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거래에서 발생하는 채무를 포괄적으로 책임지는 근보증은 서면에 최고액을 정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민법의 명문 규정입니다. 그런데 실제 계약서를 보면 계약기간과 거래처, 단가는 적혀 있으면서도 정작 보증채무의 최고액이 빠져 있거나 "추후 협의"처럼 애매하게 남겨진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서면으로 근보증을 섰다가 나중에 거래가 누적되어 예상 밖의 거액을 청구받았다면, 최고액이 없었다는 사실 하나로 보증계약 자체의 효력을 다툴 여지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근보증에서 최고액 특정이 왜 강제되는지, 어떤 기재라야 최고액이 정해진 것으로 인정되는지, 그리고 실제로 효력을 다투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근보증이란 무엇인가 — 확정채무 보증과 다른 위험
보증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특정 대여금이나 특정 물품대금처럼 채무액이 계약 시점에 확정되어 있는 채무를 보증하는 일반적인 보증과, 계속적인 거래관계에서 발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불특정 다수의 채무를 포괄적으로 보증하는 근보증입니다. 물품을 정기적으로 공급받는 거래,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본사에 대한 물품대금 채무, 계속적 용역계약에서 발생하는 대금채무 등이 대표적으로 근보증이 활용되는 장면입니다.
문제는 근보증을 서는 시점에는 앞으로 그 거래에서 채무가 얼마까지 불어날지 보증인이 알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확정채무 보증이라면 보증인은 자신이 얼마를 책임지게 되는지 계약 당시 정확히 알고 서명하지만, 근보증은 거래가 계속되는 한 채무액이 누적됩니다. 거래처가 대금 결제를 미루고 계속 물건을 받아가거나, 계약 갱신이 반복되며 거래 규모가 커지면 보증인이 애초에 예상한 범위를 크게 벗어난 금액을 떠안게 되는 경우가 실제로 발생합니다.
이런 위험 때문에 2015년 민법 개정으로 근보증에 관한 조항이 신설되어, 보증인이 자신이 부담할 책임의 상한을 명확히 인식한 상태에서만 근보증이 유효하도록 요건을 강화했습니다. 최고액을 서면으로 특정하도록 강제한 것이 바로 그 핵심 장치이고, 이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리 다른 조항이 꼼꼼하게 작성되어 있어도 근보증 자체가 무효가 됩니다.
최고액을 서면으로 특정해야 하는 법적 근거
민법 제428조의3 제1항은 "보증은 불확정한 다수의 채무에 대하여도 할 수 있다. 이 경우 보증하는 채무의 최고액을 서면으로 특정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근보증 자체는 허용하되, 반드시 최고액을 서면으로 못박아야 한다는 조건을 붙인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조 제2항은 이 요건을 지키지 않았을 때의 효과를 명시합니다. "채무의 최고액을 제428조의2 제1항에 따른 서면으로 특정하지 아니한 보증계약은 효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취소할 수 있다거나 일부만 무효라는 식이 아니라, 근보증계약 자체가 처음부터 효력이 없는 것으로 취급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제428조의2 제1항에 따른 서면"이란 보증인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이 있는 서면을 뜻합니다. 이 서면 요건도 그 자체로 강행규정이어서, 보증의 의사가 전자적 형태로만 표시된 경우에는 효력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결국 근보증이 유효하려면 이중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셈입니다. 첫째, 보증인이 직접 기명날인하거나 서명한 종이 서면(또는 그에 준하는 서면)이 있어야 하고, 둘째, 그 서면에 보증채무의 최고액이 특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근보증계약은 성립 자체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근보증은 최고액을 서면으로 특정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효력이 없다는 것이 민법 제428조의3 제2항의 명문 규정이다 — 취소 대상이 아니라 처음부터 무효다.
최고액이 "정해졌다"고 인정되는 기준 — 판례의 태도
실무에서 자주 부딪히는 문제는 계약서에 숫자가 아예 없는 경우가 아니라, 애매하게 적혀 있어 최고액이 특정된 것인지 다투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에 관해 대법원 2019. 3. 14. 선고 2018다282473 판결이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 사건은 레미콘을 계속적으로 공급하는 거래에서 보증인이 물품대금채무를 근보증한 사안이었는데, 계약서에는 계약기간과 현장명, 단가는 기재되어 있었지만 총 공급량이나 보증채무의 최고액은 물론이고 그 금액을 추단할 수 있는 다른 기재도 전혀 없었습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보증채무의 최고액이 서면으로 특정되었다고 인정되려면, 보증인의 보증의사가 표시된 서면에 최고액이 명시적으로 기재되어 있거나, 설령 명시적 기재가 없더라도 서면 자체로 보아 최고액이 얼마인지를 객관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인 기재가 있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사건 계약서에는 그런 기재가 전혀 없었으므로, 근보증계약은 무효로 판단되었습니다.
