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를 임차하면서 계약서에 "동일 업종으로는 다른 점포를 재임대하지 않는다"는 특약을 넣어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이 좋은 자리라 애써 자리를 잡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옆 점포에 같은 업종의 경쟁 매장이 들어서는 일을 겪는 임차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임대인에게 항의하면 "그런 약속을 한 적 없다", "임차인을 마음대로 고르는 게 임대인 권한 아니냐"는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고, 매출은 이미 눈에 띄게 줄어든 뒤입니다. 계약서에 분명히 남아 있는 문구를 근거로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지,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가 이 시점에서 가장 급한 질문이 됩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동일업종 재임대 금지 특약, 임대인 재량과의 경계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계약갱신요구권이나 권리금 회수기회 같은 사항은 규정하지만, "옆 점포를 같은 업종으로 재임대하지 않는다"는 약속까지 법이 직접 정해주지는 않습니다. 이런 조항은 어디까지나 임대인과 임차인이 계약서에 별도로 넣은 특약에서 비롯됩니다. 임대인은 원칙적으로 자기 소유 건물의 다른 점포를 누구에게, 어떤 업종으로 임대할지 정할 재량이 있지만, 이 재량은 스스로 맺은 특약으로 제한할 수 있고 일단 특약을 맺은 이상 그 내용에 구속됩니다.
문제는 이 특약이 계약서 어디에, 어떤 문구로 들어 있는지에 따라 다툼의 결과가 갈린다는 점입니다. "동일 업종 재임대 금지", "독점 영업권 보장", "인근 점포에 동종 업종 입점 시 협의" 등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은 임대인이 부담하기로 한 부작위 의무가 계약서에 명확히 특정되어 있는가입니다. 구두로만 들은 약속이나 분양 상담 과정에서의 구두 설명은 나중에 다툼이 생겼을 때 입증이 훨씬 어려워집니다.
또 하나 갈리는 지점은 재임대의 주체입니다. 임대인이 자신 소유의 인접 점포를 직접 동종 업종으로 재임대한 경우와, 이미 임대된 다른 점포의 임차인이 스스로 업종을 바꾼 경우는 법적으로 다르게 취급됩니다. 전자는 임대인 자신의 계약 위반이 곧바로 문제 되지만, 후자는 임대인이 그 업종 변경을 알면서도 방치했는지, 애초에 관리규약이나 다른 임차인과의 계약에도 같은 제한이 있었는지를 함께 따져야 합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민법 제623조·제390조와 업종제한 약정의 효력
임대인이 동일업종 재임대 금지 특약을 위반했을 때 손해배상 청구의 출발점은 민법 제623조입니다. 이 조항은 임대인이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할 뿐 아니라 계약 존속 중 그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진다고 정하는데, 판례는 당사자 사이에 별도 약정이 있으면 임대인은 그 약정 내용에 따라 임차인이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고, 이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를 스스로 하지 않아야 한다고 봅니다. 동일업종 재임대 금지 특약은 바로 이 "침해하지 않을 의무"의 구체적 형태이므로, 임대인이 특약을 어기고 경쟁 업체를 인접 점포에 들이는 것은 계약상 부작위 의무 위반에 해당합니다.
이런 위반은 민법 제390조의 채무불이행으로 구성되어 손해배상 청구의 근거가 됩니다. 청구가 인정되려면 ① 계약서(또는 별도 특약서)에 재임대 금지 대상 업종과 범위가 특정되어 있을 것, ② 임대인이 실제로 그 범위 내 동종 업종에 점포를 재임대했다는 사실, ③ 그로 인해 임차인에게 매출·영업이익 감소 등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④ 위반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이 네 가지가 함께 입증되어야 합니다. 이 중 실무에서 가장 다툼이 큰 지점은 인과관계와 손해액입니다 — 매출 감소에는 경기, 상권 변화, 임차인 자신의 경영 사정 등 다른 원인도 섞여 있을 수 있어, 재임대 시점 전후의 매출 추이를 객관적 자료로 비교해 위반과의 관련성을 부각해야 합니다.
