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투약 혐의로 소변과 모발을 채취당한 뒤, 감정 결과에서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유죄를 확정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채취된 시료가 경찰서에서 감정기관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봉인 없이, 또는 봉인 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태로 반출됐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감정 결과 자체는 존재하더라도, 그 시료가 정말 피고인의 것이 맞는지, 채취부터 분석까지 조작이나 훼손 없이 그대로 전달됐는지를 담보할 수 없다면 법원은 그 감정서를 유죄의 근거로 삼기 어렵다고 봅니다. 이 글에서는 감정 결과의 증거능력과 증명력이 어떻게 다른지, 봉인 누락이 구체적으로 어떤 법적 함정을 만드는지, 그리고 실무에서 이를 어떻게 다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마약 사건에서 감정 결과가 갖는 위치 — 증거능력과 증명력은 다른 문제다
소변·모발 감정서는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3항이 정한 "감정의 경과와 결과를 기재한 서류"에 해당합니다. 이 조항에 따라 감정서가 증거로 쓰이려면 작성자인 감정인이 공판준비나 공판기일에서 진술해 그 성립의 진정함을 증명해야 합니다. 실무에서는 이 요건이 어렵지 않게 충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감정서가 일단 증거로 채택되면 그 결과가 곧 유죄를 의미하는 것처럼 취급되곤 합니다. 그러나 증거로 채택됐다는 것과 그 증거가 유죄를 인정할 만큼 확실한 증명력을 갖췄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증명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자유심증주의, 즉 법관의 자유판단에 맡겨져 있습니다. 다만 이 자유판단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같은 법 제307조 제2항은 범죄사실의 인정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마약 투약 사건은 목격자나 피해자가 없고 자백도 없는 채로 오직 소변·모발 감정 결과만으로 기소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 감정서 하나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력을 갖췄는지가 사건의 승패를 가르는 지점이 됩니다.
감정서가 증거로 채택됐다는 사실과, 그 감정 결과가 유죄를 인정할 만큼 확실한 증명력을 갖췄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문제다.
대법원이 요구하는 것 — 시료의 동일성과 무결성이 담보돼야 증명력이 인정된다
대법원 2018. 2. 8. 선고 2017도14222 판결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대법원은 과학적 증거방법이 사실인정에 상당한 정도로 구속력을 갖기 위해서는 시료의 채취부터 보관, 분석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시료의 동일성이 인정되고 인위적인 조작·훼손·첨가가 없었다는 것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단순히 감정기관의 회보서에 양성 반응이 적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반응이 나온 시료가 처음부터 끝까지 피고인의 것 그대로였다는 점까지 확인돼야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이 사건은 경찰이 피고인 부재중에 소변과 모발을 봉인하지 않은 채 감정기관으로 반출했고, 그 이송 과정에서 조작·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나 인계 경과가 별도로 기록되지 않았으며, DNA 대조와 같은 동일성 입증자료도 제출되지 않은 사안이었습니다. 원심은 이 감정 결과를 근거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런 사정만으로는 감정 결과의 증명력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서울서부지방법원 항소부로 환송했습니다.
이 판결 이후 마약 사건 실무에서는 감정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할 수 없고, 그 감정서가 나오기까지의 시료 관리 과정 전체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법리가 반복적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과학적 증거방법이 구속력을 가지려면 시료 채취·보관·분석의 전 과정에서 동일성이 인정되고 인위적 조작·훼손·첨가가 없었음이 담보돼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법리다.
봉인 없이 반출됐다면 — 무엇이 무너지는가
봉인은 시료가 채취된 순간부터 감정이 끝날 때까지 외부 개입 없이 동일한 상태로 유지됐음을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봉인지에 채취 일시·채취자·피채취자의 서명이 남고, 봉인이 훼손되지 않은 채 감정기관에 도착해야 그 시료가 처음 채취된 그 시료임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봉인 없이 반출됐다면 이 연결고리가 처음부터 끊긴 셈이어서, 이송 도중 시료가 뒤바뀌거나 오염됐을 가능성을 물리적으로 배제할 방법이 사라집니다.
특히 경찰서 한 곳에서 여러 명의 마약 투약 의심자를 동시에 조사하는 경우, 봉인 없는 용기에 이름표만 붙여 보관하다가 라벨이 떨어지거나 뒤섞이는 사고가 실제로 문제 된 사례들이 보고돼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감정 결과지에 적힌 이름과 실제 채취된 시료가 정말 일치하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봉인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곧바로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감정 결과가 "합리적 의심 없는 정도"의 증명력을 갖췄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집니다.
