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에 이끌려 투자금을 넣었다가, 나중에야 그 업체가 유사수신행위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때 많은 투자자가 "불법 업체와 맺은 계약이니 당연히 무효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다릅니다. 유사수신행위로 형사처벌을 받는 것과 그 업체와 체결한 투자계약의 사법상 효력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회생절차에 들어간 유사수신 업체의 관리인이 투자자에게 "계약이 무효이니 받아간 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걸었다가 대법원에서 패소한 사건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유사수신행위의 개념부터, 계약의 사법상 효력을 정면으로 다룬 대법원 판결의 논리, 그리고 투자자가 실제로 어떤 청구를 할 수 있는지까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유사수신행위란 — 인가·허가 없이 원금 이상을 약속하는 자금조달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2조는 다른 법령에 따른 인가·허가를 받지 않거나 등록·신고 등을 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인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업으로 하면서, 장래에 원금을 초과하는 금액을 지급하겠다고 약정하는 행위를 유사수신행위로 규정합니다. 은행이나 저축은행처럼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은 곳이 아닌데도 "원금 보장에 고수익까지 지급하겠다"는 방식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돈을 모으면, 그 명목이 투자계약이든 회비든 사채든 형식과 무관하게 이 법의 규제 대상이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장래에 출자금 전액이나 그 이상을 지급하겠다고 약정하고 출자금을 받는 행위, 장래에 원금 전액 이상을 지급하겠다고 약정하고 예금·적금·부금·예탁금 명목으로 금전을 받는 행위, 발행가액이나 매출가액 이상으로 재매입하겠다고 약정하고 사채를 발행·매출하는 행위, 장래의 경제적 손실을 금전이나 유가증권으로 보전해주겠다고 약정하고 회비 명목으로 금전을 받는 행위입니다. 부동산개발·부실채권 매입·가상자산·리딩방 투자자문처럼 겉모습은 다양해도, "인가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서 원금 이상을 약속하며 돈을 모은다"는 구조가 겹치면 유사수신행위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출자금형 — 원금 전액 또는 초과 금액 지급을 약정하고 출자금 명목으로 수취.
예금·적금형 — 원금 초과 지급을 약정하고 예금·적금·부금·예탁금 명목으로 수취.
사채형 — 발행가·매출가 이상 재매입을 약정하고 사채를 발행·매출.
손실보전형 — 장래 손실을 금전·유가증권으로 보전하겠다고 약정하고 회비 명목으로 수취.
형사처벌 대상이라도 계약까지 자동 무효는 아니다
유사수신행위법 제3조는 "누구든지 유사수신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금지하고, 제6조 제1항은 이를 위반한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합니다. 그런데 형사처벌 조항이 있다고 해서 그 업체와 맺은 계약까지 당연히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령을 위반한 법률행위의 사법상 효력을 판단할 때는, 그 규정이 계약의 효력 자체를 부정하려는 효력규정인지, 아니면 행위자를 제재하는 데 그치는 단속규정인지를 먼저 구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효력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는 원칙적으로 무효로 취급되지만, 단속규정을 위반한 경우에는 행위자가 형사처벌이나 행정제재를 받을 뿐 상대방과 맺은 계약 자체의 사법상 효력에는 영향이 없다고 보는 것이 판례의 일반적인 태도입니다. 무허가 중개행위나 무등록 대부업처럼, 영업 자체는 위법이라도 개별 거래의 사법상 효력은 그대로 인정되는 사례들이 이미 여러 영역에서 축적되어 있습니다. 유사수신행위법 제3조가 이 중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는 하급심에서도 오랫동안 통일되지 않았는데, 대법원이 이를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정리한 것이 아래에서 살펴볼 판결입니다.
대법원 2023다310471 판결 — 관리인의 부당이득반환청구가 기각된 이유
이 사건에서 A사는 부실채권 매입과 부동산개발 사업을 한다며 2018년 6월 투자자 C와 투자계약을 맺고 3,000만원을 받았고, 이후 약정에 따라 원금과 수익금을 합쳐 총 3,580만 2,000원을 지급했습니다. 그런데 A사는 이후 3,000억원대 규모의 불법 유사수신행위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자금 사정이 급격히 악화되어 2021년 8월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받았습니다.
회생절차의 관리인은 "A사가 C와 맺은 투자계약은 유사수신행위로 체결된 것이어서 무효"라며, C가 받아 간 돈 중 투자원금과 민법이 정한 연 5%의 법정이율을 초과하는 부분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하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계약이 무효라면 C가 받은 수익금 전부에 법률상 원인이 없어지므로, 초과분을 돌려받아 다른 채권자들에게 분배할 재원으로 삼겠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2024. 4. 25. 선고 2023다310471 판결은 관리인의 상고를 기각하고, 투자계약이 유효하다고 본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습니다. 유사수신행위법 제3조는 효력규정이나 강행규정이 아니라 단속규정에 불과하므로, 이를 위반해 체결된 계약이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법상 효력을 그대로 가진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론이었습니다.