업종 제한 약정 자체가 법적으로 보호받는 이익이라는 점은 대법원 2012. 11. 29. 선고 2011다79258 판결에서도 확인됩니다. 이 판결은 상가를 분양하며 점포별로 업종을 정한 경우, 수분양자나 임차인들 사이에는 서로 그 업종 제한을 준수하기로 하는 명시적·묵시적 약정이 있다고 보아, 이를 위반해 영업상 이익을 침해당한 자는 침해 배제(동종업종 영업금지)를 구할 권리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사건은 수분양자 상호간의 분쟁이라는 점에서 임대인을 직접 상대로 한 손해배상 사안과는 구조가 다르지만, 업종 제한 약정에 법적 구속력이 있고 그 위반이 구제의 대상이 된다는 법리는 임대인의 재임대 금지 특약 위반 사안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손해배상의 범위는 민법 제393조에 따라 통상손해를 기준으로 산정합니다. 재임대로 인한 매출 감소분에서 그 매출을 올리는 데 들었을 변동비를 뺀 일실 영업이익이 통상손해의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재임대 전 월평균 매출이 5,000만 원이던 점포가, 옆에 동종 업종이 들어선 뒤 6개월간 월평균 3,500만 원으로 떨어졌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매출 감소분은 월 1,500만 원이고, 그 업종의 통상적 영업이익률을 15% 안팎으로 보면 월 일실이익은 약 225만 원, 6개월 누적으로는 약 1,350만 원이 산정됩니다. 실제 소송에서는 이런 추정치를 부가가치세 신고 자료, 카드매출 통계, 세무사가 작성한 손익계산서 등 객관적 자료로 뒷받침해야 법원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계약서에 재임대 금지 위반 시 배상액을 미리 정해둔 위약금(손해배상액의 예정, 민법 제398조) 조항이 있다면 실제 손해액 입증 부담이 크게 줄어듭니다. 이 경우 원칙적으로 예정된 금액이 곧바로 청구액이 되며, 그 액수가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 한해 법원이 감액할 수 있을 뿐입니다. 반대로 위약금 조항이 없다면 위에서 본 통상손해 산정 방식으로 개별 입증해야 하므로, 애초에 계약 체결 단계에서 이런 조항을 넣어두었는지가 실제 분쟁에서 회수 가능한 금액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손해배상채권도 시간이 지나면 소멸시효에 걸립니다.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은 원칙적으로 민법 제162조에 따라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되지만, 임대차계약이 임대인·임차인 양쪽 모두에게 상행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상법 제64조에 따라 5년의 상사시효가 적용될 여지가 있습니다. 재임대가 이루어진 시점과 손해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기간을 함께 정리해 두어야, 나중에 시효 완성 여부를 두고 다투는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증거 확보부터 손해배상청구까지 다섯 단계
법리가 정리됐다면, 실제로는 다음 순서로 대응합니다.
계약서·특약사항 원문부터 다시 확인 — 재임대 금지 대상 업종이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특정돼 있는지(예: "편의점업" 한정인지 "소매업 전반"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특약 문구가 모호하면 재임대된 업종이 그 범위에 포함되는지부터 다툼이 생기므로, 계약 문언을 근거로 포함 여부를 논리적으로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재임대 사실과 매출 감소를 함께 입증할 자료 수집 — 새로 입점한 점포의 사업자등록증(정보공개 열람), 간판·매장 사진, 인근 부동산중개업소를 통한 확인 등으로 동종 업종 재임대 사실을 남기고, 동시에 재임대 전후 6개월 이상의 매출 자료(부가세 신고서, 카드매출 내역, 포스 데이터)를 정리해 인과관계를 뒷받침해야 합니다.
내용증명으로 위반 통지와 시정 요구 — 특약 위반 사실을 특정하고, 상당한 기간을 정해 원상회복(재임대 계약 해지 요구 등) 또는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해 둡니다. 임대인이 이 최고에도 응하지 않으면 이후 민법 제544조에 따른 임대차계약 해지까지 검토할 근거가 마련됩니다.
손해배상청구소송 제기 — 협의가 되지 않으면 앞서 정리한 일실이익 산정 자료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합니다. 위약금 조항이 있다면 그 조항에 따른 예정액을, 없다면 통상손해 산정 방식에 따른 구체적 금액을 청구 취지에 담습니다.
새 임차인을 상대로 한 대응 검토 — 새로 입점한 임차인이 특약의 존재를 알면서도 입점했다는 사정이 확인되면, 그 임차인을 상대로 한 대응 가능성도 함께 검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는 임대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와는 별개의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한 영역이므로, 개별 사안의 계약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 판단해야 합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매출 자료부터 먼저 정리해야 하는 이유
동일업종 재임대로 인한 손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두 가지 이유로 입증이 어려워집니다. 매출 감소가 재임대 때문인지 다른 사정 때문인지를 가르는 재임대 전후 비교 자료는 시일이 지날수록 흐려지고, 임대인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 그런 특약은 이미 사문화됐다"는 식의 항변을 준비할 여지가 커집니다.
계약서에 동일업종 재임대 금지 특약이 있는데도 인접 점포에 경쟁 업체가 들어섰다면, 재임대 시점과 그 전후 매출 자료부터 먼저 정리해 두시고,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 범위와 절차를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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