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포탈로 기소돼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그것으로 사건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유죄 판결의 전제가 된 과세관청의 부과처분이 별도로 진행되던 조세소송에서 뒤늦게 취소되는 일이 있고, 이때는 이미 확정된 형사판결도 다시 흔들릴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이런 상황을 형사소송법이 정한 재심사유 가운데 하나로 명시적으로 인정해 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조세포탈 유죄가 확정된 뒤 과세처분이 취소되면 왜 재심사유가 되는지, 실제로 재심을 청구하려면 무엇을 확인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조세포탈 형사재판과 부과처분 취소소송은 별개로 간다
조세포탈죄가 성립하는지는 형사법원이 판단하고, 그 포탈의 전제가 된 부과처분 자체가 적법한지는 조세심판원이나 행정법원이 별도의 절차에서 판단합니다. 형사소송은 국가의 형벌권 행사가 정당한지를 다투는 절차이고, 조세소송은 납세의무 자체가 존재하는지를 다투는 절차라 심리 기관도 다르고 심리 속도도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의 세무조사 결과를 두고 검찰이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하는 동시에, 납세자는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하거나 행정법원에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상황이 흔하게 벌어집니다.
문제는 두 절차의 진행 속도가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형사재판은 비교적 빠르게 진행돼 대법원까지 유죄로 확정되는 반면, 조세심판원의 재조사결정이나 행정법원·고등법원·대법원을 거치는 조세소송은 수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 결과 형사판결이 먼저 확정되고, 한참 뒤에야 조세소송에서 부과처분이 취소되는 시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시차 때문에 실무에서는 형사재판에서 이미 유죄가 확정됐으니 조세불복은 의미가 없다고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뒤에서 보듯 이는 정반대의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절차입니다.
조세포탈 형사재판과 부과처분 취소소송은 별개의 절차로 각자 진행되므로, 형사판결이 먼저 확정되더라도 조세불복 절차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과세처분이 취소되면 그 조세채권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된다
부과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이 확정되면, 그 처분의 효력은 처분 당시로 소급하여 효력을 잃습니다. 처분이 있었던 시점으로 돌아가 애초에 그런 처분이 없었던 것처럼 취급되므로, 원칙적으로 그 처분에 따른 납세의무 자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 됩니다. 대법원 1985. 10. 22. 선고 83도2933 판결이 이 소급효 법리를 조세포탈 사건에 처음 적용해, 확정된 취소판결이 조세포탈에 대해 무죄나 더 가벼운 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이래 지금까지 같은 법리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법리가 조세포탈죄와 만나면 유죄판결의 기초 자체를 흔듭니다. 조세범 처벌법 제3조 제1항이 정한 조세포탈죄는 '포탈한 세액'이 실제로 존재함을 전제로 성립하는 범죄인데, 그 세액을 발생시킨 부과처분이 소급하여 무효가 되면 애초에 포탈할 세액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세무서가 부당행위계산 부인을 근거로 법인세를 추가 산정해 부과했는데, 조세소송에서 그 산정 방법이 위법하다는 이유로 부과처분이 취소되면, 그 세액만큼을 포탈했다고 본 형사판결의 사실적 전제 자체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과세표준·세액 산정 방법 자체가 위법하다고 인정된 경우
조세심판원이 재조사결정을 하고 그 후속처분으로 당초 처분이 취소된 경우
과세전적부심사 기회를 주지 않는 등 절차적 하자가 인정된 경우
제척기간 도과 등 부과처분 자체의 적법 요건이 흠결된 경우
부과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이 확정되면 그 효력은 처분 시로 소급해 사라지므로, 그 세액을 포탈했다는 유죄판결의 전제 자체가 무너진다.
대법원이 명시한 재심사유 —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는 유죄를 선고받은 자에 대하여 무죄나 면소를, 혹은 원판결이 인정한 죄보다 가벼운 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를 재심사유로 규정합니다. 대법원은 이 조항의 '새로 발견된 증거'에 확정된 부과처분 취소판결 자체가 해당한다고 여러 차례 밝혀 왔습니다. 앞서 본 83도2933 판결에 이어 대법원 2015. 10. 29. 선고 2013도14716 판결은, 조세심판원이 재조사결정을 하고 그에 따라 과세관청이 후속처분으로 당초 부과처분을 취소한 경우까지도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처음 기소된 처분사유와 다른 절차적 경위로 취소됐더라도 소급하여 납세의무가 없어진다는 결론은 같다는 취지입니다.
가장 최근의 대법원 2019. 9. 26. 선고 2017도11812 판결은 이 법리를 구체적인 금액과 함께 확인해 준 사례입니다. 이 사건 피고인은 회사가 특수관계인에게 의류를 원가로 공급한 것이 부당행위에 해당한다는 전제로 산정된 법인세를 포탈했다는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는데, 그 산정의 기초가 된 매출누락액 산정 방법이 위법하다는 이유로 2011년 87,130,893원, 2012년 81,703,778원, 2013년 61,618,504원의 각 법인세 부과처분을 취소하는 행정판결이 대법원까지 확정됐습니다. 대법원은 이를 두고 해당 법인세 포탈 부분에 대해 무죄로 판단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한다고 보아,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환송했습니다.
