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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행법규 위반 계약 무효, 신의칙으로도 막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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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행법규 위반 계약 무효, 신의칙으로도 막지 못하는 이유 

김상훈 변호사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몇 년째 그대로 이행해 온 계약인데, 어느 날 상대방이 갑자기 "이 계약은 애초에 강행법규를 위반해서 무효"라며 이행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동안 서로 합의해서 대금도 주고받고 일도 진행해 놓고 이제 와서 무효를 주장하는 게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 "그동안 다 이행해 놓고 이제 와서 무효라니, 신의칙 위반 아니냐"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특히 상대방이 그 계약으로 이미 상당한 이익을 챙긴 경우라면 이런 억울함은 더 커집니다. 하지만 강행법규를 위반한 계약의 무효 주장은, 일반적인 신의칙 법리와는 다른 특수한 기준으로 판단됩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강행법규와 임의법규의 구분부터 신의칙 항변이 통하지 않는 이유까지

계약은 원칙적으로 당사자가 자유롭게 내용을 정할 수 있습니다(사적자치의 원칙). 그런데 법이 특정 영역에서는 당사자의 합의만으로 결과를 뒤집지 못하게 못박아 두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규정을 강행법규(강행규정)라고 부릅니다. 민법 제105조는 "법률행위의 당사자가 법령 중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계없는 규정과 다른 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그 의사에 의한다"고 정하는데, 이를 반대로 읽으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와 관계있는 규정, 즉 강행규정과 다른 내용으로 계약을 맺어도 그 규정이 그대로 우선한다는 뜻이 됩니다.

이자제한법의 최고이자율, 부동산실명법의 명의신탁 금지, 각종 인허가를 요구하는 특별법 규정들이 대표적인 강행법규입니다. 이런 규정을 위반해 맺은 계약(또는 계약 조항)은 당사자들이 아무리 합의했더라도 원칙적으로 무효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강행법규를 위반한 계약이라도 한쪽 당사자가 이미 상당 기간 그 계약대로 이행하며 이익을 취했다면, 나중에 그 계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민법 제2조)에 반하는 모순행위 내지 금반언이 아니냐는 반박이 자주 나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반박은 원칙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 다만 극히 제한된 예외가 있고, 그 예외가 실제로 인정되는지는 사안마다 따져야 합니다. 왜 그런지, 그리고 예외는 어떤 경우인지 아래에서 순서대로 짚어보겠습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강행법규 위반 무효 주장이 신의칙에 막히지 않는 근거와 예외

대법원은 이 문제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강행법규를 위반한 당사자가 스스로 그 법률행위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을,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는 권리 행사라는 이유로 배척한다면 오히려 강행법규가 막으려던 결과를 그대로 실현시키는 셈이 되어 입법취지 자체를 몰각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런 무효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왔습니다(대법원 1999. 3. 23. 선고 99다4405 판결, 대법원 93다44319 판결 등). 쉽게 말해 "그동안 그 계약대로 이익을 봤으니 이제 와서 무효라고 하면 안 된다"는 논리를 인정해 버리면, 애초에 그 계약을 무효로 만들어서라도 막으려 했던 강행법규의 목적 자체가 무력화된다는 것입니다.

이 결론의 배경에는 강행법규가 애초에 당사자의 합의로도 넘을 수 없는 사적자치의 한계를 정해 둔 규정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강행법규는 대개 거래 당사자 개인의 이익을 넘어 사회질서나 공익, 혹은 계약 관계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한 지위에 있는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됩니다. 이런 목적을 가진 규정을 두고 "당사자들이 그동안 합의한 대로 이행했으니 이제 와서 무효를 주장하면 신의칙 위반"이라는 논리를 인정하면, 결국 강행법규를 위반해 계약을 맺고 오래 이행하기만 하면 그 위반 상태가 그대로 굳어지는 결과가 됩니다. 이는 강행법규 제도 자체를 형해화시키는 것이므로, 법원은 이 지점에서 신의칙보다 강행법규의 규범력을 우선시합니다.

