뱅킹 정보 등 접근매체 일체는 곧바로 유통책에게 넘어가고, 보이스피싱 조직이나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에게 흘러들어갑니다. 문제는 은행의 계좌개설 심사 절차입니다. 예금거래신청서와 금융거래목적확인서, 사업자등록증 등 서류는 요구하지만, 실제 사업장을 방문하거나 국세청 등을 통해 사업 실체를 확인하는 절차 없이 제출된 서류와 진술만으로 계좌를 개설해주는 경우가 실무상 적지 않습니다. 이 지점이 이후 업무방해죄 성립 여부를 가르는 핵심 쟁점이 됩니다.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란 무엇인가 — 형법 제314조의 요건
형법 제314조 제1항은 제313조에서 정한 방법, 즉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위계'란 상대방에게 오인·착각·부지를 일으키고 그 오인 등을 이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업무방해죄가 성립하려면 이런 위계로 인해 상대방의 업무처리가 그릇될 위험, 즉 업무방해의 위험성이 실제로 발생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청·심사형' 업무의 특수성입니다. 상대방의 신청을 받아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췄는지 심사해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업무는, 애초부터 신청서에 적힌 사유가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심사가 이뤄지는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담당자가 그 내용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신청인이 낸 허위 사유나 허위 소명자료를 가볍게 믿고 그대로 수용했다면, 이는 신청인의 위계 때문이라기보다 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 때문이라는 것이 최근 대법원이 세운 법리의 핵심 축입니다.
신청서에 기재된 사유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을 수 있음을 전제로 심사하는 업무에서, 담당자가 사실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허위 신청사유를 가볍게 믿고 수용했다면 이는 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이지 신청인의 위계 때문이 아니다.
대법원 2021도17151 판결 — 허위 서류만으로는 업무방해가 되지 않는 이유
이 법리가 정면으로 다뤄진 사건이 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1도17151 판결입니다. 피고인은 접근매체를 넘길 의사로 유한회사 두 곳을 설립한 뒤, 각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꾸며 사업자등록증 등 법인 명의 계좌 개설에 필요한 서류를 은행 담당 직원들에게 제출하며 계좌 개설을 신청했습니다. 담당 직원으로부터 접근매체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받고도 이를 지킬 것처럼 행세해 계좌를 개설받았다는 것이 공소사실이었고, 원심은 이를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계좌개설 심사업무를 담당하는 은행 직원이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적힌 신청인의 허위 답변만 그대로 믿고, 그 진위를 확인할 증빙자료 요구 등 추가적인 확인조치 없이 법인 명의 계좌를 개설해 준 경우, 그 계좌개설은 은행 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이어서 신청인의 위계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볼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이 법리는 이후 같은 해 9월 14일 선고된 2022도15824 판결에서도 같은 취지로 이어졌습니다.
형식적 심사와 실질적 심사 — 법원이 가르는 기준
다만 이 판례가 '허위 서류를 내고 계좌를 열면 무조건 무죄'라는 뜻은 아닙니다. 결론을 가르는 것은 심사가 형식적이었는지, 실질적이었는지입니다. 은행이 서류의 진위를 확인할 절차와 권한을 갖추고도 이를 게을리했다면 불충분한 심사로 평가돼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 쪽으로 기웁니다. 반대로 신청인이 위조된 사업자등록증이나 허위로 꾸민 임대차계약서처럼 정교하게 조작된 서류를 제시해, 담당자가 통상적으로 거치는 확인 절차를 다 거쳤음에도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면 위계로 평가될 여지가 남습니다. 심사의 실질 여부가 곧 판단 기준입니다.
서류 자체의 위조 여부도 별개의 쟁점입니다. 계좌개설이 업무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은 어디까지나 은행 업무 자체에 대한 평가일 뿐이고, 그 과정에서 제출한 사업자등록증 등 서류가 실제로 위조된 것이라면 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죄가 별도로 성립할 수 있습니다.
담당자가 증빙자료를 요구하지 않고 진술만 믿고 개설해줬다면 — 불충분한 심사로 업무방해 불성립 쪽
담당자가 실사·조회 등 통상 절차를 거쳤는데도 위조 서류에 속았다면 — 위계로 평가될 여지
제출 서류 자체가 위조됐다면 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는 별도로 성립 가능
업무방해 성립 여부와 전자금융거래법위반·사기방조 성립 여부는 서로 별개의 판단
업무방해는 무죄라도 전자금융거래법위반은 남는다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은 누구든지 접근매체를 양도하거나 양수하는 행위(제1호), 대가를 받고 대여받거나 대여하는 행위 또는 보관·전달·유통하는 행위(제2호), 범죄에 이용할 목적으로 또는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대여받거나 대여하는 행위 또는 보관·전달·유통하는 행위(제3호)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기면 제49조 제4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앞서 본 2021도17151 판결도 업무방해 부분은 무죄 취지로 판단했지만, 전자금융거래법위반 자체를 무죄로 본 것이 아니라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라는 주관적 인식 요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원심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업무방해가 무죄라고 해서 전자금융거래법위반까지 자동으로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실무적으로 대포통장을 넘긴 명의인은 업무방해죄로는 무죄를 받더라도, 접근매체를 양도했다는 사실 자체로 전자금융거래법위반이 인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그 계좌가 실제로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이용됐다면, 넘길 당시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미필적 인식만 있었어도 처벌 대상이 된다는 점도 함께 유의해야 합니다.