재심사유가 되려면 확인해야 할 것들 — 모든 취소가 다 해당하지는 않는다
다만 부과처분이 취소됐다고 해서 자동으로 재심이 개시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그 취소판결이 상급심에서 다투어지지 않고 확정되어야 합니다. 과세관청이 항소·상고를 제기해 다투는 중이라면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이므로 재심사유로 원용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취소된 부과처분이 형사재판에서 유죄로 인정된 세목·과세연도와 정확히 일치해야 합니다. 2017도11812 판결에서도 취소가 확정된 법인세 부분만 파기되고, 같은 사건에서 함께 유죄로 인정됐던 다른 사업장의 부가가치세·법인세 포탈 부분이나 세금계산서 미수취 부분은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또 하나 실무상 중요한 점은, 재심사유가 인정된 세액 부분과 나머지 유죄 부분이 형법상 경합범 관계에 있어 하나의 형으로 선고됐다면, 취소된 부분만 따로 떼어 무죄를 선고할 수 없고 결국 유죄 부분 전체를 다시 심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재심에서 형량이 낮아질 가능성은 있지만, 나머지 유죄 부분에 대한 판단까지 완전히 뒤집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이해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취소판결이 항소심·상고심까지 마치고 확정됐는가
취소된 세목·과세연도가 형사재판에서 유죄로 인정된 세액과 정확히 일치하는가
그 세액 부분이 다른 유죄 부분과 경합범으로 묶여 하나의 형이 선고됐는가
재심사유는 취소가 확정된 세액 부분에 한정되며, 다른 세목·다른 사업연도의 유죄 판단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재심 청구 절차 — 누가, 어느 법원에, 어떻게 청구하나
형사소송법 제424조에 따라 재심청구권자는 검사,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 본인, 그 법정대리인, 그리고 본인이 사망하거나 심신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배우자·직계친족·형제자매로 정해져 있습니다. 재심청구는 유죄가 확정된 판결을 선고한 법원, 즉 그 재심사유가 발생한 심급의 법원에 제기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청구서에는 취소판결이 확정됐다는 사실과 그 확정증명원, 판결문 등본을 근거자료로 첨부해야 법원이 재심사유의 존재를 명백한 증거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법원이 재심청구가 이유 있다고 인정하면 형사소송법 제435조에 따라 재심개시결정을 하고, 이때 필요하면 형의 집행을 정지할 수 있습니다. 재심개시결정이 확정되면 같은 법 제438조에 따라 그 심급에서 사건을 다시 심판하여 무죄나 원판결보다 가벼운 죄를 선고하게 됩니다. 이미 실형이 집행 중이거나 벌금 납부독촉을 받고 있는 상태라면, 재심청구와 동시에 집행정지 신청을 함께 하는 것이 실무상 중요합니다.
재심청구는 취소판결의 확정 사실과 판결문을 근거자료로 삼아 원판결 법원에 제기하며, 개시결정이 나면 형 집행정지도 함께 구할 수 있다.
포탈세액 규모가 크다면 — 특가법 적용 사건에서 재심의 실익
포탈세액이 연간 5억원 이상이면 조세범 처벌법이 아니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8조가 적용돼 형량이 크게 달라집니다. 연간 포탈세액이 1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5억원 이상 1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며, 어느 경우든 포탈세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이 함께 부과됩니다. 세액 구간에 따라 적용 법조와 형량 하한 자체가 달라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부과처분 취소로 포탈세액이 줄어들면 단순히 형이 감경되는 수준을 넘어 적용되는 처벌 구간 자체가 바뀔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포탈세액이 12억원으로 산정돼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구간에서 처벌받았는데, 그중 4억원 상당의 부과처분이 취소돼 확정되면 남는 세액은 8억원대로 줄어 5억원 이상 10억원 미만 구간, 즉 3년 이상 유기징역 구간으로 적용 법조 자체가 바뀔 수 있습니다. 이처럼 특가법이 적용된 고액 포탈 사건일수록 부과처분 취소가 형량 구간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조세소송의 진행 상황을 형사재판이 끝난 뒤에도 계속 지켜볼 실익이 분명합니다.
