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불법촬영이나 몸캠 유포 사건에서 가해자 측이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피해자 측에 먼저 연락해, 영상을 지우겠다는 조건으로 합의를 제안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제가 상담한 피해자분들 중에는 “상대방이 지우겠다고 했으니 이제 끝난 일이다”, “합의서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써줬으니 사건도 곧 마무리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별다른 확인 없이 서명부터 한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그 영상이 발견되거나, 검찰의 처분 소식이 뜻밖의 방향으로 나오면서 “분명히 지웠다고 했는데”, “합의서까지 썼는데 왜 사건이 계속되냐”며 당혹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촬영물의 반포 등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되는지는 그 행위 시점을 기준으로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동의하에 촬영된 영상이라도, 이후 유포나 유포 위협이 있었다면 그 시점을 기준으로 별도로 처벌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래에서는 영상 삭제를 조건으로 한 합의를 진행할 때 합의서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그리고 삭제 여부를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지 최근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삭제 약속은 합의서에 구체적으로 적어야 나중에 지킬 근거가 됩니다
구두로 오간 삭제 약속은 다툼이 생기면 입증할 방법이 없습니다.
가해자 측 변호사가 먼저 연락해 “영상은 이미 지웠다” 또는 “합의만 해주면 바로 지우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통화나 문자로 삭제 의사를 전달받고, 정작 합의서에는 합의금 액수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문구만 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후에 촬영물이 다시 발견되거나 유포 정황이 확인됐을 때 벌어집니다. 합의서에 삭제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다면, 애초에 삭제를 약속했는지, 어떤 범위까지 지우기로 했는지를 다툴 근거 자체가 사라집니다. 합의서는 계약의 일종이므로, 문서에 없는 구두 약속은 분쟁이 생겼을 때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취급을 받기 쉽습니다.
따라서 합의서에는 단순히 “영상을 삭제한다”는 한 문장이 아니라, 삭제 대상(원본·사본·전송본), 삭제 시기, 삭제를 확인하는 방법, 이행하지 않을 경우의 효과까지 구체적으로 특정해 담아야 합니다.
삭제 약속은 합의서에 구체적으로 명시돼야만 나중에 이행을 요구할 근거가 됩니다.
2. 합의를 하더라도 촬영·유포죄의 처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범죄는 피해자 의사만으로 사건이 끝나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닙니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는 카메라 등을 이용해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제1항)에, 그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하거나 공공연히 전시·상영한 경우도 마찬가지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제2항)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영리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유포했다면 제3항에 따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형량 하한 자체가 올라가고, 촬영물을 소지·구입·저장·시청한 사람도 제4항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별도 처벌 대상이 됩니다.
이 범죄들은 2013년 법 개정 이후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즉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거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더라도, 수사기관은 그와 무관하게 수사와 기소 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합의서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더라도 그 자체로 사건이 자동으로 종결되지 않고, 검찰의 처분과 법원의 양형에서 참작되는 사정으로 작용할 뿐입니다.
합의 과정에서 특히 자주 나오는 오해는 “원래 사귈 때 동의하에 찍은 영상이니 나중에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반포 등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되는지는 그 행위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2항 위반죄는 반포 등 행위 시를 기준으로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그 행위를 함으로써 성립하고, 촬영이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아니하였더라도 그 성립에 지장이 없다(대법원 2023. 6. 15. 선고 2022도15414 판결).
즉 촬영 당시에는 서로 동의한 사이였더라도, 이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영상을 유포하거나 유포하겠다고 압박하면 그 시점을 기준으로 새롭게 범죄가 성립합니다. 합의서에 처벌불원 문구를 넣었다고 해서 이런 사후 행위에 대한 책임까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합의는 형사처벌 자체를 없애는 절차가 아니라, 검찰의 처분과 법원의 양형에 참작되는 사정일 뿐입니다.
3. 원본을 지웠다는 확인만으로는 유포 위험이 끝나지 않습니다
사본·전송이력·제3자에게 넘어간 흔적까지 확인해야 삭제가 마무리됩니다.
