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이나 불법도박 자금처럼 범죄로 얻은 돈을 본인 명의 계좌에 그대로 두면 곧바로 추적당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이들이 가족이나 친한 지인의 계좌를 빌려 돈을 옮겨두면 안전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이런 계좌 이체 자체를 별도의 범죄로 규정하고 있고, 몰수·추징 제도는 돈이 누구 명의 계좌에 있는지와 무관하게 그 가치를 되찾아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지인 계좌로 옮긴 돈이 실제로 몰수·추징 대상이 되는지, 계좌를 빌려준 지인은 어떤 책임을 지게 되는지 법리를 기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변호사
자금세탁죄란 —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이 처벌하는 두 가지 행위
흔히 자금세탁이라 부르는 범죄는 형법이 아니라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이 별도로 처벌합니다. 이 법 제2조는 마약범죄, 사기, 보이스피싱, 도박 등 이른바 '특정범죄'로 얻은 재산상 이익을 '범죄수익'으로 정의하고, 제3조는 그 범죄수익등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취득·처분에 관한 사실을 가장하거나 발생 원인에 관한 사실을 가장하는 행위, 그리고 범죄수익등을 은닉하는 행위를 처벌합니다. 이 죄는 원래 범죄(사기·도박 등)와 별개로 성립하는 독립된 범죄이기 때문에, 원래 범죄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범죄수익임을 알면서 이 은닉·가장 행위에 관여하면 처벌 대상이 됩니다.
실무에서 가장 흔한 유형은 자신의 계좌로 들어온 범죄수익을 그대로 두지 않고 다른 사람 명의의 계좌로 옮기거나, 현금으로 인출해 다시 여러 계좌에 나눠 입금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자금의 출처와 흐름이 끊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법은 바로 이런 행위 자체를 '가장'으로 규정해 처벌하므로 계좌를 옮기는 순간 원래 범죄와는 별개로 새로운 범죄가 하나 더 성립하는 셈입니다. 지인 계좌를 이용하는 방식이 이 조항에 정확히 들어맞는지는 다음 항목에서 판례를 통해 확인하겠습니다.
범죄수익은닉죄는 원래 범죄(사기·도박 등)와 별개로 성립하는 독립된 범죄이므로, 원래 범죄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도 범죄수익임을 알면서 계좌 이체에 관여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
지인 계좌로 옮기는 것도 '가장' 행위에 해당하나 —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이 물음에 이미 답을 내놓았습니다. 대법원 2017. 10. 26. 선고 2017도8600 판결은 공범들의 계좌와 전혀 무관한 제3자 명의의 계좌로 돈을 송금받는 방법으로 범죄수익등의 취득에 관한 사실을 가장한 경우, 그 행위자에게 범죄수익 은닉행위에 대한 고의도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자신이나 공범 명의가 아닌 지인 명의의 계좌를 빌려 돈을 받거나 옮기는 행위는, 그 돈이 마치 그 지인의 정상적인 자금인 것처럼 취득 경위를 가장하는 전형적인 방법으로 평가된다는 것입니다.
이 판례가 중요한 이유는 '내 명의 계좌만 아니면 괜찮다'는 흔한 오해를 정면으로 반박하기 때문입니다. 지인 계좌를 이용한 이체가 단순히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는 변명은 통하기 어렵고, 오히려 굳이 제3자 명의 계좌를 거치게 한 경위 자체가 은닉 의도를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여러 지인의 계좌를 순차적으로 거치게 하거나 소액으로 쪼개 이체하는 방식은 은닉의 고의를 더 뚜렷하게 드러내는 요소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범과 무관한 제3자 명의 계좌로 돈을 송금받아 취득 경위를 가장한 경우에도 범죄수익 은닉행위에 대한 고의는 인정된다 — 대법원 2017도8600 판결.
몰수와 추징의 차이 — 계좌를 옮겨도 되찾아가는 구조
범죄수익을 국가가 회수하는 방법은 두 갈래입니다. 몰수는 범죄수익 그 자체(현금·예금·부동산 등 물건이나 재산권)를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이고, 추징은 그 물건을 몰수할 수 없거나 몰수가 적절하지 않을 때 같은 가액(價額)을 돈으로 환산해 범인으로부터 거둬들이는 것입니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제8조는 이런 몰수를 규정하고, 제9조는 몰수의 요건을 정하는데, 원칙적으로 그 재산이 범인(공범 포함) 아닌 제3자에게 귀속된 경우에는 몰수할 수 없도록 하면서도, 제3자가 범죄 후 그 사정을 알고도 재산을 취득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몰수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제10조는 이렇게 몰수가 불가능하거나 적절하지 않을 때 그 가액을 범인으로부터 추징할 수 있도록 정합니다. 즉 지인 계좌에 있는 돈을 몰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원래 범인은 그 가액만큼을 자신의 다른 재산에서 추징당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같은 조 제2항은 그 재산이 범죄피해재산인 경우, 즉 사기·보이스피싱처럼 특정 피해자에게 돌려줘야 할 돈인 경우에는 국가가 추징하지 않고 피해자 환부 절차를 우선하도록 정하고 있어, 계좌를 옮겼다는 사정만으로 회수를 피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몰수 — 범죄수익 자체(현금·예금·재산권)를 국가에 귀속.
