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을 잘못 맺었다면 — 착오·사기 취소의 요건과 입증
계약을 잘못 맺었다면 — 착오·사기 취소의 요건과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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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을 잘못 맺었다면 — 착오·사기 취소의 요건과 입증 

김강희 변호사


계약을 잘못 맺었다면 — 착오·사기 취소의 요건과 입증


사건 개요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품인 줄 알고 산 그림이 위작이었거나, 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들은 땅이 실제로는 건축이 막힌 맹지였거나, 상대방이 매출·수익을 부풀려 넘긴 가게를 인수하고 보니 실상은 전혀 달랐던 경우입니다. 큰돈을 치른 뒤에야 "내가 잘못 알았다" 혹은 "상대에게 속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이미 계약은 유효하게 성립한 뒤라 되돌리기가 막막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분들이 "이건 명백히 사기 아니냐"며 상담을 청해 오십니다. 그러나 억울함이 크다고 해서 계약이 저절로 없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법은 이 문제를 감정이 아니라, 표의자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 알았는지(착오), 그리고 상대방이 그 잘못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냈는지(사기)라는 두 갈래의 틀로 나누어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요건을 갖추고 이를 증명한다면 착오를 이유로(민법 제109조), 또는 사기를 이유로(민법 제110조) 이미 성립한 계약도 취소할 수 있습니다. 다만 두 갈래는 요구되는 요건과 입증의 무게가 서로 다릅니다. 어느 길이 유리한지, 무엇을 증거로 남겨 두었는지에 따라 같은 사안도 결과가 크게 갈립니다.


핵심 쟁점


취소가 가능한지는 크게 세 지점에서 갈립니다. 첫째, 착오취소의 길입니다.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어야 하고, 그 착오에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이 없어야 합니다(제109조 제1항).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입증책임의 배분입니다. 표의자는 중요부분의 착오만 증명하면 되고, "당신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는 점은 취소를 막으려는 상대방이 증명해야 합니다.

둘째, 사기취소의 길입니다. 상대방의 기망행위, 그로 인해 속아 넘어간 인과관계, 상대방의 고의, 기망의 위법성을 취소를 주장하는 쪽이 모두 증명해야 합니다(제110조). 착오보다 입증 부담이 무거운 대신, 상대의 부정직함 자체를 정면으로 물을 수 있습니다. 셋째, 행사 시점입니다. 취소권에는 기간 제한이 있고, 취소 전에 제3자가 끼어들면 권리 실현이 어려워집니다. 이 세 지점을 처음부터 증거와 일정으로 관리했는가가 사실상 승패를 가릅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착오취소 — '중요부분'을 세우고 중과실 항변을 막기


착오취소는 "잘못 알았다"는 하소연만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잘못 안 지점이 계약의 '중요부분'이어야 하고, 그 오해가 표의자 자신의 큰 부주의 탓이 아니어야 합니다. 김강희 변호사는 다음 순서로 착오의 골격을 세웁니다.

1) 착오가 '중요부분'에 해당함을 이중 기준으로 구성합니다.

판례는 중요부분의 착오를 두 층위로 봅니다. 표의자가 그 착오가 없었다면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관적 요소와, 보통 일반인도 표의자의 처지였다면 그런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객관적 요소를 함께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위작을 진품으로 알고 산 경우, 건축이 가능한 줄 알았던 토지가 실제로는 불가능했던 경우처럼 계약의 핵심 전제가 무너진 사안을 이 틀에 맞추어 정리합니다. 반면 단순히 시가를 잘못 안 것이나 계약의 '동기'에 그친 착오는 원칙적으로 취소 사유가 아니므로, 그 동기가 상대방에게 표시되어 계약 내용이 되었거나 상대방이 그 오해를 유발한 정황을 함께 입증해 다툽니다.

2) 상대방의 '중대한 과실' 항변을 미리 차단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중대한 과실이란 표의자의 직업, 행위의 종류와 목적에 비추어 보통 요구되는 주의를 현저히 결여한 것을 뜻합니다. 이 중과실의 존재는 취소를 저지하려는 상대방이 증명해야 하므로 표의자에게 유리한 지점이지만, 방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계약 전 확인·조사·서류 검토를 실제로 거쳤다는 이력을 남겨 "큰 부주의가 아니었다"는 방어선을 세워 둡니다. 또한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면서도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표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더라도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이므로, 상대가 오해를 알고 있었던 정황이 있다면 이를 함께 포착해 둡니다.

