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처 옮기며 단가정보 쓴 임원, 배임일까 영업비밀침해일까
사건 개요
오랫동안 영업 임원으로 일하며 주요 거래처의 단가·마진 구조를 손에 쥐고 있던 사람이, 경쟁회사로 옮기거나 별도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 정보를 그대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새 회사에서 빠르게 거래처를 확보하려는 마음에, 재직 중 다뤄 온 단가표나 원가·마진 자료를 참고하거나 새 협상의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본인은 "그동안 쌓아 온 내 영업 감각을 쓴 것일 뿐"이라 여기지만, 원래 회사 입장에서는 회사가 오랜 시간 쌓아 온 자산이 통째로 경쟁사로 넘어간 셈이 됩니다.
이런 사안에서 원래 회사는 대개 두 가지 죄명을 함께 걸어 고소합니다. 하나는 형법상 업무상배임죄, 다른 하나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 침해)입니다. 두 죄는 이름은 비슷해 보여도 성립요건과 형량 구조가 전혀 다른 별개의 법입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조차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 채 조사에 임하는 경우가 많고, 그 상태로 진술하다 두 혐의 모두에 불리한 자백을 하게 되는 일이 실무에서 반복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두 죄는 요건이 다르기 때문에 방어의 방식도 달라야 합니다. 하나로 뭉뚱그려 "억울하다"고 항변하기보다, 영업비밀침해 혐의와 업무상배임 혐의 각각의 성립요건을 따로 떼어 그 약한 고리를 파고드는 것이 실제로 결과를 가르는 방어 전략입니다.
핵심 쟁점
이런 사건의 승패는 크게 네 가지 지점에서 갈립니다. 첫째, 문제의 단가정보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가 정한 영업비밀의 3요건—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을 모두 갖췄는지입니다. 둘째, 정보를 취득한 시점(재직 중)과 실제로 사용한 시점(퇴사 전후)이 어떻게 나뉘는지입니다. 셋째, 설령 정보가 온전한 영업비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판례가 인정해 온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해 업무상배임죄로 포섭될 여지가 남는지입니다. 넷째, 실제로 회사에 재산상 손해나 손해 발생의 위험이 생겼는지입니다.
이 네 가지는 서로 다른 법 조문에서 나온 서로 다른 요건이라, 하나의 사실관계라도 어느 죄의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방어의 출발점은 "혐의를 부인한다"가 아니라, 두 죄를 분리해 각각의 취약점을 정확히 짚는 것입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영업비밀침해 혐의는 '비밀관리성'을 정면으로 다툽니다
영업비밀침해(부정경쟁방지법 위반)는 형이 무겁습니다. 국내에서 사용한 경우에도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원 이하의 벌금(이득액이 클 경우 이득액의 2~10배)에 처해질 수 있는 중한 범죄입니다. 그런데 실무에서 가장 자주 무너지는 요건이 바로 '비밀로 관리되고 있었는가'입니다. 김강희 변호사는 이 지점을 다음 순서로 검토합니다.
1) 정보의 관리 실태를 재구성합니다.
판례는 비밀관리성을, 정보에 비밀 표지를 하거나 고지하고 접근 권한자와 접근 방법을 제한하며 접근자에게 비밀준수의무를 부과하는 등 객관적으로 비밀 유지·관리 사실이 인식 가능한 상태였는지로 판단합니다. 단가표가 사내 이메일이나 공유 폴더로 특별한 제한 없이 돌았는지, 별도 서약이나 열람 등급 없이 다수 직원이 볼 수 있었는지, 협력업체나 거래처에도 상당 부분 공개돼 있었는지를 재구성해, 회사가 실제로 그 정보를 '비밀'로 취급해 왔다고 보기 어렵다는 사실관계를 만듭니다.
2) 비공지성·경제적 유용성 요건도 따로 짚습니다.
단가정보 중에는 이미 거래처와의 협상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알려졌거나, 업계 관행상 대략적인 시세로 통용되는 부분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부분까지 통째로 '영업비밀'로 주장되고 있지는 않은지 항목별로 대조해, 비공지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부분을 가려냅니다.
3) 침해행위의 유형을 특정해 혐의를 좁힙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3호는 취득, 사용, 제3자 누설 등 침해행위 유형을 나누어 규정합니다. 자료를 단순히 소지·열람한 것과 실제 영업 활동에 사용한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새 거래처와의 협상에 실제로 그 수치를 반영했는지, 아니면 참고 자료로만 갖고 있었을 뿐 협상은 독자적으로 진행됐는지를 자료로 구분해, 혐의가 '사용'까지 나아갔다는 입증이 있는지를 다툽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업무상배임 혐의는 '사무처리자 지위'와 '손해'를 다툽니다
업무상배임죄(형법 제356조, 제355조 제2항)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가했을 때 성립합니다. 영업비밀에는 못 미치더라도, 대법원은 불특정 다수에 공개돼 있지 않고 취득·개발에 상당한 시간·노력·비용이 든 '영업상 주요한 자산'이면 무단 반출·이용 시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보아 왔습니다. 이 혐의에 대해서는 다음을 챙깁니다.
1) 취득 시점과 사용 시점을 분리해 주장합니다.
업무상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는 신분이 있어야 성립합니다. 퇴사한 이후에는 더 이상 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지 않으므로, 퇴사 후의 '사용' 행위만을 놓고 배임의 주체성을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재직 중 자료를 유출·반출한 행위이지, 퇴사 후 그 정보를 머릿속 지식처럼 활용한 부분까지 전부 배임으로 포섭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사실관계로 구분해 보여 줍니다.
2) 재산상 손해나 손해 발생 위험의 부존재를 자료로 입증합니다.
배임죄는 손해가 발생했거나 손해 발생의 구체적 위험이 생겼을 때 기수가 됩니다. 문제된 거래처가 실제로 이탈하지 않았거나, 매출·계약 조건에 유의미한 변동이 없었다면, 정보를 참고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손해 요건을 채우기 부족합니다. 거래처와의 계약 유지 현황, 매출 추이 자료 등을 확보해 손해가 없거나 미미했음을 뒷받침합니다.
3) '임무 위배' 자체를 통상적 업무 범위와 대조합니다.
영업 임원이 재직 중 쌓은 시세 감각이나 협상 경험은 개인의 노하우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문제된 행위가 구체적 문서·데이터의 유출인지, 아니면 일반적 업무 경험의 활용인지를 구분해, 후자에 가까운 부분까지 임무 위배로 확대 해석되지 않도록 다툽니다.
결론
거래처를 옮기며 단가정보를 활용한 임원 사건은, 영업비밀침해와 업무상배임이라는 두 가지 죄명이 겹쳐 걸리기 쉬운 대표적인 유형입니다. 두 죄는 보호하는 법익과 성립요건이 다르기 때문에, 한쪽에서 유리한 사실이 다른 쪽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건일수록 조사 초기 단계부터 어떤 자료가 어느 시점에 오갔는지, 회사가 그 정보를 실제로 어떻게 관리해 왔는지를 정밀하게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거래처 이동 과정에서 회사 자료 활용 문제로 고소나 조사 통보를 받으셨다면, 혐의를 통째로 다투기 전에 두 죄의 경계선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점검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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