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인의 진술을 뒷받침할 유일한 목격자가 곧 해외로 출국을 앞두고 있거나, 사건 현장을 찍은 CCTV 영상이 보관기간 경과로 자동 삭제되기 직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형사재판은 원칙적으로 공판정에서 검사와 피고인이 다투는 가운데 증거를 조사하지만, 정식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핵심 증거가 사라져 버리면 그 원칙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형사소송법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제1회 공판기일 전이라도 판사 앞에서 미리 증거를 확보해 두는 증거보전 절차를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증거보전 청구를 누가, 어떤 요건으로, 어떻게 신청할 수 있는지와 실무에서 자주 놓치는 함정을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증거보전 청구란 — 형사소송법 제184조가 마련한 예외적 확보 절차
형사소송의 원칙은 공판중심주의입니다. 증거는 원칙적으로 정식 공판정에서 검사와 피고인 양측이 다투는 가운데 법정에서 조사되어야 합니다. 형사소송법 제184조는 이 원칙에 예외를 둡니다. 검사, 피고인, 피의자 또는 변호인은 미리 증거를 보전하지 않으면 그 증거를 사용하기 곤란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정식 공판이 열리기 전이라도(제1회 공판기일 전) 판사에게 압수, 수색, 검증, 증인신문 또는 감정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청구를 받은 판사는 그 처분에 관하여 법원 또는 재판장과 동일한 권한을 가지므로, 공판정이 아니라 판사 개인의 심리를 통해서도 정식 증거조사와 다름없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 절차가 존재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형사재판은 통상 수사와 기소를 거쳐 몇 달, 길게는 1년 넘게 걸리기도 하는데, 그 사이 사람의 기억은 흐려지고 영상은 지워지고 현장은 바뀝니다. 증거가 있어도 정식 공판 시점에는 이미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사례가 실무에서 드물지 않습니다. 증거보전은 이 시차를 메우기 위해, 사건이 아직 법원에 정식으로 계속되기 전이라도 판사가 미리 개입해 증거의 현재 상태를 고정해 두는 제도입니다.
여기서 "제1회 공판기일 전"이라는 표현을 수사 단계로만 좁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그보다 범위가 넓습니다. 이미 검찰이 공소를 제기한 뒤라도 법원이 아직 첫 공판기일을 열지 않았다면 그 사이 기간도 포함됩니다. 기소 직후 재판부 배당과 첫 기일 지정까지 걸리는 시간 동안에도 증거가 사라질 위험은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 시기까지 청구권을 열어 둔 것입니다.
증거보전은 재판이 열리기를 기다리다 증거 자체가 사라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판사가 공판 전에 미리 개입해 증거를 고정해 두는 예외적 절차다.
누가 청구할 수 있나 — 검사만의 권한이 아니다
증거보전 청구권자는 검사, 피고인, 피의자, 변호인 네 부류입니다. 수사기관만 쓸 수 있는 제도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직 기소되지 않은 피의자와 그 변호인도 독립적으로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제도의 실질적 의미입니다. 수사기관이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확보하는 데는 적극적이어도,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까지 서둘러 확보해 줄 유인은 크지 않습니다. 이럴 때 피의자 측이 스스로 증거보전을 청구해 유리한 정황을 먼저 고정해 둘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폭행 사건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피의자 쪽에 자신의 정당방위를 뒷받침할 목격자가 있는데, 그 목격자가 곧 해외로 장기 파견을 나갈 예정이라면 수사가 끝나고 기소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 피의자나 변호인이 직접 증거보전을 청구해, 출국 전에 그 목격자를 판사 앞에서 증인으로 신문해 진술을 조서로 남겨 둘 수 있습니다. 검사 역시 마찬가지로, 피해자나 목격자의 진술이 흔들리기 전에 미리 확보해 두고 싶을 때 이 절차를 이용합니다.
검사가 청구하는 전형적인 상황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성범죄 피해자가 충격으로 진술이 점점 위축되거나, 사고를 목격한 참고인이 고령이나 지병으로 공판 시점까지 진술이 어려워질 것이 우려되는 경우, 검사는 기소 전이라도 그 사람을 미리 증인으로 신문해 조서를 남겨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처럼 증거보전은 어느 한쪽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 증거가 훼손될 위험을 먼저 감지한 쪽이 선제적으로 활용하는 절차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무엇을 확보할 수 있나 — 압수·수색·검증·증인신문·감정, 그러나 신문은 제외
형사소송법 제184조 제1항이 열거하는 처분은 압수, 수색, 검증, 증인신문, 감정 다섯 가지로 한정됩니다. 여기에 피고인이나 피의자에 대한 신문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문이 정한 처분 목록에 없는 이상, 증거보전 절차를 이용해 피의자·피고인 본인을 신문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실무의 일관된 해석입니다. 이는 자기부죄거부특권을 비롯한 피의자·피고인의 방어권이, 수사기관의 통상적인 신문 절차 바깥에서 우회적으로 침해되지 않도록 하려는 취지로 이해됩니다.
