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준강간·준강제추행 사건에서 ‘항거불능’이 인정되는 범위가 예전보다 넓어졌다는 이야기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기사를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제가 상담한 분들 중에는 “그때 소리치거나 도망가지 않았으니 문제없을 것이다”, “싫다는 말을 분명히 하지 않았는데 무슨 죄가 되겠느냐”는 생각으로 안심하고 있다가, 수사 단계에서 전혀 다른 국면을 맞닥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항거불능은 몸싸움이나 명시적 거부가 있어야만 인정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근 대법원은 항거불능의 판단 범위를 사건 당시의 순간적 저항 여부가 아니라 관계의 구조와 누적된 영향까지 살펴 판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친족관계나 지배·종속관계가 있는 사건에서 이 흐름이 뚜렷합니다.
아래에서는 항거불능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준이 완화됐다’는 말이 어느 부분에서 사실이고 어디까지는 과장인지, 그리고 의심을 받거나 피해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는지 최근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항거불능은 물리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심신상실 이외의 원인으로 심리적·물리적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면 항거불능으로 인정됩니다.
형법 제299조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제297조, 제297조의2 및 제298조의 예에 의한다”고 정합니다. 심신상실은 정신기능의 장애로 성적 행위에 대한 정상적 판단능력이 없는 상태를 말하고, 항거불능은 그 이외의 원인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말합니다.
실무에서 가장 많이 오해하는 지점은 항거불능을 “몸이 묶였거나 완전히 의식을 잃은 경우”로만 좁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피해자의 나이와 경험, 가해자와의 관계, 강압이 이루어진 기간과 정도, 신체적·정신적 손상, 실제로 저항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판단합니다.
즉 피해자가 그 순간 소리를 지르거나 몸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항거불능이 부정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겉으로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유죄가 인정되는 것도 아니며, 위 요소들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정황이 함께 확인되어야 합니다.
항거불능은 물리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한정되지 않고, 심리적으로 반항이 현저히 곤란했는지까지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2. 최근 대법원은 친족관계 사건에서 심리적 항거불능의 인정 범위를 넓혔습니다
장기간 반복된 지배와 통제가 누적됐다면, 그 순간 저항하지 않았어도 심리적 항거불능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기준이 완화됐다”는 말이 나온 데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대법원 2025. 5. 1. 선고 2021도11938 판결은 친족관계에 의한 준강간 사건에서, 특별한 친족관계나 정신적·경제적 지배·예속관계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가해자가 상당한 기간 계속적으로 폭력·성적 학대·감시와 통제를 가한 경우, 그 점진적·누적적 영향으로 피해자가 학습된 무기력이나 공포 상태에 이르렀다면 그 자체로 심리적 항거불능 또는 현저한 항거곤란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항거불능의 상태라 함은 형법 제297조, 제297조의2, 제298조와의 균형상 심신상실 이외의 원인 때문에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의미한다(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전원합의체 판결).
이 정의 자체는 위 2025년 판결에서도 그대로 이어지지만, 적용 범위가 달라졌습니다. 종전에는 사건 발생 당시 그 순간의 폭행·협박 정도나 피해자의 즉각적 반응을 중심으로 항거불능을 판단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2021도11938 판결은 친족관계처럼 특별한 신뢰·의존 관계가 전제된 사건에서는, 사건 당일의 폭행·협박 강도가 아니라 그 관계가 오랜 기간 쌓아온 지배와 통제의 구조 자체를 저항 불능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완화”라는 말이 가리키는 실체는, 항거불능의 원인을 사건 당일의 폭행·협박에서 관계의 누적된 지배·종속 구조까지로 넓힌 것입니다.
3. 다만 친족관계가 아닌 사건까지 문턱이 낮아진 것은 아닙니다
블랙아웃과 패싱아웃을 구별하라는 판례는 여전히 유효하고, 항거불능 인정에는 촘촘한 정황증거가 필요합니다.
위 2021도11938 판결의 취지를 “이제 저항 여부와 무관하게 항거불능이 쉽게 인정된다”는 식으로 확대해석하면 안 됩니다. 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전원합의체 판결은 음주 후 성범죄 사건에서, 기억의 공백만 있는 ‘알코올 블랙아웃’과 의식 자체를 잃은 ‘패싱아웃’을 구분해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음주량과 속도, 경과한 시간, 피해자의 평소 주량과 기억장애 경험, 사건 당시 CCTV나 목격자 진술, 사건 전후 피고인과 피해자의 언동 등을 면밀히 살펴 심신상실·항거불능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판결은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순간 아무 말도 못 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항거불능이 인정되지는 않으며, 여전히 구체적 정황을 통한 면밀한 심리가 필요합니다.
결국 2021도11938 판결이 넓힌 것은 친족관계·지배종속관계처럼 특별한 신뢰 구조가 존재하는 사건에서 “누적된 영향”을 항거불능의 원인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부분이고, 관계의 특성과 무관한 일반 사건에서 저항 여부를 판단하는 기본 틀 자체가 낮아진 것은 아닙니다.
항거불능 인정 범위가 넓어진 것은 친족관계 등 특별한 관계 구조가 있는 사건에 한정된 진전이며, 모든 사건에서 증명의 문턱이 낮아진 것은 아닙니다.
4. 항거불능이 인정되면 준강간·준강제추행으로 형이 무겁게 적용됩니다
친족관계가 겹치면 성폭력처벌법이 적용돼 형량 하한이 크게 올라갑니다.
