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나 월세 계약이 끝나 이사를 나가려는데, 집주인이 도배·장판을 통째로 새로 해야 한다며 원상복구비 수백만 원을 보증금에서 제하고 나머지만 돌려주겠다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임차인이 실제로 훼손한 부분과 몇 년을 살면서 자연스럽게 낡은 부분이 뒤섞여 있는데도, 영수증 한 장 없이 견적만으로 공제 금액이 정해진다는 데 있습니다. 임차인이 부담해야 할 원상복구의 범위는 법적으로 정해져 있고, 임대인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이 글에서는 원상회복의무의 실제 범위, 통상손모가 왜 임차인 책임이 아닌지, 과다공제가 의심될 때 무엇을 확인하고 어떻게 다퉈야 하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임차인 원상회복의무의 법적 근거와 범위
임차인의 원상회복의무는 계약서에 특약이 없어도 법률상 당연히 발생하는 의무입니다. 민법 제654조가 준용하는 제615조는 "차주가 차용물을 반환하는 때에는 이를 원상에 회복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고, 이 규정이 임대차에도 그대로 준용됩니다. 임대차가 끝나면 임차인은 자신이 설치하거나 변경한 시설·구조물을 철거하고, 목적물을 인도받았을 때의 상태로 되돌려 반환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뜻입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원상"이 계약 체결 당시 상태로의 무조건적 복귀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에게도 목적물을 계약 존속 중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하게 할 의무를 지우고 있습니다. 즉 세월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낡거나 설비가 노후화되는 부분은 원칙적으로 임대인이 책임져야 할 영역이고, 임차인의 원상회복의무는 그중에서도 임차인의 사용으로 인해 통상적 범위를 넘어 발생한 손상을 되돌리는 데 한정됩니다.
임차인의 원상회복의무는 계약 체결 당시 상태로의 무조건적 복귀가 아니라, 통상적인 사용 범위를 넘는 손상을 되돌리는 데 그친다.
여기서 말하는 원상회복 대상에는 두 갈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임차인이 스스로 설치한 파티션·붙박이 가구·인테리어 시설 등을 철거하고 벽체나 바닥을 원래 형태로 되돌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임차인의 사용으로 통상범위를 넘어 발생한 손상을 보수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임차인이 직접 만든 변경이므로 철거 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크지 않지만, 후자는 "그 손상이 통상적인가 아닌가"를 두고 다툼이 벌어지는 지점입니다. 원상복구비 공제 분쟁의 대부분은 후자, 즉 통상손모와 임차인 귀책의 경계를 어디에 긋느냐의 문제입니다.
통상손모는 임차인 책임이 아니다 — 판례 법리
서울중앙지법 2019가합4453 판결은 이 경계선을 명확히 그은 판결입니다. 이 판결은 임차인이 통상적인 사용을 한 후에 생기는 임차목적물의 상태 악화나 가치 감소, 이른바 통상손모는 목적물을 사용하는 것을 본질로 하는 임대차계약에서 당연히 예정되어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한 가치훼손은 이미 차임에 반영되어 있으므로 임차인에게 귀책사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임차인이 평범하게 살림을 하며 생기는 마모는 집주인이 받는 월세·보증금 안에 이미 셈해져 있다는 취지입니다.
실무에서 통상손모와 임차인 귀책 손상을 가르는 기준은 결국 "그 정도 손상이 평범한 거주 생활에서 통상적으로 발생하는가"입니다. 못자국이나 가구를 옮기며 생긴 바닥의 경미한 스크래치,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변색된 벽지 등은 흔히 통상손모로 분류됩니다. 반면 장기간 환기를 하지 않아 방치된 곰팡이, 반려동물로 인한 마룻바닥의 심한 파손, 흡연으로 벽지 전체가 누렇게 오염된 경우, 누수를 알고도 방치해 피해를 키운 경우처럼 통상적 사용 범위를 명백히 벗어난 손상은 임차인 책임으로 인정될 여지가 큽니다.
통상손모(임차인 책임 아님) — 못자국, 가구 자국, 경미한 바닥 스크래치, 자연스러운 벽지 변색·바닥 광택 저하.
임차인 귀책(공제 가능) — 방치된 곰팡이, 반려동물로 인한 심한 마루 파손, 흡연으로 인한 전체 벽지 오염, 누수 방치로 인한 확산 피해.
실제 분쟁은 이 두 유형이 한집에 섞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4년을 거주한 임차인이 못을 몇 군데 박아 액자를 걸었고, 동시에 베란다 창틀 주변에 결로를 방치해 곰팡이가 번진 상태로 퇴거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때 못자국은 통상손모로 공제 대상이 아니지만, 결로를 알고도 환기·제습 등 관리를 소홀히 해 곰팡이가 확산된 부분은 임차인 귀책으로 인정되어 그 보수비만 공제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공제 내역서에 두 가지가 뭉뚱그려져 있다면, 항목을 나눠 어느 부분이 통상손모이고 어느 부분이 귀책인지부터 분리해서 따져야 합니다.