추징 — 몰수가 불가능·부적절할 때 그 가액을 범인으로부터 금전으로 환수.
제3자(지인) 명의 재산 — 원칙적으로 몰수 불가하나, 정을 알고 취득했다면 몰수 가능.
피해자에게 돌려줘야 할 범죄피해재산 — 국가 추징 대상에서 제외, 피해자 환부가 우선.
지인 계좌로 돈을 옮겨 몰수를 피하더라도, 몰수가 불가능해지면 그 가액이 원래 범인으로부터 추징되므로 회수 자체를 피하기는 어렵다.
지인 계좌에 남은 돈, 몰수될까 추징될까 — 갈림길은 '정을 알았는지'
지인 계좌에 범죄수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지인이 그 돈이 범죄수익이라는 사정을 몰랐다면(선의), 제9조 원칙에 따라 그 계좌에 남은 돈 자체는 몰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국가가 그냥 포기하는 것은 아니며, 몰수할 재산이 제3자에게 귀속돼 몰수가 불가능해진 것으로 보아 제10조에 따라 원래 범인에게 그 가액이 고스란히 추징됩니다. 결국 지인 명의로 옮겼다는 사정은 몰수의 대상을 바꿀 뿐, 회수 자체를 막지는 못하는 셈입니다.
반대로 지인이 그 돈이 범죄수익이라는 사정을 알면서도 계좌를 빌려주거나 받은 돈을 그대로 보관해 두었다면, 제9조 단서에 따라 그 지인 명의 계좌에 있는 돈 자체가 몰수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실무상 자주 다투는 지점은 추징이 '가액' 추징이라는 점입니다. 계좌에 있던 돈을 지인이 이미 인출해 쓰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실물이 남아있지 않더라도, 그 가액을 정범으로부터 추징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것이 실무의 일반적인 태도입니다. 돈의 물리적 소재가 아니라 이익의 크기를 기준으로 회수하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지인이 사정을 몰랐다면 그 계좌의 돈은 몰수되지 않지만, 몰수 불능이 된 만큼의 가액은 결국 원래 범인에게 추징된다 — 명의를 옮겨도 회수 자체는 피하기 어렵다.
지인의 형사책임 — 통장을 빌려준 것만으로도 처벌될 수 있다
계좌를 빌려준 지인 본인의 책임도 별도로 문제 됩니다. 우선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의3은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계좌 관련 정보(통장·접근매체)를 제공하거나 제공받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같은 법 제49조 제4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대가를 받고 통장이나 접근매체(카드·비밀번호·OTP 등)를 빌려주는 행위 자체가 이 조항이 정한 접근매체 대여에 해당해, 그 돈이 어떤 범죄에서 비롯됐는지와 별개로 처벌 대상이 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지인이 돈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알면서 계좌를 내주었거나 이체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면,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제3조가 정한 은닉·가장 행위의 공동정범이나 방조범으로까지 책임이 확대될 수 있습니다. 법원이 이런 '정을 알았는지'를 판단할 때 살펴보는 사정은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계좌 이체나 통장 대여의 대가로 금전·수수료를 받았는지.
이체 경위나 자금 출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들었는지, 또는 캐묻지 않고 응했는지.
단발성이 아니라 반복적·조직적으로 계좌가 이용되었는지.
이체된 금액과 지인의 평소 소득·거래 규모 사이에 현저한 괴리가 있는지.
대가를 받고 통장·접근매체를 빌려준 행위는 그 자체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 되고, 자금의 성격을 알면서 협조했다면 자금세탁 범죄의 공범으로까지 책임이 확대될 수 있다.
