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부가 혼외자를 인지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면, 그 자녀는 아버지와의 법률상 친자관계를 영영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게 됩니다. 다행히 민법은 생부가 이미 사망한 경우에도 자녀가 국가를 대표하는 검사를 상대로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다만 이 소송에는 생부의 사망을 안 날로부터 2년이라는 제척기간이 걸려 있어, 시기를 놓치면 친자관계가 아무리 명백해도 소를 제기할 자격 자체를 잃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생부 사망 후 인지청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2년의 기산점을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 그리고 인지가 확정된 뒤 상속권까지 어떻게 이어지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변호사
혼외자와 인지 — 법률상 부자관계는 어떻게 생기나
혼인외의 출생자는 생물학적으로 생부와 혈연관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법률상 부자관계가 자동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민법 제855조 제1항은 혼인외의 출생자를 그 생부나 생모가 인지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데, 이는 인지라는 별도의 법적 절차가 있어야 비로소 법률상 친자관계가 창설된다는 뜻입니다. 유전자상 부자관계가 명백하더라도 인지가 없으면 상속·부양·성과 본 등 법률상 부자관계에 따르는 권리와 의무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인지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생부가 스스로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른 신고를 하면 그 신고 시점부터 효력이 생기는 임의인지(민법 제859조 제1항)와, 생부가 인지를 거부하거나 미루는 경우 자녀 쪽에서 법원에 소를 제기해 판결로 친자관계를 확정하는 재판상 인지가 그것입니다. 민법 제863조는 자, 그 직계비속 또는 법정대리인이 부 또는 모를 상대로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어, 생부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자녀 쪽에서 언제든 이 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임의인지 — 생부나 생모가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라 인지신고를 하면 신고 시점부터 효력이 생기는 방식.
재판상 인지 — 생부가 인지하지 않을 때 자, 직계비속, 법정대리인이 법원에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해 판결로 확정하는 방식.
인지청구권 — 생부가 생존해 있는 한 원칙적으로 소멸시효나 제척기간의 제한을 받지 않음.
혈연관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법률상 부자관계가 생기지 않는다 — 임의인지 신고나 재판상 인지 판결이 있어야 비로소 법률상 친자관계가 창설된다.
생부가 사망했다면 — 검사를 상대로 하는 인지청구의 소
생부가 인지를 하지 않은 채 사망하면 소를 제기할 상대방 자체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법은 이 공백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민법 제864조는 부 또는 모가 사망한 때에는 그 사망을 안 날로부터 2년 내에 검사를 상대로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인지청구의 소는 판결이 확정되면 소송당사자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효력이 미치는 대세적 신분관계소송이라, 생부가 없는 상태에서도 국가가 공익의 대표자로서 검사를 통해 피고 역할을 대신 수행하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실무에서 검사가 친자관계 자체를 적극적으로 다투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분관계소송에는 자백간주 법리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검사가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법원이 곧바로 원고 승소로 처리하지는 않습니다. 대법원 1985. 11. 26. 선고 85므8 판결은 인지소송에서 당사자의 입증이 충분하지 않을 때 법원이 직권으로 사실조사와 증거조사를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어, 원고 쪽에서 유전자 감정 신청을 비롯해 생부와의 관계를 뒷받침할 자료를 스스로 충분히 준비해야 승소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사망을 안 날로부터 2년" — 제척기간의 함정
이 소송에서 가장 자주 다투어지는 지점은 2년이라는 기간의 기산점입니다. 민법 제864조는 기산점을 생부가 실제로 사망한 날이 아니라 자녀(또는 그 법정대리인)가 그 사망 사실을 안 날로 정하고 있습니다. 생부와 오랫동안 왕래가 없던 자녀라면 사망 사실 자체를 한참 지난 뒤에야 전해 듣는 경우가 드물지 않아, 이 기산점을 언제로 볼 것인지가 실무에서 자주 다투어집니다.
자녀가 미성년일 때 생부가 사망했는데 법정대리인이 그동안 소를 제기하지 않은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대법원은 2024년 2월 8일 선고한 "성년이 된 자녀가 제기한 인지청구의 소의 제척기간이 문제된 사건"에서, 법정대리인이 자녀가 미성년인 동안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자녀가 성년이 된 뒤 생부의 사망을 안 날로부터 새로 2년을 기산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정대리인이 소극적이었다는 이유로 자녀 본인의 권리 행사 기회 자체가 사라지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원칙 — 생부의 사망 사실을 안 날로부터 2년 이내에 검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해야 함.
