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려준 채무자의 재산이 부동산이라면 안심하고 있다가, 정작 압류를 걸려는 순간 등기부상 소유자가 이미 신탁회사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채권자가 적지 않습니다. 신탁재산은 위탁자 개인의 소유가 아니게 되어 원칙적으로 위탁자의 채권자가 손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신탁이라는 형식만 갖추면 어떤 채무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법은 강제집행이 가능한 두 가지 예외를 분명히 정해두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신탁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이 왜 원칙적으로 금지되는지, 어떤 경우에 그 금지가 풀리는지, 그리고 채권자 입장에서 막다른 길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실제로 남아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신탁재산의 독립성 — 위탁자의 것도 수탁자의 것도 아닌 재산
신탁법 제2조에 따르면 신탁이란 위탁자가 수탁자에게 특정 재산을 이전하고, 수탁자가 수익자의 이익이나 특정 목적을 위해 그 재산을 관리·처분하는 법률관계입니다. 부동산을 신탁하면 등기부상 소유권 자체가 수탁자 명의로 넘어가므로, 그 순간부터 그 부동산은 위탁자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런데 신탁재산은 수탁자에게 명의가 넘어갔다고 해서 수탁자 개인의 것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신탁법 제37조는 수탁자에게 신탁재산을 고유재산과 분별하여 관리할 의무를 지우고, 제23조와 제24조는 신탁재산이 수탁자의 상속재산이나 파산재단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결국 신탁재산은 위탁자의 재산도 아니고 수탁자 고유재산도 아닌, 신탁 목적을 위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특별재산입니다. 이 독립성이 위탁자의 채권자가 신탁재산을 압류하지 못하는 이유의 출발점입니다. 채권자가 강제집행을 하려면 그 대상이 채무자의 책임재산이어야 하는데, 신탁된 부동산은 이미 위탁자의 책임재산에서 완전히 이탈해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위탁자 B가 A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한 상태에서, B 소유이던 아파트가 이미 신탁회사 앞으로 담보신탁 등기가 마쳐져 있었다면, A는 그 아파트를 압류 대상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신탁재산은 위탁자의 소유도, 수탁자 고유재산도 아닌 독립된 책임재산이다 — 이 독립성이 위탁자의 채권자가 압류하지 못하는 이유의 출발점이다.
신탁법 제22조 — 압류·경매·체납처분까지 막는 강제집행 금지
이 원칙을 명문으로 선언한 조항이 신탁법 제22조 제1항입니다. "신탁재산에 대하여는 강제집행, 담보권 실행 등을 위한 경매, 보전처분 또는 국세 등 체납처분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금지 범위가 민사상 강제집행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가압류·가처분 같은 보전처분은 물론, 세금을 걷기 위한 국세·지방세 체납처분까지 원칙적으로 전부 금지 대상에 들어갑니다. 세금은 다를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문상으로는 조세채권도 이 원칙의 적용을 받습니다.
만약 이 원칙을 어기고 신탁재산에 강제집행이나 체납처분이 이루어졌다면 어떻게 될까요. 신탁법 제22조 제2항·제3항은 위탁자·수익자·수탁자에게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부여합니다. 강제집행에 대해서는 민사집행법 제48조의 제3자이의의 소를 준용하도록 하고 있어, 신탁재산이 강제집행의 목적물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이유로 그 집행 자체의 취소를 구할 수 있습니다. 체납처분에 대해서는 국세 등 체납처분에 대한 불복절차를 준용합니다. 즉 채권자가 신탁 사실을 모르고 압류신청을 하더라도, 등기부의 신탁등기가 확인되는 순간 그 집행은 정지되거나 취소될 가능성이 큽니다.
