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나 제작을 맡아 자재를 사고 인력까지 투입한 뒤인데, 원사업자로부터 갑자기 "발주가 취소돼서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통보를 받는 수급사업자가 적지 않습니다. 발주자와 원사업자 사이의 사정이 바뀐 것뿐인데,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는 쪽은 이미 비용을 지출한 수급사업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위탁취소가 항상 정당한 것은 아니며,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수급사업자의 책임 없는 위탁취소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발주철회로 인한 위탁취소가 왜 문제되는지, 그리고 착수 이후 계약이 끊겼을 때 실제로 청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부당한 위탁취소란 무엇인가 — 하도급법 제8조의 금지 요건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은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사이의 거래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지위에 있는 수급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입니다. 그중에서도 하도급법 제8조 제1항 제1호는 원사업자가 제조·수리·시공·용역 등의 위탁을 한 후 수급사업자의 책임으로 돌릴 사유가 없는데도 그 위탁을 임의로 취소하거나 변경하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합니다. 여기서 "임의로"란 수급사업자와의 합의 없이, 혹은 정당한 이유 없이 원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계약 내용을 뒤집는 것을 뜻합니다.
이 조항이 특히 문제되는 것은 수급사업자가 이미 착수한 뒤입니다. 위탁을 받은 수급사업자는 통상 자재를 구매하고 인력을 배치하며 설비를 가동하는 등 실제 비용을 먼저 지출한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합니다. 이 단계에서 위탁이 취소되면 이미 지출한 비용을 회수할 길이 막막해지고, 다른 일감을 받을 기회까지 놓치는 이중의 손실을 입게 됩니다. 하도급법이 위탁취소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발주철회는 누구의 책임인가 — 원사업자와 발주자 사이 사정의 법적 평가
실무에서 가장 흔한 위탁취소 사유는 "발주자가 발주를 취소해서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 사정은 원사업자와 그 위 발주자 사이의 계약관계에서 발생한 문제일 뿐, 수급사업자가 관여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원사업자의 경영상황이나 시장여건의 변동, 발주자의 발주취소·발주중단에 따라 위탁을 취소하는 것은 수급사업자의 책임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실무의 일관된 평가입니다.
하도급법 제8조 제1항이 예외로 인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수급사업자의 책임으로 돌릴 사유"뿐입니다. 수급사업자가 납품한 목적물에 하자가 있거나, 정해진 사양을 지키지 않았거나, 납기를 수급사업자 스스로의 사정으로 어긴 경우처럼 수급사업자 쪽에서 원인을 제공한 경우만 여기에 해당합니다. 발주자의 사업 철수, 원사업자의 자금 사정 악화, 프로젝트 자체의 무산, 시장가격 변동처럼 수급사업자와 무관한 사유는 모두 원사업자가 부담해야 할 위험이지 수급사업자에게 전가할 수 있는 사유가 아닙니다.
발주가 철회됐다는 사정은 원사업자와 발주자 사이의 문제일 뿐이다 — 수급사업자의 책임으로 돌릴 사유가 없는 한, 그 결과를 수급사업자에게 전가하는 위탁취소는 부당하다.
정당한 사유의 판단기준 — 실질적 협의와 정당한 보상
모든 위탁취소가 곧바로 위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한 위탁취소, 수령거부 및 반품행위에 대한 심사지침」은 위탁취소에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를 판단할 때 두 가지를 핵심으로 봅니다. 하나는 취소 사유와 협의 과정이 정상적인 거래관행에 부합했는지, 다른 하나는 위탁취소로 수급사업자가 입게 될 손실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하고 취소했는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합의서에 서명을 받았다"는 형식이 아니라 협의의 실질입니다. 협의 사유가 정상적인 거래관행에서 벗어나 있거나, 협의 과정에서 원사업자가 사회통념상 부적절한 수단이나 방법을 사용했거나, 협의 자체가 형식적이고 충분하지 못했다면 정당한 사유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수급사업자가 입은 손실에 대한 보상 없이 취소만 통보한 경우 역시 정당성을 인정받기 힘듭니다.
