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려주면서 "언제까지 갚아라"는 날짜를 정하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지인 사이의 대여일수록 차용증 자체를 쓰지 않거나, 쓰더라도 변제기 칸을 비워두는 일이 흔합니다. 이럴 때 아무 때나 전화 한 통으로 갚으라고 요구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법은 그렇게 단순하게 보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갚으라는 말을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이에도 소멸시효는 이미 진행되고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변제기를 정하지 않은 대여금을 실제로 어떻게 청구해야 하고, 그 사이 시효는 어떻게 계산되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변제기 없는 대여금, "아무 때나 달라고 하면 된다"는 착각
소비대차(금전 대여)는 민법 제598조에 따라 당사자 일방이 금전 기타 대체물의 소유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은 그와 같은 종류·품질·수량으로 반환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입니다. 반환시기를 계약 당시 정해두었다면 그 날짜가 되면 그대로 갚으면 됩니다(민법 제603조 제1항). 그러나 반환시기를 정하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민법 제603조 제2항은 "반환시기의 약정이 없는 때에는 대주는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반환을 최고하여야 한다"고 정해, 대주가 곧바로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상당한 기간을 두고 최고부터 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이런 특칙을 두는 이유는 소비대차의 성격에 있습니다. 차주는 빌린 금전을 이미 다른 용도로 쓰거나 굴려 놓은 상태인 경우가 많아, 대주가 예고 없이 즉시 반환을 요구하면 차주가 갚을 자금을 마련할 시간조차 없이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은 대주에게 "상당한 기간을 정한 최고"라는 절차를 거치도록 하여 차주에게 최소한의 준비 기간을 보장합니다. 다만 이 보호는 차주를 위한 것이므로 같은 조 단서는 "차주는 언제든지 반환할 수 있다"고 정해, 차주 스스로는 기한의 이익을 주장하며 반환을 미룰 수 없습니다. 이 규정은 이자를 받기로 한 유상 소비대차든 무이자 소비대차든 가리지 않고 똑같이 적용되므로, 이자 유무와 무관하게 변제기를 정하지 않았다면 최고 절차부터 거쳐야 한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변제기를 정하지 않은 대여금은 최고 없이 바로 이행기가 오지 않는다 — 대주가 상당한 기간을 정해 반환을 최고해야 비로소 이행기가 도래한다(민법 제603조 제2항).
"상당한 기간을 정해 최고한다"는 것의 실제 의미
최고 자체에는 특별한 형식이 없습니다. 구두로 갚으라고 말해도 법적으로는 최고에 해당하지만, 나중에 언제 최고했는지를 다투게 되면 그 시점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실무에서는 원금과 대여일을 특정하고 "이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며칠 이내에 반환해 달라"는 식으로 상환 기한을 명시한 내용증명을 보내는 방법이 가장 흔히 쓰입니다. 문자메시지나 메신저 대화로 최고한 뒤 그 대화 내용을 보관해두는 것도 최고 시점을 증명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상당한 기간이 정확히 며칠이어야 하는지는 법에 못박혀 있지 않습니다. 실무는 차주가 돈을 마련하는 데 합리적으로 필요한 기간인지를 개별 사안에서 판단하는데, 금액이 크지 않고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통지 도달 후 1~2주 정도의 기간이 흔히 쓰이지만, 금액이 크거나 차주의 사정이 어려운 경우 더 긴 기간이 합리적이라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다만 최고서에 기간을 명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최고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며, 아래에서 보듯 그 이후 상당한 기간이 실제로 경과했는지가 관건이 됩니다.
원금 액수와 대여일자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것.
상환을 요구하는 취지와 상환 기한을 명시(예: "통지 도달일로부터 2주 이내").
내용증명우편으로 발송해 도달 사실과 시점을 증거로 남길 것.
계좌이체 내역 등 대여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함께 정리해 둘 것.
