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등록부에 자녀나 배우자로 이름이 올라 있어도, 부양의무를 저버린 사정이 인정되면 상속인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2026년 3월 개정된 민법이 시행되면서 상속권 상실 제도의 적용 범위가 넓어졌고, 이 확대된 조항이 실제 소송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판결이 최근 선고되었습니다. 부양의무를 소홀히 한 상속인의 상속권을 박탈할 수 있다는 조항이 신설되면서, 반대로 이 제도를 방어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분들의 문의도 함께 늘고 있습니다.
◆ 상속권상실 제도, 무엇이 달라졌나
이른바 '구하라법'으로 불리는 상속권 상실 선고 제도(민법 제1004조의2)는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모의 상속권을 제한하자는 논의가 이어지던 중, 2024년 헌법재판소가 유류분 상실사유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 입법에 속도를 붙이며 신설되었습니다. 다만 처음 만들어진 조문은 상속권 상실 청구의 대상을 피상속인의 직계존속, 즉 부모 세대에 한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26년 3월 개정된 조항은 이 대상을 직계비속뿐 아니라 배우자까지 포함하는 사실상 모든 상속인으로 넓혔고,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거나 중대한 범죄행위 또는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라면 어떤 상속인이든 그 자격 자체를 다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청구가 인용되어 확정되면 유류분을 포함해 상속권이 소급하여 사라진다는 점에서 최종적인 박탈 효과는 상속결격과 다르지 않지만, 사유가 있다고 자동으로 자격을 잃는 상속결격과 달리 반드시 가정법원에 청구해 선고를 받아야 하고 법원도 여러 사정을 종합해 청구를 기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절차는 다릅니다.
다만 법원은 이 조항을 넓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연락이 뜸했다거나 왕래가 적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부양의무 위반의 정도가 중대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상속인과 피상속인의 관계가 애초에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상속재산의 규모와 형성 과정은 어떠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점이 이번 판결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 사건의 경위
이번 사건의 피고 B씨는 1976년 태어났습니다. 생모는 그해 B씨의 생부와 혼인신고를 했지만, B씨가 8세이던 1984년 부부는 이혼했고 생모는 B씨를 남겨둔 채 집을 떠났습니다. 이후 B씨는 성인이 될 때까지 친조모 슬하에서 자랐고, 그 사이 생모로부터 양육비를 받은 적도, 연락을 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생모는 그 뒤 다른 남성과 재혼해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B씨의 존재를 오랫동안 배우자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B씨가 성인이 된 뒤, 자신을 키워준 친조모를 통해 생모에게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B씨에게는 생모에게 직접 연락할 방법 자체가 없었기에, 조모가 대신 그 뜻을 전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생모는 만남을 거절했습니다. 이후 유일한 연결고리였던 조모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B씨로서는 생모에게 다시 연락할 방법조차 사라진 채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끊긴 상태가 이어지던 중 2025년 생모가 사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B씨는 생모의 배우자였던 A씨를 상대로 별도로 상속재산분할을 청구했는데, 그 절차가 진행되던 중 민법이 개정되어 상속권 상실 제도의 적용 대상이 직계비속까지 넓어졌습니다. 그러자 A씨는 개정된 조항을 근거로, B씨가 생모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B씨를 상대로 상속권 상실을 청구했습니다. A씨의 주장은, B씨가 생모와 연락하지 않고 지내며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생모가 원고와 혼인생활을 하며 이룬 재산 형성에도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 법원의 판단
법원은 A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첫째, 부모와 성년 자녀 사이의 부양의무는 부양의무자에게 여유가 있고 상대방이 스스로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만 발생하는 이른바 제2차 부양의무인데, 생모는 사망 전까지 본인 명의의 아파트와 다수의 예금계좌 등 독자적인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원고의 주장 자체에 비추어 보더라도 생모가 부양을 필요로 하는 상태였다고 보기 어려운 이상, B씨에게 애초에 부양료를 지급할 의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법원은 판단했습니다.
둘째, 법원은 오히려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쪽이 생모였다는 사정을 무겁게 봤습니다. 생모는 B씨가 8세이던 시절 스스로 가정을 떠났고, 이후 단 한 번도 양육비를 지급하거나 먼저 연락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성인이 된 B씨가 만남을 시도했을 때조차 이를 거절했고, 배우자에게도 오랜 기간 B씨의 존재를 숨겼습니다. 법원은 이런 사정 아래에서 B씨가 생모를 부양할 것을 전혀 기대할 수 없고, 오히려 자녀를 부양하지 않고 스스로 관계를 단절한 생모에 대해 자녀의 상속권마저 상실하도록 하는 것은 상속권 상실 제도의 입법 취지에 반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 이번 판결이 보여주는 것
이번 판결은 상속권 상실 청구가 단순히 연락이 뜸했다는 사정만으로 쉽게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부양의무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 상속인과 피상속인 사이의 관계가 애초에 누구의 책임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가 핵심적으로 고려된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 이 사건처럼 상속재산분할 절차가 먼저 진행되던 중 법 개정으로 상속권 상실 청구가 추가되는 경우, 두 절차의 쟁점과 증거를 함께 고려해 대응해야 한다는 점도 확인됩니다. 어린 시절 양육을 포기하고 떠난 쪽의 사정이 오히려 성년이 된 자녀의 부양의무 판단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실무적으로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 상속권상실 소송을 준비하거나 방어해야 한다면
상속권 상실 제도, 특히 배우자까지 대상을 넓힌 개정 조항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축적된 판례가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청구를 하려는 쪽이든, 반대로 청구를 당해 방어해야 하는 쪽이든 사실관계를 어떻게 정리하고 어떤 증거를 제출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방어하는 입장이라면 상대방이 주장하는 부양의무 위반 사실 못지않게, 피상속인 쪽의 부양의무 이행 여부와 관계 단절의 경위,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함께 다투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가사 사건은 당사자들의 오랜 관계와 감정이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 조문 해석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상속권상실 소송을 검토하고 계시거나 이미 청구를 받으신 상황이라면, 사실관계를 꼼꼼히 정리하고 관련 법리와 판례를 함께 검토한 뒤 대응 방향을 정하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