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자금 집행 과정에서 임원 한 사람이 회사에 불리한 조건의 계약서에 서명하려다 다른 임원의 제지로 계약이 성사되지 못했거나, 대표이사가 회사 명의로 배임적인 대출 서류를 준비했지만 은행 창구를 넘기 전에 감사팀에 발각된 경우, 상담 현장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실제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배임죄로 처벌될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계약이 무효로 끝났거나 자금이 실제로 빠져나가지 않았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형법은 배임죄의 미수범도 처벌하도록 명시하고 있어 이야기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어느 시점부터 실행의 착수로 보고 어느 시점에 이르러야 기수로 완성되는지에 따라 형사책임의 범위와 방어 전략이 크게 달라집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배임죄 미수, 착수와 기수 사이에서 갈리는 책임의 경계
배임죄는 형법 제355조 제2항(업무상인 경우 제356조)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로 규정합니다. 이 문구를 시간 순서로 나누면 ① 임무위배행위를 시작하는 단계(실행의 착수), ② 그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단계, ③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하는 단계로 이어지는데, 실무에서 문제되는 사건 대부분은 이 세 단계 중 어느 지점에서 멈췄는지가 애매합니다.
특히 형법 제359조는 제355조부터 제357조까지의 미수범을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어, 배임죄는 손해가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자동으로 무죄가 되는 범죄가 아닙니다. 계약서에 서명까지 마쳤지만 상대방이 이행하지 않아 끝난 경우, 서류를 준비했지만 결재 단계에서 제지당한 경우, 계약 자체가 법률적으로 무효였던 경우 등 각각의 사안마다 착수와 기수 여부를 다시 따져야 합니다.
여기에 배임죄 특유의 어려움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배임죄에서 "손해를 가한 때"는 현실적으로 돈이 빠져나간 경우뿐 아니라 손해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도 포함한다는 것이 확립된 판례입니다. 즉 실제로 돈이 오가지 않았어도 기수로 인정될 수 있는 반면, 반대로 위험조차 구체화되지 않았다면 착수 단계에 머물러 미수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 이 구분이 사건마다 첨예하게 다투어지는 지점입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실행의 착수·기수시기 판단기준과 대법원 2014도1104 전원합의체 판결
실행의 착수 시점을 판단할 때 법원은 행위자가 배임의 범의, 즉 자신의 행위가 임무에 위배되고 그로 인해 본인 또는 제3자가 이익을 얻어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한다는 사정을 인식하면서 임무위배행위 자체를 개시했는지를 봅니다. 단순히 임무위배를 모의하거나 서류를 검토하는 단계, 다른 임원과 상의하는 단계는 아직 착수로 보기 어렵고, 계약서에 서명하거나 송금 지시를 내리는 등 구체적인 임무위배행위로 나아간 시점이라야 실행의 착수가 인정됩니다.
기수에 이르렀는지는 재산상 이익 취득과 본인의 손해 발생이라는 두 요건이 모두 갖추어졌는지로 판단합니다. 판례는 손해의 유무를 본인의 전체 재산상태와의 관계에서 법률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경제적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보아, 계약이 법률적으로 무효이더라도 경제적으로 손해와 같은 상태가 만들어졌다면 손해발생을 인정합니다. 다만 그 위험은 막연한 가능성만으로는 부족하고, 경제적 관점에서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한 것과 같은 정도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위험이어야 한다는 것이 기준입니다.
이 기준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대법원 2017. 7. 20. 선고 2014도1104 전원합의체 판결이 잘 보여줍니다. 회사 대표자가 대표권을 남용해 회사 명의의 약속어음을 발행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그 어음발행행위가 대표권 남용으로 무효인 경우 어음이 실제로 제3자에게 유통되기 전까지는 배임죄의 재산상 손해 요건이 충족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서류상 어음은 이미 만들어졌지만, 그것이 유통되어 회사가 실제로 어음금을 지급할 위험에 노출되기 전에는 아직 손해발생의 위험이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보여주듯 임무위배행위 자체는 완료됐어도 그 다음 단계(유통·이행 등)로 넘어가지 않았다면 기수가 아니라 미수 단계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형량 면에서도 착수와 기수의 구분은 중요합니다. 배임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 원 이하의 벌금, 업무상배임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데, 미수범도 같은 법정형 범위 안에서 처벌되지만 형법 제25조에 따라 법원이 형을 기수범보다 감경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득액이 5억 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가 적용되어 3년 이상의 유기징역(50억 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으로 형이 크게 무거워지는데, 이 가중처벌 기준은 실제로 취득한 이득액을 전제로 하므로 손해가 현실화되지 않은 미수 사건에서는 이득액 산정 자체가 다투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착수 시점 다툼부터 양형자료 준비까지
배임 혐의로 조사를 받거나 고소를 검토하는 단계라면, 다음 순서로 쟁점을 정리합니다.
실행의 착수 시점 자체를 특정하고 다툰다 — 모의·상담·서류 검토 등 준비행위에 그쳤다면 착수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언제, 어떤 구체적 행위(서명·송금지시·결재 등)로 나아갔는지를 시간 순으로 재구성해 착수 시점을 앞당기려는 수사기관의 주장에 대응합니다.
손해발생의 위험이 구체적·현실적 정도에 이르렀는지 다툰다 — 계약의 효력, 이행 여부, 제3자에게 실제로 유통·행사되었는지를 따집니다. 2014도1104 전원합의체 판결처럼 서류상 행위는 완료됐어도 다음 단계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아직 기수가 아니라는 논리를 구성합니다.
증거자료를 선제적으로 확보한다 — 계약서·등기부등본·계좌거래내역·내부결재 문서·이사회 회의록 등을 통해 행위가 어느 단계에서 중단됐는지, 실제 자금 이동이 있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자료를 정리합니다.
미수 감경과 양형자료를 함께 준비한다 — 착수 자체는 인정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면, 형법 제25조에 따른 임의적 감경을 받을 수 있도록 원상회복 노력, 자진 신고 경위,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 등을 정리해 제출합니다.
이득액 산정과 가중처벌 조항 적용 여부를 검토한다 — 손해가 현실화되지 않은 사건에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이득액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 이득액 산정 근거가 충분한지를 별도로 다툽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착수 단계부터 대응해야 하는 이유
배임 혐의는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안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실행의 착수와 기수 사이의 좁은 간격을 스스로 판단하고 넘어가다가는, 수사기관이 착수 시점을 앞당겨 보거나 손해발생의 위험을 넓게 해석하는 상황에 뒤늦게 대응하게 됩니다.
혐의를 받고 있거나 고소를 준비 중이라면, 실행의 착수와 기수시기를 먼저 정리하고 그에 맞는 대응 순서를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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