보이스피싱에 이용되면 사기방조 책임까지 커진다
형법 제347조 제1항은 사람을 기망해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자를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계좌 명의인이 유통책에게 계좌를 넘긴 뒤 그 계좌가 실제 보이스피싱 범행에 쓰여 피해자의 돈이 입금됐다면, 정범인 사기 조직원뿐 아니라 계좌를 제공한 사람도 형법 제32조의 종범(방조범)으로 사기방조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종범의 형은 정범의 형보다 감경되지만(제32조 제2항), 대포통장이 실제 편취금이 오간 통로로 쓰였다는 사실관계만 확인되면 방조의 고의는 미필적 인식만으로도 폭넓게 인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리하면 계좌 하나를 개설해 넘긴 행위가 업무방해죄로는 무죄, 전자금융거래법위반으로는 유죄, 여기에 사기방조까지 별도로 문제 될 수 있는 세 갈래로 갈라질 수 있습니다. 수사를 받게 되면 이 세 죄명을 구분해서 각각 대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수사·재판 단계에서 무엇을 다투게 되나
계좌를 넘긴 경위가 어떻게 됐는지, 즉 속아서 넘겼는지, 대가를 받았는지, 범죄에 쓰일 것을 알고 있었는지에 따라 유·무죄와 양형이 크게 갈립니다. 업무방해 혐의 부분에서는 은행의 심사 방식이 형식적이었는지를 뒷받침할 자료, 예컨대 계좌개설신청서, 증빙자료 요구 이력, 은행 내부 심사 지침 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자료로 담당자가 추가 확인 없이 서류만 믿고 계좌를 개설해줬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면 업무방해 혐의를 다툴 여지가 커집니다.
전자금융거래법위반과 사기방조 부분은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았는지'라는 주관적 인식이 핵심 쟁점이 되므로, 계좌를 넘긴 경위와 대가 수수 여부, 유통책과의 관계 등 구체적 정황을 어떻게 소명하느냐가 결과를 가릅니다. 초범인지, 수사 단계에서 자백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는지,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는지도 양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업자등록증만 있으면 계좌를 열 수 있는데, 그것도 업무방해가 되나요?
A. 정상적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아 계좌를 여는 것 자체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다만 실체 없는 유령법인임을 숨기고 서류를 제출했더라도, 은행 담당자가 추가 확인 없이 서류만 믿고 계좌를 개설해줬다면 대법원 법리상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Q. 업무방해가 무죄면 대포통장 관련 처벌은 아예 없는 건가요?
A. 아닙니다. 접근매체를 양도·대여·보관·유통한 행위는 전자금융거래법위반으로 별도 처벌 대상이고, 실제 계좌가 보이스피싱 등에 쓰였다면 사기방조 책임까지 문제될 수 있습니다. 업무방해 무죄는 여러 혐의 중 한 죄명만의 결과일 뿐입니다.
Q. 은행이 실사를 나왔는데도 속였다면 결론이 달라지나요?
A.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담당자가 증빙자료 요구나 실사처럼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확인 절차를 거쳤는데도 정교하게 조작된 서류에 속아 계좌를 개설했다면, 불충분한 심사로 보기 어려워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로 평가될 여지가 남습니다.
Q. 대가를 받지 않고 그냥 빌려준 것도 처벌되나요?
A.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1호는 대가 유무와 관계없이 접근매체의 양도·양수 자체를 금지하고 있어, 무상으로 빌려줬더라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대가를 받고 대여했다면 다른 조항으로 별도 가중 판단될 수 있습니다.
Q. 사기방조는 어떤 경우에 인정되나요?
A. 계좌를 넘긴 사람이 그 계좌가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쓰일 수 있음을 미필적으로라도 인식했다면 방조의 고의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정범이 아니라 종범으로 처벌돼 형은 감경되지만, 편취금 흐름의 통로가 됐다는 사실관계만으로도 책임을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유령법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한 것 자체는 처벌 대상이 아닌가요?
A. 법인을 설립하고 계좌 개설을 신청한 행위 자체를 별도로 처벌하는 조항은 없습니다. 다만 제출한 사업자등록증 등 서류가 위조된 것이라면 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죄가 성립할 수 있고, 법인 설립 목적이 범죄 도구 마련이었다는 점은 다른 혐의의 양형에도 불리하게 반영됩니다.
맺음말
대법원 2021도17151 판결은 계좌개설 신청인의 허위 진술만으로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지만, 이는 은행의 심사 방식이 형식적이었다는 특수한 사정에서 나온 결론일 뿐 대포통장 관련 행위 전체가 무죄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전자금융거래법위반, 나아가 사기방조까지 별도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경기남부 지역에서는 대포통장 유통 사건이 수원지검 등 수사기관을 통해 꾸준히 다뤄지고 있고, 계좌를 개설한 경위나 접근매체를 넘긴 정황에 따라 적용되는 혐의와 처벌 수위가 크게 달라집니다. 조사를 받게 됐다면 수사 초기 단계부터 업무방해·전자금융거래법위반·사기방조 혐의를 구분해 대응 전략을 세우는 것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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