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과정에서 자백을 했더라도, 그 진술이 강압이나 장기 구금, 회유 속에서 나온 것이라면 재판에서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변호인이 별다른 이의 없이 그 자백을 증거로 함에 동의했거나 피고인이 조서에 서명·무인까지 했더라도, 임의성이 의심되는 이상 법원은 이를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 확립된 법리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미 동의했으니 되돌릴 수 없다'고 오해하지만, 자백배제법칙은 당사자의 처분으로 좌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 글에서는 형사소송법 제309조 자백배제법칙이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 무엇이 임의성을 의심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왜 동의로도 치유되지 않는지를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자백배제법칙이란 무엇인가 — 형사소송법 제309조의 구조
형사소송법 제309조는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원칙은 단순한 법률 조항에 그치지 않고 헌법 제12조 제7항에도 그대로 규정돼 헌법상 원칙의 지위를 갖습니다. 그만큼 형사절차 전체에서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하는 규정으로 취급됩니다.
이 원칙이 존재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됩니다. 하나는 강압이나 회유로 얻어낸 자백은 진실과 어긋날 위험이 크다는 점(허위배제설)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방식으로 자백을 받아내는 수사 관행 자체가 피고인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점(인권옹호설)입니다. 실무와 학설은 이 둘을 함께 고려하는 절충적 입장을 취하는데, 자백이 유죄 인정에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하는 만큼 수사기관이 무리하게 받아내려는 유인이 크고, 그 결과로 나온 자백은 신빙성도 담보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바탕에 있습니다.
여기서 꼭 구분해야 할 개념이 증거능력과 증명력입니다. 증거능력은 법정에 낼 수 있는 자격 자체의 문제이고, 증명력은 일단 낼 수 있는 증거를 얼마나 믿을지의 문제입니다. 자백배제법칙은 증거능력을 다루는 규정이므로, 임의성이 의심되는 순간 그 자백 내용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애초에 법정에서 유죄 증거로 쓸 수 없게 됩니다. 내용의 진실성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자백배제법칙은 자백의 신빙성(증명력)이 아니라 증거로 쓸 자격 자체(증거능력)를 묻는 규정이다 — 임의성이 의심되면 내용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애초에 법정에 낼 수 없다.
임의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유 — 조문에 열거된 것과 실무에서 문제되는 유형
제309조는 고문·폭행·협박·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라는 네 가지 사유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도, 그 뒤에 "기망 기타의 방법"이라는 포괄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수사기법은 계속 변화하는데 조문에 적힌 몇 가지 유형만으로는 임의성 침해를 다 담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이 포괄조항을 근거로 다양한 유형의 절차적 하자가 임의성 의심 사유로 다뤄집니다.
조문에 직접 열거되지 않았지만 판례와 실무에서 임의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유로 취급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불법 체포·구속 상태에서 받은 자백, 진술거부권을 고지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진 진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실질적으로 침해된 상태에서의 조사, 밤을 새워가며 진행된 철야조사, 자백하면 선처하겠다는 식의 약속에 따른 자백, 거짓말탐지기나 마취분석 결과에 근거한 자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모두 조문의 '기타의 방법'에 포섭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입니다.
불법 체포·구속 상태에서 이뤄진 자백 — 체포·구속 자체의 위법성이 자백의 임의성에도 영향
진술거부권 미고지 — 고지 없이 받은 진술은 임의성 판단에서 불리하게 작용
변호인 조력권 침해 — 변호인 참여를 실질적으로 막은 상태에서의 조사
철야조사·비정상적으로 긴 조사시간 —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에 준하는 사정으로 평가
회유·이익 제공 약속 — 선처·불기소 등을 조건으로 한 자백 유도
왜 동의해도 증거가 되지 않는가 — 전문법칙의 동의와 다른 층위의 문제
형사소송법 제318조 제1항은 검사와 피고인이 증거로 함에 동의한 서류나 물건은 진정한 것으로 인정될 때 증거로 쓸 수 있다고 정합니다. 피의자신문조서처럼 원진술자가 아닌 형태로 법정에 제출되는 자료(전문증거)는 원래 엄격한 진정성립 절차를 거쳐야 증거능력이 인정되는데, 당사자가 그 내용을 다투지 않고 동의하면 이 절차를 생략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입니다. 실무에서는 조서 내용을 굳이 다투지 않겠다는 취지로 이 동의가 흔히 쓰입니다.