이 기준이 실무에 던지는 의미는 분명합니다. "약정한도 내에서 보증한다"거나 "추후 협의하여 정한다"는 식의 문구만으로는 최고액이 특정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반드시 구체적인 금액이 적혀 있거나, 적어도 계약서에 기재된 다른 수치(단가와 상한 수량 등)를 근거로 제3자가 보아도 최고액을 계산해낼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무효가 되는 흔한 사례 유형
근보증계약서를 실제로 검토하다 보면 최고액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작성된 서면이 생각보다 자주 발견됩니다. 대표적인 유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최고액 기재란에 "추후 협의" 또는 "별도 약정"이라고만 적고 실제 금액이나 산정 기준을 남기지 않은 경우
계약기간·거래처·품목만 기재하고, 거래 규모나 대금 상한을 짐작할 만한 숫자가 계약서 어디에도 없는 경우
영업 담당자가 구두로 "한도는 얼마까지"라고 설명했지만 정작 서면에는 그 금액이 반영되지 않은 경우
기존 근보증계약을 갱신하면서 새로 작성한 갱신계약서에 최고액 조항이 통째로 누락된 경우
이 가운데 세 번째와 네 번째 유형은 실무에서 특히 자주 놓치는 지점입니다. 애초에 계약을 체결할 때는 최고액이 제대로 적혀 있었더라도, 거래 조건이 바뀌어 계약서를 다시 쓰면서 담당자가 기존 조항을 그대로 옮기지 못해 최고액 문구가 빠지는 경우가 실제로 있습니다. 이런 경우 갱신된 서면을 기준으로 최고액 특정 여부를 다시 판단해야 하므로, 예전 계약서에 최고액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유효성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효력을 다투는 절차 — 어떻게 무효를 주장하나
최고액이 특정되지 않은 근보증이라고 판단되면, 상황에 따라 다투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아직 채권자로부터 이행청구를 받지 않은 단계라면, 분쟁이 커지기 전에 채무부존재확인의 소를 먼저 제기해 근보증에 따른 채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구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채권자가 소를 제기하기만 기다리기보다 선제적으로 법률관계를 정리해두는 방식입니다.
이미 채권자가 지급명령을 신청했거나 대여금·물품대금 청구소송을 제기해 온 경우라면, 답변서와 준비서면에서 근보증계약서에 최고액이 서면으로 특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들어 계약 무효를 항변으로 주장하게 됩니다. 지급명령이라면 정해진 기간 안에 이의신청을 해서 정식 소송 절차로 넘겨야 이 항변을 제대로 다툴 수 있습니다. 만약 다투지 않고 이의신청 기간을 넘겨 지급명령이 확정되거나, 이미 판결이 확정되어 집행권원까지 채권자 손에 넘어간 뒤라면 청구이의의 소(민사집행법 제44조)를 제기해 집행력 자체를 다투는 절차를 검토해야 합니다. 다만 청구이의의 소는 변론이 종결된 뒤에 생긴 사유만 주장할 수 있다는 제한이 있어, 확정 전 단계에서 다투지 못했다면 이 방법으로도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입증의 측면에서 보면, 근보증에서 최고액이 없다는 사실은 서면 자체에 없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계약서 원본만 확보하면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채권자 쪽에서 "별도의 부속 약정서나 이메일로 최고액을 보완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근보증계약서 외에 오간 서면·전자문서가 있다면 함께 확보해 그 서면들이 민법 제428조의2 제1항이 요구하는 기명날인·서명 요건까지 갖췄는지도 같이 따져봐야 합니다.
무효 주장에도 한계가 있는 지점
최고액 미특정을 이유로 근보증 무효를 주장할 때 흔히 헷갈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민법 제428조의2 제3항은 "보증인이 보증채무를 이행한 경우에는 그 한도에서 제1항과 제2항에 따른 방식의 하자를 이유로 보증의 무효를 주장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만 보면 보증인이 이미 돈을 낸 적이 있으면 최고액 미특정도 더는 다툴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항이 가리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제428조의2 제1항·제2항이 정한 서면 자체의 방식 하자(기명날인·서명 누락 등)이고, 근보증의 최고액 미특정은 제428조의3 제2항이 별도로 정한 무효 사유입니다. 문언상 제428조의2 제3항이 곧바로 최고액 미특정 사안까지 포섭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므로, 일부 변제 이력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최고액 미특정 주장이 자동으로 봉쇄된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근보증이 무효로 인정되어 보증인의 책임이 사라지더라도, 그동안 실제로 지급된 금원까지 자동으로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낸 돈을 돌려받으려면 민법상 부당이득반환청구라는 별도의 법률관계로 다투어야 하고, 이 반환청구권에도 소멸시효가 적용되므로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급분은 되돌려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은, 근보증계약서 한 장에 근보증 조항과 함께 이미 발생한 특정 채무에 대한 확정채무 보증 조항이 같이 들어 있는 경우입니다. 이런 서면에서 근보증 부분이 최고액 미특정으로 무효가 되더라도, 별도로 특정된 확정채무에 대한 보증 부분까지 당연히 함께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계약서의 어느 조항이 근보증이고 어느 조항이 확정채무 보증인지 구분해서 효력을 따져야 합니다.