시료 뒤바뀜 — 여러 피의자의 시료가 동시에 이송될 때 라벨링·용기 혼동 가능성.
오염·훼손 — 봉인되지 않은 채 이동·보관되는 동안 외부 물질 유입 가능성.
인계 불명확 — 채취자에서 감정인에게 넘어가는 경로와 시점이 문서로 남지 않음.
보관 기간 중 변질 — 장시간 봉인 없이 방치될 경우 성분 변화 가능성.
동일성 증명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 입증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
형사소송법 제275조의2는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합니다. 이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감정 결과가 피고인의 시료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 그 과정에서 조작·오염이 없었다는 점을 입증할 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피고인이 스스로 시료가 바뀌지 않았음을 증명할 의무는 없습니다. 검사가 이 입증을 다하지 못하면 법원으로서는 제307조 제2항이 요구하는 합리적 의심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어 감정 결과만으로는 유죄를 선고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봉인이 없었다고 해서 검사가 동일성 입증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봉인은 동일성을 담보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어서, 검사 측이 채취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 인수인계 대장에 남은 연속 서명, 감정물 접수 시각과 이송 시각을 대조한 기록, 채취자와 이송자·수령자의 법정 진술 등을 통해서도 동일성을 보강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대체 자료가 충분히 제출되면 봉인이 없었더라도 법원이 증명력을 인정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결국 쟁점은 '봉인이 있었는가' 자체가 아니라 '동일성과 무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자료가 있는가'입니다.
시료의 동일성·무결성을 입증할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봉인은 그 입증 방법 중 하나일 뿐이며, 다른 방법으로도 보강될 수 있다.
법원이 실제로 보는 판단 기준 — 어떤 자료가 있어야 유죄로 가는가
법원이 감정 결과의 증명력을 판단할 때 살펴보는 요소는 대체로 정형화돼 있습니다. 채취 당시 봉인 여부와 봉인지 서명, 채취부터 감정기관 접수까지의 경과 시간과 그 사이의 보관 장소, 인계·인수 과정이 문서나 대장으로 남아 있는지, 그리고 필요한 경우 DNA 대조와 같은 별도의 동일성 확인 절차를 거쳤는지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자료가 촘촘하게 남아 있을수록 감정 결과의 증명력은 높아지고, 반대로 이송 경과가 통째로 비어 있으면 아무리 감정 수치가 명확해도 증명력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더해 감정 결과 외에 다른 보강증거가 있는지도 함께 고려됩니다. 피고인의 투약 사실을 뒷받침하는 진술, 함께 투약한 사람의 증언, 구매·투약 정황을 보여주는 통신 기록 등이 있다면 감정서의 증명력이 다소 흔들리더라도 다른 증거와 결합해 유죄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감정 결과가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사건에서는 시료 관리 절차의 흠결 하나가 사건 전체의 결론을 바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채취 당시 봉인 여부와 봉인지 서명 유무.
채취부터 감정기관 접수까지의 경과 시간과 보관 장소.
인계·인수 과정을 뒷받침하는 문서·대장 존재 여부.
DNA 대조 등 별도 동일성 확인 절차 시행 여부.
감정 결과 외에 투약 사실을 뒷받침하는 다른 보강증거 존재 여부.
봉인 누락이 실제 사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 구체적 적용 예시
가령 경찰이 마약 투약 의심자를 임의동행해 채뇨·채모를 하고, 그날 바로 감정을 의뢰하지 않고 며칠 뒤 다른 사건의 시료들과 함께 묶어 감정기관으로 보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별 용기에 봉인지를 붙이지 않고 이름만 적은 메모지를 붙여뒀다면, 변호인은 수사기록에서 압수조서와 압수목록, 감정의뢰회보서의 접수란을 대조해 봉인 여부와 이송 경과가 기재돼 있는지부터 확인하게 됩니다. 기록에 봉인 관련 기재가 전혀 없거나, 채취 시각과 접수 시각 사이의 공백이 설명되지 않는다면 이는 2017도14222 판결의 사실관계와 유사한 구조를 갖게 됩니다.