다만 이 원칙에 절대적인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의료법인이 시·도지사 허가 없이 재산을 처분한 사안에서, 강행규정을 위반한 사람이 스스로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음이 원칙이지만,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일반적인 요건을 갖추고 강행규정성에도 불구하고 신의칙을 우선 적용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그 무효 주장이 신의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19다277157 판결). 다만 이 예외는 어디까지나 "특별한 사정"이 구체적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한정되고, 단순히 상대방이 오랫동안 계약을 신뢰하고 이행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실무의 대체적인 흐름입니다. 강행규정이 지키려는 법익이 훼손되지 않거나 그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비로소 신의칙이 강행법규에 우선할 여지가 생긴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숫자로 보면 체감이 다릅니다.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은 최고이자율을 연 20%로 제한하는 강행규정입니다. 만약 채권자와 채무자가 연 30% 이자를 약정했다면, 이 중 연 20%를 넘는 연 10%포인트에 해당하는 부분은 당사자가 합의했더라도 처음부터 무효입니다. 원금 5,000만 원을 1년간 빌렸다면 연 30% 약정 이자는 1,500만 원이지만, 그중 유효한 부분은 연 20%인 1,000만 원뿐이고 나머지 500만 원은 처음부터 이자로서 효력이 없습니다. 이때 채권자가 "채무자도 처음에 연 30%에 동의했고 그동안 그 이율로 이자를 받아 왔으니 이제 와서 초과분이 무효라고 하면 신의칙 위반"이라고 주장해도, 앞서 본 법리에 따라 이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 오히려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면 고금리로부터 채무자를 보호하려는 이자제한법의 목적이 그대로 무력화되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명의신탁도 비슷한 구조입니다.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명의신탁약정은 강행법규 위반으로 무효이지만, 이는 민법 제103조가 정하는 반사회질서 법률행위로서의 무효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그래서 명의신탁자가 나중에 그 무효를 주장하며 등기 명의를 되찾으려 할 때, 명의수탁자가 "그동안 명의신탁 약정을 서로 지켜왔으니 이제 와서 무효 주장은 신의칙 위반"이라고 항변해도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강행법규 위반 무효는 그 자체로 별도의 법적 취급을 받는 영역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강행법규 위반 여부 확인부터 정산 청구까지

실제 사건에서는 다음 순서로 대응을 준비합니다.

  • 문제된 조항·계약이 강행법규 위반인지 먼저 확정 — 관련 법률의 문언, 입법목적, 위반 시 벌칙 유무, 위반 행위의 사법상 효력을 법이 스스로 부인하고 있는지를 검토해 그 규정이 진짜 강행규정인지, 아니면 당사자 합의로 배제 가능한 임의규정인지부터 가려야 합니다.

  • 상대방의 신의칙·금반언 항변에 판례 법리로 맞대응 — "그동안 이행해 놓고 이제 와서 무효냐"는 주장이 나오면, 대법원 99다4405 판결·2019다277157 판결의 법리를 근거로 강행법규 위반 무효 주장은 원칙적으로 신의칙에 반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 상대방이 예외 사유를 주장하면 그 요건을 구체적으로 다툼 — 상대방이 "특별한 사정"을 내세우며 예외를 주장할 경우, 그 사정이 실제로 강행규정의 규범목적을 훼손하지 않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예외적인지를 사실관계 차원에서 반박합니다. 막연히 "오래 이행했다", "서로 믿었다" 정도의 사정만으로는 예외가 인정되기 어렵다는 점을 짚습니다.

  • 무효 확인과 함께 부당이득반환·원상회복 청구를 병합 — 계약이 무효라면 이미 지급한 대금·초과이자·이행한 급부는 부당이득으로 반환을 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급부가 불법원인급여(민법 제746조)에 해당하는지도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 강행법규 위반 무효는 민법 제103조에 의한 무효와는 성격이 다르므로, 위반했다는 사정만으로 당연히 반환청구가 막히는 것은 아니지만 규정의 성격에 따라 결론이 갈릴 수 있습니다.

  • 이미 진행 중인 이행·등기·급부의 정지 — 계약이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크다면, 추가 이행이나 등기 절차를 서둘러 진행하기보다 먼저 무효 여부를 법률적으로 확정한 뒤 후속 조치를 진행하는 편이 분쟁을 줄입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강행법규 위반 무효 주장은 서두를수록 유리합니다

강행법규를 위반한 계약이라 해도, 상대방이 신의칙을 내세우며 강하게 반박하면 당사자 혼자서는 이 주장이 정말 받아들여질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반박을 받아들여 "그동안 이행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물러서면, 정작 무효로 되돌릴 수 있었던 계약과 초과 지급분을 그대로 놓치게 됩니다.

계약이 강행법규를 위반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상대방의 신의칙 항변이 예외에 해당할 여지가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계약 내용과 진행 경과를 먼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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