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폭행, 협박, 성범죄 등 형사사건에서 고소를 준비하는 동안 가해자가 결정적인 증거를 서둘러 없애려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카카오톡 대화방을 나가버리거나, 협박 문자를 삭제하고, CCTV가 설치된 장소를 피하거나, 심지어 함께 있던 지인에게 말을 맞추자고 종용하는 식입니다.
제가 상담한 사건 중에는 가해자 측이 “지금 지워버리면 나중에 확인할 방법이 없다”, “증거만 없으면 결국 내 말과 상대 말 싸움일 뿐이다”라는 생각으로 대화 내용을 삭제하거나 휴대폰을 초기화한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건이 진행되면, 상대방이 이미 캡처해 둔 화면과 통신사에 남은 로그, 디지털 포렌식으로 복원된 삭제 기록이 오히려 불리한 정황증거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법원은 증거가 사라지기 전에 이를 먼저 확보해 두는 형사소송법상 증거보전 제도의 실효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증거가 사라질 우려가 있다는 사정만 구체적으로 소명되면, 고소나 기소 전이라도 판사가 직접 나서 증거를 조사하고 남겨 둘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가해자의 증거인멸 우려가 있을 때 증거보전 신청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누가 신청할 수 있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가해자가 증거를 없앨 우려가 있다면 증거보전 청구의 사유가 됩니다
미리 보전하지 않으면 그 증거를 사용하기 곤란한 사정이 있을 때, 판사에게 증거보전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184조는 검사, 피고인, 피의자 또는 변호인이 미리 증거를 보전하지 않으면 그 증거를 사용하기 곤란한 사정이 있을 때, 제1회 공판기일 전이라도 판사에게 압수, 수색, 검증, 증인신문 또는 감정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1회 공판기일 전’이라는 표현 때문에 재판이 시작된 이후에만 해당하는 제도로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수사가 진행 중인 단계, 즉 고소장을 접수하고 경찰 조사를 받는 시점에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용하기 곤란한 사정’은 증거가 멸실되거나 훼손될 구체적인 위험을 뜻합니다. 가해자가 대화방을 삭제하거나, 통화 녹음파일을 지우거나, CCTV 보관 기간이 곧 만료되는 상황, 목격자가 해외로 출국을 앞둔 경우 등이 대표적입니다. 단순히 ‘혹시 지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제로 지우려 한다는 정황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증거보전이란 장차 공판에 있어서 사용하여야 할 증거가 멸실되거나 또는 그 사용하기 곤란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 당사자의 청구에 의하여 공판전에 미리 그 증거를 수집·보전하여 두는 제도로서, 제1심 제1회 공판기일 전에 한하여 허용된다(대법원 1984. 3. 29.자 84모15 결정).
이 결정이 나온 지 오래됐지만, ‘공판기일 전’이라는 시간적 한계와 증거보전 제도의 취지는 지금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가해자의 증거인멸 시도가 임박했다면, 수사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이 단계에서 바로 움직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가해자가 증거를 없애려 한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있다면, 그 자체가 증거보전 청구의 정당한 사유가 됩니다.
2. 다만 고소인·피해자 본인은 법원에 직접 신청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닙니다
신청권자는 검사, 피고인, 피의자, 변호인으로 한정돼 있어 고소인은 이 목록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실무에서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형사소송법 제184조가 정한 신청권자는 검사, 피고인, 피의자, 변호인뿐이고, 고소인이나 피해자 본인은 이 목록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즉 피해자가 “증거가 사라질 것 같으니 제가 직접 법원에 증거보전을 신청하겠습니다”라고 나서더라도, 법원은 이를 받아줄 근거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피해자가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고소장이나 별도 의견서에 가해자의 증거인멸 정황을 구체적으로 적어 수사기관이 스스로 압수수색이나 증거보전 청구에 나서도록 촉구하는 것입니다. 수사를 맡은 경찰이나 검사가 그 필요성을 인정하면, 신청권자인 검사 명의로 증거보전이 청구됩니다.