이런 사건에서 변호인은 감정 결과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그 결과가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2항이 요구하는 증명력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을 공략합니다. 담당 경찰관을 증인으로 신청해 봉인 절차를 실제로 거쳤는지, 이송 중 시료를 누가 보관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신문하고, 답변이 기록과 어긋나거나 기억이 불명확하다면 그 자체가 동일성 입증 실패의 근거가 됩니다. 다만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투약 사실을 인정하는 진술을 이미 했거나 공범의 진술, 구매 관련 통신 기록이 함께 있다면 감정 결과의 흠결만으로 무죄가 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실무에서 변호인이 확인하는 것 — 압수·감정 기록을 뜯어보는 법
사건 초기에 수사기록을 열람·등사할 수 있게 되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서류는 압수조서와 압수목록, 그리고 감정의뢰회보서입니다. 압수조서에는 채취 일시와 장소, 참여자, 봉인 여부가 기재되는 것이 원칙이고, 감정의뢰회보서에는 감정기관이 시료를 접수한 시각과 상태가 기록됩니다. 두 서류 사이에 시간적 공백이 크거나 봉인 상태에 관한 기재가 서로 어긋난다면 그 자체가 다퉈볼 지점입니다.
또한 채취 현장을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이 있는지, 인수인계 대장에 담당자들의 연속 서명이 남아 있는지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이런 자료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검사가 법정에서 동일성을 입증할 방법이 제한적이라는 뜻이고, 반대로 이런 자료가 충분하다면 봉인 누락만으로는 다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절차 흠결을 발견했다면 이를 단순히 변론 요지서에 언급하는 데 그치지 말고, 관련 수사관과 감정인에 대한 증인신문을 통해 기록에 없는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 함께 필요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봉인이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무죄가 확정되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봉인 누락은 감정 결과의 증명력을 약화시키는 사정일 뿐이고, 자백이나 공범 진술, 통신 기록 등 다른 보강증거가 충분하다면 그것들과 결합해 유죄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무죄 여부는 사건 전체 증거를 종합해 판단됩니다.
Q. 소변·모발을 임의제출한 경우에도 같은 법리가 적용되나요?
A. 예. 영장에 의한 압수인지 임의제출인지와 무관하게, 채취 이후 보관·이송 과정에서 동일성과 무결성이 담보됐는지는 별도로 문제 됩니다. 다만 임의제출 자체의 임의성 여부는 이와는 또 다른 쟁점으로, 채취 절차의 적법성 문제와 별개로 함께 검토돼야 합니다.
Q. 봉인지가 없어도 다른 방법으로 동일성을 증명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채취 현장 사진, 인수인계 대장의 연속 서명, DNA 대조 자료 등으로도 동일성과 무결성을 보강할 수 있습니다. 봉인은 이를 입증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Q. 감정서의 증거능력과 증명력 부족은 어떻게 다른가요?
A. 증거능력은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3항에 따라 감정인이 성립의 진정함을 증명하면 통과되는 요건이고, 증명력은 그 증거가 합리적 의심 없이 유죄를 인정할 만큼 확실한지의 문제입니다. 증거로 채택되더라도 증명력이 부족하면 그것만으로 유죄를 선고할 수는 없습니다.
Q. 변호인은 이 문제를 재판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투나요?
A. 압수조서·압수목록·감정의뢰회보서를 대조해 봉인 여부와 이송 경로의 공백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채취·이송을 담당한 수사관과 감정인을 증인으로 신청해 절차상 흠결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다툽니다.
Q. 이 법리는 모발·소변 감정에만 적용되나요?
A. 대법원이 제시한 법리는 '과학적 증거방법' 일반에 관한 것이어서 모발·소변 감정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시료의 동일성과 무결성이 문제 되는 다른 유형의 감정에도 같은 법리가 적용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 실무의 해석입니다.
맺음말
마약 투약 혐의로 감정 결과를 통보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유죄가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료가 채취부터 분석까지 봉인되지 않은 채, 또는 그 이송 과정이 기록되지 않은 채 전달됐다면 그 감정 결과가 과연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력을 갖췄는지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대법원 2017도14222 판결이 보여주듯, 감정서에 양성 반응이 적혀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절차가 얼마나 투명하게 기록됐는지가 재판의 결론을 가를 수 있습니다.
인계동을 비롯해 수원지검 관할에서 마약 사건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면, 감정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압수조서와 감정의뢰 기록부터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절차상 흠결이 있는지는 수사기록을 직접 살펴봐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른 시점에 관련 자료를 검토받아 보시길 권합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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