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나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의 부탁으로 통장이나 체크카드를 잠깐 빌려줬다가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를 받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초범이니 크게 문제 되지 않겠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처벌 수위는 초범 여부보다 그 통장을 빌려주면서 대가를 받았는지에 따라 크게 갈립니다. 대가 없이 속아서 넘겨준 경우와 돈을 받고 넘겨준 경우는 적용되는 법조문도, 함께 성립할 수 있는 범죄도, 법원이 보는 고의의 강도도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통장 대여가 구체적으로 어떤 범죄에 해당하는지, 대가 유무가 왜 처벌의 분수령이 되는지, 초범이라는 사정이 실제로 어디까지 참작되는지를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통장 대여, 왜 범죄가 되나 — 전자금융거래법이 금지하는 행위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은 접근매체(통장·체크카드·비밀번호·보안카드·OTP 등)에 관해 몇 가지 유형의 행위를 금지합니다. 접근매체를 양도하거나 양수하는 행위, 대가를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대여받거나 대여하는(또는 보관·전달·유통하는) 행위, 범죄에 이용할 목적으로 또는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접근매체를 대여받거나 대여하는(또는 보관·전달·유통하는) 행위, 접근매체를 질권의 목적으로 하는 행위입니다. 통장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대부분의 사례는 이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합니다.
처벌 조항은 제49조 제4항입니다. 대가를 받고 접근매체를 대여한 경우(제6조 제3항 제2호 위반)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고, 단순 양도나 범죄이용목적을 인식한 대여도 같은 조항의 다른 호를 통해 유사한 형량으로 처벌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죄가 성립하는 데 실제로 보이스피싱 등 다른 범죄에 통장이 쓰였는지까지 확인될 필요는 없다는 점입니다. 접근매체를 대가를 받고 넘겨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미 전자금융거래법위반이 완성됩니다.
전자금융거래법위반은 통장이 실제로 범죄에 쓰였는지와 무관하게, 대가를 받고 넘겨줬다는 행위 자체로 성립하는 별도의 범죄다.
대가를 받았는지가 가르는 것 — '대여죄' 성립과 방조 고의
여기서 '대가'란 접근매체를 넘겨주는 행위에 대응하는 경제적 이익을 뜻합니다. 반드시 현금으로 즉시 지급받아야만 대가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2023. 1. 12. 선고 2021도10861 판결은 성명불상자로부터 인출금액의 10%를 받기로 약속하고 체크카드를 건네받아 보관한 사안에서, 아직 실제로 돈을 받지 않았더라도 대가를 받기로 약속하고 그 불법적인 이용을 위해 접근매체를 보관했다면 대가를 수수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후 실제 정산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죄가 부정되지 않는다는 취지입니다.
대가 유무는 전자금융거래법위반의 성립 요건을 가르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통장이 실제로 보이스피싱 등 사기 범행에 이용됐다면 검찰은 전자금융거래법위반과 별도로 사기방조(형법 제347조, 제32조)를 함께 검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조범이 성립하려면 정범의 범행을 인식하는 것 외에 자신의 행위가 그 범행을 돕는다는 방조의 고의가 필요한데, 판례는 이 고의가 확정적일 필요는 없고 "내 통장이 어쩌면 범죄에 쓰일 수도 있겠다"는 정도를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이를 용인했다면 미필적 고의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법원이 이 미필적 고의를 판단할 때 가장 먼저 살피는 사정 중 하나가 바로 대가를 받았는지, 받았다면 통상적인 거래로 보기 어려운 비정상적인 금액인지입니다. 통장 하나를 빌려주는 대가로 인출액의 일정 비율을 받기로 했다는 사정은, 정상적인 금융거래로는 설명되지 않는 만큼 범죄에 쓰일 것을 짐작했다는 정황으로 작용하기 쉽습니다.
대가의 액수와 지급 방식이 정상적인 거래로 설명되지 않을수록, 법원은 접근매체가 범죄에 쓰일 것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했다고 볼 가능성을 높게 본다.