형법 제299조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한 간음·추행을 강간(제297조)·유사강간(제297조의2)·강제추행(제298조)의 예에 따라 처벌하도록 정합니다. 그 결과 준강간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준유사강간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 준강제추행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 친족관계가 겹치면 형이 한층 무거워집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5조는 4촌 이내의 혈족·인척(사실상의 관계 포함)인 친족이 준강간을 저지른 경우 7년 이상의 유기징역, 준강제추행을 저지른 경우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항거불능이 인정되는지는 유·무죄뿐 아니라 적용되는 형량 구간 자체를 가르는 분기점입니다. 반대로 그 관계가 실제로 지배·종속의 구조였는지, 누적된 영향이 실제로 저항을 무력화할 정도였는지는 증거로 다퉈볼 여지가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5. 조사부터 재판까지, 항거불능 여부는 이렇게 다뤄집니다
정황증거를 얼마나 정리해 두는지가 항거불능 인정 여부를 좌우합니다.
준강간·준강제추행 의심 사건은 통상 ①관할 경찰서(수원 지역이라면 수원남부·수원중부경찰서 등) 고소장 접수·인지 → ②피해자·피의자 조사 → ③검찰(수원 관내 사건은 수원지방검찰청) 송치 및 처분 → ④기소 시 법원(수원지방법원) 재판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항거불능 인정 여부가 쟁점인 사건은 진술의 신빙성과 정황증거 비중이 커서 수사 초기 대응이 특히 중요합니다.
피해를 주장하는 쪽이든, 조사 대상이 된 쪽이든, 아래 순서로 자료부터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건 당일의 정황(대화 기록, CCTV, 목격자, 술자리 시간과 음주량 등)을 시간순으로 정리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형성됐는지(친족관계 여부, 경제적·정신적 의존관계 여부)와 그 기간을 확인합니다.
사건 전후의 언행과 대응(신고 시점, 주변에 알린 시점, 진술의 일관성)을 함께 정리해 변호사와 상담합니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준강간·준강제추행 사건에 전문성 있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다면, 항거불능 인정 여부를 좌우하는 구체적 정황을 놓치지 않고 대응 전략을 세울 수 있습니다.
마치며
항거불능이 문제되는 사건은 “그때 왜 가만히 있었느냐”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피해를 주장하는 쪽이든 조사 대상이 된 쪽이든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를 주장하는 쪽 입장에서는, 그 순간 저항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곧 동의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관계의 구조와 그동안의 정황을 구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대로 조사 대상이 된 쪽 입장에서도, “저항이 없었으니 문제없다”는 판단은 최근 판례 흐름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관계의 성격과 당시 상황이 어떻게 평가될지에 따라 결론이 크게 달라지므로, 섣부른 판단으로 대응 시점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저는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를 주장하는 쪽과 조사 대상이 된 쪽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항거불능이라는 하나의 개념을 두고 사실관계 정리 방식에 따라 결론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완화됐다’는 말만 믿고 안심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낙담하기 전에, 사건의 구체적 사정을 먼저 짚어봐야 합니다.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지점에서,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항거불능 기준이 완화됐다는 게 사실인가요?
A. 부분적으로 사실입니다. 대법원 2025. 5. 1. 선고 2021도11938 판결은 친족관계나 지배·종속관계처럼 특별한 관계 구조가 있는 사건에서 장기간 누적된 영향을 항거불능의 원인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이는 이런 관계 구조가 있는 사건에 한정된 것이고, 모든 사건의 증명 기준이 낮아진 것은 아닙니다.
Q. 저항하지 않았으면 동의한 것으로 보나요?
A. 아닙니다. 항거불능은 저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를 포함하는 개념이므로, 그 순간 저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동의가 인정되지는 않습니다. 관계의 성격, 강압의 기간과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판단합니다.
Q. 친족관계가 아닌 연인 사이나 직장 상하관계에서도 심리적 항거불능이 인정될 수 있나요?
A. 2021도11938 판결은 친족관계 사건에 관한 것이지만, ‘지배·종속관계의 누적적 영향’이라는 논리는 정신적·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다른 관계에서도 참고될 수 있습니다. 다만 친족관계 이외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명시적 판단은 아직 확립되지 않아, 구체적 사안별로 다퉈볼 부분입니다.
Q.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도 항거불능으로 인정되나요?
A.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사정, 즉 알코올 블랙아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대법원 2018도9781 전원합의체 판결은 블랙아웃과 의식 자체를 잃은 패싱아웃을 구별해야 한다고 밝혔고, 음주량·경과 시간·사건 전후 언동 등 정황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Q. 항거불능이 인정되면 무조건 실형이 선고되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준강간·준강제추행으로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형량은 폭행·협박의 정도, 관계, 친족관계 가중 여부 등에 따라 구간이 달라지고, 그 안에서 구체적 양형은 별도로 심리됩니다.
Q. 준강간과 일반 강간은 어떻게 다른가요?
A. 강간(형법 제297조)은 폭행·협박으로 반항을 제압하는 경우이고, 준강간(형법 제299조)은 이미 존재하는 심신상실·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는 경우입니다. 행위 당시 폭행·협박이 없어도 성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입증 방식이 다릅니다.
Q. 조사 통보를 받았는데 변호사는 언제 선임해야 하나요?
A. 첫 조사 전이 가장 좋습니다. 항거불능 여부가 쟁점인 사건은 초기 진술과 정황증거 정리 방식이 사건 전체의 방향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