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금 늦게 줬다고 횡령 입건, 보관자 지위부터 다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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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배임

정산금 늦게 줬다고 횡령 입건, 보관자 지위부터 다투기 

김강희 변호사


정산금 늦게 줬다고 횡령 입건, 보관자 지위부터 다투기


사건 개요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발주처와의 계약 창구를 한 사람이 맡아 대금을 일괄로 받은 뒤 나머지 참여자들에게 각자 몫을 나눠주는 구조가 흔합니다. 문제는 그 대금이 통장에 들어온 뒤에 생깁니다. 다른 프로젝트 결제가 먼저 나가야 했거나, 발주처의 입금 자체가 예정보다 늦어졌거나, 운영자금이 빠듯해 손을 댔거나 —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결과는 같습니다. 동료나 외주 인력에게 줘야 할 정산금 지급이 늦어지는 것입니다.

처음엔 "곧 드릴게요"로 넘어가던 일이, 지연이 길어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정산받지 못한 상대방이 "내 몫을 가로챘다"며 경찰에 고소하고, 프리랜서 본인은 어느 날 횡령 혐의로 입건 통보를 받습니다. 본인은 "떼먹을 생각이 없었고 조금 늦었을 뿐"이라고 항변하지만, 수사기관은 일단 돈을 보관하다가 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관계에 주목합니다.

하지만 횡령죄는 단순히 "돈을 늦게 줬다"는 사실만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 돈에 대해 법률상 '보관자' 지위가 있었는지가 먼저 가려져야 하고, 이 지위 자체가 인정되지 않으면 횡령죄는 애초에 성립할 수 없습니다. 정산금 지급이 늦어졌다는 이유로 입건됐다면, 처벌 수위를 걱정하기 전에 이 보관자 지위부터 다퉈야 하는 이유입니다.


핵심 쟁점


이런 사건에서 실제로 승패를 가르는 지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형법 제355조 제1항이 정한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게만 성립하는데, 여기서 정산금이 애초에 '타인의 재물'인지, 아니면 발주처로부터 받은 순간 이미 내 소유가 된 돈인지입니다. 대법원은 매매대금 등을 수령과 동시에 수령자 소유로 귀속되는 통상의 채권채무관계와, 특정 목적을 위해 위탁받아 보관하는 금전을 구분해 왔습니다. 전자라면 지급이 늦어져도 민사상 채무불이행일 뿐 횡령이 아닙니다.

둘째, 보관관계가 성립하려면 그 바탕에 위탁관계(신임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위탁관계는 계약뿐 아니라 사무관리·관습·조리·신의칙으로도 성립할 수 있지만, 판례는 이를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으로 한정합니다. 발주처와의 계약 당사자가 본인 한 사람이고, 나머지는 그 사람에 대한 별도의 지급채무 상대방에 불과했다면 위탁관계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여지가 큽니다.

셋째, 설령 보관관계가 인정되더라도 불법영득의사—자기 것처럼 처분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 그리고 지급이 늦어진 것이 정당한 사유 없는 '반환거부'로 평가될 수 있는지가 남습니다. 이 세 지점은 단계적으로 이어지고, 첫 단계인 보관자 지위가 흔들리면 나머지는 다툴 필요조차 없어집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보관자 지위·위탁관계 자체를 다투기


가장 먼저 다퉈야 할 지점이자, 가장 자주 간과되는 지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돈을 보관하다 안 줬다"는 수사기관의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돈이 법률적으로 어떤 성격의 자금이었는지부터 되짚습니다.

1) 자금의 흐름을 '통상의 채권채무관계'로 재구성합니다.

계약서와 실제 거래 방식을 확인해, 발주처와 직접 계약을 맺고 대금 전체를 자신의 명의·계좌로 수령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이 부분은 네 몫이니 받으면 그대로 전달한다"는 별도 약정이 있었는지를 가려냅니다. 지입차량 매매대금 사건에서 대법원이 매매대금은 수령과 동시에 수령자 소유로 귀속되고 피해자는 민사상 채권채무관계로 다툴 수 있을 뿐이라고 본 것처럼, 발주처 대금 전체가 일단 본인 소유로 귀속되고 참여자들에게는 별도의 지급채무만 부담하는 구조였다면, 지급 지연은 형사처벌 대상인 횡령이 아니라 민사상 이행지체에 그칩니다.

