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만 남은 계약서
채용 협상 테이블에서 급여 외 조건을 먼저 꺼내는 쪽은 대부분 회사입니다. 그런데 계약서에는 정작 급여 항목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면접 단계에서 담당자가 "이 부분은 별도로 챙겨드리겠다"고 말을 건네고 나면, 그 말은 채용을 성사시키는 데는 유용하지만 서면에는 잘 남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직원이 퇴사할 무렵 찾아옵니다. "그때 말씀하신 조건은 어떻게 되나요"라는 질문 앞에서, 인사담당자는 계약서에 없는 조건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지 정리된 답을 갖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구두 합의도 효력이 있습니다
근로계약 체결은 서면을 요건으로 하지 않으며, 서면 명시·교부의무는 효력요건이 아니라 근로조건 명확화·입증을 위한 것입니다. 다만 임금·소정근로시간·주휴일·연차휴가 등 핵심 조건은 서면으로 교부해야 하고(근로기준법 제17조 제2항), 구두로 제시한 조건도 근로의 대가로 인정되면 임금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통상임금 산입 여부는 별개 문제이므로, 이 글은 조건이 회사의 의무로 확정되는 시점 자체를 다룹니다.
협상부터 정산까지, 책임의 갈래
법원은 구두로 희망 연봉만 전달하고 오퍼레터를 발송하지 않은 사안에서 채용의사 표명을 인정하지 않았고(서울남부지방법원 2022. 1. 21. 선고 2020가합113809 판결), 임금조건이 확정되지 않은 채용공고는 청약의 유인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대전지방법원 2024. 5. 9. 선고 2022구합1038 판결). 계약 성립 자체가 부정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협상 단계에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계약교섭의 부당한 중도파기·절차위반을 불법행위로 보아 신뢰손해를, 인격적 법익 침해 시에는 위자료도 별도로 인정하였습니다(대법원 2024. 10. 25. 선고 2023다258658 판결). 다만 배상 범위는 급여 상당액이 아니라 신뢰손해에 한정됩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5. 8. 선고 2019가단5008040 판결).
최종합격을 통지하고 발령을 반복 약속한 다음 채용을 거부하면 국면이 달라집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안에서 계약책임이 아니라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고, 다른 취직 기회를 포기함으로써 입은 손해를 배상 범위로 파악하였습니다(대법원 1993. 9. 10. 선고 92다42897 판결).
완전합의조항이 있으면 회사의 방어가 쉬워집니다. 법원은 "종전의 모든 구두 합의를 대체한다"는 조항이 있는 사안에서 체결 전 구두 이면 합의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9. 22. 선고 2021가합561102 판결). 다만 만능은 아닙니다. 정형문구에 불과한지, 조건 배제 의도가 있었는지에 따라 심급을 오가며 결론이 갈립니다(수원지방법원 2019가합26239 판결, 수원고등법원 2020나21615 판결).
계약서에 없어도 조건이 설명자료·안내문서로 남아 있으면 취업규칙으로 평가되어 계약상 의무가 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특별퇴직자 재채용 개선안을 취업규칙으로 보아 재채용 의무를 인정하였고, 불리한 변경에는 집단적 동의가, 개별합의로 되돌리는 데는 근로기준법 제97조상 무효 법리가 적용된다고 하였습니다(대법원 2022. 9. 29. 선고 2018다301527 판결).
서면 리스크도 넓습니다. 서면 교부의무는 계약을 "체결할 때" 또는 "변경할 때"마다 이행되어야 하고, 체결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 교부하면 의무 이행이 아닙니다(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2015고단725 판결). "체결할 때"는 의사표시가 합치되는 시점이며, 근로자의 작성 회피 여부는 책임에 영향이 없습니다(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 2022고정6 판결). 소급 작성도, 실무자 위임 항변도 통하지 않고(전주지방법원 2021고정453 판결, 위 판결), 기간제 근로계약도 근로기준법 제17조 위반 벌금이 별도로 적용됩니다(대법원 2024. 6. 27. 선고 2020도16541 판결).
서면화 전에 점검할 네 가지
협상 조건 서면화: 급여 외 조건은 계약서 본문에 직접 반영
완전합의조항 점검: 배제 의도가 드러나도록 조항 구성
교부 시점 확인: 계약 체결 즉시 서면 교부 여부 기록
정산 단계 대응: 임금 공제 예외는 법령·단체협약뿐이고 엄격하게 판단되므로, 취업규칙·근로계약에 근거를 두어도 무효입니다(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 대법원 2022. 12. 1. 선고 2022다219540 판결). 근로자 개별 동의에 의한 상계는 예외적으로 유효할 수 있으나, 판단은 엄격하고 신중해야 합니다(대법원 2001. 10. 23. 선고 2001다25184 판결).
구두 합의라 하여 효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내용을 사후에 증명하기 어렵고, 완전합의조항이 있으면 계약 내용으로 편입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협상 단계에서 정한 조건은 계약서 본문에 옮겨 두셔야 합니다.
서면화, 미루지 마세요
채용 조건의 서면 반영 여부에 따라 회사가 부담할 책임의 성격과 범위가 달라집니다. 협상 단계의 조건을 계약서에 반영하는 절차부터 정비해 두시면, 이후 분쟁과 형사 리스크를 함께 줄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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