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로 고소를 당한 뒤 상대방에게서 합의금을 요구받으면, 많은 사람이 그 요구 자체를 협박이나 공갈로 몰아붙이고 싶어 합니다. 특히 이후 수사기관이 고소 사건을 불송치로 종결하면 "애초에 거짓말로 돈을 뜯어내려 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자연스레 따라옵니다. 그러나 공갈죄는 협박의 외형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성립하지 않고, 불송치라는 결과 하나만으로 합의금 요구 당시의 고의나 허위성이 증명되지도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성범죄 합의금 요구가 원칙적으로 왜 정당한 권리행사로 평가되는지, 어떤 경우에 예외적으로 공갈죄 문제가 생기는지, 그리고 불송치 결정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순서대로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공갈죄란 무엇인가 — 협박과 재산상 이익 사이의 인과관계
형법 제350조 제1항은 사람을 공갈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갈은 폭행 또는 협박, 즉 해악을 고지해 상대방에게 겁을 먹게 하는 것을 뜻하고, 그 겁먹은 상태(외포심)에 의해 상대방이 재물을 교부하거나 재산상 이익을 처분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협박과 재산 처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요구하는 쪽에는 정당한 근거 없이 상대방의 재산을 취하려는 불법영득·불법이득의 의사가 있어야 합니다.
성범죄 사건에서도 이 구조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합의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 "합의금을 주지 않으면 처벌불원서를 써주지 않겠다"는 취지의 말은 표면적으로는 해악의 고지, 즉 협박의 모양을 갖추고 있어 상대방 입장에서는 공갈로 느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형사법은 여기서 협박의 존재 여부만 보지 않습니다. 그 협박이 실제로 존재하는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그리고 그 수단이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어섰는지를 함께 따집니다. 이 판단 기준이 성범죄 합의금 사건에서 공갈죄 성립 여부를 가르는 실질적인 갈림길입니다.
공갈죄는 협박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 그 협박이 정당한 권리실현의 수단이었는지, 방법이 사회통념을 넘었는지가 핵심 판단 요소다.
성범죄 피해자의 합의금 요구가 원칙적으로 정당한 권리행사인 이유
성범죄 피해자는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 규정에 따라 가해자를 상대로 치료비, 위자료 등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집니다. 형사절차와 민사절차는 원래 별개로 진행되지만, 실무에서는 형사합의라는 이름으로 이 손해배상금을 형사 처벌 단계에서 앞당겨 지급받는 관행이 자리 잡아 있습니다. 고소 역시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적법한 권리행사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합의하지 않으면 고소를 유지하겠다", "합의금을 주면 고소를 취하하거나 처벌불원 의사를 밝히겠다"는 취지의 언급 자체는, 실제로 주장할 만한 피해 사실이 존재하는 한 원칙적으로 이 두 권리를 실현하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평가됩니다.
대법원도 같은 취지입니다. 대법원 1996. 3. 22. 선고 95도2801 판결은 정당한 권리가 있는 경우라도 그 권리행사를 빙자하여 사회통념상 용인되기 어려운 정도를 넘는 협박을 수단으로 재물의 교부나 재산상 이익을 받으려 했다면 공갈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는데, 이를 뒤집어 보면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 요구는 공갈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사기관도 합의금 요구 정황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곧바로 공갈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실제 피해 사실의 존부와 요구가 이루어진 방식을 함께 살펴 판단합니다.
성범죄 피해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은 민법 제750조에 근거한 정당한 권리다.
형사고소는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적법한 절차적 권리다.
합의금 요구는 이 두 권리를 실현하는 통상적인 수단일 뿐, 그 자체가 위법한 행위는 아니다.
문제되는 것은 요구 행위 자체가 아니라 주장의 진실성과 방법의 상당성이다.
판단 기준 — 언제 정당한 권리행사가 공갈로 바뀌는가
대법원 1995. 3. 10. 선고 94도2422 판결은 어떤 행위가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정도나 범위를 넘는 것인지는 그 행위의 주관적 측면(추구된 목적)과 객관적 측면(선택된 수단)을 전체적으로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대법원 2017. 7. 11. 선고 2015도18708 판결 역시, 해악의 고지가 정당한 권리실현의 수단으로 사용된 경우라 하더라도 그 수단·방법이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정도나 범위를 넘는다면 공갈죄의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법리를 재확인했습니다.