그런데 자백배제법칙은 이 동의 제도가 작동하는 층위 자체가 다릅니다. 제318조의 동의는 '조서가 진술한 대로 작성됐는가'라는 형식적 요건을 당사자의 처분으로 갈음하는 절차입니다. 반면 제309조의 임의성은 그 자백을 얻어낸 과정 자체가 적법하고 신빙할 만했는지를 묻는 실체적 요건이어서, 당사자가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사익이 아닙니다. 이 원칙이 헌법 제12조 제7항에 명시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 진술거부권과 적법절차는 국가형벌권 행사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공익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피고인 개인의 소송상 동의로 흔들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래서 변호인이 공판준비절차에서 별다른 이의 없이 신문조서를 증거로 함에 동의한다고 진술했더라도, 기록이나 진술 내용에서 임의성을 의심할 사정이 드러나면 법원은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직권으로 이를 심리해야 합니다. 피고인 측이 재판 도중 뒤늦게 임의성을 다투기 시작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동의는 이 심리를 가로막는 방어막이 되지 못합니다.
제318조의 동의는 '조서가 진술대로 작성됐는가'라는 형식적 요건을 대체하는 제도이고, 제309조의 임의성은 그 진술을 얻어낸 과정 자체의 적법성을 묻는 실체적 요건이다 — 층위가 다르므로 동의로도 치유되지 않는다.
법원의 판단 기준과 증명책임 — 검사가 입증해야 한다
대법원 2012. 11. 29. 선고 2010도3029 판결은 피고인이 피의자신문조서나 공판정 진술의 임의성을 다투는 경우, 법원이 피고인의 학력·경력·직업·사회적 지위·지능 정도, 진술 내용, 조서의 형식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참작해 자유로운 심증으로 임의성 여부를 판단하면 된다고 밝혔습니다. 정형화된 심사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별 사건의 구체적 사정을 두루 살펴 판단한다는 취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증명책임의 소재입니다. 임의성에 다툼이 제기되면 그 의문을 해소하는 증명 책임은 피고인이 아니라 검사에게 있습니다. 이 증명은 엄격한 증명이 아니라 자유로운 증명으로 족하다는 것이 실무의 태도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법관의 합리적 심증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습니다. 검사가 이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면 법원은 임의성을 의심할 이유가 있다고 보아 그 자백을 유죄의 증거에서 제외해야 합니다.
실무에서 검사 측은 조사과정을 담은 영상녹화물, 조사 시각과 중간 휴식 시점이 기록된 조사과정확인서, 변호인 참여 여부와 그 서명, 진술거부권 고지 확인란 등을 제출해 임의성을 뒷받침하려 합니다. 반대로 피고인 측은 조사 시간이 통상적 범위를 벗어나 길었다는 기록, 구금 당시의 환경, 신체·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진단서, 조사 전후 진술 태도의 변화를 뒷받침할 자료를 준비해 임의성을 다툽니다.
수사기관 자백의 하자가 법정에서도 이어지는 경우
앞서 본 대법원 2010도3029 판결은 또 하나의 중요한 법리를 함께 밝히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수사기관에서 가혹행위 등으로 임의성 없는 자백을 하고, 그 후 공판정에서도 그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된 상태에서 같은 내용의 자백을 했다면, 법정에서의 자백 역시 임의성 없는 자백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판 장소가 바뀌었다는 사정만으로 자동으로 새로운 임의적 진술이 되지는 않는다는 취지입니다.
예를 들어 수사 초기 장시간 구금 상태에서 강압적인 조사 환경 속에 자백서를 작성한 피고인이, 기소된 뒤 공판정에서도 위축된 심리 상태로 동일한 진술을 반복했다면 '법정 진술이니 별개의 임의로운 자백'이라고 곧바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다만 시간이 상당히 경과했거나, 구금 상태가 해소됐거나, 변호인의 실질적 조력을 받게 됐거나, 조사 환경 자체가 달라졌다는 등의 사정으로 심리적 강압 상태가 실제로 끊겼다고 볼 수 있다면, 법정 자백은 수사기관 자백과 별개로 평가될 여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임의성을 다투는 변호 전략은 수사 단계의 자백만 겨냥해서는 부족합니다. 공판정 진술이 이뤄질 당시 피고인의 심리 상태가 실제로 자유로웠는지, 수사 단계의 압박이 그때까지 이어지고 있었는지까지 함께 살펴야 합니다.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과의 관계 — 겹치지만 서로 다른 배제사유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정합니다. 자백배제법칙(제309조)이 자백이라는 특정 증거유형에서 임의성이라는 특정 하자에 초점을 맞춘 규정이라면,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은 증거 수집 절차 전반의 적법성을 문제 삼는 일반 규정이라는 점에서 서로 겹치면서도 구별됩니다.
실무에서는 하나의 사실관계가 두 조문에 동시에 걸리는 경우가 흔합니다. 예컨대 위법한 체포·구속 상태에서 받아낸 자백은 제309조의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타의 방법'에도 해당할 수 있고, 동시에 체포 자체의 위법성을 이유로 제308조의2가 함께 문제됩니다. 이 경우 자백 그 자체뿐 아니라, 그 자백을 기초로 추가로 확보한 2차적 증거(예: 자백에 따라 발견한 압수물)의 증거능력까지 함께 다툴 여지가 생깁니다.
