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에서 이겨 판결이 확정되면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확정판결을 받은 채권자가 그 판결대로 강제집행에 나섰을 때, 채무자가 다시 법원에 이를 막아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절차가 있습니다. 바로 청구이의의 소입니다. 다만 여기서 흔히 오해가 생깁니다. "그때 판결이 잘못됐다", "내가 억울하게 졌다"는 주장만으로는 이 소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글에서는 확정판결에 따른 강제집행을 청구이의로 막을 수 있는 경우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그리고 왜 판결의 당부를 다시 다투는 방식으로는 안 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확정판결도 무조건 집행되지 않는다 — 청구이의의 소의 구조
강제집행은 판결이 확정됐다고 저절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그 판결(집행권원)에 집행문을 받아 채권자가 신청해야 실제로 개시됩니다. 이 과정에서 채무자에게 다툴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민사집행법 제44조 제1항은 "채무자가 판결에 따라 확정된 청구에 관하여 이의하려면 제1심 판결법원에 청구에 관한 이의의 소를 제기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청구이의의 소이고, 이 소가 인용되면 그 판결에 기한 집행력 자체가 소멸하거나 저지됩니다.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개념이 있습니다. 청구이의의 소는 판결 자체를 취소하는 절차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판결은 그대로 확정된 채 남아 있고, 다만 그 판결로 더 이상 강제집행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절차입니다. 이 차이가 중요한 이유는, 확정판결에는 기판력이 있어서 그 판결이 옳았는지 그른지를 다시 다투는 것 자체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채무자가 "판결이 틀렸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법원이 그 주장을 받아 판결 내용 자체를 재심사하는 절차가 청구이의의 소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청구이의의 소로 실제 다툴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가 다음 항목의 핵심입니다.
청구이의의 소는 확정판결의 옳고 그름을 다시 심사하는 절차가 아니라, 판결은 그대로 둔 채 그에 따른 집행력만을 소멸시키거나 저지하는 절차다.
"판결이 틀렸다"는 주장만으론 부족한 이유 — 변론종결 후 발생사유 원칙
민사집행법 제44조 제2항은 청구이의의 이유가 "변론이 종결된 뒤(변론 없이 한 판결의 경우에는 판결이 선고된 뒤)에 생긴 것이어야 한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즉 채무자가 청구이의의 소에서 주장할 수 있는 사유는 원칙적으로 변론종결 이후에 새로 생긴 사정으로 한정됩니다. 변제, 상계, 채권 포기, 소멸시효의 완성처럼 판결이 확정된 뒤에 벌어진 일이라면 청구이의로 다툴 수 있지만, 애초에 재판부가 사실관계를 잘못 인정했다거나 법리를 잘못 적용했다는 주장, 즉 변론종결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사유는 이 소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이렇게 시기를 제한한 이유는 기판력과 직결됩니다. 변론종결 시점을 기준으로 이미 확정된 권리관계를, 그 이전의 사유를 들어 다시 다투게 하면 확정판결의 효력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판결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그 구제수단은 청구이의의 소가 아니라 항소·상고, 판결이 이미 확정된 뒤라면 재심의 소입니다. 재심은 민사소송법이 정한 엄격한 재심사유와 제기기간의 제한을 받는 별도의 절차입니다. 다만 확정판결이 아니라 확정된 지급명령, 확정된 이행권고결정, 공정증서 같은 집행증서에 기한 집행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런 집행권원에는 애초에 기판력이 없으므로 제44조 제2항의 시기 제한이 적용되지 않아, 변론종결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 이의사유 발생 시기에 제한이 없습니다.
예외적으로 열리는 문 — 확정판결의 집행이 권리남용이 되는 경우
그렇다면 확정판결의 내용 자체가 실체관계와 다르다는 사정은 청구이의로 전혀 다툴 수 없는 것일까요. 대법원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다른 통로를 인정합니다. 대법원 2001. 11. 13. 선고 99다32899 판결은 "확정판결에 의한 권리라 하더라도 신의에 좇아 성실히 행사되어야 하고 그 판결에 기한 집행이 권리남용이 되는 경우에는 허용되지 않으므로 집행채무자는 청구이의의 소에 의하여 그 집행의 배제를 구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민법 제2조의 신의성실 원칙을 확정판결에 기한 집행에도 적용한 것입니다.
다만 이 예외의 문턱은 매우 높습니다. 같은 판결은 권리남용 인정 요건을, 그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권리의 성질과 내용, 판결의 성립 경위, 판결 성립 후 집행에 이르기까지의 사정, 그 집행이 당사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할 때, "그 확정판결에 기한 집행이 현저히 부당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집행을 수인하도록 하는 것이 정의에 반함이 명백하여 사회생활상 용인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로 한정합니다. 단순히 판결 내용이 실체적 권리관계와 어긋나 보인다는 정도, 혹은 채권자가 그 사정을 알고 있었다는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현저히", "명백히", "용인할 수 없다"는 표현이 거듭 등장하는 데서 알 수 있듯, 법원은 이 예외를 아주 좁게 운용합니다.
