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조합 대의원회나 이사회에 나가보면, "조합장이 이번 달에도 판공비로 얼마를 썼다더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립니다. 정비사업비가 수백억 원 단위로 오가다 보니 조합원 입장에서는 정확히 어디에 얼마가 쓰였는지 알기 어렵고, 조합장이 총회 의결도 없이 업무추진비나 격려금 명목으로 돈을 쓰는 모습을 보면 "이게 횡령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조합장이 조합 계좌에서 개인적으로 돈을 빼 쓰거나, 시공사·용역업체와 결탁해 계약금액을 부풀린 뒤 차액을 챙기는 방식으로 형사처벌을 받는 사례도 드물지 않습니다. 다만 조합장이 집행한 돈이 모두 횡령이 되는 것은 아니고, 총회나 정관에서 정한 절차를 거쳤는지가 죄가 되는지 여부를 가르는 핵심 기준이 됩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조합장의 자금 집행이 횡령이 되는 경계선과 흔한 유형
재건축조합의 조합장은 조합원 분담금, 사업비 대출금, 시공사로부터 받은 자금 등이 입금된 조합 명의 계좌를 관리·집행하는 지위에 있습니다. 형법상으로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하고, 이 지위에서 정관이나 총회 의결로 정해진 용도를 벗어나 자금을 쓰면 횡령죄 문제가 생깁니다.
실무에서 자주 문제 되는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총회 의결이나 정관상 근거 없이 업무추진비·판공비·격려금 등을 조합장 재량으로 지급받거나 지출하는 경우
공사도급계약이나 용역계약 금액을 실제보다 부풀려 체결한 뒤 그 차액을 시공사·용역업체로부터 되돌려 받는 이른바 리베이트
조합 자금을 개인 채무 변제, 개인 사업 자금 등 조합 업무와 무관한 용도로 유용하는 경우
이 중 어디에 해당하든 조합장이라는 지위 자체가 형사책임을 무겁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단순 횡령이 아니라 업무상횡령으로 다뤄지고, 사업비 규모가 크다 보니 이득액에 따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까지 적용될 수 있어 일반 형사사건보다 형량이 훨씬 무겁게 나올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도시정비법은 조합 운영의 투명성을 위해 회계감사·자료공개 의무를 따로 규정해 두고 있어, 횡령 혐의와 별개로 이 의무를 어긴 것만으로도 처벌 대상이 됩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업무상횡령죄 성립요건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가중 기준
조합장의 자금 유용은 형법 제355조 제1항(횡령)이 아니라 제356조(업무상의 횡령과 배임)이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단순 횡령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인 반면, 업무상횡령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량이 훨씬 무겁습니다. 조합장은 정관과 총회 의결에 따라 조합 자금을 관리할 업무상 임무를 지므로, 그 지위에서 자금을 유용하면 일반 횡령이 아니라 업무상횡령으로 의율됩니다.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하려면 (1) 타인(조합)의 재물을 보관하는 지위, (2) 그 재물을 위탁 취지에 반해 임의로 소비·처분하거나 반환을 거부하는 횡령행위, (3) 불법영득의사 — 위탁 취지에 반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그 재물을 사용·처분할 의사 — 가 모두 인정돼야 합니다. 실무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불법영득의사인데, 나중에 돈을 갚거나 변상하겠다는 의사가 있었더라도 일단 위탁 취지에 반해 자금을 사용한 시점에 불법영득의사는 이미 실현된 것으로 봅니다. "나중에 채워 넣을 생각이었다"는 항변은 범죄 성립 자체를 막지 못하고, 양형 단계에서 참작될 뿐입니다.
조합장 급여나 업무추진비처럼 반복적으로 문제 되는 지출은 총회 의결이나 정관상 근거가 있었는지가 죄가 되는지를 가르는 핵심 분기점입니다. 정관에 지급 기준이 정해져 있거나 총회에서 지급 내역을 사전에 승인·추인받았다면, 그 범위 안에서 쓴 돈은 위탁 취지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려워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절차 없이 조합장 재량으로 금액과 용도를 정해 집행했다면, 액수의 많고 적음과 무관하게 업무상횡령 혐의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재건축 정비사업비는 통상 수백억 원 단위이다 보니, 조합장 횡령이 문제 되는 사안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가 함께 적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횡령으로 취득한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고, 이득액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이 병과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득액은 한 번에 큰돈을 빼돌린 경우만이 아니라, 소액이라도 장기간 반복된 지출이 누적되면 합산돼 계산된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구체적인 숫자로 보면 체감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조합장이 총회 의결 없이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매월 300만원씩 3년간(36개월) 조합 자금을 사용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월 300만원 × 36개월 = 1억 800만원이 업무상횡령의 이득액으로 합산됩니다.
