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성범죄 사건에서 1심 유죄 판결을 받은 뒤 항소를 선택하는 피고인이 늘고 있지만, 정작 항소이유서를 사실오인과 양형부당 중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제가 상담한 분들 중에는 “일단 항소부터 하고 보면 다시 처음부터 재판을 받을 수 있으니 무죄를 주장해보자”는 생각으로 사실오인만 밀어붙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1심이 직접 심리해 인정한 증거 판단은 항소심에서도 쉽게 뒤집히지 않고, 오히려 그 사이 정작 형을 낮출 수 있었던 반성·합의 같은 양형 자료 준비 시기만 놓치고 마는 일이 반복됩니다.
최근 대법원은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과 양형 판단을 각각 별개의 엄격한 기준으로 심사하고 있어, 사실오인과 양형부당은 같은 항소이유서 안에 있더라도 전혀 다른 논리와 자료로 준비해야 합니다.
아래에서는 성범죄 항소에서 사실오인과 양형부당이 각각 무엇을 다투는 것인지, 그리고 실제 항소이유서를 준비할 때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는지 최근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성범죄 항소는 사실오인과 양형부당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갈래로 다투게 됩니다
무엇을 다투느냐에 따라 항소이유서의 방향과 준비할 자료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형사소송법 제361조의5는 항소이유를 여러 항목으로 나열하고 있는데, 성범죄 항소심에서 실제로 다투는 것은 대부분 두 가지로 좁혀집니다. 제14호의 ‘사실의 오인이 있어 판결에 영향을 미친 때’와 제15호의 ‘형의 양정이 부당하다고 인정할 사유가 있는 때’입니다.
사실오인은 1심이 유죄로 인정한 공소사실 자체, 즉 범행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다시 다투는 것이고, 양형부당은 범행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대로 두고 선고된 형량만 너무 무겁다고 다투는 것입니다. 전자는 무죄나 일부 무죄를 목표로 하고, 후자는 집행유예나 감형을 목표로 합니다.
실무에서는 항소장의 ‘항소의 범위’란에 습관적으로 ‘사실오인 및 양형부당’이라고 함께 기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항소장 기재만으로는 부족하고, 정해진 기한 안에 제출하는 항소이유서에서 각각을 구체적인 근거와 함께 주장해야 항소심 재판부가 실제로 판단해줍니다.
사실오인은 유죄 인정 자체를, 양형부당은 형량의 크기만을 다투는 전혀 다른 항소이유입니다.
2. 사실오인 항소는 유죄 인정의 근거가 된 진술과 증거의 신빙성 자체를 겨냥합니다
1심이 유죄 증거를 판단한 논리 과정에 경험칙에 어긋나는 허점이 있는지를 다툽니다.
사실오인 주장이 받아들여지려면 단순히 억울하다는 호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1심이 채택한 증거, 즉 피해자 진술·CCTV·문자메시지·주변인 진술 등의 신빙성 판단 과정에 구체적으로 어떤 논리적 모순이나 경험칙 위반이 있는지를 짚어야 합니다.
성범죄는 목격자 없이 피해자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직접증거인 경우가 많아, 사실오인 다툼의 핵심은 결국 진술 신빙성 문제로 귀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법원은 이런 사건의 진술 평가 기준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피해자 등의 진술이 그 진술 내용의 주요한 부분이 일관되고, 경험칙에 비추어 비합리적이지 않으며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고, 또한 허위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그 진술의 신빙성을 특별한 이유 없이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7709 판결).
즉 진술이 사건 경과의 사소한 부분에서 일부 흔들리거나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사정만으로 신빙성을 곧바로 배척할 수는 없고, 통상의 피해자라면 이렇게 행동했을 것이라는 통념에 어긋난다는 이유만으로 합리성이 없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최근 흐름입니다. 다만 항소심은 사후심적 요소가 강한 속심 구조여서, 1심이 직접 심리해 내린 증거 판단은 명백히 부당하다고 볼 사정이 없는 한 존중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사실오인 항소는 원심 증거판단의 구체적 허점을 논증해야 하는 절차이지, 억울함을 호소하는 절차가 아닙니다.
3. 양형부당 항소는 유죄를 인정하되 형이 지나치게 무겁다는 점만 다툽니다
1심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 범위를 벗어났다는 점을 구체적 자료로 밝혀야 합니다.
양형부당은 사실오인과 달리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전제 위에서 선고형의 크기만 다투는 것입니다. 형법 제51조는 양형의 조건으로 범인의 연령·성행·지능과 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을 들고 있습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성범죄 양형기준에서도 처벌불원, 실질적 피해 회복, 진지한 반성, 형사처벌 전력 없음 등은 감경요소로, 친족관계를 이용한 범행, 상습성, 다수 피해자,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한 범행 등은 가중요소로 반영됩니다. 감경·가중요소가 몇 개씩 인정되느냐에 따라 권고 형량 구간 자체가 달라집니다.
다만 항소심이라고 해서 1심 양형을 손쉽게 뒤집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1심의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 내에 속함에도 항소심의 판단과 다소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제1심판결을 파기하여 새로 형을 정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고, 제1심의 양형판단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났다고 평가되지 않는 이상 항소심에서 이를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대법원 2015. 7. 23. 선고 2015도3260 전원합의체 판결).
따라서 양형부당 항소이유서는 막연히 선처를 구하는 문장이 아니라, 1심 선고 이후 새롭게 생긴 사정(피해자와의 합의, 공탁, 치료·상담 이력 등)이나 1심 판결문이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양형요소를 구체적 자료와 함께 제시해야 설득력을 가집니다.
양형부당 항소는 1심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 범위를 벗어났다는 점을 새로운 자료로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절차입니다.