대가 없이 속아서 빌려준 경우 — 무죄로 판단되려면
반대로 대가를 전혀 받지 않고, 정상적인 금융거래로 오인해 통장을 넘긴 경우라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대표적인 예가 대출을 알아보다가 "신용도 확인을 위해 필요하다"거나 "대출금이 입금될 계좌를 확인해야 한다"는 말에 속아 통장과 체크카드, 비밀번호를 함께 건넨 경우입니다. 이런 사안에서는 대가가 오간 흔적이 없고, 오히려 피해자 스스로도 대출을 받으려다 통장을 빼앗긴 쪽에 가깝기 때문에 사기방조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사례들이 있습니다.
다만 대가가 없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은 대가 없는 단순 양도나 범죄이용목적을 인식한 대여도 별도로 금지하고 있어서, 대가를 받지 않았어도 통장을 넘겨준 경위 자체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죄나 불기소로 이어지려면 대출 안내 문자메시지, 통화 녹음, 입출금 내역처럼 정상적인 금융거래로 오인할 만한 구체적 정황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단순히 "몰랐다", "속았다"는 진술만으로는 수사기관과 법원을 설득하기 어렵고, 당시 주고받은 문자나 통화 기록, 금융기관·대출업체를 사칭한 정황을 최대한 확보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출 빙자 문자메시지·안내 화면 캡처 — 정상 거래로 믿었다는 정황의 핵심 자료.
상대방과의 통화 녹음이나 메신저 대화 기록 — 요구받은 명목이 무엇이었는지 확인 가능.
통장·카드를 넘긴 경위를 시간순으로 정리한 진술 메모 — 조사 전 미리 준비.
대가로 금전을 받은 사실이 없다면 본인 계좌 거래내역으로 이를 뒷받침.
초범이라는 사정, 선처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초범이라는 사실은 분명 유리한 양형자료입니다. 그러나 초범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면하거나 자동으로 집행유예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초범이라도 카드나 OTP, 비밀번호까지 함께 넘겼는지, 피해금이 실제로 그 계좌에 입금됐는지, 인출이나 송금 역할까지 맡았는지, 대가를 얼마나 받았는지에 따라 같은 초범이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단순히 통장 한 개를 대가 없이 빌려준 사안과, 여러 개의 계좌·카드를 대가를 받고 넘기며 인출까지 도운 사안은 같은 '초범'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어도 법원이 보는 무게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 대가 없이 통장 한 개만 넘겼고 실제 피해액도 크지 않았던 초범이라면 벌금형이나 기소유예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대가를 받고 통장·카드·비밀번호를 함께 넘겼고, 그 계좌로 여러 명의 피해자로부터 상당한 금액이 오간 정황이 확인된다면, 초범이라 하더라도 사기방조까지 함께 인정돼 징역형의 집행유예나 실형이 검토될 수 있습니다. 초범이라는 사정은 형을 낮추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 가담 정도와 대가 수수라는 핵심 사정을 뒤집는 카드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조사받을 때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들
경찰이나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다면 가장 먼저 자신이 어떤 죄목으로 입건됐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전자금융거래법위반만 입건됐는지, 사기방조까지 함께 검토되고 있는지에 따라 방어 전략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대가를 받은 사실이 있다면 그 액수와 지급 경위를 숨기기보다 정확히 진술하되, 애초에 무엇을 위한 돈이라고 들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대로 대가 없이 속아서 넘긴 경우라면 앞서 언급한 대출 관련 문자메시지나 통화 기록 등 객관적 자료를 조사 전에 미리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조사 과정에서는 진술의 일관성도 중요합니다. 처음 진술과 이후 진술이 어긋나면 그 자체가 불리한 정황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있는 사안이라면 피해 회복을 위한 공탁이나 합의를 조사 초기부터 준비하는 것이 양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자신의 가담 정도가 단순 대여에 그치는지, 인출·전달까지 관여했는지를 스스로 객관적으로 정리해 두면 진술 과정에서 실제보다 가담 정도가 과장되게 비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재판에서 형량을 가르는 추가 요소들
같은 전자금융거래법위반이나 사기방조라도 실제 선고되는 형은 여러 요소에 따라 달라집니다. 피해액의 규모, 피해자가 몇 명인지, 넘긴 통장이 실제로 얼마나 여러 차례 범행에 이용됐는지가 먼저 고려됩니다. 여기에 더해 통장을 대가 없이 한 번 넘긴 데 그쳤는지, 대가를 받고 여러 차례 반복해서 계좌를 제공했는지, 인출책이나 전달책처럼 더 적극적인 역할을 맡았는지도 형량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피해 회복 여부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공탁을 통해 피해 일부라도 변제한 사정, 수사 초기 단계부터 협조한 태도, 반성문 등을 통해 드러나는 재범 방지 의지는 모두 유리한 양형 자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여죄가 확인되거나 비슷한 방식으로 여러 명에게 접근매체를 제공한 정황이 나오면 초범이라는 지위와 무관하게 처벌 수위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사안이 이 중 어디에 가까운지를 미리 냉정하게 파악해 두는 것이 대응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통장을 딱 한 번, 대가 없이 빌려줬어도 처벌받나요?