예외 하나, 신탁 전의 원인으로 발생한 권리
신탁법 제22조 제1항 단서는 두 가지 예외를 정해두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신탁 전의 원인으로 발생한 권리"에 기한 경우입니다. 신탁이 설정되기 전에 이미 그 부동산에 대해 강제집행을 할 수 있는 지위를 확보해 둔 채권자라면, 신탁 이후에도 그 권리를 그대로 행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예외가 없다면 채무자가 강제집행 직전에 재산을 신탁회사에 넘겨버리는 것만으로 손쉽게 책임재산을 빼돌릴 수 있게 되므로, 신탁이라는 제도가 채무면탈의 도구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신탁 전에 이미 설정된 근저당권입니다. 근저당권자 C가 위탁자 B 소유 부동산에 근저당을 설정해 둔 뒤에 B가 그 부동산을 신탁회사 앞으로 담보신탁했다면, C는 신탁 등기 이후에도 근저당권에 기해 임의경매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신탁 전에 이미 가압류를 마쳐 둔 채권자나, 신탁 전에 소송을 통해 집행권원을 확보해 둔 채권자도 마찬가지로 강제집행을 속행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신탁 전'의 기준 시점은 신탁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 및 신탁등기가 마쳐진 시점이므로, 자신의 권리 취득일과 등기부상 신탁등기 접수일자의 선후를 직접 대조해야 합니다.
신탁 등기 전에 이미 설정된 근저당권·전세권 등 담보물권자
신탁 등기 전에 이미 마쳐진 가압류·가처분권자
신탁 등기 전에 이미 확정판결 등 집행권원을 확보한 채권자
법정기일이 신탁등기 접수일자보다 앞서는 조세채권
'신탁 전의 원인'인지는 계약 체결일이 아니라, 등기부상 신탁등기 접수일자와 자신의 권리 취득(등기)일자를 비교해서 정해진다.
예외 둘, 신탁사무의 처리상 발생한 권리
두 번째 예외는 "신탁사무의 처리상 발생한 권리"에 기한 경우입니다. 신탁이 설정된 이후 수탁자가 신탁재산을 관리·처분·개발하는 과정에서 새로 발생한 채무라면, 그 채무의 채권자는 애초에 위탁자의 채권자가 아니라 신탁사무 자체에서 생긴 채권자입니다. 신탁재산으로부터 이익을 기대하고 거래에 응한 상대방을 신탁재산 자체가 책임지게 하는 것이 형평에 맞기 때문에 인정되는 예외입니다.
실무에서 흔히 보는 경우가 관리형 토지신탁으로 아파트를 짓는 사업입니다. 수탁자인 신탁회사 명의로 시공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했는데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시공사는 그 신탁재산인 토지와 건물에 대해 강제집행을 할 수 있습니다. 신탁재산의 관리비용, 신탁사무 처리 과정에서 새로 부과된 세금 등도 같은 논리로 신탁재산이 직접 책임지는 채무로 취급됩니다. 이 예외는 위탁자 개인의 빚과는 무관하게 신탁재산이라는 사업체 자체가 진 빚이라는 점에서 첫 번째 예외와 성격이 다릅니다. 위탁자의 개인 채권자가 이 예외를 근거로 압류를 시도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어디까지나 신탁사무 처리 과정에서 실제로 거래한 채권자에게만 열려 있는 길입니다.
두 예외는 하나의 목적을 향한다 — 신탁재산이 위탁자의 채무를 회피하는 도피처가 되지 못하게 하면서도, 신탁 자체가 새로 진 빚에는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신탁 자체를 되돌리는 방법 — 사해신탁 취소와의 구별
앞의 두 예외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위탁자가 채권자를 해할 것을 알면서 신탁을 설정했다면 별도의 구제수단이 있습니다. 신탁법 제8조의 사해신탁 제도입니다. 이 경우 채권자는 수탁자가 선의였더라도 수탁자나 수익자를 상대로 민법 제406조 제1항에 따른 취소 및 원상회복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수익자가 수익권을 취득할 당시 채권자를 해함을 알지 못했다면 그 수익자에 대해서는 취소를 구할 수 없습니다. 이는 앞서 본 두 예외와 법적 성격이 다릅니다. 두 예외는 신탁이 유효하다는 전제 아래 그 신탁재산에 예외적으로 강제집행을 허용하는 것이고, 사해신탁 취소는 신탁 설정행위 자체를 무너뜨려 재산을 위탁자에게 되돌리는 방법입니다.