촬영물은 최초 저장된 기기 외에도 클라우드 자동 백업, 메신저로 전송된 사본, 대화방에 남은 캐시 파일 등 여러 곳에 흩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휴대전화 갤러리에서 파일을 지운 화면을 캡처해 보내더라도, 그 밖의 경로에 사본이 남아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실무적으로는 디지털포렌식 감정을 통해 기기 내 실제 파일의 존재 여부와 복구 가능성을 확인하거나, 여성가족부 산하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삭제지원·모니터링 서비스를 함께 이용하는 방법이 안전합니다. 이 센터는 촬영물의 특징값을 추출해 등록된 사이트들을 상시 대조하는 방식으로 유포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신청인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삭제 여부를 확인할 때는 상대방 본인의 기기뿐 아니라, 촬영물이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는지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특정한 소수에게라도 영상을 전달한 사실이 있다면 그 자체로 별도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2항에서 ‘반포’와 별도로 열거된 ‘제공’은 반포에 이르지 않는 무상 교부행위로서, 반포할 의사 없이 특정한 1인 또는 소수의 사람에게 무상으로 교부하는 것을 의미한다(서울고등법원 2023. 4. 13. 선고 2022노3389 판결).
즉 여러 사람에게 뿌리는 것만 처벌 대상이 아니라, 단 한 사람에게라도 촬영물을 넘긴 사실이 확인되면 별도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합의 상대방이 “딱 한 명한테만 보여줬다”고 축소해 말하더라도, 그 한 명에게 넘어간 파일이 삭제됐는지까지 확인 범위에 포함해야 합니다.
삭제 확인은 상대방 기기 하나만이 아니라, 촬영물이 실제로 거쳐 간 모든 경로를 대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4. 촬영·유포·협박 중 어느 단계까지 갔는지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집니다
합의 테이블에 오른 행위가 정확히 무엇인지부터 가려야 합니다.
단순히 촬영만 이뤄지고 유포되지 않았다면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1항이 적용되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범위에서 처벌이 이뤄집니다. 이미 촬영물이 유포됐거나 유포 시도가 있었다면 같은 조 제2항이 함께 적용되고, 상습으로 이런 행위를 반복했다면 제5항에 따라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될 수 있습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유포한 경우에는 제3항이 적용되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형량의 하한선 자체가 크게 올라갑니다. 여기에 더해 상대방이 영상을 빌미로 삭제·비공개를 대가로 금전이나 다른 행위를 요구했다면, 이는 촬영물등을 이용한 협박(제14조의3 제1항, 1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강요(제2항,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로 별도 처벌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상 삭제를 조건으로 합의하자”는 제안 뒤에 실제로 어떤 행위가 있었는지—단순 소지에 그쳤는지, 유포까지 이뤄졌는지, 유포를 빌미로 압박이나 요구가 있었는지—를 먼저 정리해야 합니다. 이 구분에 따라 적용 법조와 형량 하한이 완전히 달라지고, 합의서에 담아야 할 내용과 협상의 무게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5. 신고부터 재판까지, 확인 순서를 정해두면 협상에서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삭제 확인이 먼저이고, 처벌불원서 제출과 합의금 잔금은 그다음입니다.
촬영·유포 사건은 통상 ①관할 경찰서(수원 지역 사건이라면 수원남부·수원중부경찰서 등) 신고 또는 고소장 접수 → ②피해자 조사 및 압수수색을 통한 촬영물 확보 → ③검찰(수원지방검찰청) 송치 및 처분 → ④기소 시 법원(수원지방법원) 재판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유포나 협박 정황이 확인되면 초기 단계부터 구속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수사기관이 압수한 촬영물 원본은 사건이 완전히 종결되기 전까지 별도로 보존되므로, 합의 상대방이 “이미 다 지웠다”고 말하더라도 수사기관 보관본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도 알아둬야 합니다. 또한 촬영물을 빌미로 한 압박이 있었다면 그 자체가 완전히 별개의 범죄인데, 실제로 촬영물로 상대방을 압박한 행위만으로 별도 실형이 확정된 사례도 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3. 4. 13. 선고 2022노3389 판결에서는 촬영물등이용협박 부분에 대해 징역 1년 3개월이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삭제를 조건으로 한 합의를 진행하게 됐다면, 감정적으로 서두르기보다 아래 순서로 자료와 문서를 먼저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삭제 대상 범위(원본·사본·전송이력·클라우드 백업)와 삭제 확인 방법(포렌식 확인서,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모니터링 결과)이 합의서에 구체적으로 담겼는지 확인합니다.