위탁취소 사유와 시점이 정상적인 거래관행에 부합하는지
협의 과정에서 사회통념상 부적절한 압박이나 강요가 없었는지
협의가 형식적 통보가 아니라 실질적이고 충분하게 이뤄졌는지
수급사업자가 입을 손실에 대해 정당한 보상이 함께 논의됐는지
청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의 범위 — 기투입비용부터 일실이익까지
위탁취소가 부당하다고 인정되면 하도급법 제35조 제1항에 따라 원사업자는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집니다. 이때 손해배상의 범위는 하도급법이 별도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민법상 손해배상 법리를 따라, 위탁취소로 수급사업자가 실제로 입은 손실을 기준으로 산정합니다. 실무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폭넓게 인정되는 것은 착수 이후 이미 지출한 비용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미 구매한 원자재·부품의 대금, 투입한 인건비와 외주비, 위탁 이행을 위해 임차하거나 가동한 설비·장비의 비용, 이미 제작하거나 시공을 마친 부분의 기성고 상당액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위탁취소로 다른 계약을 수주할 기회를 놓쳤다는 일실이익도 이론적으로는 청구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인과관계와 손해액을 구체적으로 입증하기가 까다로워 실무에서는 기투입비용 위주로 청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범위를 실제로 인정받으려면 지출 사실을 뒷받침할 자료가 필수입니다. 자재 구매 세금계산서와 견적서, 인건비 지급 내역, 작업일지, 현장 사진처럼 착수 이후 지출한 비용을 구체적으로 소명할 수 있는 자료를 미리 정리해 두어야 청구 단계에서 손해액을 다투는 부담이 줄어듭니다.
이미 구입한 원자재·부품 대금
착수 이후 투입한 인건비·외주비
설비·장비 임차 및 가동 비용
이미 완료한 부분의 기성고 상당액
구체적 근거가 있는 범위의 일실이익
3배 배상과 입증책임의 전환 — 하도급법 제35조의 징벌적 배상
부당한 위탁취소는 일반 손해배상에 그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도급법 제35조 제2항 제1호는 제8조 제1항을 위반한 부당한 위탁취소를 비롯해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 부당반품, 부당감액 등 중대한 위반행위에 대해 손해의 3배 이내에서 배상책임을 인정합니다. 실제 손해액을 넘어서는 이 배상 규정은 원사업자에게 위탁취소의 무게를 실감하게 하려는 취지로, 2013년 법 개정으로 적용 범위가 부당한 위탁취소까지 확대됐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입증책임의 구조입니다. 제35조 제1항과 제2항 모두 "원사업자가 고의 또는 과실이 없음을 입증한 경우"에만 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규정해, 통상의 손해배상과 달리 무과실의 증명 책임을 원사업자에게 지웁니다. 즉 수급사업자가 원사업자의 고의·과실을 증명할 필요 없이, 위탁취소 사실과 손해 발생만 소명하면 되고 원사업자 쪽에서 자신에게 잘못이 없었다는 사정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발주철회는 불가항력이었다"는 주장만으로는 이 입증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부당한 위탁취소는 실손해 배상에 그치지 않고 손해액의 3배까지 청구할 수 있는 하도급법 제35조 제2항의 적용대상이며, 원사업자가 스스로 무과실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서면 증거 확보 — 위탁 사실을 다투지 못하게 만드는 법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먼저 위탁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다퉈지지 않아야 합니다. 하도급법 제3조는 원사업자가 위탁 시 위탁내용을 서면으로 발급하도록 의무화하고 있고, 수급사업자가 위탁받은 내용을 통지했는데 원사업자가 정해진 기간 안에 인정 또는 부인의 회신을 서면으로 하지 않으면 수급사업자가 통지한 내용대로 위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착수 지시가 정식 발주서 없이 구두나 메신저로만 이뤄지는 현장이 여전히 많은 만큼, 이 추정 규정은 수급사업자에게 중요한 방어선입니다.
실무적으로는 위탁이 있었다는 사실과 착수 시점, 그리고 취소 통보의 시점을 모두 객관적 자료로 남겨두는 것이 청구 단계에서 결정적입니다. 특히 착수 시점이 특정되지 않으면 그 이후 지출한 비용의 범위 자체가 흔들릴 수 있어, 준비단계부터 기록을 쌓아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발주·위탁 관련 문자메시지·메신저 대화 및 이메일
착수 지시서·작업지시서, 착수 이전 설계·견적 자료
자재 구입 영수증·세금계산서와 그 발주일자
작업일지와 날짜가 표시된 현장 사진
위탁취소를 통보받은 문서·메시지 원본
공정거래위원회 신고와 민사청구의 병행 — 시정명령·과징금부터 손해배상까지
하도급법 위반은 수급사업자와 원사업자 사이의 민사 문제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면 조사를 거쳐 시정명령이나 과징금 같은 행정제재가 내려질 수 있고, 위반행위에 따라 부과된 벌점이 누적되면 공공입찰 참가제한 요청 등 원사업자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행정 절차는 손해배상금을 직접 지급해주는 절차는 아니지만,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관계와 처분 내용이 이후 민사소송에서 유리한 증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다만 공정위 신고와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는 각각 별도의 절차로 진행됩니다. 공정위 처리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으므로, 손해가 급박하거나 청구권 행사에 시간적 제약이 있다면 공정위 신고 결과만 기다리기보다 민사청구를 먼저 준비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두 절차를 병행하면서 서로의 자료를 보완하는 방식이 실무에서는 가장 흔하게 쓰입니다.