다섯 가지 처분은 각각 쓰임이 다릅니다. 압수·수색은 물건이나 서류가 폐기·은닉되기 전에, 검증은 사고 현장이나 물건의 상태가 원상을 잃기 전에, 증인신문은 사람의 기억이나 소재가 사라지기 전에, 감정은 감정 대상물이 훼손·변질되기 전에 그 결과를 남기기 위한 것입니다. 실무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증인신문과 검증입니다.
압수·수색 — 폐기·은닉 우려가 있는 물건·서류를 미리 확보.
검증 — 시간이 지나면 원상이 훼손될 사고 현장·물건의 상태를 미리 확인·기록.
증인신문 — 기억이 흐려지거나 소재를 알 수 없게 될 우려가 있는 목격자·참고인의 진술을 미리 조서로 고정.
감정 — 시간이 지나면 감정이 어려워지는 대상물(부패·변질 우려가 있는 물건 등)에 대한 감정 결과를 미리 확보.
판사가 보는 '증거보전의 필요성' — 무엇을 소명해야 하나
증거보전 청구를 하려면 단순히 청구서를 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형사소송법 제184조 제2항은 청구를 하려면 그 사유를 소명해야 한다고 정합니다. 소명은 증명보다는 낮은 정도의 입증이지만, 막연히 "혹시 몰라서"라는 이유만으로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판사가 확인하려는 것은 그 증거를 지금 확보하지 않으면 정식 공판 때는 실제로 사용하기 곤란해질 구체적 사정이 있는지입니다.
실무에서 필요성이 인정되는 대표적인 사정으로는, 목격자가 고령이거나 중병을 앓아 공판 시점까지 진술이 어려워질 우려가 있는 경우, 증인이 해외 이주나 장기 출국을 앞둔 경우, 사건관계인의 회유나 압박으로 진술이 번복될 조짐이 보이는 경우, CCTV나 블랙박스 영상이 저장장치 용량 문제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덮어써지거나 삭제되는 경우, 사고 현장이 곧 철거·복구되어 원상이 사라지는 경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사정은 진단서, 출국 예정 자료, 관리업체의 영상 보관기간 안내 등 뒷받침할 자료와 함께 소명하는 것이 청구 인용 가능성을 높입니다.
손해배상이나 교통사고 관련 사건에서도 이 절차가 활용됩니다. 사고 직후 노면에 남은 스키드마크나 차량 파손 부위, 공사 현장의 안전조치 미비 상태처럼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복구되거나 지워지는 흔적은, 수사가 본격화되기 전에 검증으로 남겨 두지 않으면 나중에는 사진 몇 장 외에 객관적 증거가 남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단순히 "상대방이 나중에 말을 바꿀 것 같다"는 정도의 추상적 우려는 소명자료 없이는 필요성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증거보전은 만일을 대비한 보험이 아니라, 그 증거가 구체적으로 사라질 위험이 소명된 경우에만 인정되는 예외적 절차다.
청구 절차와 관할 — 서면과 소명자료를 갖춰 신청
증거보전 청구는 서면으로 합니다. 청구서에는 사건의 개요, 증명할 사실, 청구하는 증거의 종류와 보전하려는 방법(예: 특정 증인의 신문, 특정 장소의 검증)을 구체적으로 적고, 앞서 살펴본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소명자료를 첨부합니다. 관할은 그 증거를 사용하게 될 사건이 계속되는 법원, 또는 압수·수색·검증하려는 대상물이나 장소, 신문하려는 증인이 거주하거나 현재 있는 곳을 관할하는 지방법원에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청구를 받은 판사는 서면 심사만으로 처리하기도 하지만, 필요하면 심문 기일을 열어 청구인의 설명을 직접 듣기도 합니다. 청구가 인용되면 판사가 직접 압수·수색·검증을 실시하거나 증인을 신문하며, 그 과정에서 검사·피고인·변호인에게는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특히 증인신문의 경우 상대방에게도 참여 기회를 보장해야 이후 그 조서를 공판에서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으므로, 신문 일시가 통지되면 대응 준비를 서둘러야 합니다.
참고인 증인신문 청구와는 어떻게 다른가
수사 단계에서 참고인이 출석이나 진술을 거부할 때, 검사가 판사에게 그 참고인에 대한 증인신문을 청구할 수 있는 별도 제도(형사소송법 제221조의2)가 있습니다. 증거보전과 이름이 비슷해 혼동하기 쉽지만 둘은 신청권자와 요건이 다릅니다. 참고인 증인신문 청구는 검사만 할 수 있고, 참고인이 출석·진술을 거부한 경우로 요건이 한정됩니다. 반면 증거보전은 검사뿐 아니라 피고인·피의자·변호인도 청구할 수 있고, 대상도 증인신문에 그치지 않고 압수·수색·검증·감정까지 아우릅니다.
실무적으로는 참고인이 협조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이라면 검사가 참고인 증인신문 청구를 검토하고, 참고인은 협조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진술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사정이 있다면 증거보전을 검토하는 식으로 상황에 맞는 절차를 구분해 선택하게 됩니다. 두 제도를 혼동해 잘못된 절차로 신청하면 각하되어 시간만 허비할 수 있으므로, 어떤 사정으로 어떤 청구를 하는지부터 명확히 정리해야 합니다.