다만 신탁을 설정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사해신탁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2003. 12. 12. 선고 2001다57884 판결은, 자금난에 빠진 시행사가 공사를 완공해 분양대금으로 채권자들에게 변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신탁회사와 신탁계약을 체결한 사안에서, 그 신탁행위가 채권자를 해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채권자들의 피해를 줄이고 변제력을 회복하려는 부득이한 조치였다면 사해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신탁을 설정한 경위와 목적, 채무자의 재정상태, 신탁 이후 사업 진행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사해의사를 판단한다는 취지입니다. 위탁자가 이미 채무초과 상태에서 특정 채권자를 피할 목적이 뚜렷한 시점에 신탁을 설정했다면 사해신탁 의심 정황이 되지만, 정상적인 개발이나 담보 목적의 신탁이라면 쉽게 인정되지 않습니다.
막힌 길이 아니다 — 위탁자의 수익권은 압류 대상이 된다
신탁재산인 부동산 자체는 앞서 본 대로 원칙적으로 압류할 수 없지만, 위탁자가 스스로 수익자를 겸하는 자익신탁이라면 위탁자가 갖는 수익권은 별개로 취급됩니다. 수익권은 신탁재산에 대한 물권이 아니라 수탁자에게 신탁이익의 급부를 청구할 수 있는 채권적 권리이고, 이는 위탁자의 일반재산을 구성합니다. 따라서 위탁자의 채권자는 신탁재산인 부동산 자체는 건드릴 수 없어도, 위탁자가 가진 이 수익권을 압류하고 추심명령이나 전부명령을 받아 만족을 얻는 길이 남아 있습니다.
이 구조는 부동산담보신탁에서 흔히 나타납니다. 위탁자가 대출을 받으면서 부동산을 담보신탁하고 자신을 수익자로, 대출 금융기관을 우선수익자로 지정해두는 방식이 일반적인데, 이때 위탁자의 다른 채권자는 신탁부동산 자체는 손댈 수 없어도 위탁자가 갖는 수익권을 압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선수익자가 먼저 지정되어 있다면 그 순위 뒤로 밀리므로, 신탁계약상 배당순서와 우선수익자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이 방법의 실효성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채권자가 실제로 확인해야 할 것 — 등기부와 신탁원부
부동산이 신탁되면 등기부 갑구에 소유권이전 및 신탁 등기가 기재되고, 그 등기에는 별도의 신탁원부가 첨부됩니다. 신탁원부에는 위탁자·수탁자·수익자의 인적사항, 신탁의 목적, 신탁재산의 관리방법, 신탁종료 사유, 우선수익자 지정 여부 등 신탁계약의 핵심 내용이 담겨 있어 등기소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압류를 검토하는 채권자라면 이 자료부터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등기부에서 신탁등기 여부와 그 접수일자를 먼저 확인하고, 자신의 채권이나 담보권이 발생한 시점이 신탁등기보다 앞서는지 뒤지는지를 비교해야 합니다. 앞선다면 첫 번째 예외에 따라 강제집행을 계속할 수 있고, 뒤진다면 신탁재산 자체가 아니라 위탁자의 수익권 쪽으로 방향을 돌려야 합니다. 신탁사무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채권이라면 그 사실관계를 뒷받침할 도급계약서·세금계산서 등 거래자료를 미리 정리해 두는 것이 이후 강제집행 단계에서 다툼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등기부 갑구에서 신탁등기 접수일자 확인