최고 없이 소송부터 가도 되나 — 소장 송달이 최고를 겸하는 경우
내용증명을 따로 보내지 않고 곧바로 대여금 반환청구 소송이나 지급명령을 신청해도 될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대법원 1963. 5. 9. 선고 63다131 판결과 대법원 1969. 1. 28. 선고 68다2313 판결은, 반환시기의 약정이 없는 소비대차에서 최고의 방법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으므로 소장의 송달로써도 최고를 할 수 있고, 그 송달 시점부터 변론종결에 이르는 사이에 차주가 지급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상당한 기간이 경과했다면 차주는 더 이상 최고가 없었다는 항변을 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즉 소장 자체가 "갚으라"는 최고의 역할을 겸하고,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자체로 상당한 기간 요건이 채워지는 구조입니다. 다만 이는 최고를 따로 하지 않았을 때를 구제하는 보충적 법리이지, 처음부터 소송으로 가는 편이 더 유리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용증명으로 미리 최고해두면 소송 전에 이미 상당한 기간이 지나 있어 소 제기와 동시에 이행기가 도래한 상태로 소송을 시작할 수 있고, 아래에서 볼 지연손해금 기산일도 그만큼 앞당길 수 있습니다. 급하게 회수해야 하는 사정이 아니라면, 내용증명 발송과 소송 준비를 동시에 진행해 최고의 상당 기간이 지나가는 동안 소장·지급명령 서류를 정리해두는 방식이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입니다.
최고 후 언제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하나
상당한 기간을 정해 최고했는데도 차주가 갚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이행지체 문제로 넘어갑니다. 민법 제387조 제2항은 "채무이행의 기한이 없는 경우에는 채무자는 이행청구를 받은 때로부터 지체책임이 있다"고 정하고 있고, 대법원 1988. 11. 8. 선고 88다3253 판결도 기한의 정함이 없는 채무는 이행청구를 받은 다음 날부터 지체책임을 진다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변제기 없는 대여금에서는 이 이행청구가 곧 앞서 본 "상당한 기간을 정한 최고"이므로, 최고 후 그 상당한 기간이 지난 다음 날부터 지체책임, 즉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지연손해금의 이율은 당사자 사이에 약정이 없었다면 민법 제379조에 따른 연 5%(민사 법정이율)가 적용되고, 대여가 상행위에 해당하면 상법 제54조에 따라 연 6%(상사 법정이율)가 적용됩니다. 소송으로 넘어가 소장 부본이나 지급명령이 송달된 이후 기간에 대해서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에 따라 연 12%의 이율이 적용되는 것이 실무입니다. 다만 채무자가 이행의무의 존부나 범위를 다툴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법원이 인정하는 범위에서는 이 가중된 이율이 배제될 수 있습니다.
진짜 함정 — 최고와 별개로 소멸시효는 대여할 때부터 흐르고 있다
여기서부터가 가장 놓치기 쉬운 지점입니다. 앞서 본 대로 반환을 실제로 청구하려면, 즉 이행기를 도래시키려면 최고와 상당한 기간의 경과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소멸시효는 이와 별개로 계산됩니다. 민법 제166조 제1항은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고 정하는데, 변제기 없는 대여금 채권은 대주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최고할 수 있는 상태이므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는 최고를 실제로 한 시점이 아니라 대여금 채권이 성립한 시점, 즉 돈을 빌려준 그날로 봅니다. 대주가 최고를 늦게 하든 아예 하지 않든, 그것은 대주의 사정일 뿐 법률상 권리 행사에 장애가 되는 사유는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이행지체책임(지연손해금)은 최고 후 상당한 기간이 지나야 비로소 시작되지만, 소멸시효는 그런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대여 시점부터 곧바로 진행됩니다. "아직 갚으라는 말도 안 했으니 시효는 멀었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실제로는 대여일로부터 민사채권 10년(민법 제162조 제1항), 상행위에 따른 채권이라면 5년(상법 제64조)이 이미 지나버려 청구권 자체가 소멸시효로 사라져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생깁니다.