이 기준을 성범죄 합의금 사건에 대입하면 법원이 실제로 살피는 요소가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주장하는 피해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요구 금액이 피해 정도에 비추어 현저히 과도한지, 고소·폭로 등을 반복적이고 집요하게 무기로 삼아 겁을 주었는지, 협상이나 반박의 여지를 봉쇄한 채 일방적인 기한과 액수를 통첩했는지가 대표적입니다. 예를 들어 실제 강제추행 피해자가 치료비와 위자료 상당액을 합리적으로 산정해 합의금을 요구했다면 이는 정당한 권리행사로 평가되기 쉽습니다. 반면 피해 사실이 다소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빌미로 억대의 금액을 반복해서 요구하며 응하지 않으면 인터넷에 신상을 폭로하겠다고 예고했다면, 사회통념을 넘어섰다고 평가될 여지가 커집니다.
사회통념상 허용 범위를 넘었는지는 협박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주장한 피해의 진실성과 요구 금액·방식의 상당성을 함께 봐야 판단할 수 있다.
불송치가 뜻하는 것 — 혐의없음과 공갈죄 성립은 별개의 문제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은 혐의없음, 죄가안됨, 공소권없음, 각하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 형사소송법 제245조의5에 따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립니다. 이 결정은 경찰 단계에서 '이 사건에서 성범죄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또는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는 의미일 뿐, '애초 고소인이 거짓말을 하며 돈을 뜯어내려 했다'는 사실까지 확정하는 판단이 아닙니다.
혐의없음 안에도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 실제로 있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증거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증거불충분, 사실관계 자체는 있으나 위법성이나 책임이 조각되는 죄가안됨, 처음부터 서로 다른 사실을 오인해 신고한 경우 등으로 결이 다릅니다. 공갈죄가 성립하려면 검사가 별도로 (1) 애초 주장한 피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소인이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 (2) 그런데도 재산상 이익을 얻기 위해 허위로 상대방을 겁준 사실을 입증해야 합니다. 불송치라는 결과 하나만으로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자동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공갈죄로 전환되는 전형적 패턴 — 실제 문제되는 경우
그렇다고 성범죄 합의금 요구가 항상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실무에서 실제로 공갈죄가 문제되어 처벌까지 이어지는 사례들은 대체로 아래와 같은 패턴을 보입니다. 피해 사실의 존재 여부와 요구 방식이 동시에 사회통념을 벗어난 경우들입니다.
애초 성범죄 피해 자체가 존재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이를 꾸며내 합의금을 요구한 경우.
실제로는 경미한 접촉에 불과했던 사안을 크게 과장해 억대의 금액을 통첩하며, 응하지 않으면 신상 정보나 사건 경위를 인터넷·SNS에 유포하겠다고 예고한 경우.
이미 형사합의가 끝나 사건이 종결되었는데도 같은 사안을 근거로 추가 금품을 또다시 요구한 경우.
정해진 기한 내 입금하지 않으면 가족이나 직장에 알리겠다는 식으로, 피해 사실과 무관한 별도의 해악을 새로 고지한 경우.
이 유형들의 공통점은 요구의 진실성이나 방법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가 사회통념의 경계를 넘어선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 피해가 없었는데도 있다고 주장한 경우는 애초 권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논의의 여지가 적고, 피해는 있었지만 협상 여지를 봉쇄한 채 과도한 금액과 별개의 해악을 결합한 경우는 수단의 상당성에서 문제됩니다. 반면 앞서 살펴본 사례들처럼 실제 피해에 상응하는 금액을 근거를 갖춰 요구한 경우는 이 패턴들과는 뚜렷이 구별됩니다.
무고죄와의 관계 — 불송치가 자동으로 무고를 의미하지 않는 이유
형법 제156조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게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합니다. 무고죄가 성립하려면 신고 내용이 객관적 진실에 반할 뿐 아니라, 신고자 스스로 그 허위성을 인식하면서도 신고했다는 고의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단 1퍼센트라도 신고자 내심에 자신이 주장한 사실이 진실이라는 확신이 남아 있었다면 무고의 고의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실무의 일반적인 설명이고, 단순히 증거가 부족해 혐의없음이나 불송치로 끝난 경우는 그 자체로 무고의 고의를 인정하는 근거가 되기 어렵습니다.
신고 사실의 일부에 과장이나 세부적인 오류가 섞여 있더라도, 그 허위 부분이 범죄 성립 여부에 영향을 주는 핵심 부분이 아니라 단순한 과장에 그친다면 무고죄로 보지 않는 것이 판례의 태도입니다. 따라서 "고소가 불송치로 끝났으니 애초 고소 자체가 거짓이었고, 그 거짓 고소를 무기로 돈을 받아냈으니 공갈이다"라는 도식은 무고죄 성립 여부와 공갈죄 성립 여부라는 두 단계의 판단을 모두 건너뛴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두 죄는 성립요건과 입증책임의 대상이 서로 다르고, 어느 하나가 자동으로 다른 하나를 성립시키지 않습니다.