미성년자 특례 — 법정대리인이 소를 제기하지 않은 채 자녀가 성년이 됐다면, 성년 후 사망을 안 날부터 새로 기산.
입증 부담 — 언제 사망 사실을 알았는지는 원고 쪽에서 소명해야 하며, 다투어지면 정황자료로 판단됨.
제척기간의 기산점은 생부가 사망한 날이 아니라 자녀 또는 법정대리인이 그 사망 사실을 안 날이다.
친자관계를 증명하는 법 — 유전자 감정과 수검명령
생부가 이미 사망해 본인을 직접 검사할 수 없다는 점은 이 소송의 가장 큰 실무적 난관입니다. 화장 전이라면 유해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는 경우 법원 촉탁으로 직접 유전자를 채취해 감정할 수 있습니다. 앞서 본 85므8 판결도 유해에서 양질의 DNA가 추출될 수 있다면 정확한 확인이 가능하고, Y염색체 유전자좌 감정을 통해 남성 혈족 사이의 형제 관계 여부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유해가 이미 화장돼 없다면 생부의 부모·형제자매 등 근친자를 대상으로 유전자를 대조해 친자관계를 추정하는 방법을 씁니다.
문제는 근친자가 검사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때는 가사소송법 제29조의 수검명령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가정법원은 혈족관계의 유무를 확정할 필요가 있는데 다른 증거조사로 심증을 얻지 못한 경우, 당사자나 관계인에게 혈액채취에 의한 검사 등 유전인자 검사를 받으라고 명할 수 있습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이 명령을 위반하면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과태료 제재를 받고도 다시 거부하면 법원은 30일의 범위에서 의무를 이행할 때까지 감치를 명할 수 있어, 근친자의 협조가 없어도 검사 자체를 강제할 법적 근거는 마련돼 있습니다.
생부의 유해가 남아있는 경우 — 법원 촉탁으로 직접 유전자 감정.
유해가 없는 경우 — 생부의 부모·형제자매 등 근친자를 대상으로 Y염색체 등 유전자 대조.
이미 인지된 다른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와의 유전자 검사도 보조 증거로 활용.
근친자가 검사를 거부하면 수검명령과 과태료·감치로 이행을 강제.
소송 절차 — 관할법원과 진행 흐름
검사를 상대로 하는 인지청구의 소는 가사소송법 제26조 제2항에 따라 사망한 생부의 마지막 주소지를 관할하는 가정법원의 전속관할입니다. 소장에는 원고와 생부 사이의 친자관계를 뒷받침하는 자료, 생부의 사망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가족관계등록 서류, 원고가 사망 사실을 언제 알게 됐는지를 뒷받침하는 자료 등을 함께 제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소송이 진행되면 앞서 본 대로 법원이 직권으로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필요시 유전자 감정을 촉탁하는 절차를 거칩니다. 판결이 확정되면 그것으로 곧바로 가족관계등록부가 바뀌는 것은 아니고, 별도로 가족관계등록 관서에 재판에 의한 인지 신고를 해야 등록부에 반영됩니다. 신고를 마치기 전이라도 인지의 효력 자체는 판결 확정과 함께 발생하므로, 신고 지연이 상속권 등 실체적 권리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인지가 확정되면 생기는 일 — 소급효와 상속권
민법 제860조는 인지가 그 자의 출생시에 소급하여 효력이 생긴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판결로 인지가 확정되면 마치 태어날 때부터 법률상 부자관계가 있었던 것처럼 취급된다는 뜻으로, 이 소급효 덕분에 생부의 사망 당시 이미 상속이 개시돼 있었더라도 인지된 자녀는 그 상속에 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인지 판결이 확정된 순간부터, 자녀는 생부의 다른 자녀들과 동등한 공동상속인 지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민법 제860조 단서는 이 소급효가 제3자가 이미 취득한 권리는 해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판례와 통설은 이 단서에서 말하는 '제3자'에 공동상속인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즉 인지 전에 이미 상속받아 재산을 나눠 가진 다른 형제자매들이라 해도, 이들은 소급효를 막을 수 있는 제3자가 아니어서 뒤늦게 인지된 자녀가 자신의 상속분을 주장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인지는 자의 출생시로 소급해 효력이 생기지만, 다른 공동상속인은 그 소급효를 막을 수 있는 제3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 인지된 자녀도 생부 사망 당시로 소급해 상속인 지위를 갖는다.