청구가 기각되면 — 3일 이내 항고
형사소송법 제184조 제4항은 증거보전 청구를 기각하는 결정에 대하여 3일 이내에 항고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청구가 기각되었다고 그대로 포기할 것이 아니라, 기각 사유를 확인해 소명자료를 더 갖춰 항고로 다투거나, 사정이 달라졌다면 새로 청구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필요성 판단의 근거가 되는 사정 자체가 바뀌지 않은 채 같은 이유로 반복 신청하면 다시 기각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처음 신청 단계에서부터 소명자료를 충실히 갖추는 편이 효율적입니다.
반대로 청구가 인용되어 증거보전이 진행되는 경우, 그 처분에 이의가 있는 상대방이 별도로 다툴 방법은 마땅치 않은 것이 실무의 설명입니다. 그래서 증인신문이나 검증이 실시되는 기일이 통지되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그 기일에 참여해 반대신문 등으로 자신의 입장을 조서에 함께 남겨 두는 것이 사실상 유일하고 중요한 대응 방법이 됩니다.
확보한 증거는 나중에 어떻게 쓰이나 — 조서의 보전과 증거능력
증거보전 절차에서 작성된 조서와 증거물은 그 사건에 관한 소송절차와 별개로 판사가 보전할 의무를 집니다. 이후 사건에 관계된 검사, 피고인, 피의자, 변호인은 판사의 허가를 얻어 그 서류와 증거물을 열람하거나 등사할 수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185조). 정식으로 기소가 이루어지면 이 서류는 해당 형사사건 기록에 편철되어 공판절차에서 증거로 제출될 수 있습니다.
특히 증거보전 절차에서 작성된 증인신문조서는 법관의 면전에서 작성된 조서로서, 원진술자를 다시 소환하지 않아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지위를 갖는다는 것이 실무의 일반적 설명입니다. 다만 이는 그 조서가 곧바로 유무죄를 결정짓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공판에서는 검사와 피고인 양측에게 그 조서의 증명력을 다툴 기회가 주어지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법원이 증인을 다시 소환해 신문하기도 합니다. 증거보전은 어디까지나 증거가 사라지는 것을 막는 절차이지, 그 증거의 증명력까지 확정해 버리는 절차는 아닙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증거보전은 기소되기 전에도 청구할 수 있나요?
A. 네, 피의자와 변호인도 수사 단계에서 직접 청구할 수 있습니다. 요건은 제1회 공판기일 전이면 충족되므로, 아직 기소되지 않은 수사 단계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Q. 증거보전으로 피의자나 피고인을 신문할 수 있나요?
A. 아니요. 조문이 열거하는 처분은 압수·수색·검증·증인신문·감정이며 피고인이나 피의자 본인에 대한 신문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방어권 보호 취지상 이 절차로 본인을 신문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Q. 청구가 기각되면 다시 신청할 수 있나요?
A. 기각 결정에 대해서는 3일 이내 항고할 수 있고, 소명자료를 보강해 재신청도 가능합니다. 다만 필요성 판단의 근거가 그대로라면 같은 이유의 재신청은 다시 기각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Q. 증거보전으로 확보한 증인신문조서는 재판에서 그대로 쓸 수 있나요?
A. 법관의 면전에서 작성된 조서로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공판에서는 검사·피고인 양측에게 그 조서의 증명력을 다툴 기회가 주어지고, 필요하면 증인이 다시 소환되기도 합니다.
Q. 증거보전 청구서에는 무엇을 적어야 하나요?
A. 증명할 사실, 청구하는 증거와 보전 방법, 그리고 미리 확보하지 않으면 사용이 곤란해지는 구체적 사정을 뒷받침하는 소명자료를 갖춰야 합니다. 막연한 우려만으로는 필요성이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Q. 참고인이 진술을 거부하면 증거보전을 청구하면 되나요?
A. 참고인의 출석·진술 거부를 이유로 한 증인신문 청구는 검사만 할 수 있는 별도 절차(형사소송법 제221조의2)이고, 증거보전은 신청권자와 대상이 더 넓은 별개 제도입니다. 상황에 맞는 절차를 구분해 선택해야 합니다.
맺음말
증거보전 청구는 공판이 열리기도 전에 사라질 위험이 있는 증거를 판사 앞에서 미리 붙잡아 두는 제도로, 요건만 갖추면 검사뿐 아니라 피의자·피고인·변호인도 직접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청구가 받아들여지려면 막연한 우려가 아니라 그 증거가 왜, 언제 사라질 위험이 있는지를 구체적인 자료로 소명해야 한다는 점이 실무에서 가장 자주 부딪히는 벽입니다.
목격자의 진술이 흔들리기 전에, 영상이 삭제되기 전에 확보해 두어야 할 증거가 있다면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수원·경기남부 지역에서 형사사건을 겪고 있다면, 증거가 사라지기 전에 절차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방어의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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