유사수신행위법 제3조는 효력규정이나 강행규정이 아니라 단속규정에 불과하므로, 유사수신행위로 체결된 계약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법상 효력을 가진다 — 대법원 2024. 4. 25. 선고 2023다310471 판결.
대법원이 무효로 보지 않은 세 가지 이유
대법원이 유사수신행위법 제3조를 단속규정으로 판단하면서 제시한 근거는 크게 세 갈래입니다. 첫째, 유사수신행위를 금지해 건전한 금융질서를 지키고 선의의 거래상대방을 보호하려는 입법목적은 형사처벌이나 행정적 규제만으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굳이 계약의 사법상 효력까지 부정하지 않아도 법의 목적은 이룰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둘째, 계약을 무효로 보면 오히려 입법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과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계약이 무효라면 유사수신 업자는 애초에 받은 돈을 정당하게 취한 것이 되지 않는 대신, 투자자에게 약정한 수익금을 지급할 법률상 의무 자체가 사라져 버립니다. 결국 불법행위를 저지른 업자가 오히려 반환의무를 면하고, 계약의 유효성을 믿고 거래한 선의의 투자자만 손해를 떠안는 역설이 생길 수 있습니다.
셋째, 유사수신행위 자체의 내용은 인가나 허가만 받았다면 적법하게 할 수 있는 행위이므로, 계약 내용 그 자체에 현저한 반도덕성이나 반사회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민법 제103조가 정한 반사회질서 법률행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입법목적은 형사처벌·행정규제로도 달성 가능하다는 점.
계약을 무효로 하면 오히려 선의의 투자자가 불리해지고 업자가 반환의무를 면한다는 점.
행위 내용 자체는 인·허가만 받으면 적법하므로 현저한 반사회성이 없다는 점(민법 제103조 미해당).
그렇다고 언제나 유효한 것은 아니다 — "특별한 사정"의 의미
다만 대법원이 쓴 표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법상 효력을 가진다는 것이지, 예외 없이 항상 유효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개별 계약의 체결 경위나 내용이 통상적인 유사수신행위의 범위를 넘어 극단적으로 불공정하거나 반사회적이라면, 여전히 민법 제103조를 근거로 무효를 다툴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처음부터 지급 능력이나 사업 실체 없이 투자금만 계속 끌어모으는 전형적인 폰지형 구조라면, 계약의 형식적 유효성과는 별개로 사기죄나 불법행위 책임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계약 자체가 사기에 의해 체결됐다면 유사수신행위법과는 무관하게 민법 제110조에 따라 그 의사표시를 취소하는 길도 남아 있습니다. 업체가 사업 실체나 배당 재원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있는 것처럼 속여 투자를 받았다면, 투자자는 계약이 유효하다는 대법원 법리와 무관하게 기망을 이유로 계약을 취소하고 지급한 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상대방이 처음부터 속일 의도가 있었다는 점, 즉 기망의 고의를 투자자 쪽에서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릅니다.
형사재판에서 업체 대표가 사기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다고 해서 그 사실만으로 민사상 계약이 곧바로 취소되거나 무효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형사 유죄와 민사상 취소·무효는 증명책임과 판단 기준이 다른 별개의 절차이므로, 투자자는 계약의 사법상 효력, 사기취소 가능성, 불법행위 손해배상 가능성을 각각 따로 검토해야 실질적인 구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투자자가 실제로 취할 수 있는 청구 — 계약이 유효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계약이 사법상 유효하다는 판단은 오히려 투자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계약이 무효가 아니라는 것은 곧 업체가 애초에 약정한 원금과 수익금을 지급할 채무를 그대로 부담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돈을 받지 못한 투자자라면, 계약서상 약정 내용을 근거로 원금과 약정 수익금 전액을 청구할 권리를 그대로 주장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업체가 도산해 회생절차나 파산절차에 들어간 경우에는 개별적으로 소송을 내거나 강제집행을 하는 것이 제한되고, 정해진 기간 안에 회생채권 또는 파산채권으로 신고해야 합니다. 이미 원금과 수익금 일부를 받은 투자자라 해도, 관리인이 그 돈을 부당이득이라며 반환을 구해 오더라도 이 대법원 판결의 논리를 근거로 계약이 유효했음을 들어 방어할 수 있습니다.