A. 대가가 없었더라도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은 단순 양도나 범죄이용목적을 인식한 대여도 금지하고 있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대가가 없고 정상적인 거래로 오인할 만한 정황이 뚜렷하다면 사기방조까지 인정되기는 어렵고, 벌금형이나 기소유예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대가로 받은 돈을 나중에 돌려주면 죄가 없어지나요?
A. 판례는 대가를 받기로 약속하고 접근매체를 보관한 시점에 이미 죄가 성립한다고 보고 있어, 이후 실제로 돈을 받지 않았거나 돌려줬다는 사정만으로 성립 자체가 부정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피해 회복이나 반성의 정황으로 양형에는 참작될 수 있습니다.
Q. 통장이 보이스피싱에 쓰인 걸 몰랐다면 사기방조는 성립하지 않나요?
A. 사기방조는 확정적 고의가 아니라 미필적 고의로도 성립할 수 있어, 전혀 몰랐다고 주장해도 대가의 액수나 지급 방식이 비정상적이었다면 짐작했으면서도 용인했다고 판단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대가가 없고 정상 거래로 오인할 정황이 뚜렷하다면 고의가 부정될 여지가 커집니다.
Q. 초범이면 무조건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나요?
A. 초범이라는 사정은 유리한 양형자료일 뿐 결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대가 수수 여부와 금액, 가담 정도, 피해액 규모, 피해 회복 여부 등이 함께 고려되어 초범이라도 사안에 따라 실형이 선고될 수 있습니다.
Q. 카드와 비밀번호는 안 주고 통장만 줬다면 다르게 볼까요?
A. 카드·OTP·비밀번호까지 함께 넘겼는지는 접근매체 이용에 대한 관리·감독을 완전히 포기했는지를 보여주는 사정이라 가담 정도를 판단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다만 통장만 넘겼더라도 그것만으로 전자금융거래법위반 성립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Q. 수사기관에서 연락이 왔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A. 대가 수수 여부, 통장을 넘긴 경위와 관련 자료(문자메시지·통화기록 등)를 먼저 정리한 뒤 조사에 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진술의 일관성이 중요하므로 사실관계를 미리 정리하지 않은 채 조사를 받으면 실제보다 불리하게 진술이 남을 수 있습니다.
맺음말
통장 대여는 실제로 다른 사람이 그 통장으로 무엇을 했는지와 별개로, 접근매체를 넘겨준 행위 자체로 전자금융거래법위반이 성립할 수 있는 범죄입니다. 여기에 더해 대가를 받았는지, 그 통장이 실제로 사기 범행에 쓰였는지에 따라 사기방조까지 함께 검토되면서 처벌 수위가 크게 달라집니다. 초범이라는 사정은 분명 참작되는 요소지만, 대가 수수와 가담 정도라는 핵심 사정을 뒤집지는 못합니다.
자신의 사안이 대가 없이 속아서 넘긴 경우에 가까운지, 대가를 받고 넘긴 경우에 가까운지부터 냉정하게 정리하는 것이 대응의 출발점입니다. 수원지검이나 인근 경찰서에서 조사 일정을 통보받았다면, 진술 방향을 정하기 전에 관련 자료부터 챙겨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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