3) 취소의 의사표시와 원상회복을 설계합니다.

취소된 법률행위는 처음부터 무효였던 것으로 보아(제141조) 이미 지급한 대금은 부당이득으로 돌려받게 됩니다. 다만 취소권은 추인할 수 있는 날부터 3년, 계약을 한 날부터 10년 안에 행사해야 소멸하지 않으므로(제146조), 착오를 안 시점을 기준으로 기간을 역산해 취소의 의사표시를 내용증명 등 남는 형태로 상대방에게 도달시킵니다. 나아가 착오취소는 선의의 제3자에게는 대항하지 못하므로(제109조 제2항), 목적물이 제3자에게 넘어가기 전에 신속히 움직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사기취소 — 기망과 2단의 고의를 입증 가능한 형태로 세우기


사기취소는 상대방의 '거짓말'을 법이 말하는 기망행위로 세우고, 그 고의와 인과관계까지 증명해야 하는 무거운 길입니다. 착오취소와 달리 요건 전부를 취소를 주장하는 쪽이 입증해야 하므로, 처음부터 증거를 겨냥해 사실을 재구성합니다.

1) 기망행위를 특정하고 '과장'과 구별합니다.

기망은 적극적으로 허위 사실을 말하는 것뿐 아니라, 신의칙상 고지의무가 있는 사항을 침묵한 부작위로도 성립합니다. 부동산 거래에서 거래 여부에 영향을 줄 중요한 하자나 사정을 알리지 않은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다만 거래에서 흔히 있는 다소의 과장·허위는 거래 관념상 용인되는 범위라면 위법한 기망으로 보지 않으므로, 상대의 언동이 단순 세일즈 화법인지 아니면 거래의 본질을 좌우한 허위인지를 구분해 특정합니다. 이를 위해 계약 전 오간 문자·이메일·광고·녹취를 시점별로 확보합니다.

2) 2단의 고의와 인과관계를 증거로 이어 붙입니다.

사기가 성립하려면 상대방에게 표의자를 기망해 착오에 빠뜨리려는 고의와, 그 착오에 기해 의사표시를 하게 하려는 고의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이른바 2단의 고의). 그래서 상대가 진실을 알고 있었거나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사실과 다르게 말했다는 정황을 모으고, 기망 → 착오 → 계약 체결로 이어지는 인과의 사슬을 시간 순서로 정리합니다. "그 말이 없었다면 계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연결고리를 자료로 뒷받침하는 것이 이 단계의 핵심입니다.

3) 취소권 행사와 경합 관계를 전략적으로 관리합니다.

하나의 사안에서 착오와 사기는 선택적으로 주장할 수 있고, 사기로 계약이 취소되면서 동시에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경우에는 취소에 따른 부당이득반환청구권과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이 경합하여, 그중 유리한 쪽을 골라 행사할 수 있습니다. 매매라면 하자담보책임과의 경합도 검토합니다. 한편 상대방이 아니라 제3자가 기망한 경우에는, 계약 상대방이 그 사기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취소할 수 있으므로(제110조 제2항) 이 요건을 별도로 겨냥합니다. 사기취소 역시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제척기간의 제한을 받으므로, 증거가 모이는 대로 신속히 취소권을 행사합니다.


결론


착오나 사기로 인한 계약취소는 "억울하다"는 호소가 아니라, 요건에 맞는 사실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잘못 알았는지, 상대가 그것을 알고도 이용했는지, 그 오해가 계약의 핵심이었는지가 처음부터 자료로 남아 있어야 다툴 수 있습니다.

특히 취소권은 기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목적물이 제3자에게 넘어가면 되찾기가 훨씬 어려워집니다. 계약을 잘못 맺었다는 의심이 드는 바로 그 순간이, 관련 자료를 모으고 대응의 방향과 시점을 정해야 하는 때입니다. 지금 상황이 착오나 사기로 인한 계약취소를 고민해야 할 국면이라면, 어느 길이 유리하고 무엇을 먼저 남겨 두어야 할지 한 번 점검을 받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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