업체가 처음부터 기망 의도를 가지고 투자금을 모은 정황이 뚜렷하다면, 계약상 청구와 별도로 민법 제750조에 따른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나 유사수신행위법 위반·사기죄 형사고소를 함께 검토할 수 있습니다. 계약상 채권, 사기취소에 따른 부당이득반환, 불법행위 손해배상은 각각 요건과 입증 부담이 다르므로, 확보된 증거의 성격에 맞춰 어느 경로가 실효성이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생·파산절차에서 유의할 점 — 채권신고와 증거 정리
투자한 업체가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받으면, 그 시점 이후로는 투자자가 개별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강제집행에 나설 수 없고, 법원이 정한 채권신고기간 안에 회생채권으로 신고하는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신고기간을 놓치면 채권 자체를 인정받지 못할 위험이 있으므로, 회생절차 개시 사실을 알게 되면 신고기간부터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채권신고나 향후 소송에 대비해 투자계약서, 실제 입금 내역, 투자를 권유할 때 받은 광고·안내자료, 그동안 지급받은 원금·수익금 내역을 시기별로 정리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광고·안내자료는 원금 보장이나 확정 수익을 약속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이면서, 동시에 사기 정황을 뒷받침하는 증거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다수인 사건에서는 회생채권 전체 규모에 비해 회수 가능한 재산이 부족해 채권자 간 배당 순위와 비율을 두고 다툼이 생기는 경우도 많으므로, 이 부분도 함께 대비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사수신행위로 형사처벌을 받은 업체와 맺은 투자계약도 유효한가요?
A. 대법원 판례상 원칙적으로 유효합니다. 유사수신행위법 제3조는 효력규정이 아니라 단속규정에 불과해 위반해도 계약의 사법상 효력에는 영향이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만 계약 체결 경위나 내용이 극단적으로 반사회적인 경우처럼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예외적으로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Q. 그럼 사업자가 형사처벌을 받으면 투자금을 무조건 돌려받을 수 있나요?
A. 형사처벌과 투자금 반환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계약이 유효하다면 약정에 따라 원금과 수익금을 청구할 권리는 있지만, 업체에 실제로 갚을 자력이 남아 있는지, 회생·파산절차에 들어갔는지에 따라 실제 회수 가능성은 달라집니다.
Q. 이미 받은 원금과 수익금을 나중에 관리인이 다시 돌려달라고 할 수 있나요?
A. 이번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르면, 계약이 유효한 이상 약정대로 받은 돈에는 법률상 원인이 있어 부당이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큽니다. 다만 사기 등 계약 자체를 취소할 사유가 별도로 인정되는 사안이라면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Q. 계약이 유효하다면 사기죄로 고소하는 것은 의미가 없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계약의 사법상 효력과 형사상 사기죄 성립은 별개의 판단이므로, 업체가 처음부터 지급 능력이나 사업 실체 없이 투자금을 모은 정황이 있다면 형사고소와 함께 사기취소·손해배상 등 민사상 구제수단도 함께 검토할 수 있습니다.
Q. 투자계약이 예외적으로 무효가 되는 경우도 있나요?
A. 계약 내용이나 체결 경위가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 현저히 반사회적이라면 민법 제103조에 따라 무효를 다툴 수 있고, 업체가 애초에 속일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민법 제110조에 따른 사기취소도 별도로 가능합니다. 다만 이런 특별한 사정은 투자자 쪽에서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Q. 유사수신행위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분하나요?
A. 인가·허가나 등록·신고 없이 불특정 다수인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면서, 장래에 원금 전액이나 이를 초과하는 금액을 지급하겠다고 약정했는지가 핵심 기준입니다. 출자금·예금·사채·회비 등 명목이 무엇이든 이 요건에 해당하면 유사수신행위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맺음말
유사수신행위로 처벌받는 업체와 맺은 계약이라도 사법상 효력은 원칙적으로 그대로 인정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론입니다.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사실과 계약의 민사상 효력은 별개의 문제이고, 이를 혼동하면 투자자 스스로 정당한 청구권을 놓치거나, 반대로 이미 받은 돈까지 다시 반환해야 한다고 오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사안이 원칙에 따라 계약이 유효한 경우인지, 아니면 사기취소나 반사회질서 무효를 다툴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인지부터 구분하는 것이 실질적인 회수 전략의 출발점입니다.
업체가 도산해 회생·파산절차로 넘어간 사안이라면 수원지방법원 관할에서도 회생채권 신고와 부당이득반환을 둘러싼 이런 분쟁이 드물지 않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투자계약서와 입금 내역, 광고자료부터 먼저 정리해 두고, 채권신고 기간 등 절차적 기한을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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