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갚으라는 소장을 받았는데, 정작 상대방이 나에게도 갚아야 할 돈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럴 때 흔히 쓰는 방어 방법이 상계 항변입니다. 내가 상대방에 대해 가진 채권(자동채권)으로 상대방이 청구하는 채권(수동채권)을 대등액만큼 소멸시켜, 실제로 지급해야 할 금액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방법입니다. 다만 상계는 채권 두 개를 마주 세운다고 곧바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민법이 정한 요건을 모두 갖춰야 하고, 법률상 상계 자체가 금지되는 채권도 따로 있어 요건을 잘못 짚으면 항변이 통째로 배척당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상계 항변이 실제로 인정되기 위한 요건과, 실무에서 자주 놓치는 함정을 정리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상계란 무엇인가 — 자동채권과 수동채권의 구조
상계는 서로 채무를 부담하고 있는 두 사람이 실제로 돈을 주고받지 않고, 대등액에서 채권·채무를 동시에 소멸시키는 제도입니다. 소송에서는 원고의 청구를 그대로 인용당하지 않으면서도 별도의 반소나 이행청구 없이 방어할 수 있는 실익이 커서, 대여금·물품대금·공사대금처럼 금전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특히 자주 쓰입니다. 실제로 돈이 오가지 않아도 되므로 상대방의 자력이 불안한 경우 강제집행이 공전할 위험을 줄이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때 반드시 구분해야 하는 개념이 자동채권과 수동채권입니다. 자동채권은 상계를 주장하는 사람이 상대방에 대해 가지고 있는 채권, 즉 상계의 재료로 쓰는 자기 채권입니다. 수동채권은 반대로 상대방이 나에게 청구하고 있는 채권으로, 상계로 소멸시키려는 대상입니다. 소송에서는 원고가 청구하는 채권이 피고 입장에서 수동채권이 되고, 피고가 별도로 가진 채권이 자동채권이 되는 구조입니다. 이 두 개념을 뒤바꿔 이해하면 뒤에서 살펴볼 변제기 요건을 완전히 반대로 적용하는 실수로 이어지므로 처음부터 정확히 구분해두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물품대금 3천만원을 청구받은 피고가 과거 원고에게 빌려준 대여금 채권 2천만원을 가지고 있다면, 피고 입장에서 대여금 채권이 자동채권이고 원고가 청구하는 물품대금 채권이 수동채권입니다. 이 관계에서 상계가 인정되면 물품대금 채무는 대여금 액수만큼 소멸해 3천만원 중 2천만원이 사라지고, 남은 1천만원에 대해서만 지급 의무가 남습니다. 이처럼 상계는 소송물 전부를 다투지 않고도 청구액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방어 수단이 되므로, 반소를 따로 제기하는 것보다 절차가 간명하다는 실익도 있습니다.
상계의 성립요건 — 상계적상을 이루는 네 가지
민법 제492조는 상계가 인정되기 위한 요건, 이른바 상계적상을 정하고 있습니다. 이 요건은 하나라도 빠지면 상계 항변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므로, 소장을 받고 상계를 검토할 때 가장 먼저 하나씩 대조해봐야 하는 체크리스트입니다.
채권의 대립 — 당사자 쌍방이 서로에 대해 채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제3자에 대한 채권으로는 원칙적으로 상계할 수 없습니다.
같은 종류를 목적으로 할 것 — 금전채권과 금전채권처럼 급부의 종류가 같아야 합니다. 금전채권과 물건인도채권처럼 목적이 다르면 상계할 수 없습니다.
변제기가 도래할 것 — 자동채권은 변제기가 도래해야 하고, 수동채권은 변제기 전이라도 채무자가 기한의 이익을 포기하면 무방합니다.
채무의 성질상 상계가 허용될 것 — 부작위채무처럼 성질상 상계와 맞지 않거나, 당사자 사이에 상계금지특약이 있는 채권은 제외됩니다.
이 네 가지가 모두 갖춰진 상태를 상계적상이라 부르고, 상계는 이 상태가 유지되는 동안에만 주장할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 상계 항변이 배척되는 가장 흔한 이유는 첫째와 셋째 요건, 즉 채권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거나 변제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하는 경우입니다.
상계는 채권의 대립, 동종의 목적, 변제기 도래, 성질상 허용성이라는 네 요건이 모두 갖춰진 상계적상 상태에서만 주장할 수 있다.
