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주장도 방치하면 회사 책임이 됩니다
직원들이 지켜보는 창구 앞에서 한 고객이 특정 직원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내 현금을 가져갔다"고 소리칩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같은 주장이 반복됩니다. 회사가 몇 차례나 사실관계를 확인했지만 횡령을 뒷받침할 자료는 나오지 않았는데도, 고객은 형사고소까지 예고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인사담당자는 무엇부터 확인해야 할까요.
먼저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고객의 주장이 몇 년째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는 횡령의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사안에서 회사가 실제로 지는 법적 위험은 고객을 어떻게 상대하느냐가 아니라, 그 직원을 제대로 보호했는지에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한 회사의 조치 의무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제2항은 업무와 관련하여 고객 등 제3자의 폭언등으로 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 사업주에게 업무의 일시적 중단이나 전환 등 필요한 조치 의무를 부과합니다. 이 조치는 고객응대업무 종사자에 한정되지 않고 근로자 일반에 적용됩니다. 같은 조 제3항은 근로자가 이 조치를 요구할 수 있고, 회사는 그 요구를 이유로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다고 정합니다. 시행령이 정한 조치에는 업무 전환, 휴게시간 연장, 치료·상담 지원과 함께 고소, 고발 또는 손해배상 청구 등에 필요한 지원이 포함됩니다. 이는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항목이 아니라, 건강장해 발생이나 그 우려가 인정되면 이행해야 하는 조치입니다. 미조치 시 1천만원 이하 과태료(제175조 제4항 제3호), 요구를 이유로 한 불리한 처우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제170조 제1호) 대상입니다.
한편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괴롭힘의 행위자는 사용자나 근로자이어야 하고, 이 사안처럼 고객 등 제3자에 의한 것은 산업안전보건법이 별도로 규율합니다. 다만 해당 직원이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고객응대근로자에 해당한다면, 제41조 제1항에 따라 문구 게시나 응대 매뉴얼 마련·교육 실시 같은 사전 예방조치도 별도로 이행해야 합니다.
조치 이행을 미룰수록 위험은 세 층위로 커집니다. 과태료 등 행정 제재에 그치지 않고, 법원은 제41조 위반 여부를 민사소송에서 회사의 안전배려의무 위반 판단 기준으로 인용하기도 하며, 건강장해가 방치되어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으로 이어지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될 여지도 있습니다. 보호조치가 완비되지 않은 근로환경 자체가 근무 부담을 가중시킨 요소로 평가될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도 있습니다. 금융·보험업 등 일부 업종은 보험업법이나 신용협동조합법에서 고객으로부터의 분리·업무담당자 교체를 포함한 별도 보호조치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해당 업종이라면 그 조문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명예훼손과 모욕, 조사 전에 구별해야 합니다
직원 해명만으로 사안을 종결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법원은 혐의사실 확인 절차에서 방법은 재량이지만 확인 절차 자체는 거쳐야 한다고 보았고, 사용자가 관련자 진술과 객관적 증거를 확보해 처분했다면 이후 결론이 달라져도 그 자체로 책임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습니다.
동료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 직원이 내 현금을 가져갔다"고 지목한 발언은 구체적 사실의 적시이므로 명예훼손 문제로 검토해야 하고, 이와 별도로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욕설이 있었다면 모욕 문제로 따로 다뤄야 합니다. 두 죄는 성립 요건이 다릅니다. 특히 고객이 그 사실을 진심으로 믿고 있었는지, 알면서도 지어낸 것인지가 갈림길입니다. 인식이 없었다면 명예훼손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가벼운 유형으로 남고, 허위성을 인식하고도 적시했다면 더 무거운 유형이 문제되며 이는 뒤에서 볼 무고죄 판단과도 연결됩니다. 그래서 회사 조사 단계에서 고객이 그런 주장을 하게 된 경위, 예컨대 장부상 오류나 금액 착오 가능성까지 확인해 둘 실무적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공개적 발언이라는 사실만으로 명예훼손이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파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그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까지 엄격하게 증명되어야 하고, 자신의 피해를 주장하며 사실관계 규명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라면 그 인정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도 있습니다. 발언이 이루어진 자리에 누가 있었는지, 이후 실제로 소문이 퍼졌는지까지 기록해 두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회사가 조사 결과를 사내에 공지할 때는 진실한 사실을 전제로 한 공익성 항변이 가능한 경우와, 허위성을 인식하고 적시해 그 항변 자체가 봉쇄되는 경우가 다르다는 점도 유의해야 합니다.
직원이 직접 반박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법원은 허위사실로 고소당한 데 대응하기 위한 명예훼손·모욕 행위라도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대응은 회사 절차를 통해야 합니다.
형사고소가 진행되어 혐의없음이나 불송치로 종결되더라도, 그 결론이 곧 상대방의 무고죄 성립이나 손해배상책임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무고죄는 신고자에게 허위성에 대한 인식이 별도로 인정되어야 하고, 혐의없음 결정 시에는 검사가 직권으로 무고 혐의 유무를 판단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성급하게 맞고소나 손해배상청구부터 진행하는 것은 오히려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지적된 사례도 있어, 대응 시점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발언 정황과 조치 이행, 문서로 남기세요
직원의 건강장해 발생 또는 그 우려: 진단서·상담 기록 등으로 확인
조치 요구 시점: 직원이 제41조 제3항에 따라 조치를 요구한 사실과 그 시점 기록
이행 조치 특정: 시행령 제41조 각 호 중 어느 조치를 검토·이행했는지 문서화
예방조치 여부: 고객응대업무에 해당하는 경우 제41조 제1항 예방조치(문구 게시·매뉴얼·교육) 이행 여부
발언 정황 기록: 발언의 일시·장소·동석자, 이후 사내 전파 여부
주장 경위 확인: 고객이 그런 주장을 하게 된 배경(장부상 오류·금액 착오 등)
시효·처벌불원 관리: 처벌불원 의사표시 여부와 그 시점, 민사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형사 결론 확정 시점과 별개로 진행될 수 있어 최초 발언 시점부터 별도 관리 필요
리스크 세 층위,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이 사안은 행정 제재, 민사상 안전배려의무 위반, 산재 인정 가능성까지 층위가 다른 리스크가 겹쳐 있어 보호조치의 범위와 대응 시점을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조치 설계 단계에서 법률 전문가의 검토를 받으시면 직원 보호 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리스크와 성급한 대응으로 인한 리스크를 함께 차단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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