신탁원부에서 수익자·우선수익자 지정 내용 확인
자신의 채권·담보권 발생시점과 신탁등기 접수일자의 선후 비교
신탁사무 처리 중 발생한 채권이라면 도급계약서·세금계산서 등 자료 확보
자주 묻는 질문
Q. 신탁부동산인지 모르고 압류신청을 했다면 어떻게 되나요?
A. 등기부상 소유자가 이미 수탁자로 바뀌어 있으므로 그 압류는 위탁자 소유가 아닌 재산에 대한 집행이 되어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고, 위탁자·수익자·수탁자는 신탁법 제22조 제2항에 따라 이의를 제기하거나 민사집행법 제48조의 제3자이의의 소로 취소를 구할 수 있습니다. 압류 전에 등기부와 신탁원부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Q. 신탁 전 근저당권을 갖고 있었는데 신탁 이후에도 경매를 신청할 수 있나요?
A. 신탁법 제22조 제1항 단서의 '신탁 전의 원인으로 발생한 권리'에 해당하므로, 신탁 등기 이후에도 그 근저당권에 기해 임의경매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근저당권 설정등기 접수일자가 신탁등기 접수일자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등기부로 확인해야 합니다.
Q. 신탁회사가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시공사는 신탁부동산을 압류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수탁자가 신탁사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공사대금 채무이므로 '신탁사무의 처리상 발생한 권리'에 해당해 신탁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이 허용됩니다. 위탁자 개인의 빚이 아니라 신탁재산 자체가 부담하는 채무이기 때문입니다.
Q. 위탁자가 세금을 안 냈어도 신탁재산은 압류할 수 없나요?
A. 원칙적으로는 국세 등 체납처분도 신탁법 제22조 제1항에 따라 금지되지만, 그 조세채권이 신탁 전에 이미 발생한 것이거나 신탁사무 처리 과정에서 새로 발생한 것이라면 두 예외에 따라 신탁재산에 대한 체납처분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조세채권의 발생시점과 신탁등기 시점을 비교해 판단합니다.
Q. 채권자를 피하려고 부동산을 신탁했다면 그 신탁 자체를 취소시킬 수 있나요?
A.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함을 알면서 신탁을 설정했다면 신탁법 제8조의 사해신탁에 해당해 민법 제406조 제1항에 따른 취소 및 원상회복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신탁을 설정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인정되지는 않고, 신탁 경위와 목적을 종합적으로 살펴 사해의사가 있었는지를 따집니다.
Q. 신탁재산 자체를 못 건드린다면 위탁자에게 빌려준 돈은 포기해야 하나요?
A. 위탁자가 신탁의 수익자를 겸하고 있다면(자익신탁) 신탁재산이 아니라 위탁자가 갖는 수익권을 압류하고 추심명령이나 전부명령을 받는 방법이 남아 있습니다. 다만 우선수익자가 먼저 지정돼 있다면 그 순위 뒤로 밀리므로 신탁원부에서 배당순서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맺음말
신탁재산에 대한 강제집행 금지는 신탁제도를 지탱하는 핵심 원칙이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신탁 전의 원인으로 발생한 권리와 신탁사무의 처리상 발생한 권리라는 두 예외, 그리고 신탁 설정 자체를 무너뜨리는 사해신탁 취소, 위탁자의 수익권을 겨냥하는 압류까지 채권자에게 남아 있는 길은 하나가 아닙니다. 반대로 위탁자·수탁자·수익자 입장에서도 어느 예외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신탁재산이 실제로 지켜지는지가 갈리므로, 등기부와 신탁원부부터 확인하는 것이 모든 판단의 출발점입니다.
특히 광교를 비롯한 수원·경기남부 지역은 개발사업 관련 담보신탁과 분양형 신탁이 활발한 만큼, 신탁부동산을 둘러싼 강제집행 다툼이나 사해신탁 여부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 자주 발생합니다. 신탁 전후의 권리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수록 초기에 등기부·신탁원부를 정확히 분석해두는 쪽이 이후 절차에서 유리합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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