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개요
의뢰인은 일본 만화 플랫폼과 정식 번역계약을 체결하고 만화 콘텐츠를 한국어로 번역·판매하는 법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자사 번역물이 국내 웹하드에 그대로 올라와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문제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확인되는 것은 웹하드 아이디와 닉네임뿐이었고, 실명도 주소도 알 수 없는 성명불상자였습니다. 플랫폼에 삭제를 요청해도 계정을 다시 만들어 올렸고, 내용증명으로 계정이 정지되자 유사 계정으로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무엇이 결정적이었나
1. 번역저작권자의 고소권을 관철시켰습니다
번역물 사건에서 자주 부딪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진짜 권리자가 맞느냐"는 것입니다.
원작은 일본 작가의 것이고, 판매는 플랫폼을 통해 이루어지며, 약관에 따라 플랫폼이 콘텐츠에 관한 권리를 보유하는 구조도 있습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번역자는 정작 자신의 번역물이 도용당해도 권리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의뢰인이 원작자로부터 2차적저작물 작성에 관한 라이선스를 정식으로 부여받았다는 점, 단순한 문자 치환을 넘어 의성어·의태어를 직접 디자인해 삽입하고 대사 맥락에 따라 폰트와 크기를 조정하는 등 독립된 창작성이 인정되는 2차적저작물을 만들었다는 점을 원작과의 대조자료로 입증했습니다.
그 결과 공소장에는 의뢰인이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만화라고 명시되었습니다. 번역저작권자로서의 지위가 형사절차에서 확인된 것입니다.
2. 웹하드 4개사의 다운로드 내역을 수사기록에 편철시켰습니다
저작권 사건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침해의 규모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게시물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것이 실제로 몇 번이나 다운로드되었는지가 확인되어야 피해의 실질이 드러납니다.
침해는 한 곳이 아니라 예스파일, 애플파일, 온디스크, 파일썬 4개 사이트에서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사이트별로 게시물을 개별 확인하고, 동일인의 계정임을 특정한 뒤, 침해 게시물 전체를 하나의 목록으로 정리했습니다.
작품명 표기가 사이트마다 조금씩 달랐고, 여러 작품을 묶은 합본 게시물도 섞여 있었습니다.
수사 단계에서 웹하드 4개사에 대한 자료 확보를 지속적으로 촉구했고, 그 결과 각 사업자가 게시물별 다운로드 횟수와 업로더의 포인트 수령내역을 수사기관에 직접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이 자료는 수사기록에 편철되었습니다.
추정이나 짐작이 아니라 각 웹하드 사업자가 보유한 실제 로그였습니다. 이로써 피의자가 얻은 수익 구조와 침해의 실제 규모가 객관적으로 확인되었고, 이는 이후 민사사건에서 손해액을 산정하기 위한 결정적인 자료로 활용됩니다.
3. 범죄사실을 게시물 단위로 특정했습니다
저작권법위반 사건에서 범죄사실은 "저작물을 무단으로 업로드했다"는 정도로는 특정되지 않습니다. 어떤 저작물을, 언제, 어느 사이트에, 어떤 게시물로 올렸는지가 하나하나 드러나야 합니다. 특정이 느슨하면 수사기관도 사건의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고, 공소사실을 구성하기도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범죄일람표는 게시물 단위로 작성되어야 합니다. 게시물마다 업로드 링크 주소 전체와 사이트 내부 게시번호, 침해된 저작물의 작품명이 들어가야 하고, 사이트별로 침해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이어졌는지도 구분되어야 합니다.
번역물 사건에서는 여기에 한 단계가 더 붙습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사이트마다 제목 표기가 다르고, 부제를 붙인 것과 생략한 것이 섞입니다. 여러 작품을 묶은 합본 게시물은 그 안에 어떤 작품이 들어 있는지 확인해 원본과 대응시켜야 합니다. 삭제 후 다시 올린 재업로드 건도 별도로 구분해 두어야 합니다. 이 대조가 끝나야 비로소 하나의 표가 완성됩니다.