삭제가 실제로 완료됐다는 증빙을 받은 뒤에 처벌불원서 제출과 합의금 잔금 지급을 진행하고, 삭제 확인 전에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합의 이후 재유포 정황이 발견되면 곧바로 수사기관에 알릴 수 있도록, 합의서에 위반 시 합의금 반환과 손해배상에 관한 조항을 미리 넣어둡니다.
이런 자료와 조항을 갖춘 상태에서 디지털 성범죄 합의 협상에 전문성 있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다면, 삭제 이행 확인과 처벌불원 시점 조율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 실질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영상 삭제를 조건으로 한 합의 제안을 받으면,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세부 조건을 꼼꼼히 따지지 못한 채 서명부터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 쪽에서 먼저 연락해 오고 대화가 급박하게 진행되면,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따져볼 시간조차 충분치 않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피해를 당한 쪽 입장에서는 영상이 더 퍼지기 전에 하루빨리 지워지길 바라는 마음이 크지만, 확인 없이 서명한 합의서는 오히려 나중에 삭제 이행을 요구할 근거를 스스로 없애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삭제를 약속하는 쪽 입장에서도, 이행 방법과 절차를 합의서에 구체적으로 담아두지 않으면 나중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시비에 휘말려 합의 자체가 흔들리거나 형사처분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촬영물을 둘러싼 합의를 요구받은 피해자 측과, 삭제·합의 이행을 진행해야 하는 피의자 측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합의서의 문구 하나가 이후 절차 전체의 방향을 바꾸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영상 삭제를 조건으로 한 합의는 서명 전에 무엇을 확인하느냐가 사실상 전부입니다. 그 확인이 필요한 순간,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상대방이 이미 영상을 지웠다고 하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A. 상대방의 말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디지털포렌식 감정이나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모니터링·삭제확인 절차를 거쳐 실제 삭제 여부를 확인한 뒤 합의를 마무리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Q. 합의서에 처벌불원 문구를 넣으면 사건이 바로 끝나나요?
A. 아닙니다. 카메라등이용촬영·유포죄는 피해자 의사만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어서, 처벌불원 문구는 검찰의 처분과 법원 양형에 참작되는 사정일 뿐 절대적인 종결 사유가 아닙니다.
Q. 원래 사귈 때 동의하에 찍은 영상이라면 나중에 유포해도 처벌이 안 되나요?
A. 처벌됩니다. 대법원은 반포 등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했는지를 판단하며, 촬영 당시 동의가 있었더라도 이후 의사에 반해 유포하면 별도로 처벌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Q. 합의금은 삭제 전에 먼저 줘야 하나요, 삭제 확인 후에 줘야 하나요?
A. 삭제 확인 후 지급이 원칙입니다. 삭제 완료 증빙을 받기 전에 합의금과 처벌불원서를 먼저 내주면, 이후 삭제가 이행되지 않아도 이를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Q. 삭제를 조건으로 돈을 요구하는 연락을 받으면 무조건 응해야 하나요?
A. 아닙니다. 촬영물을 빌미로 금전이나 다른 행위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촬영물등이용협박·강요로 별도 처벌될 수 있으므로, 요구받은 연락 내용부터 증거로 남겨 신고 여부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Q. 이미 처벌불원서를 냈는데 상대방이 삭제 약속을 안 지키면 되돌릴 수 있나요?
A. 처벌불원 의사표시 자체를 되돌리는 것과는 별개로, 삭제 미이행은 합의 위반이므로 합의서에 위반 시 조항(합의금 반환·손해배상)을 넣어뒀다면 그에 따라 대응할 수 있고, 재유포 정황이 있다면 수사기관에 다시 알릴 수 있습니다.
Q. 수사기관이 압수한 촬영물도 상대방이 지우면 완전히 없어지나요?
A. 아닙니다. 수사기관이 확보한 촬영물은 사건이 완전히 종결되기 전까지 증거로 별도 보존되므로, 상대방 기기에서의 삭제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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