성폭력범죄 사건이라면 조금 다른 경로도 있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41조는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 사법경찰관이 피해자가 공판기일에 출석해 증언하기 현저히 곤란한 사정을 소명해 검사에게 증거보전 청구를 요청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특례는 ‘가해자의 증거인멸’이 아니라 ‘피해자의 증언 곤란’을 사유로 하는 제도이므로, 우리가 다루는 상황과는 요건이 다르다는 점은 구분해야 합니다. 19세미만피해자등이라면 이 사정이 당연히 인정된다는 점도 함께 알아 두면 좋습니다.
피해자 본인이 직접 법원에 신청할 수는 없지만, 수사기관을 움직이는 것이 실질적인 대응 방법입니다.
3. 신청이 받아들여지려면 구체적인 소명자료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가해자가 실제로 증거를 없애려 한다는 객관적 정황을 서면으로 소명해야 합니다.
형사소송법 제184조 제3항은 증거보전을 청구할 때 서면으로 그 사유를 소명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소명이란 확신에 이를 정도의 입증까지는 아니더라도, 법관이 ‘그럴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을 만큼의 자료를 갖추는 것을 뜻합니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 자료로는 가해자가 “지워버리겠다”는 취지로 보낸 문자나 통화 녹음, 이미 대화방을 나가거나 일부 게시물을 삭제한 정황을 보여주는 캡처, 함께 있던 지인이나 공동 대화방 참여자의 진술, 사건 이후 계정을 비활성화하거나 휴대폰을 교체한 정황 등이 있습니다. 이런 자료가 쌓일수록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긴급성을 인정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청구가 이유 없다고 판단되면 법원은 이를 기각하는데, 이 경우 형사소송법 제184조 제4항에 따라 3일 이내에 항고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항고 기간이 짧기 때문에, 처음부터 소명자료를 충분히 갖춰 청구하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길입니다.
‘지울 것 같다’는 불안이 아니라, 지우려 한다는 구체적인 정황을 자료로 갖추는 것이 신청의 성패를 가릅니다.
4. 증거보전으로 확보된 자료는 재판에서 그대로 증거능력을 인정받습니다
판사가 작성한 조서는 형사소송법 제311조에 따라 당연히 증거로 쓸 수 있습니다.
증거보전 청구를 받은 판사는 형사소송법 제184조 제2항에 따라 그 처분에 관해 법원 또는 재판장과 동일한 권한을 갖습니다. 압수·수색·검증을 직접 진행하거나 증인을 불러 신문하고, 그 결과를 조서로 남깁니다.
이렇게 작성된 조서는 형사소송법 제311조에 따라 당연히 증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가해자가 원본 대화나 영상을 완전히 삭제해 버리더라도, 증거보전 절차로 이미 확보된 조서와 자료는 그대로 남아 재판에서 쓰입니다.
형사소송법 제185조는 검사·피고인·피의자·변호인에게 이 조서와 증거물을 판사의 허가를 받아 열람·등사할 권리를 인정하고, 같은 조 제2항은 피해자 본인이나 그 법정대리인, 이들로부터 위임받은 배우자·직계친족·형제자매·변호사도 판사에게 열람 또는 등사를 신청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즉 피해자가 증거보전 절차 자체를 시작할 수는 없어도, 이미 진행된 절차의 기록을 확인하고 활용하는 길은 열려 있습니다.