확정판결에 기한 집행이 권리남용으로 허용되지 않으려면, 그 집행이 현저히 부당하고 상대방에게 이를 수인하게 하는 것이 정의에 반함이 명백하여 사회생활상 용인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
권리남용이 실제로 인정되는 유형 — 어떤 사정이 필요한가
대법원이 열거하거나 실무에서 다뤄온 권리남용 인정 사례를 유형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공통점은 단순한 오판이나 결과의 부당함을 넘어, 판결이 성립된 경위 자체에 심각한 흠이 있거나 채권자의 집행 의도에 부정한 요소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정이 겹칠 때에야 비로소 법원이 권리남용을 인정할 여지가 생깁니다.
이미 소멸된 채권의 존재를 주장하여 얻은 확정판결을 집행권원으로 삼아 강제집행을 하는 경우 — 예컨대 이미 변제되었거나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임을 채권자가 알면서도 이를 숨기고 승소판결을 받아 집행하는 사안.
소송당사자가 상대방의 권리를 해할 의사로 상대방의 소송 관여를 방해하거나 허위의 주장으로 법원을 기망하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실체관계와 다른 내용의 확정판결을 취득하여 집행하는 경우.
당사자의 절차적 기본권이 근본적으로 침해된 상태에서 판결이 선고된 경우 — 소장 부본이 제대로 송달되지 않아 방어할 기회 자체가 없었던 사안 등.
확정판결에 재심사유가 존재함이 명백한데도 재심 제기 없이 그대로 집행에 나아가는 경우.
이 목록에서 알 수 있듯, 권리남용은 "판결 결과가 억울하다"는 채무자의 주관적 평가가 아니라, 판결이 성립하게 된 과정이나 채권자의 행태에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흠을 요구합니다. 단순히 소송에서 증거를 충분히 제출하지 못해 패소했다거나, 법리 해석에서 아쉬운 결과를 받았다는 사정만으로는 이 유형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증명책임은 채무자에게 있다 — 문턱이 높게 유지되는 이유
대법원 2014. 5. 29. 선고 2013다82043 판결은 확정판결의 내용이 실체적 권리관계에 배치된다는 점과, 나아가 그 집행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점 모두에 관한 증명책임이 이를 주장하는 사람, 즉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하는 채무자에게 있다고 밝혔습니다. 채권자가 무언가를 반박할 필요 없이, 채무자 쪽에서 판결의 성립 경위와 그 이후 집행에 이르기까지의 사정을 구체적인 자료로 입증해야 소가 받아들여진다는 뜻입니다.
법원이 이렇게 증명책임을 채무자에게 무겁게 지우고 인정 기준도 엄격하게 유지하는 이유는 확정판결의 법적 안정성 때문입니다. 대법원 99다32899 판결은 같은 취지에서, 확정판결의 효력을 배제하려면 재심사유가 있을 때 재심의 소로 다투는 것이 원칙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전제로, 권리남용에 따른 불법행위나 집행배제의 성립을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힙니다. 만약 "판결이 부당해 보인다"는 정도의 사정만으로 권리남용이 널리 인정된다면, 모든 패소자가 확정판결 이후에도 다시 집행 단계에서 실체를 다투려 들 것이고, 이는 기판력 제도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청구이의의 소 실무 — 관할과 집행정지 신청
청구이의의 소는 판결을 선고한 제1심 판결법원에 제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무에서 자주 놓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했다고 해서 진행 중인 강제집행이 자동으로 멈추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민사집행법 제46조 제1항은 청구이의의 소가 강제집행을 계속 진행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명시합니다. 소를 낸 채무자가 집행을 실제로 멈추려면 같은 조 제2항에 따라 수소법원에 강제집행정지 신청을 별도로 해야 하고, 법원은 이의 사유에 법률상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고 그 사실에 대한 소명이 있을 때 담보 제공 여부를 정해 집행정지를 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청구이의의 소를 준비할 때는 소장 접수와 동시에 집행정지 신청을 함께 내는 것이 실무상 필수적입니다. 신청이 급박한 상황이라면 재판장이 단독으로, 그보다 더 급박하면 집행법원이 잠정적으로 정지를 명할 수도 있습니다(제46조 제3항, 제4항). 이때 필요한 것은 이의 사유를 뒷받침하는 소명자료입니다. 변제를 주장한다면 입금 내역이나 영수증,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한다면 채권 발생일과 최종 청구·승인 시점을 보여주는 자료, 권리남용을 주장한다면 판결 성립 경위와 집행에 이르기까지의 경과를 보여주는 기록이 그것입니다.
소 제기 전 관할 확인 — 판결을 선고한 제1심 법원에 제기.