지인이 그 돈을 써버렸다면 — 임의소비로 발생하는 또 다른 책임
실무에서 자주 벌어지는 상황은 지인이 이체받은 돈을 그대로 두지 않고 생활비나 다른 용도로 임의로 써버리는 경우입니다. 이때는 원래의 자금세탁·전자금융거래법 문제와는 별개로, 그 돈이 사기이용계좌(이른바 대포통장)에 송금된 범죄피해금이었는지가 다시 갈림길이 됩니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판결)에서,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돈이 제3자 명의 사기이용계좌로 송금·이체된 경우 그 계좌명의인이 이를 임의로 인출하면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즉 지인이 단순히 계좌만 빌려준 데서 그치지 않고 이체된 돈을 마음대로 인출해 소비했다면, 자금세탁 관련 책임과는 별도로 횡령 책임까지 추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인 입장에서는 '어차피 잠깐 맡아둔 돈'이라는 인식으로 손을 댔다가 형사책임이 한 겹 더 쌓이는 결과를 맞을 수 있으므로, 계좌로 들어온 돈의 출처가 불분명하다면 이체·인출 모두를 멈추고 경위부터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계좌를 나눠 옮겨도 피할 수 없는 이유 — 몰수보전·추징보전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재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뒤늦게 몰수·추징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은 제33조의 몰수보전과 제52조의 추징보전 제도를 두어, 수사 단계에서부터 법원의 결정으로 대상 재산의 처분(인출·이체·명의변경 등)을 미리 금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계좌에 몰수보전이나 추징보전이 걸리면 그 계좌의 예금은 사실상 동결되어, 지인이든 원래 범인이든 임의로 인출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범죄수익을 여러 지인의 계좌에 쪼개 옮기는 방식은 오히려 발각 시 더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좌가 여러 개로 늘어날수록 수사기관이 확인해야 할 자금 흐름의 증거는 늘어나지만, 일단 흐름이 파악되면 각 계좌에 개별적으로 보전 조치가 내려질 수 있고, 분산 이체 자체가 은닉의 고의를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계좌를 나누는 것은 추적을 피하는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자금세탁의 정황 증거를 스스로 늘리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제 계좌가 아니라 지인 계좌로 돈을 옮기기만 했는데도 처벌되나요?
A. 네. 대법원은 공범과 무관한 제3자 명의 계좌로 돈을 송금받아 취득 경위를 가장한 경우에도 범죄수익 은닉의 고의를 인정하고 있어, 지인 계좌를 이용했다는 사정만으로 처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굳이 제3자 명의를 거치게 한 경위가 은닉 의도를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Q. 지인이 돈의 출처를 전혀 몰랐다면 지인도 처벌되나요?
A. 지인이 자금의 성격을 전혀 몰랐다면 자금세탁 범죄의 공범으로 처벌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대가를 받고 통장이나 접근매체를 빌려준 사실 자체가 있다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은 별도로 문제 될 수 있습니다.
Q. 지인 계좌의 돈을 이미 다 써버렸다면 추징도 못 하는 건가요?
A. 추징은 물건이 아니라 가액을 대상으로 하므로, 돈이 이미 소비되어 남아 있지 않아도 그 가액을 원래 범인으로부터 추징하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실물이 없다는 사정이 추징을 막는 사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Q. 계좌를 여러 개로 나눠 옮기면 추적을 피할 수 있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계좌가 늘어날수록 확인할 자금 흐름은 늘지만, 일단 흐름이 파악되면 각 계좌에 몰수보전·추징보전이 걸릴 수 있고 분산 이체 자체가 은닉의 고의를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Q. 피해자에게 돌려줘야 할 보이스피싱 피해금도 국가가 추징해가나요?
A. 아닙니다. 그 재산이 범죄피해재산에 해당하면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제10조 제2항에 따라 국가의 추징 대상에서 제외되고, 피해자에 대한 환부·배상 절차가 우선합니다.
Q. 지인이 이체받은 돈을 마음대로 인출해 써버리면 어떻게 되나요?
A. 그 돈이 보이스피싱 등 피해자의 돈이 송금된 사기이용계좌였다면, 계좌명의인이 임의로 인출한 행위에 대해 피해자를 상대로 한 횡령죄가 별도로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입니다. 계좌만 빌려준 데서 끝나지 않고 자금까지 손댈 경우 책임이 한 겹 더 쌓일 수 있습니다.
맺음말
범죄수익을 지인 계좌로 옮기는 방법은 흔히 안전한 우회로처럼 여겨지지만, 법의 구조는 정확히 그 반대를 향해 설계되어 있습니다. 계좌를 옮기는 행위 자체가 범죄수익은닉죄의 별도 구성요건에 해당할 수 있고, 설령 지인 명의 재산이 몰수를 피하더라도 그 가액은 결국 원래 범인에게 추징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계좌를 빌려준 지인마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나 자금세탁 공범, 심하면 횡령 책임까지 떠안을 수 있어, 계좌를 빌리고 빌려주는 양쪽 모두에게 위험이 걸려 있는 문제입니다.
특히 수원지방법원 관할에서도 보이스피싱이나 불법도박 자금과 결부된 자금세탁 사건이 꾸준히 재판에 넘겨지고 있는 만큼, 이미 지인 계좌로 돈을 옮겨둔 상태라면 몰수·추징보전이 걸리기 전에 계좌별 자금 흐름과 각자의 인식 정도부터 정리해 대응 방향을 잡아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