2) 금전의 '특정성'이 없었다는 사실을 부각합니다.

위탁받은 금전으로 인정되려면 그 돈이 다른 자금과 섞이지 않고 특정 목적을 위해 구분 관리됐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발주처 대금이 프리랜서 본인의 사업용 계좌에 다른 수입과 함께 입금돼 운영비·생활비와 뒤섞여 관리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별도의 정산 전용 계좌 없이 일반 자금으로 혼재돼 있었다는 계좌 거래내역은, 그 돈이 애초에 '특정된 위탁물'이 아니라 대체 가능한 일반 채무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핵심 자료가 됩니다.

3) 위탁매매·정산대행 구조와 명확히 선을 긋습니다.

판례는 위탁매매인이 위탁품의 판매대금을 임의로 소비하면 횡령이 된다고 보는데, 이는 위탁품의 소유권이 애초에 위임자에게 있고 판매대금도 수령과 동시에 위임자에게 귀속된다는 전제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 사건처럼 발주처와의 계약당사자가 본인 하나뿐이고 나머지 참여자는 그에 대한 하도급·용역 대금 채권자에 불과하다면, 애초에 '남의 돈을 대신 받아 전달하기로 한' 위탁매매형 구조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 구조적 차이를 계약서·업무분장·실제 정산 관행으로 명확히 정리해 제시합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불법영득의사와 반환거부의 정당성 다투기


보관자 지위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기 어려운 사안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지급 지연이 곧바로 횡령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불법영득의사가 없었고, 반환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점을 별도로 다퉈야 합니다.

1) 지급 지연의 경위를 자금 흐름으로 소명합니다.

계좌 거래내역과 발주처로부터의 실제 입금 시점을 대조해, 발주처 대금 자체가 예정보다 늦게 들어와 지급이 연쇄적으로 밀린 것인지, 혹은 다른 사업 운영비로 일시 전용됐더라도 그것이 개인적 유용이 아니라 사업 지속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를 시계열로 정리합니다. 형법 제355조 제1항의 반환거부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이뤄져야 하므로, 지연에 합리적 경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불법영득의사를 부정하는 직접적인 근거가 됩니다.

2) 정산 금액 자체에 대한 다툼이 있었다면 이를 명확히 합니다.

업무 결과물에 하자가 있었거나, 추가 정산이 필요했거나, 상대방에게 별도로 받을 채권이 있어 공제·상계를 주장한 상황이라면, 이는 지급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금액에 대한 정당한 이의제기입니다. 금액 산정 근거와 이의제기 시점을 기록으로 남겨, 반환거부의 고의가 아니라 정당한 항변이었음을 뒷받침합니다.

3) 지급 의사와 이행 노력을 문서로 확보합니다.

지연 기간 중에도 일부 지급을 이어갔거나, 지급 계획을 미리 통지했거나, 상대방과 지속적으로 소통한 이력이 있다면 이를 문자·메신저·계좌이체 내역으로 확보합니다. 이런 자료는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는 검찰의 추단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근거가 되며, 실제로 수사·재판 단계에서 불법영득의사 유무를 가르는 결정적 자료로 쓰입니다.


결론


정산금 지급이 늦어졌다는 사실만으로 횡령이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돈이 법률상 '보관' 중이던 타인의 재물이었는지, 위탁관계의 근거가 실제로 있었는지, 지급 지연에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는지 — 이 세 단계를 하나씩 짚어야 비로소 죄가 되는지 아닌지가 가려집니다.

입건 통보를 받으면 대부분 "빨리 갚으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합의부터 서두르지만, 보관자 지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사안이라면 그보다 먼저 법률관계의 성격을 다투는 것이 훨씬 유리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산금 지급 지연을 이유로 횡령 혐의를 받고 계시다면, 계약 구조와 자금 흐름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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