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들이 변호사를 고를 때 가장 많이 확인하는 것은 경력 연차, 승소율, 전문 분야입니다. 그런데 정작 소송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역량 하나는 잘 언급되지 않습니다. 바로 "서면을 얼마나 잘 쓰는가"입니다.
재판은 말보다 글로 진행됩니다. 변론기일은 짧고, 재판부가 사건을 판단하는 근거는 대부분 당사자들이 제출한 준비서면입니다. 그런데 준비서면이 장황하고 쟁점이 뒤섞여 있으면, 아무리 좋은 주장과 증거를 가지고 있어도 재판부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력 있는 변호사와 그렇지 않은 변호사의 차이는 종종 "서면을 얼마나 두괄식으로, 쟁점 중심으로 쓰는가"에서 갈립니다.
법원도 공식적으로 "두괄식 서면"을 요구합니다
이게 단순히 변호사 개인의 스타일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근거가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민사부는 사건 당사자들에게 보내는 재판절차안내문에서 "두괄식 준비서면 제출안내"라는 항목을 별도로 두고,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재판부 스스로 "서면 앞부분에 쟁점과 결론부터 정리해서 제출해달라"고 명시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이례적인 요구가 아닙니다.
이러한 안내의 뿌리는 실제 법령에 있습니다.
민사소송규칙 제69조의4(준비서면의 분량 등): 준비서면은 30쪽을 넘을 수 없고, 소장·답변서나 이전 서면과 중복·유사한 내용을 불필요하게 반복 기재해서는 안 됩니다.
민사소송법 제278조(요약준비서면): 재판장이 당사자의 공격방어방법의 요지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변론을 종결하기 전에 쟁점과 증거를 요약한 준비서면을 제출하도록 명할 수 있습니다.
법이 이렇게까지 명문으로 "분량을 줄이고 요지부터 정리하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장황하고 초점 없는 서면이 재판 실무에서 얼마나 흔한 문제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왜 두괄식이 중요한가
재판부도 사람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서면을 검토해야 하는 재판부 입장에서, 결론과 쟁점이 서두에 명확히 정리된 서면과, 사실관계를 시간순으로 나열하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무엇을 주장하는지 드러나는 서면은 전달력에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두괄식 서면을 쓰려면 다음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사건의 핵심 쟁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그 쟁점에 대한 증명계획을 이미 세워둔 상태여야 하며, 불필요한 사실관계와 법리를 걷어낼 수 있는 판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즉 두괄식으로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건을 제대로 장악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반대로 서면이 장황하고 쟁점이 흩어져 있다면, 그건 문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건 정리가 안 되어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때 확인해야 할 것
승소 경력이나 전문 분야 못지않게, 그 변호사가 쓴 서면(또는 상담 과정에서 사건을 설명하는 방식)이 결론부터 명확하게 제시되는지를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상담 자리에서 "그래서 이 사건의 쟁점이 무엇이고, 우리 쪽 승소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이 무엇인지"를 두괄식으로 설명해주는 변호사라면, 실제 재판에서도 재판부를 설득할 수 있는 서면을 쓸 가능성이 높습니다.
법원이 직접 나서서 "결론부터 써달라"고 안내할 정도로, 두괄식 서면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재판 실무의 기본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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