이 금액만으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5억원 기준에 못 미쳐 형법 제356조만 적용되지만, 여기에 공사계약 리베이트 등으로 4억원이 추가로 확인되면 합산 이득액이 5억원을 넘어 특경법 가중처벌 대상이 됩니다.
여기에 더해 도시정비법은 조합 운영의 투명성을 별도로 규율합니다. 제124조는 월별 자금 입출금 세부내역, 결산보고서, 용역업체 선정계약서 등을 작성·변경 후 15일 이내에 공개하고, 조합원의 열람·복사 요청에도 15일 이내 응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반해 서류를 거짓으로 공개하거나 열람·복사 요청에 허위 자료를 내주면 제137조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 공개 자체를 하지 않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열람·복사를 거부하면 제138조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 횡령 혐의 입증과는 별개로, 자료를 숨기는 행위 자체가 독립된 처벌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제134조에 따라 조합임원은 뇌물죄(형법 제129조~제132조) 적용에서 공무원으로 의제되므로, 시공사로부터 금품을 받은 정황이 함께 드러나면 횡령과 별도로 수뢰 혐의까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회계자료 확보부터 형사고발까지 다섯 단계
조합장의 자금 유용이 의심된다면, 다음 순서로 대응합니다.
자금 입출금 내역과 결산자료부터 확보 — 도시정비법 제124조에 따라 조합원은 월별 자금 입출금 세부내역, 결산보고서, 계약서 등에 대해 열람·복사를 요청할 권리가 있습니다. 조합이 15일 이내에 응하지 않거나 허위 자료를 내주면 그 자체로 별도 처벌 대상이 되므로, 먼저 서면으로 요청하고 회신 여부·내용을 기록해 두어야 합니다.
조합원 5분의 1 이상 동의로 회계감사 요청 — 도시정비법 제112조 제1항 제4호에 따라 토지등소유자 또는 조합원 5분의 1 이상이 동의하면 시장·군수등에게 회계감사기관 선정·계약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외부 회계감사 결과는 자체 조사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자금 흐름의 이상 유무를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핵심 증거가 됩니다.
지출결의서·계약서와 총회 의사록 대조 — 문제 된 지출 항목이 총회 의결이나 정관상 근거를 갖추고 있는지 하나씩 대조합니다. 근거 없이 집행된 항목, 계약금액이 시세보다 과도하게 높게 책정된 용역·공사계약이 있다면 그 차액이 리베이트로 흘러갔을 가능성도 함께 살핍니다.
업무상횡령 혐의로 형사고소 — 확보한 회계자료·계좌내역·계약서·총회 의사록을 근거로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제출합니다. 이득액이 5억원 이상으로 추산되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적용 여부를 함께 검토해 고소 취지에 명시해 두는 것이 수사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됩니다.
조합장 해임과 민사상 반환청구 병행 — 형사고소와 별개로 총회를 소집해 조합장 해임 절차를 진행하고, 유용된 자금에 대해서는 부당이득반환 또는 손해배상 청구로 회수 절차를 함께 진행합니다. 형사 사건의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 조합 운영이 계속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자금 흐름이 지워지기 전에 움직여야 하는 이유
조합장의 자금 유용 의혹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집니다. 계좌 내역과 증빙 서류는 시간이 흐를수록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조합장이 문제를 인지하면 서류를 정리하거나 자금을 은닉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조합 사업이 계속 진행되면서 새로운 계약과 지출이 쌓이면 기존 문제가 묻히기 쉽습니다.
조합장이 쓴 자금이 총회 의결이나 정관상 근거를 갖췄는지 의심된다면, 회계자료 확보와 회계감사 요청부터 서둘러 진행하시고, 이득액 규모에 따른 형사책임과 해임·반환청구까지 함께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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