소장 접수와 동시에 강제집행정지 신청서 제출 검토.
이의 사유별 소명자료 준비(변제 증빙, 시효 관련 자료, 판결 성립 경위 자료 등).
담보제공 명령이 나올 경우에 대비한 담보 마련 방안 사전 검토.
재심과 청구이의, 어떻게 다른가
확정판결을 다투는 제도로는 재심의 소도 있는데, 청구이의의 소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심은 민사소송법이 정한 재심사유가 있을 때 확정판결 자체를 취소해달라고 구하는 절차로, 엄격한 제기기간(재심사유를 안 날부터 30일, 판결 확정 후 5년)의 제한을 받습니다. 재심이 인용되면 판결 자체가 취소되어 사건이 다시 심리됩니다. 반면 청구이의의 소는 판결은 그대로 둔 채 그에 따른 집행력만을 배제하는 절차입니다.
권리남용 법리에 따른 청구이의는 재심사유가 없는 경우에도, 혹은 재심 제기기간이 지나버린 경우에도 예외적으로 열릴 수 있는 통로라는 점에서 재심과 구별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통로가 재심의 쉬운 우회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본 대로 "현저히 부당하고 정의에 반함이 명백하여 사회생활상 용인할 수 없는" 정도라는 기준은 재심사유 못지않게 엄격하게 운용됩니다. 재심사유가 명백히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재심의 소를 제기하는 것이 원칙적인 방법이고, 권리남용에 따른 청구이의는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 보충적으로 검토되는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재판에서 억울하게 졌다고 생각되면 청구이의의 소로 다시 다툴 수 있나요?
A. 원칙적으로는 어렵습니다. 청구이의의 이유는 변론종결 뒤에 생긴 사정으로 한정되어, 판결 전부터 있었던 사실관계나 법리 판단의 당부는 이 소로 다툴 수 없습니다. 그런 부분은 항소·상고, 판결 확정 후라면 재심사유가 있을 때 재심으로 다퉈야 합니다.
Q. 확정판결 이후에 이미 빚을 갚았는데 채권자가 다시 집행하면 어떻게 하나요?
A. 변제는 변론종결 후에 발생한 전형적인 이의사유이므로, 권리남용까지 갈 것 없이 통상적인 청구이의의 소로 변제 사실을 증빙자료와 함께 주장하면 됩니다. 집행을 멈추려면 소 제기와 함께 강제집행정지 신청도 함께 내야 합니다.
Q. 지급명령이나 공정증서(집행증서)에도 변론종결 후 발생사유 원칙이 그대로 적용되나요?
A. 아닙니다. 확정된 지급명령·이행권고결정·집행증서는 기판력이 없어 민사집행법 제44조 제2항의 시기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변론종결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으므로 애초에 채무가 없었다는 사정처럼 더 폭넓은 사유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Q. 청구이의의 소를 내면 강제집행이 바로 멈추나요?
A. 아닙니다. 소 제기만으로는 집행이 계속 진행되며, 멈추려면 별도로 강제집행정지 신청을 해서 법률상 정당한 이유에 대한 소명과 필요시 담보 제공을 거쳐야 정지 결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Q. 권리남용을 주장하면 그 사실은 누가 증명해야 하나요?
A.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하는 채무자가 확정판결 내용이 실체적 권리관계에 배치된다는 점과 그 집행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점을 모두 증명해야 합니다. 채권자가 먼저 반박할 사항이 아니라 채무자가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Q. 재심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청구이의로 해결하는 게 나은가요?
A. 재심사유가 뚜렷하다면 재심의 소가 원칙적인 방법입니다. 권리남용에 따른 청구이의는 재심사유가 없거나 재심 제기기간이 이미 지난 경우에 예외적으로 검토되는 보충적 통로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맺음말
확정판결에 따른 강제집행은 원칙적으로 그대로 진행되어야 하고, "판결이 틀렸다"는 주장만으로는 이를 막을 수 없습니다. 청구이의의 소가 다룰 수 있는 것은 변론종결 이후에 생긴 사정이 원칙이고, 판결 성립 이전의 사정은 항소·상고나 재심의 영역입니다. 다만 판결 성립 경위나 채권자의 집행 행태에 심각한 흠이 있어 그 집행을 그대로 수인하게 하는 것이 사회생활상 용인할 수 없을 정도로 정의에 반한다면, 권리남용 법리에 따라 예외적으로 청구이의의 소가 열릴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예외는 문턱이 매우 높고, 그 사정을 증명할 책임도 채무자 쪽에 있어 준비 없이 접근하면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수원지방법원 관할 사건을 포함해 강제집행을 앞두고 있거나 이미 집행이 시작된 상황이라면, 판결 성립 경위와 그 이후의 사정을 먼저 정리해 이 사안이 통상적인 이의사유에 해당하는지, 권리남용 법리가 적용될 여지가 있는지부터 냉정하게 가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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