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현금인출책, '몰랐다'는 증거로 집행유예 받기
사건 개요
구직 사이트에서 "수금 업무", "현장 심부름" 같은 이름의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가, 실제로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가장 말단 역할—피해자를 만나 현금을 받아 지정된 계좌에 입금하거나 상선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상담이 꾸준히 들어옵니다. 채용 과정에 정식 근로계약이나 사업자 확인 절차는 없고, 메신저로 그날그날 "몇 시까지 어디로 가서 얼마를 받아 어디로 옮기라"는 지시만 내려오는 식입니다.
수사기관은 이런 사건에서 피고인의 "몰랐다"는 진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같은 방식의 심부름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는 점,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거나 받은 현금을 여러 봉투로 나눠 옮긴 정황, 정식 급여명세서 없이 현금으로 일당을 받은 점 등을 근거로 "적어도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식하고도 이를 용인했다"는 미필적 고의를 주장하며 사기방조(형법 제347조, 제32조)로 기소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몰랐다는 주장 자체는 무죄나 집행유예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법원이 실제로 살피는 것은 그 인식 부재를 뒷받침하는 객관적 정황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그리고 설령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양형에서 참작될 요소를 얼마나 갖추었는가라는 두 갈래입니다.
핵심 쟁점
이런 사건은 크게 세 단계로 갈립니다. 첫째, 피고인의 역할이 범행을 계획·주도한 공동정범인지,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가담한 방조범(종범)인지입니다. 둘째, 방조범이라 하더라도 정범의 범행을 미필적으로라도 인식했는지—대법원은 이 인식을 폭넓게 추정하지 않고, 모집 경위와 업무 지시 방식 등 구체적 정황으로 엄격히 판단하도록 요구합니다(대법원 2021. 5. 13. 선고 2021도3320 판결). 셋째, 위 다툼에서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실형과 집행유예를 가르는 양형 요소—피해 회복 여부, 가담 횟수와 편취액 규모, 초범 여부—를 얼마나 갖추었는가입니다.
이 세 단계는 순서대로 이어져 있습니다. 고의를 다투는 변론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양형 단계에서 준비해 둔 것이 그대로 결과를 좌우하므로, 두 갈래를 처음부터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몰랐다'는 판례 기준에 맞춰 증거로 세우기
미필적 고의는 피고인의 마음속 문제이지만, 법정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정황으로만 판단됩니다. 앞서 본 대법원 2021도3320 판결은 항소심(춘천지방법원 2020노862)이 무죄로 판단한 근거를 그대로 확정했는데, 그 근거들이 바로 이런 사건에서 챙겨야 할 증거의 목록입니다. 김강희 변호사는 이 사건들에서 다음 순서로 증거를 구성합니다.
1) 모집 경위를 '정상적 구인광고'로 뒷받침합니다.
위 판결은 피고인이 "법무사 사무소 명의의 경매·채권 관련 외근"이라는, 겉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구인광고를 통해 채용되었다는 사실을 무죄 판단의 핵심 근거로 삼았습니다. 구인 공고 원문, 채용 과정에서 주고받은 문자·메신저, 급여 조건을 안내받은 내역을 캡처·저장된 원본 형태로 확보해 두면, "정상적인 일자리로 알고 지원했다"는 주장에 실체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2) 검사에게 있는 증명책임의 구조를 그대로 활용합니다.
위 판결은 "미필적 고의의 존재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며, 돈이 범죄 피해금이라는 사실을 피고인이 알았다는 직접증거가 없다면 정황만으로 함부로 유죄를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변론에서는 피고인이 알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반박하기보다, 검사 측 증거 중 어디에 직접증거가 없고 어디부터가 추정인지를 하나하나 짚어 그 구조를 법원에 드러내는 방식을 씁니다.
3) 업무 지시의 '기계적·반복적' 성격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지시가 "왜 이 돈을 옮기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시간·장소·금액만 통보하는 방식으로 반복되었다면, 이는 범죄를 인식하고 가담했다기보다 시키는 대로 움직인 정황에 가깝습니다. 지시 문자의 정형화된 문구, 상선과의 대화에 범죄를 암시하는 표현이 없었던 점, 신원 노출을 꺼린 것도 범죄 인식보다 "이상한 아르바이트"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었다는 정황을 함께 정리해 제시합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형사공탁과 피해 회복으로 양형을 관리하기
고의를 다투는 변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그 뒤의 양형 단계에서 실형과 집행유예가 갈립니다. 피해자가 다수이고 인적사항조차 모르는 보이스피싱 사건의 특성상, 예전에는 합의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1) 형사공탁 특례를 활용해 피해 회복 의지를 실체화합니다.
공탁법 개정(법률 제17567호, 2022. 12. 9. 시행)으로 도입된 형사공탁 특례에 따라, 피해자의 이름·주소 같은 인적사항을 모르더라도 사건번호만으로 해당 형사사건이 계속 중인 법원 소재지 공탁소에 피해금을 공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피해자 전원과 개별 합의가 어렵더라도, 자신이 가담한 인출·전달 금액에 상응하는 액수를 공탁해 두면 재판부에 피해 회복 노력을 구체적 숫자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2) '기습공탁'으로 비치지 않도록 시점을 관리합니다.
선고 직전에야 공탁하는 방식은 이후 관련 규정 개정으로 법원이 선고 전 피해자 등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절차가 보완되면서, 형식적인 조치로 취급될 위험이 커졌습니다. 그래서 수사 단계나 공판 초기부터 일부라도 먼저 공탁하고 이후 형편에 따라 증액하는 방식으로, 진정성 있는 피해 회복 과정이라는 점이 기록에 남도록 시점을 설계합니다.
3) 초범·가담 정도·생계형 사정을 함께 소명합니다.
같은 인출책이라도 가담 횟수가 한두 차례에 그쳤는지, 편취액 전체 중 실제 관여한 금액이 얼마인지, 그 대가로 받은 이익이 소액이었는지는 양형에서 서로 다르게 평가됩니다. 초범인지, 생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판단력이 흐려진 사정이 있었는지, 재범 방지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를 반성문과 자료로 함께 소명해 공탁·합의 노력과 같은 방향으로 쌓아 올립니다.
결론
"정상적인 아르바이트인 줄 알았다"는 말은 진심이어도, 그 자체로는 법정에서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 말을 뒷받침하는 구인 경위와 업무 지시 방식의 기록, 그리고 설령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실형을 피하게 할 피해 회복의 흔적—이 두 가지를 얼마나 빨리, 얼마나 구체적으로 갖추어 두었는가가 결과를 가릅니다.
보이스피싱 관련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다면, 진술을 어떻게 하느냐 못지않게 어떤 증거를 어떤 순서로 준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면, 무엇을 먼저 확보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한 번 점검을 받아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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