실무에서 자주 놓치는 함정 — 형식적 합의서와 착수 시점의 증거
위탁취소를 통보하면서 원사업자가 미리 준비한 "위탁 취소 합의서" 또는 "정산 합의서"에 서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때 서명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위탁취소에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곧바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본 심사지침의 판단기준대로, 협의 과정이 실질적이지 않았거나 손실에 대한 정당한 보상 없이 이뤄진 서명이라면 여전히 부당한 위탁취소로 다툴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서명을 요구받았다고 해서 서둘러 응하기보다, 협의 내용과 보상 조건을 구체적으로 따져본 뒤 결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또 하나 놓치기 쉬운 것이 착수 시점의 증거입니다. 위탁 자체는 문서로 남아 있어도 실제로 언제부터 작업에 착수했는지를 특정하지 못하면, 그 이후 지출한 비용을 손해로 인정받는 과정에서 다툼이 커질 수 있습니다. 자재 발주와 설계 준비 등 착수 이전 단계부터 날짜가 남는 자료를 꾸준히 확보해 두는 습관이 결국 손해배상 청구 단계에서의 부담을 줄여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발주자가 사업을 접어서 원사업자가 위탁을 취소했다면 정당한 사유인가요?
A. 발주자의 사정으로 인한 취소는 원사업자와 발주자 사이의 문제일 뿐, 수급사업자의 책임으로 돌릴 사유가 아니어서 원칙적으로 부당한 위탁취소에 해당합니다. 다만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와 실질적으로 협의하고 정당한 보상을 한 경우라면 예외적으로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Q. 구두로만 발주받았는데 위탁 사실 자체를 원사업자가 부인하면 어떻게 하나요?
A. 하도급법 제3조에 따라 원사업자가 위탁 내용을 통지받고도 정해진 기간 안에 인정·부인의 서면 회신을 하지 않으면 통지한 내용대로 위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메신저 대화, 이메일, 작업지시서 등 위탁 정황을 뒷받침할 자료를 최대한 확보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손해배상 청구 시 아직 받지 못한 이익, 즉 일실이익도 포함되나요?
A. 실무적으로는 이미 지출한 자재비·인건비 등 기투입비용 위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고, 일실이익은 인과관계와 손해액 입증이 까다로워 다른 계약기회 상실 등 구체적 근거를 제시해야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청구 전에 지출 증빙부터 최대한 정리해 두는 것이 유리합니다.
Q. 3배 배상은 모든 위탁취소에 적용되나요?
A. 하도급법 제35조 제2항 제1호에 따라 제8조 제1항을 위반한 부당한 위탁취소로 인정되는 경우 손해의 3배 이내에서 배상책임이 인정됩니다. 다만 원사업자가 고의 또는 과실이 없었음을 스스로 입증하면 그 책임을 면할 수 있습니다.
Q. 원사업자가 준 합의서에 서명했는데 그래도 청구할 수 있나요?
A. 서명 자체만으로 정당한 사유가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협의 과정이 형식적이었거나 정당한 보상 없이 이뤄진 합의라면 심사지침상 정당한 사유로 인정받기 어려워 여전히 다툴 여지가 있습니다.
Q.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면 손해배상도 함께 받을 수 있나요?
A.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정명령이나 과징금 같은 행정제재를 결정할 뿐 손해배상금을 직접 지급해주지는 않습니다.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별도로 민사소송이나 합의를 진행해야 하며, 공정위 조사 결과가 그 절차에서 유리한 자료로 쓰일 수 있습니다.
맺음말
착수 이후 위탁이 취소됐다면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그 취소가 정말 수급사업자의 책임으로 돌릴 사유에서 비롯됐는지입니다. 발주자의 발주철회나 원사업자의 경영상 사정처럼 수급사업자와 무관한 이유라면, 그 결과를 일방적으로 떠안을 이유가 없습니다.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는 협의의 실질과 보상 여부로 판단되고, 인정되지 않는다면 이미 투입한 비용을 중심으로 손해배상을, 경우에 따라서는 3배 배상까지 청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수원·경기남부 지역은 제조·건설 하도급 거래가 활발한 만큼, 발주 변동에 따른 위탁취소 분쟁도 드물지 않게 발생합니다. 위탁취소를 통보받았다면 서둘러 합의서에 서명하기보다 지출 자료부터 정리하고 청구 가능한 범위를 차분히 검토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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