감가상각으로 계산하는 원상복구비 — 도배·장판 사례
설령 임차인 귀책이 인정되는 손상이라 하더라도, 새 자재로 전부 교체하는 비용을 그대로 임차인에게 청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배·장판처럼 시간이 지나며 자연히 가치가 줄어드는 시설은 감가상각을 반영해 임차인 부담분을 산정하는 것이 실무의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흔히 참고되는 산정식은 "임차인 부담액 = 수선비용 − (경과연수/내용연수) × 수선비용"이고, 도배·장판의 내용연수는 통상 10년으로 봅니다.
예를 들어 입주 후 8년이 지난 시점에 도배를 새로 해야 하고 그 수선비용이 100만 원이라면, 임차인 부담분은 100만 원에서 8년/10년에 해당하는 80만 원을 뺀 20만 원 수준에 그칩니다. 이 계산식이 법령이나 고시로 강제되는 기준은 아니지만, 공공기관 단가표를 근거로 분쟁조정위원회와 실무에서 폭넓게 참고되는 방식입니다. 임대인이 경과연수를 무시하고 신규 시공 견적 전액을 그대로 요구한다면 과다공제를 의심해 볼 지점입니다.
보일러·수도배관·창호 같은 주요 설비의 노후화는 이 계산식과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런 설비는 임차인의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시간이 지나면 성능이 떨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고, 애초에 임대인이 민법 제623조에 따라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해야 할 대상이므로 원칙적으로 수선 비용을 임차인에게 전가할 수 없습니다. 도배·장판처럼 임차인의 생활 흔적이 직접 남는 마감재와, 건물 자체의 노후화로 고장 나는 설비를 구분해서 접근해야 공제 항목의 타당성을 제대로 따질 수 있습니다.
보증금의 담보적 성질과 임대인 공제의 한계
대법원 1999. 12. 7. 선고 99다50729 판결은 임대차보증금이 차임뿐 아니라 목적물의 멸실·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채무 등 임대차관계에서 발생하는 임차인의 모든 채무를 담보하는 것이어서, 그 피담보채무 상당액은 임대차 종료 후 목적물이 반환될 때 별도의 의사표시 없이도 보증금에서 당연히 공제된다고 판시했습니다. 보증금이 일종의 담보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임대인이 손해액만큼 공제하는 것 자체는 정당한 권리 행사입니다.
그러나 이 "당연 공제"는 실제로 손해가 발생하고 그 금액이 확정되어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대법원 2002. 12. 10. 선고 2002다52657 판결은 임대인과 임차인이 계약서에 "퇴거 시 원상복구비 얼마"라는 식으로 미리 약정해 둔 금액은 임대차관계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채무가 아니라 별도 약정에 기해서만 발생하는 채무에 불과하므로, 반환할 보증금에서 그 약정 금액 자체를 당연히 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계약서에 금액이 적혀 있다는 사정만으로 그 액수를 그대로 뗄 수 있는 게 아니라, 실제 손해액이 얼마인지를 따져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임대인이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는 것은 실제 발생한 손해액이지, 계약서에 미리 적어둔 약정 금액 자체가 아니다.
과다공제가 의심될 때 확인해야 할 것
공제 내역서를 받았다면 곧바로 서명하기보다 다음 항목부터 대조해 보는 것이 순서입니다. 입주 당시 찍어둔 사진이나 체크리스트가 있다면 지금 지적받은 하자가 애초부터 있던 것인지, 거주 중 생긴 것인지부터 비교할 수 있습니다.
입주 당시 사진·체크리스트와 지금 지적된 하자를 직접 대조.
견적서·영수증 등 실제 지출을 증명하는 자료를 요구.
공사 범위가 훼손 부위에 한정되는지, 불필요하게 전체 교체로 부풀려지지 않았는지 확인.
도배·장판 등 감가상각 대상 항목에 경과연수가 반영되었는지 확인.
계약서 특약 문구를 다시 읽어 원상복구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재확인.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그 손해액, 그리고 그것이 통상손모를 넘어서는 임차인 귀책이라는 점은 공제를 주장하는 임대인 쪽이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 실무의 일반적인 입증책임 배분입니다. 임대인이 근거자료 없이 "원래 이 정도는 나온다"는 식으로 금액만 통보한다면, 그 자체로 다툴 여지가 있는 셈입니다.
다투는 법 — 내용증명부터 분쟁조정·소송까지
공제 내역에 이의가 있다면 먼저 내용증명으로 공제 항목별 근거자료(견적서·영수증·경과연수 산정 내역)를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임대인이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거나 협의가 되지 않는다면, 한국부동산원과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운영하는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유지·수선 의무 관련 분쟁도 조정 대상에 포함되고, 절차 개시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종료되며 수수료도 비교적 저렴합니다.