위법수집증거를 원인으로 이뤄진 법정 자백도 마찬가지로 문제됩니다. 위법한 절차가 법정 자백을 이끌어낸 직접적 원인이라고 인정되면 그 법정 자백의 증거능력도 함께 부정될 수 있습니다. 다만 피고인이 그 위법한 절차와 무관하게 독립된 다른 사정에 근거해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진술을 했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그 부분은 별도로 평가됩니다.
실무에서 임의성을 다투는 법 —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조서에 서명하고 무인까지 찍었다는 사실만으로 임의성을 인정한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서명·무인은 조서에 적힌 내용이 진술한 대로 기재됐는지(형식적 진정성립)를 확인하는 절차에 가깝고, 그 진술을 하게 된 과정 자체가 강압적이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임의성을 다투려면 공판준비절차나 공판기일에서 명확히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이후에는 아래와 같은 자료를 확보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뒤따릅니다.
조사과정 영상녹화물·조사과정확인서 열람등사로 조사 시간·중단·재개 시점 확인
조사 시간이나 구금 기간이 통상적 범위를 벗어났는지 대조
진술거부권·변호인 조력권이 실제로 고지되고 보장됐는지 확인
회유나 이익 제공 약속이 있었는지 관련자 진술·기록 확보
조사 전후 진술 태도나 내용에 부자연스러운 변화가 있는지 대조
임의성 다툼이 받아들여져 자백이 배제되더라도 그것으로 곧바로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검사가 자백과 무관한 독립된 증거로 공소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면 유죄 판단이 유지될 수 있으므로, 임의성 다툼은 전체 증거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까지 함께 따져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조서에 직접 서명하고 무인까지 찍었는데도 나중에 임의성을 다툴 수 있나요?
A. 네. 서명·무인은 조서에 적힌 내용이 진술한 대로 기재됐다는 형식적 확인에 가깝고, 그 진술을 이끌어낸 과정이 강압적이었는지는 별개 문제입니다. 조사 과정에서 협박이나 부당한 장기 구금, 회유가 있었다면 서명 여부와 무관하게 임의성을 다툴 수 있습니다.
Q. 변호인이 공판에서 조서를 증거로 함에 동의했다면 이제 와서 임의성을 다툴 수 없나요?
A. 다툴 수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18조의 동의는 전문증거의 형식적 요건을 갈음하는 제도일 뿐, 자백배제법칙에 따른 임의성 심사를 대체하지 못합니다. 법원은 임의성을 의심할 사정이 드러나면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직권으로 심리해야 합니다.
Q. 임의성이 없다고 인정되면 그 사건은 무죄가 되나요?
A. 자백만 증거에서 제외될 뿐, 검사가 자백과 무관한 다른 독립된 증거로 공소사실을 증명하면 유죄 판단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다만 자백이 유일한 증거였던 사건이라면 임의성 배제가 사건 전체 결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Q. 임의성을 의심할 사유는 누가 증명해야 하나요?
A. 피고인이 임의성에 의문을 제기하면, 그 의문을 해소하는 증명 책임은 검사에게 있습니다. 검사는 조사과정 영상녹화물이나 조사과정확인서 등으로 임의성을 뒷받침해야 하며, 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법원은 자백을 증거에서 제외해야 합니다.
Q. 수사기관에서 강압적으로 받은 자백을 재판에서 그대로 반복하면 어떻게 되나요?
A. 수사기관에서의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공판정까지 이어진 상태에서 같은 내용을 진술했다면, 법정 진술도 임의성 없는 자백으로 봅니다. 다만 시간 경과나 구금 해소, 변호인 조력 등으로 심리적 강압이 실제로 끊겼다면 법정 진술은 별개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Q.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나 진술거부권을 고지받지 못하고 한 자백도 문제가 되나요?
A. 네. 거짓말탐지기·마취분석에 의한 자백, 진술거부권을 고지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진 자백은 형사소송법 제309조의 '기타의 방법'에 포섭돼 임의성을 의심할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조사 경위와 고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맺음말
자백배제법칙은 자백 내용이 진실에 부합하는지와 무관하게, 그 자백을 얻어낸 과정이 임의로운 것이었는지만을 묻는다는 점에서 다른 증거법칙과 구별됩니다. 피고인이 조서에 서명했거나 법정에서 증거로 함에 동의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이 심사를 피해갈 수 없고, 임의성이 의심되는 이상 법원은 직권으로라도 그 자백을 배제해야 합니다.
수사 초기에는 자백서를 이미 작성했다는 사실 때문에 되돌릴 수 없다고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사 과정에 강압적 요소가 있었다면 이는 여전히 다툴 수 있는 문제입니다. 수원지검이나 안산지원 관할 사건으로 조사·재판을 앞두고 있다면, 조사 경위와 관련 기록부터 꼼꼼히 정리해 두고 임의성 다툼의 여지가 있는지 검토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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