이 사건에서는 4개 사이트에 걸친 침해 게시물 전체가 그렇게 정리되었고, 공소장에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공소사실은 사이트별로 "언제부터 언제까지 별지 범죄일람표 순번 몇 번 내지 몇 번 기재와 같이 몇 회에 걸쳐 피해자의 저작물을 업로드"라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순번과 횟수가 제출한 표와 일치합니다.
범죄사실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어야 공소제기가 가능하고, 특정의 정도가 곧 사건의 무게를 결정합니다.
침해 게시물이 구체적으로 특정되고 그 게시물들이 동일 계정에서 나왔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수사절차를 통해 계정 가입정보와 접속기록이 확보되었고 상대방의 인적사항이 특정되었습니다. 성명불상자를 상대로 한 고소가 특정된 피의자를 상대로 한 사건으로 바뀌는 지점입니다. 이 단계를 넘어서야 형사절차가 실질적으로 진행되고,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도 가능해집니다.
결과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은 피의자를 저작권법위반죄로 공소제기하면서 벌금 700만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습니다.
공소사실에는 정리된 범죄일람표가 그대로 반영되었고, 4개 사이트에서의 침해 기간과 횟수가 구분되어 특정되었습니다.
또한 공소장에는 피의자가 "웹하드에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업로드하면 회원들이 다운로드할 때 지불하는 포인트의 일부가 자신의 수익으로 적립된다는 사실을 알고, 애플파일 운영자로부터 판매자 승인을 받은 후 업로드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취지가 명시되었습니다. 단순한 공유가 아니라 수익을 목적으로 한 계획적 침해임이 확인된 것입니다.
실무상 짚어둘 점
상대를 몰라도 절차는 개시됩니다. 저작권 침해 고소는 피고소인을 성명불상자로 하여도 가능합니다. 아이디와 침해 게시물이 특정되면 수사절차를 통해 계정 가입정보와 접속기록이 확보되고, 그 과정에서 인적사항이 드러납니다.
번역물의 권리 귀속은 별도로 정리해야 합니다. 2차적저작물은 원저작물과 독립하여 보호되므로, 원작이 타인의 것이라는 사정만으로 권리 주장이 막히지 않습니다. 다만 플랫폼 약관에 따라 권리 귀속이 달라지는 구조도 있어, 라이선스 취득 경위와 번역물의 창작성을 어떻게 입증하는지가 실제 쟁점이 됩니다.
증거보전에는 시한이 있습니다. 웹하드 게시물이 삭제되면 게시 화면은 물론 다운로드 로그도 확인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침해를 발견한 시점에 화면 캡처와 URL, 게시번호를 남겨 두는 것이 이후 절차의 출발점이 됩니다.
플랫폼 조치와 법적 조치는 효과가 다릅니다. 이 사건에서는 삭제요청 2회와 내용증명 발송을 거쳐 계정정지까지 이루어졌으나, 약 두 달 뒤 활동이 재개되었습니다. 플랫폼의 조치는 개별 게시물에 대한 것이어서 행위 자체를 중단시키지는 못합니다.
수사 단계에서 확보한 자료는 민사로 이어집니다. 다운로드 횟수와 포인트 수령내역은 수사기록에 편철되면 이후 문서송부촉탁이나 열람등사를 통해 민사소송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손해액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자료이므로, 형사 단계에서 어떤 자료를 남기느냐가 민사의 범위를 결정합니다.
이 사건은 아이디 하나만 알고 시작해서, 4개 사이트에 흩어진 215건의 게시물을 하나의 범죄일람표로 묶고, 사업자들이 보유한 다운로드 로그를 수사기록에 편철시키고, 번역저작권자의 지위를 공소장에 명시시키는 과정을 거쳐 공소제기에 이르렀습니다. 저작권 침해 사건의 결과는 결국 침해의 규모와 고의성을 어떤 자료로 뒷받침하느냐에 따라 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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