형사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라면 — 확정 전에 챙겨야 할 것
조세소송과 형사재판이 동시에 진행 중이라면, 취소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마냥 기다리기보다 형사재판 안에서 부과처분의 위법성을 적극적인 항변사유로 주장해 두는 편이 유리합니다. 조세소송에서 이미 제출한 회계자료나 세무 감정 결과를 형사법원에도 함께 제출하면, 별도의 재심 절차 없이 형사재판 단계에서 무죄나 감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이미 지난 뒤에 조세소송의 취소판결이 확정되더라도 늦은 것은 아닙니다. 재심청구 사유가 있는 때는 상고이유로 삼을 수 있고, 이것이 상고이유서에 포함되지 않았더라도 대법원이 직권으로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이 83도2933 판결 이래 확립된 법리입니다. 따라서 상고심이 계속 중인 상태에서 취소판결이 확정됐다면, 별도의 재심청구를 다시 준비하기보다 그 사실을 즉시 상고심 법원에 알리는 것만으로도 파기환송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상고심이 계속 중일 때 조세소송의 취소판결이 확정되면, 별도의 재심청구 없이도 그 사유를 상고심에서 직권으로 심판받을 수 있다.
이미 낸 벌금·추징금은 어떻게 되나
재심에서 무죄나 더 가벼운 죄가 확정되면, 그전에 이미 납부했던 벌금이나 추징금을 그대로 손해로 떠안는 것은 아닙니다.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제5조는 재심에서 무죄재판이 확정된 경우 이미 징수한 벌금에 대해서는 징수일 다음 날부터 보상 결정일까지의 기간에 민법상 법정이율을 적용한 금액을 더해 보상하도록 정하고 있고, 추징금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이자 상당액을 더한 금액을 보상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보상은 재심에서 무죄나 감경 판결이 먼저 확정된 뒤에야 청구할 수 있는 절차입니다. 부과처분 취소판결을 확정받는 것과 그것을 근거로 재심을 청구해 실제로 무죄나 감형을 받아내는 것, 그리고 그 이후 형사보상을 청구하는 것은 각각 별개의 절차이자 순서이므로, 취소판결을 확정받았다고 안심하지 말고 재심청구부터 순서대로 밟아 나가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조세불복은 더 이상 의미가 없나요?
A. 아닙니다. 조세포탈 형사재판과 부과처분 취소소송은 별개 절차로 진행되므로, 형사판결이 먼저 확정되더라도 조세심판원 심판청구나 행정법원 취소소송은 계속 진행할 수 있고, 뒤늦게 부과처분이 취소되면 이미 확정된 형사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Q. 처음 기소된 처분사유가 아니라 절차상 하자로 부과처분이 취소돼도 재심사유가 되나요?
A. 네, 대법원 2013도14716 판결은 조세심판원의 재조사결정에 따라 후속처분으로 당초 처분이 취소된 경우도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취소의 경위와 무관하게 처분의 효력이 소급해 사라진다는 결론이 같기 때문입니다.
Q. 재심을 청구하면 형이 곧바로 사라지나요?
A. 아닙니다. 법원이 재심사유를 인정해 재심개시결정을 한 뒤, 그 심급에서 사건을 다시 심리해 무죄나 원판결보다 가벼운 죄를 선고하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취소된 세액 부분만 무죄가 되고 다른 유죄 부분은 그대로 유지될 수도 있습니다.
Q. 재심청구에 기간 제한이 있나요?
A. 형사소송법상 재심청구 자체에는 별도의 기간 제한이 없어 형 집행이 끝난 뒤에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관련 자료를 보관하고 취소판결 확정 사실을 신속히 반영하기 위해서는 확정 즉시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실무적으로 유리합니다.
Q. 이미 낸 벌금이나 추징금은 재심 이후 돌려받을 수 있나요?
A. 재심에서 무죄나 더 가벼운 죄가 확정되면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미 낸 벌금·추징금에 법정이율 상당의 이자를 더한 금액을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는 재심에서 무죄·감형이 먼저 확정된 뒤에 별도로 청구하는 절차입니다.
Q. 조세소송이 아직 대법원에 계속 중인데 형사재판이 먼저 확정될 것 같으면 어떻게 하나요?
A. 형사재판 단계에서 조세소송 자료를 항변사유로 적극 제출해 두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도 형사판결이 먼저 확정되면, 이후 조세소송에서 취소판결이 확정되는 즉시 그 판결문과 확정증명원을 근거로 재심을 청구하면 됩니다.
맺음말
조세포탈 유죄가 확정됐다고 해서 그 사건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부과처분의 적법성을 다투는 조세소송은 형사재판과 별개로 계속 진행될 수 있고, 그 소송에서 부과처분이 취소되면 대법원이 여러 차례 확인해 온 대로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의 재심사유가 됩니다. 다만 취소가 확정됐는지, 취소된 세액이 유죄로 인정된 부분과 정확히 일치하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하고, 재심청구권자와 관할, 재심개시결정 이후의 절차까지 순서대로 밟아야 실제로 형량이 달라지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수원지검에서 조세포탈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이후에도 조세소송에서 다투고 있는 부과처분이 있다면, 그 소송의 결론이 형사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미리 점검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취소판결이 확정된 뒤에 무엇을 준비해야 재심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상담을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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