불송치는 형사처벌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경찰 단계의 결론일 뿐이다 — 그 자체로 무고의 고의나 공갈의 고의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실제 상황에서 확인해야 할 것들
합의금을 요구받은 입장이라면, 요구의 근거가 된 피해 사실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는지, 최초 요구 시점부터 이후 협상 과정까지의 기록(문자메시지·통화녹음 등)이 남아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불송치 결정문을 받았다고 곧바로 맞고소부터 진행하기보다는, 결정 이유서에 적힌 혐의없음의 구체적 근거가 증거불충분인지 죄가안됨인지를 먼저 살펴보는 편이 이후 대응 방향을 정하는 데 유리합니다. 합의금을 요구하는 입장이라면 반대로 요구 금액의 산정 근거(치료비 영수증, 진료기록, 상담기록 등)를 남겨두고, 일방적인 기한을 정해 통첩하기보다 대리인을 통한 협상 형식을 취하는 편이 사회통념 범위 내의 권리행사로 인정받기 쉽습니다.
양측 모두 고려해야 할 공통 사항도 있습니다. 형사 절차의 결과(송치·불송치, 기소·불기소)와 별개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은 민법 제766조에 따라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10년이라는 별도의 소멸시효 안에서 독립적으로 존속합니다. 즉 형사 사건이 불송치로 끝났다고 해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자체가 곧바로 봉쇄되는 것은 아니며, 이 점이 앞서 살펴본 '정당한 권리행사' 논리의 배경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고소가 불송치로 끝나면 상대방을 공갈죄로 고소할 수 있나요?
A. 불송치 결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애초 합의금 요구 당시 상대방이 피해 사실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허위로 겁을 주었다는 점을 별도로 입증해야 공갈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불송치 이유서에 적힌 근거가 증거불충분인지 죄가안됨인지부터 먼저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Q. 실제 피해를 입었는데 합의금을 요구했다가 공갈로 몰릴까 걱정됩니다.
A. 실제 피해에 상응하는 금액을 합리적 근거를 갖춰 요구하고, 협상 여지를 열어둔 채 진행했다면 원칙적으로 정당한 권리행사로 평가됩니다. 다만 금액이 현저히 과도하거나 폭로 등 별개의 해악을 결합해 통첩하는 방식은 사회통념을 넘는 것으로 평가될 위험이 있습니다.
Q. 합의금 요구 문자만으로도 공갈미수가 될 수 있나요?
A. 문자 한 통으로 바로 공갈미수가 되는 것은 아니고, 그 내용이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권리행사의 범위를 넘는 협박에 해당하는지를 전체적으로 봐야 합니다. 다만 실제로 재산 처분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협박의 정도가 지나치다면 공갈미수 성립 여지는 남습니다.
Q. 불송치되면 무고죄로도 처벌받게 되나요?
A. 아닙니다. 무고죄는 신고자가 허위성을 인식하면서도 신고했다는 고의가 별도로 입증되어야 성립하고, 단순히 증거 부족으로 혐의없음·불송치가 된 경우는 그 자체로 무고의 고의를 인정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실무의 일반적인 설명입니다.
Q. 형사합의가 끝난 뒤에도 민사상 손해배상을 또 청구할 수 있나요?
A. 형사합의서에 손해배상 청구를 포기하거나 합의금이 손해배상 전부를 포함한다는 취지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면, 별도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가 곧바로 봉쇄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합의서 문구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어 합의서 작성 단계에서부터 문구를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맺음말
성범죄 합의금 요구는 협박의 외형을 갖췄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이후 고소가 불송치로 끝났다는 결과만으로 곧바로 공갈죄가 되지 않습니다. 법원과 수사기관은 요구 당시 주장된 피해의 진실성, 요구 금액과 방식의 상당성, 무고의 고의 유무를 각각 별도의 잣대로 검토합니다. 반대로 실제 피해가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과도한 금액과 별개의 해악을 결합해 일방적으로 통첩했다면, 그 지점에서는 정당한 권리행사의 경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이 문제는 협박 여부라는 표면적인 사실이 아니라, 피해의 실재성과 요구 방식의 상당성이라는 두 축으로 판단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수원지검 관할 사건을 포함해 이런 사안은 형사·민사 양쪽 법리가 겹쳐 있어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니,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두고 미리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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