자동채권과 수동채권, 변제기를 다르게 보는 이유
많은 사람이 헷갈리는 지점이 왜 자동채권만 변제기 도래를 엄격히 요구하고 수동채권은 예외를 두는가입니다. 상계는 상계를 주장하는 사람이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행사하는 형성권입니다. 자기 채권인 자동채권을 아직 이행기도 되지 않았는데 강제로 상대방에게 받아낸 것과 같은 효과를 내도록 허용하면 상대방에게 기한의 이익을 부당하게 빼앗는 결과가 되므로, 자동채권은 반드시 변제기가 도래해 있어야 합니다.
반면 수동채권은 상계를 주장하는 사람 스스로가 부담하는 채무입니다. 변제기가 되기 전에 스스로 그 채무를 소멸시키겠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한의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일 뿐 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으므로, 수동채권은 변제기 전이라도 상계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원고가 청구하는 물품대금의 지급기일이 아직 남아 있어도, 피고가 가진 대여금 채권(자동채권)의 변제기만 이미 도래했다면 상계는 유효하게 성립합니다.
반대의 경우라면 결론이 달라집니다. 피고가 주장하려는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면, 수동채권인 원고의 청구가 이미 변제기를 넘겼더라도 상계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소송 중 상계를 검토할 때는 항상 자기가 내세우려는 채권의 변제기부터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법률상 상계가 금지되는 세 가지 경우
요건을 다 갖췄더라도 법률이 정책적으로 상계 자체를 막아둔 채권이 있습니다. 민법은 세 가지 유형을 명시적으로 금지합니다.
고의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제496조) — 가해자인 채무자는 상계로 피해자에게 대항할 수 없습니다. 상계를 허용하면 고의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현실적인 지급 없이 채무를 면할 수 있어 보복적 불법행위를 유발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압류하지 못하는 채권(제497조) — 임금·퇴직연금 등 압류가 금지된 채권을 수동채권으로 하는 상계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생계 보장을 위한 규정입니다.
지급금지명령을 받은 채권(제498조) — 채권압류명령을 받은 제3채무자가 그 이후에 취득한 채권으로 상계하더라도, 압류를 신청한 채권자에게는 그 상계로 대항할 수 없습니다.
이 가운데 제496조는 채무자 쪽에서만 상계를 못 하도록 막을 뿐, 피해자인 채권자가 자신의 손해배상채권을 자동채권으로 써서 상계하는 것은 막지 않습니다. 방향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규정이므로 자신이 채권자인지 채무자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고의의 불법행위 채권, 압류금지채권, 지급금지된 채권은 수동채권으로 삼아 상계할 수 없다 — 요건을 갖췄어도 이 세 유형에 해당하면 항변이 배척된다.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으로도 상계할 수 있다
채권을 오래 방치해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해서 무조건 쓸모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민법 제495조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이라도 그 완성 전에 상계할 수 있었던 상태였다면 그 채권으로 상계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당사자들이 이미 두 채권이 정산된 것으로 신뢰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 예외입니다.
다만 이 예외가 적용되려면 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이미 상계적상, 즉 앞서 본 네 가지 요건이 모두 갖춰진 상태였어야 합니다.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해 언제든 상계할 수 있었는데 상대방이 소송을 늦게 제기해 그사이 시효가 완성된 경우라면 이 규정으로 구제받을 수 있지만, 애초에 변제기조차 도래하지 않아 상계적상 자체가 성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효만 완성됐다면 이 예외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실무적으로는 오래된 채권을 근거로 상계를 주장하려 할 때, 상계적상이 언제 성립했는지를 뒷받침하는 자료(계약서상 변제기, 이행청구 내역 등)를 미리 정리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효완성 시점과 상계적상 성립 시점의 선후 관계가 다투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 채권이 압류됐어도 상계로 방어할 수 있는가
실무에서 자주 부딪히는 또 다른 상황은, 내가 채무자에게 갚아야 할 돈(수동채권)이 있는데 그 채권을 제3자인 채권자가 압류한 경우입니다. 이때 나(제3채무자)는 채무자에 대해 따로 가진 채권(자동채권)으로 상계해서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지가 문제 됩니다.
이에 관해 대법원 2012. 2. 16. 선고 2011다45521 전원합의체 판결은, 압류의 효력이 발생할 당시 두 채권이 이미 상계적상에 있었거나, 그 당시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압류된 채권(수동채권)의 변제기와 동시에 또는 그보다 먼저 도래하기만 하면 상계로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수동채권보다 늦게 도래한다면 상계로 대항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채권이 압류당했다는 통지를 받은 제3채무자라면, 압류 효력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자동채권과 수동채권 각각의 변제기가 언제인지부터 확인해야 상계로 방어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소송에서 상계 항변을 실제로 주장하는 방법
상계는 민법 제493조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행사하며, 이 의사표시에는 조건이나 기한을 붙일 수 없습니다. 상계의 효력은 의사표시를 한 시점이 아니라 두 채권이 상계적상에 이르렀던 시점으로 소급해, 그 시점에 대등액만큼 이미 소멸한 것으로 봅니다.