관련 쟁점과 구분 — 최고액과 보증기간은 별개의 문제
근보증을 둘러싼 분쟁에는 최고액 미특정과는 성격이 다른 쟁점도 있습니다. 바로 보증기간, 즉 언제까지 발생하는 채무를 보증 범위로 볼 것인지에 관한 다툼입니다. 민법 제428조의3이 근보증의 유효요건으로 요구하는 것은 최고액의 서면 특정이지, 보증기간의 특정이 아닙니다. 따라서 보증기간을 별도로 정하지 않은 근보증이라도 최고액만 서면으로 제대로 특정되어 있다면 그 자체로 무효가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보증은 보증인이 무기한으로 책임을 지는 결과가 될 수 있어, 해지권 행사나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책임 제한처럼 최고액 특정 여부와는 별개의 법리로 보증인을 보호하는 논의가 이루어집니다. 이 글에서 다룬 내용은 근보증계약이 애초에 성립조차 하지 않은 경우, 즉 최고액이 서면에 없어 무효인 경우에 관한 것이고, 최고액은 유효하게 정해져 있는데 그 한도나 기간의 범위를 놓고 다투는 문제는 별개의 논점으로 따로 검토해야 할 사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근보증서에 "한도액: 추후 협의"라고만 적혀 있다면 최고액이 특정된 것으로 볼 수 있나요?
A. 원칙적으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판례가 요구하는 것은 명시적 기재이거나, 서면 자체로 최고액을 객관적으로 산출할 수 있는 구체적 기재인데 "추후 협의"는 그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다만 계약서에 단가와 상한 수량처럼 최고액을 역산할 수 있는 다른 수치가 함께 있다면 예외적으로 인정될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Q. 담당자가 구두로 최고액을 설명해줬는데 서면에는 반영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나요?
A. 민법 제428조의3 제2항은 최고액이 민법 제428조의2 제1항에 따른 서면으로 특정될 것을 요구하므로, 구두 설명만으로는 이 요건을 갖췄다고 볼 수 없습니다. 서면에 반영되지 않았다면 근보증계약은 효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 원칙입니다.
Q. 최고액 없는 근보증이 무효라면, 그동안 쌓인 채무는 어떻게 되나요?
A. 근보증계약 자체가 무효이므로 그 계약을 근거로 한 보증인의 책임은 원칙적으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는 보증인의 책임에 관한 문제이고, 실제로 거래한 주채무자의 채무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구분해야 합니다.
Q. 채권자가 이미 지급명령을 받았다면 어떻게 다투나요?
A. 지급명령을 송달받고 정해진 기간 안이라면 이의신청을 해서 정식 소송으로 전환한 뒤 그 절차에서 최고액 미특정을 항변으로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의신청 기간을 넘겨 확정되었다면 청구이의의 소로 다투는 방법을 검토해야 하지만, 시기와 요건 제한이 있어 확정 전 대응이 훨씬 유리합니다.
Q. 근보증서에 최고액은 있는데 보증기간이 없다면 무효인가요?
A. 최고액이 서면으로 제대로 특정되어 있다면 그 자체로는 무효가 아닙니다. 보증기간을 정하지 않은 데 따른 문제는 최고액 특정 여부와는 별개의 법리로, 해지권 행사 등 다른 방식으로 보증인을 보호하는 논의가 이루어지는 영역입니다.
Q. 최고액 미특정으로 무효를 주장하려면 어떤 자료를 준비해야 하나요?
A. 가장 먼저 근보증계약서 원본을 확보해 최고액 기재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계약 체결 전후로 오간 부속 약정서나 이메일 등이 있다면 함께 챙겨, 채권자가 다른 서면으로 최고액을 보완했다고 주장할 가능성에도 대비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맺음말
근보증은 계속적 거래관계에서 널리 쓰이는 만큼, 보증인이 자신이 부담할 책임의 상한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서명하는 일이 없도록 민법이 최고액의 서면 특정을 강행요건으로 못박아 두었습니다. 계약서에 최고액이 명시적으로 적혀 있지 않거나, 서면만으로는 그 금액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다면 근보증계약 자체의 효력을 다툴 여지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무효 주장이 항상 간단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며, 채권자가 다른 서면으로 최고액을 보완했다고 반박하거나 이미 지급된 금원의 반환 범위를 놓고 다시 다투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수원과 경기남부 지역에서도 계속적 거래에 따른 근보증 분쟁으로 문의하는 사례가 꾸준히 있는 만큼, 근보증계약서를 손에 쥐고 있다면 최고액 기재 여부부터 먼저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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