변제기 없는 대여금에서 지연손해금은 최고 후 상당한 기간이 지나야 시작되지만, 소멸시효는 최고 여부와 무관하게 대여한 날부터 이미 진행된다.
구체적 사례로 보는 최고·시효의 타이밍
예를 들어 2016년 3월에 지인에게 변제기를 정하지 않고 3천만원을 빌려주었고, 그 이후 별다른 독촉 없이 지내왔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경우 대여금 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는 대여가 이루어진 2016년 3월부터 곧바로 진행을 시작하므로, 2026년 3월이면 만 10년이 지나 소멸시효가 완성될 위험에 놓입니다. 그 사이 단 한 번도 내용증명을 보내거나 상대방으로부터 "곧 갚겠다"는 확인을 받아두지 않았다면, 뒤늦게 최고를 하고 소송을 준비해도 상대방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며 항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같은 사안에서 2020년경 문자메시지로 "원금 3천만원을 2주 안에 갚아 달라"는 취지의 최고를 하고 그 대화 내용을 보관해 두었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이 최고를 기준으로 상당한 기간이 지난 시점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그 최고 이후 6개월 안에 지급명령 신청이나 소 제기 같은 후속 조치를 취했다면 시효 진행 자체를 끊어내는 효과도 함께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같은 "변제기 없는 대여금"이라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최고했는지에 따라 10년 뒤의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셈입니다.
시효 함정을 피하는 방법 — 최고와 시효중단은 별개로 챙겨야 한다
최고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소멸시효가 자동으로 끊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민법 제174조는 "최고는 6월내에 재판상의 청구, 파산절차참가, 화해를 위한 소환, 임의출석, 압류 또는 가압류, 가처분을 하지 아니하면 시효중단의 효력이 없다"고 정합니다. 즉 최고 자체에는 시효중단 효력이 있지만, 그로부터 6개월 안에 지급명령 신청이나 소 제기, 가압류 같은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 최고의 시효중단 효력은 소급해서 없었던 것으로 됩니다.
실무적으로 안전하게 관리하려면 몇 가지를 함께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대여일로부터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시효 완성이 가까워진다는 점을 전제로, 정기적으로 상환 여부를 확인하고 그 결과를 문자나 내용증명으로 남겨두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채무자로부터 "일부라도 갚겠다"거나 "언제까지 갚겠다"는 취지의 확인을 받아두면 이는 채무승인에 해당해 그 시점부터 시효가 새로 진행되므로(민법 제168조), 독촉 과정에서 이런 확인을 받아두는 것도 실무상 유용한 방법입니다.
대여일과 원금을 특정한 차용증이나 계좌이체 내역을 처음부터 보관.
상환 독촉은 문자·내용증명 등 시점이 남는 방법으로.
최고 후 6개월 이내에 지급명령·소 제기 등 후속 조치 여부를 반드시 확인.
채무자의 일부 변제나 "갚겠다"는 확인은 채무승인으로 남겨 시효 갱신에 활용.
차용증 없이 구두로 빌려준 돈 — 입증책임은 어떻게 되나
변제기뿐 아니라 차용증 자체가 없는 경우도 실무에서 흔히 마주칩니다. 이때는 앞서 본 최고·시효 문제 이전에, 애초에 돈을 빌려준 사실 자체를 입증해야 하는 문제가 먼저 옵니다. 계좌이체 내역만으로는 그 돈이 대여인지 증여인지 변제인지 다툼의 여지가 남을 수 있어, 이체 시점에 주고받은 문자나 메신저 대화에 "빌려준다", "갚겠다" 같은 표현이 남아 있는지가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차용증이 없더라도 대여 사실과 금액, 가능하면 변제기에 관한 대화 내용을 뒷받침할 자료를 확보해두면 이후 최고와 소송 단계에서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자료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면, 소멸시효 문제에 더해 대여 사실 자체를 다투는 상대방을 상대로 이중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뒤늦게라도 원금과 대여일을 문자로 다시 확인받아 두거나, 확인서 형태로 정리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특히 가족이나 지인 사이의 대여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는 그냥 도와준 것 아니냐"는 식으로 대여 자체를 부정하는 다툼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관계를 믿고 미뤄두기보다 처음부터 최소한의 기록을 남겨두는 편이 나중의 분쟁을 줄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변제기를 정하지 않고 돈을 빌려줬는데 바로 전화로 갚으라고 하면 안 되나요?