5. 고소부터 재판까지, 증거보전은 이런 절차로 진행됩니다
증거가 사라지기 전, 자료부터 정리하는 것이 사건 전체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가해자의 증거인멸이 우려되는 사건은 보통 ①관할 경찰서(수원 지역이라면 수원남부·수원중부경찰서 등) 고소장 접수 및 증거인멸 우려 소명 → ②경찰의 수사 및 긴급 압수수색 여부 판단 → ③검찰(수원 관내 사건은 수원지방검찰청) 송치 및 필요시 증거보전 청구 → ④기소 시 법원(수원지방법원) 재판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증거인멸 우려가 크다고 판단되면 수사 초기 단계에서 압수수색영장이 먼저 집행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해자가 증거를 지울 것 같다는 불안이 든다면,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아래 순서로 자료부터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해자가 삭제·은폐를 시사하는 발언을 한 문자, 통화 녹음, 대화 캡처가 있는지부터 모아 둡니다.
CCTV 보관 기간, 통신사 로그 보관 기간 등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자료의 기한을 먼저 확인합니다.
고소장이나 의견서에 증거인멸 우려를 구체적으로 적어, 수사기관이 신속히 압수수색이나 증거보전에 나서도록 요청합니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형사사건에서 증거 확보 경험이 많은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다면, 수사기관을 움직이는 것부터 이후 재판에서 증거능력을 다투는 부분까지 한 번에 준비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가해자가 증거를 지울 것 같다는 불안은 막연한 걱정이 아니라, 실제로 사건의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절박한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많이 놀라고 화가 난 상태에서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증거가 사라질까 불안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지금 남아 있는 자료부터 빠짐없이 모아 두는 것이 먼저입니다. 반대로 증거보전 신청을 받는 피의자·피고인 입장에서도, 소명자료가 부실한 신청이라면 충분히 다툴 여지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절차를 정확히 아는 것이 결과를 바꿉니다.
저는 증거인멸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증거를 확보하려는 쪽과, 반대로 무리한 증거보전 신청에 대응해야 하는 쪽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초기에 어떤 자료를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증거는 한 번 사라지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지금이 바로 상담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경찰에 고소하기 전인데도 증거보전을 신청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형사소송법 제184조는 ‘제1회 공판기일 전’이면 신청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어, 고소 직후 수사 단계는 물론 고소 전 단계에서도 검사나 피의자·변호인 명의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Q. 제가 직접 법원에 증거보전을 신청하는 서류를 낼 수는 없나요?
A. 고소인·피해자 본인은 형사소송법상 신청권자가 아니어서 직접 서류를 낼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고소장에 증거인멸 우려를 구체적으로 적어 수사기관이 신청하도록 촉구하는 방법이 실질적인 대안입니다.
Q. 가해자가 이미 대화방을 나가버렸는데, 그래도 신청할 실익이 있나요?
A. 있습니다. 이미 삭제된 대화라도 통신사 로그나 상대방 기기에 남은 사본, 디지털 포렌식 복원 가능성이 있고, 아직 남아 있는 다른 증거(CCTV, 목격자 등)를 보전하기 위해서도 신청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Q. 증거보전 신청이 기각되면 더 이상 방법이 없나요?
A. 기각 결정에 대해서는 3일 이내에 항고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간이 짧으므로, 애초에 소명자료를 충분히 준비해 청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성폭력 사건 피해자는 일반적인 경우와 다른가요?
A.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41조에 따라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검사에게 증거보전 청구를 요청할 수 있는 별도 경로가 있습니다. 다만 이는 피해자의 증언이 현저히 곤란한 사정을 사유로 하는 것으로, 가해자의 증거인멸 우려와는 요건이 다릅니다.
Q. 증거보전으로 확보된 자료는 나중에 재판에서 그대로 쓰이나요?
A. 네. 판사가 작성한 조서는 형사소송법 제311조에 따라 당연히 증거능력이 인정되므로, 이후 가해자가 원본을 없애더라도 재판에서 그대로 활용됩니다.
Q. 변호사는 언제 선임하는 것이 좋을까요?
A. 증거가 남아 있는 시점, 즉 고소를 준비하는 초기 단계가 가장 좋습니다. 어떤 자료를 어떤 순서로 확보하느냐에 따라 증거보전 신청의 성패와 이후 재판 결과까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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