소송 실무에서는 답변서나 준비서면에서 상계 항변을 명시적으로 제출하면서, 자동채권의 발생 원인·금액·변제기 도래 사실을 뒷받침하는 계약서·거래내역·이행청구 자료 등을 함께 제출해야 합니다. 법원은 상계 항변이 받아들여지면 원고의 청구액에서 상계로 소멸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만 인용하고, 상계 주장이 배척되면 원래 청구가 그대로 인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상계 항변은 변론이 종결되기 전이라면 소송 중간에 추가로 제출할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뒤늦게 제출하면 시기에 늦은 공격방어방법으로 각하될 위험이 있습니다. 자동채권의 존재를 인지한 시점에 가능한 한 빨리 정리해서 제출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상계 항변이 받아들여져 청구액 일부가 소멸하는 경우, 소송비용은 통상 각자가 다툰 비율에 따라 안분되는 경우가 많아 원고가 처음 청구한 전액을 그대로 인용받았을 때와는 결과가 달라집니다. 자동채권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부실해 상계 항변이 배척되면 소송비용까지 불리하게 산정될 수 있으므로, 자동채권 관련 증빙은 소송 초기 단계부터 최대한 갖춰두는 것이 유리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상대방이 내게 갚을 돈이 있다고 말만 하면 상계할 수 있나요?
A. 자동채권이 실제로 존재하고 변제기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며, 단순 주장만으로는 상계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계약서·거래내역 등 자동채권의 발생 근거와 금액을 뒷받침할 자료를 준비해야 합니다.
Q. 소송이 이미 진행 중인데 상계 항변을 나중에 추가해도 되나요?
A. 변론이 종결되기 전이라면 준비서면으로 상계 항변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늦게 제출하면 시기에 늦은 공격방어방법으로 각하될 수 있어 가능한 한 이른 시점에 제출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Q. 상계하면 채권이 정확히 언제 소멸하나요?
A. 상계의 의사표시를 한 시점이 아니라, 두 채권이 상계적상에 이르렀던 시점으로 소급해 대등액만큼 소멸한 것으로 봅니다. 그 시점 이후 발생한 지연손해금 등도 상계로 정산된 범위에서 함께 소멸합니다.
Q. 임금이나 퇴직금도 상계로 깎일 수 있나요?
A. 압류하지 못하는 채권을 수동채권으로 하는 상계는 민법 제497조로 금지되어 있어, 임금이나 퇴직연금 중 압류가 금지되는 부분은 원칙적으로 상계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사안에 따라 별도 법리가 적용될 수 있어 개별 확인이 필요합니다.
Q. 시효가 지난 채권은 아예 못 쓰는 건가요?
A. 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이미 상계할 수 있는 상태, 즉 상계적상에 있었다면 시효완성 후에도 그 채권으로 상계할 수 있습니다. 다만 상계적상이 성립하기 전에 시효가 먼저 완성됐다면 이 예외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Q. 상대방 채권이 압류돼 있어도 제가 상계로 방어할 수 있나요?
A. 압류의 효력이 발생할 당시 두 채권이 이미 상계적상에 있었거나,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압류된 채권의 변제기와 동시에 또는 그보다 먼저 도래한다면 상계로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태도입니다. 변제기 선후 관계를 먼저 따져봐야 합니다.
맺음말
상계 항변은 채권의 대립, 동종의 목적, 변제기 도래, 성질상 허용성이라는 네 요건이 모두 갖춰져야 인정되고, 여기에 더해 고의의 불법행위 채권·압류금지채권·지급금지된 채권처럼 법률이 아예 상계를 막아둔 유형도 있습니다. 요건 하나라도 어긋나면 항변 자체가 배척될 수 있으므로, 소장을 받은 뒤 급하게 준비하기보다 평소 거래관계에서 발생한 채권의 존재와 변제기를 정리해두는 습관이 실제 분쟁에서 큰 차이를 만듭니다.
수원지방법원 등에서 대여금·물품대금 청구소송을 방어하다 보면 상계 항변이 승패를 가르는 쟁점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자동채권의 존재와 변제기 도래 여부를 미리 정리해두지 않으면 정작 필요한 순간에 항변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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