4. 다투는 죄명과 감경·가중 요소에 따라 선고 형량 구간이 크게 달라집니다
죄명별 법정형과 양형기준상 권고 형량 범위를 알아야 항소의 방향을 정할 수 있습니다.
형법 제297조의 강간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제298조의 강제추행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실제 선고형은 법정형 그대로가 아니라 양형기준상 권고 범위 안에서 정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특수강간, 13세 미만 대상 범행 등 성폭력처벌법이 적용되는 유형은 형이 크게 가중되어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이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신상정보 등록·공개고지, 취업제한 같은 부수처분까지 함께 선고됩니다.
이처럼 죄명과 가중처벌 규정 적용 여부에 따라 권고 형량 구간 자체가 달라지고, 그 안에서도 감경·가중요소가 몇 개 인정되느냐에 따라 실형과 집행유예의 경계가 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오인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사건이라도 양형부당 하나만으로 형량 구간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뜻입니다.
5. 항소는 정해진 기간 안에 진행되고, 사실오인과 양형부당은 준비할 자료부터 다릅니다
항소이유서 제출기한을 넘기면 애써 준비한 주장도 판단조차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성범죄 항소는 통상 ①1심 선고일로부터 7일 이내(형사소송법 제358조) 1심 법원(수원 지역 사건이라면 수원지방법원)에 항소장을 제출 → ②항소법원(수원지방법원 관할 사건의 항소심은 수원고등법원)으로부터 소송기록접수통지를 받은 날부터 20일 이내 항소이유서 제출(형사소송법 제361조의3) → ③검사의 답변서 제출과 항소심 공판기일 진행, 필요하면 추가 증거조사와 양형자료 제출 → ④항소심 선고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항소이유가 인정되면 원칙적으로 파기하고 항소법원이 직접 다시 판결합니다(형사소송법 제364조).
주의할 점은 피고인만 항소한 경우에는 원심판결의 형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다는 불이익변경금지 원칙(형사소송법 제368조)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검사도 양형이 가볍다며 함께 항소한 경우에는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 오히려 형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항소이유서 제출기한을 넘기면 그 이후에 제출한 사유는 판단 대상에서 제외될 위험이 있으므로, 소송기록접수통지서를 받는 즉시 기한부터 계산해두어야 합니다. 사실오인을 다툴지, 양형부당을 다툴지, 혹은 둘 다 다툴지에 따라 준비할 자료와 시간이 달라지므로 아래 순서로 먼저 정리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1심 판결문과 공판조서를 확보해 어떤 증거로 유죄가 인정됐는지, 양형 이유에서 어떤 요소가 반영됐는지부터 확인합니다.
항소기간(7일)과 항소이유서 제출기한(소송기록접수통지 후 20일)을 계산해 남은 시간을 파악합니다.
사실오인을 다툴 만한 새로운 증거나 진술의 모순점이 있는지, 아니면 1심 선고 이후 새로 생긴 감경사유(합의·공탁·반성자료)가 있는지를 구분해 정리합니다.
이렇게 정리한 자료를 바탕으로 성범죄 항소 사건에 경험이 있는 변호사와 함께 사실오인과 양형부당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둘지 전략을 세운다면, 정해진 기한 안에 설득력 있는 항소이유서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1심에서 유죄 판결, 특히 실형을 선고받으면 당사자와 가족은 큰 충격 속에 일단 항소장부터 내고 보자는 생각이 앞서, 정작 항소이유서 제출기한 20일을 흘려보내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억울하게 유죄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피고인 입장에서는 1심 증거판단의 구체적 허점을 찾는 것이 우선입니다. 반대로 1심 형량이 지나치게 가볍다고 느끼는 피해자·검사 측 입장에서도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할 수 있고, 이 경우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 항소심에서 형이 오히려 무거워질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저는 성범죄 1심 변호와 항소심 변호를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같은 사건이라도 사실오인과 양형부당 중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1심 판결에 승복하기 어렵다면, 항소이유서 제출기한이 지나기 전이 바로 상담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실오인과 양형부당을 항소이유서에 같이 주장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다만 두 주장은 목표와 논리 구조가 다르므로, 어느 쪽을 주된 이유로 삼고 어느 쪽을 예비적으로 주장할지 비중을 명확히 나눠 기재해야 항소심 재판부가 각각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Q. 1심에서 이미 자백했는데 항소심에서 무죄를 주장할 수 있나요?
A.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매우 어렵습니다. 자백을 번복하려면 왜 1심에서 자백했는지, 새로 드러난 사정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소명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반성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어 양형에서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Q. 검사도 형이 가볍다며 항소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검사가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하면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 항소심에서 형이 높아질 수 있으므로, 피고인 측도 이에 대비한 방어자료를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Q. 항소하면 1심 실형 선고에 따른 구속이 자동으로 풀리나요?
A. 아닙니다. 항소 제기만으로 구속이 자동 해제되지 않고, 별도로 보석을 청구해 항소심 재판부의 결정을 받아야 하며, 청구가 받아들여지는 경우에만 석방됩니다.
Q. 양형부당만 다투기로 했다면 항소이유서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A. 1심 선고 이후 새로 생긴 사정(피해자와의 합의, 공탁, 치료·상담 이력, 재범방지 서약 등)과 1심 판결문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양형요소를 구체적 자료와 함께 정리해 제출해야 설득력이 있습니다.
Q. 항소이유서 제출기한을 놓치면 어떻게 되나요?
A. 기한 내 제출하지 않은 항소이유는 판단 대상에서 제외될 위험이 있어, 항소 자체가 사실상 무의미해질 수 있습니다. 기한은 소송기록접수통지를 받은 날부터 20일이므로 통지서를 받는 즉시 날짜를 확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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