A. 전화로 갚으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는 유효한 최고가 될 수 있지만, 그 뒤에 상당한 기간이 지나야 비로소 이행기가 도래한 것으로 인정됩니다. 다만 전화만으로는 언제 최고했는지 입증이 어려우므로 내용증명이나 문자 등 기록이 남는 방법을 함께 쓰는 것이 안전합니다.
Q. 상당한 기간이 정확히 며칠인지 법에 정해져 있나요?
A. 민법은 구체적인 일수를 정하고 있지 않고, 차주가 상환을 준비하는 데 합리적으로 필요한 기간인지를 개별 사안에서 판단합니다. 실무에서는 최고서에 상환 기한을 명시해 다툼의 여지를 줄이는 방법이 흔히 쓰입니다.
Q. 최고를 한 번도 안 했는데 소멸시효가 이미 지났을 수도 있나요?
A. 그렇습니다. 소멸시효는 최고 여부와 무관하게 대여한 날부터 진행하므로, 최고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채 민사채권 기준 10년이 지나면 청구권 자체가 소멸시효 완성으로 사라질 수 있습니다.
Q. 최고를 했으면 그것만으로 시효가 끊기나요?
A. 아닙니다. 민법 제174조에 따라 최고 후 6개월 안에 지급명령 신청이나 소 제기, 가압류 같은 후속 조치를 취해야 시효중단 효력이 유지되고, 그러지 않으면 최고의 시효중단 효력은 소급해서 없어집니다.
Q. 지연손해금은 언제부터, 얼마의 이율로 계산되나요?
A. 최고 후 상당한 기간이 지난 다음 날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하며, 약정이 없다면 민사는 연 5%, 상행위에 해당하면 연 6%의 법정이율이 적용됩니다. 소송으로 넘어간 이후 기간에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연 12%가 적용되는 것이 실무입니다.
Q. 차용증 없이 계좌이체만으로 빌려준 돈도 돌려받을 수 있나요?
A. 가능하지만 그 돈이 대여인지 증여인지를 두고 다툼이 생길 수 있어, 이체 당시 주고받은 문자나 대화 내용처럼 대여 의사를 뒷받침할 자료를 함께 확보해두는 것이 유리합니다.
맺음말
변제기를 정하지 않고 빌려준 돈은 "언제든 달라고 하면 된다"는 생각과 달리, 상당한 기간을 정한 최고를 거쳐야 비로소 이행기가 도래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반면 소멸시효는 이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대여한 날부터 곧바로 흐르기 시작하므로, 독촉을 미루는 사이 청구권 자체가 시효로 소멸해버리는 경우가 실제로 적지 않습니다.
결국 핵심은 최고와 시효 관리를 별개의 일로 보고 함께 챙기는 것입니다. 대여 사실을 뒷받침할 자료를 처음부터 남겨두고, 상환 독촉은 기록이 남는 방법으로 하며, 최고 이후에는 6개월 안에 필요한 후속 조치를 취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보증금이나 물건이 아닌 '시간' 자체를 지키는 방법입니다. 특히 오래전에 빌려주고 방치해 둔 돈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대여일부터 몇 년이 지났는지부터 계산해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실제로 대여금을 돌려받지 못해 지급명령이나 소송 준비까지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수원지방법원의 절차를 함께 살펴봐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류를 준비하기 전에 최고 시점과 시효 진행 상황부터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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