조정이 성립하지 않으면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이나 부당이득반환청구로 넘어가게 됩니다. 청구 금액이 크지 않다면 소액사건심판절차를 활용해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단계로 가든 입주 당시 사진, 계약서, 공제 내역서, 내용증명 발송 기록 같은 자료를 미리 정리해 두는 쪽이 유리합니다.
분쟁조정위원회 신청은 온라인·우편·방문 모두 가능하고, 임대차계약서를 필수로 제출하고 등기부등본이나 사진·영수증·내용증명 같은 참고자료를 함께 낼 수 있습니다. 조정 목적물 가액에 따라 수수료가 1만 원에서 10만 원 수준으로 책정되며, 소액임차인이나 기초생활수급자 등은 수수료가 면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송보다 절차가 간이하고 비용 부담이 적어, 공제 금액이 크지 않은 분쟁에서는 우선적으로 고려할 만한 경로입니다.
특약으로 원상복구 범위를 넓힌 경우의 한계
"퇴거 시 도배·장판을 전부 새로 시공한다"는 식의 특약 자체는 유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구가 통상손모까지 포함한다는 점이 명확하지 않다면, 임차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함부로 확대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특약의 의미가 다투어질 때는 계약 당시 정황과 문언을 함께 살펴야 하고,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임차인에게만 과도한 의무를 지우는 특약은 별도로 그 효력 자체를 다툴 여지도 있습니다.
반대로 임차인도 유의할 부분이 있습니다. 원상회복의무 이행을 정당한 이유 없이 미루거나 거부하면, 대법원 2012다86895 판결이 보여주듯 임대인은 자신이 스스로 원상회복을 완료할 수 있었던 기간까지의 임료 상당 손해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공제 내역에 이의가 있더라도 무작정 버티기보다는, 이의가 있는 부분을 명확히 밝히고 정당한 절차를 통해 다투는 편이 결과적으로 유리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못자국이나 바닥 스크래치도 원상복구비를 내야 하나요?
A.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경미한 못자국이나 스크래치는 통상손모로 보아 원칙적으로 임차인이 별도 비용을 물지 않습니다. 다만 벽에 큰 구멍을 내거나 반려동물로 바닥이 심하게 파손된 경우처럼 통상적 사용 범위를 벗어난 손상은 임차인 책임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Q. 도배·장판을 무조건 새것으로 교체해줘야 하나요?
A. 임차인 귀책으로 인정되는 손상이라도 새 자재 전체 교체 비용을 그대로 부담하는 것은 아니고, 사용한 연수만큼 감가상각을 반영한 금액만 부담하는 것이 실무의 일반적 산정 방식입니다. 오래 거주했을수록 임차인 부담 비율은 줄어듭니다.
Q. 임대인이 영수증도 없이 공제하면 어떻게 하나요?
A. 공제를 주장하는 임대인이 실제 손해 발생과 그 금액을 증명해야 하므로, 견적서나 영수증 같은 증빙 없이 임의로 정한 금액을 공제하는 것은 다툴 여지가 큽니다. 내용증명으로 근거 자료 제시를 먼저 요구해 보는 것이 순서입니다.
Q. 계약서에 "퇴거 시 전체 도배 새로 해준다"는 특약이 있으면 무조건 지켜야 하나요?
A. 특약 자체는 유효할 수 있지만 그 문구가 통상손모까지 포함한다는 점이 명확하지 않다면 임차인에게 불리하게 확대해석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지나치게 일방적인 특약은 별도로 효력을 다툴 여지도 있습니다.
Q. 과다공제로 다투려면 바로 소송부터 해야 하나요?
A. 소송 전에 내용증명으로 근거자료를 요구하고,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부동산원이나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운영하는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조정을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조정이 불성립하면 그때 보증금반환청구소송으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Q. 공제 금액에 다툼이 있으면 보증금을 아예 못 받는 건가요?
A. 다툼이 없는 부분까지 전액 보류하는 것은 임대인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어, 다툼 없는 금액은 우선 반환받고 다투는 금액만 별도로 다투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구체적 처리 방식은 협의나 조정·소송 절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맺음말
임차인의 원상회복의무는 통상손모를 제외한, 통상적 사용 범위를 넘는 손상에 한정되고 그 손상조차 감가상각을 반영한 실손해만 공제 대상이 됩니다. 임대인이 제시하는 공제 내역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통상손모인지 아닌지부터 가려보고 근거자료를 요구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광교·수지를 비롯한 경기남부 지역 아파트·오피스텔 임대차에서도 원상복구비를 둘러싼 다툼은 꾸준히 발생합니다. 공제 내역서에 서명하기 전에 위 기준으로 한 번 더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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