상속재산이 이미 나뉘었다면 — 상속분가액지급청구권과 최근 헌재 결정
소급효가 있다고 해서 이미 처분된 재산을 무조건 되찾아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민법 제1014조는 상속개시 후의 인지로 새롭게 공동상속인이 된 사람이 상속재산의 분할을 청구하려는데 다른 공동상속인이 이미 분할이나 처분을 마친 경우, 현물 반환 대신 자신의 상속분에 상당한 가액의 지급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때 가액은 처분 당시의 가격이 아니라 소송이 진행되는 시점, 정확히는 사실심 변론이 끝날 때의 시가를 기준으로 산정합니다.
이 가액지급청구권은 상속회복청구권의 일종으로 취급돼 별도의 제척기간이 적용됩니다. 종전에는 상속권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 침해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 중 먼저 도래하는 기간이 지나면 청구권이 소멸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2024년 6월 27일(2021헌마1588) 결정에서, 상속개시 후 인지 등으로 뒤늦게 공동상속인이 된 사람에게 실질적인 권리회복 기회를 주지 않는 10년의 제척기간이 재산권과 재판청구권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지금은 10년의 기간 제한 없이 청구가 가능해졌지만,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이라는 기간은 여전히 살아 있으므로, 인지 판결이 확정되면 상속재산이 어떻게 처리됐는지부터 지체 없이 확인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생부가 살아있을 때는 인지청구에 기간 제한이 없나요?
A. 네, 생부가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인지청구권 자체에 소멸시효나 제척기간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생부가 사망하면 그 순간부터 민법 제864조의 2년 제척기간이 새로 작동하기 시작하므로, 사망 사실을 안 이후에는 신속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Q. 생부의 유해가 이미 화장돼 없는데도 친자관계를 증명할 수 있나요?
A. 유해가 없어도 생부의 부모·형제자매 등 근친자의 유전자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친자관계 추정이 가능합니다. 근친자가 검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가사소송법상 수검명령과 과태료·감치 규정을 활용해 검사 이행을 강제할 수 있습니다.
Q. 2년이 지난 뒤에야 사망 사실을 알았다면 방법이 아예 없나요?
A. 제척기간은 사망을 실제로 안 날부터 계산되므로, 뒤늦게 사망 사실을 알았다면 그때부터 2년 이내에는 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언제 알았는지가 다투어질 수 있어, 사망 사실을 알게 된 경위와 시점을 뒷받침할 자료를 함께 준비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Q. 이미 다른 상속인들이 재산을 나눠 가진 뒤에 인지가 확정되면 어떻게 되나요?
A. 현물로 되찾을 수는 없지만, 민법 제1014조에 따라 다른 공동상속인에게 자신의 상속분에 상당한 가액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청구권도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 내에 행사해야 하므로, 인지 판결이 확정되면 곧바로 상속재산 처리 현황을 확인해야 합니다.
Q. 미성년일 때 어머니가 소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제 청구할 수 없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법정대리인이 미성년 자녀를 대신해 소를 제기하지 않은 경우, 자녀 본인이 성년이 된 뒤 생부의 사망을 안 날로부터 새로 2년 이내에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성년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청구 자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Q. 소송에서 검사가 실제로 다투기도 하나요?
A. 검사는 사망한 생부를 대신하는 형식적 상대방일 뿐 실체적 이해관계가 없어 적극적으로 다투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다만 신분관계소송의 특성상 자백이 인정되지 않아 법원이 직권으로 사실관계를 조사하므로, 원고 쪽에서 친자관계를 뒷받침할 자료를 충분히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맺음말
생부 사망 후의 인지청구는 상대방이 검사로 바뀔 뿐 자녀의 권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망을 안 날로부터 2년이라는 제척기간, 유해나 근친자를 통한 친자관계 입증, 그리고 인지 확정 후 상속재산 처리 상황 확인까지 각 단계마다 시기를 놓치면 되돌리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습니다. '언젠가 정리하면 되겠지'라고 미루기보다, 사망 사실을 알게 된 시점부터 곧바로 필요한 자료와 절차를 점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수원과 경기남부 지역처럼 세대 간 왕래가 뜸했던 사례에서 뒤늦게 생부의 부고를 전해 듣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망 사실을 안 날이 언제인지, 근친자의 유전자 검사에 협조를 얻을 수 있는지, 이미 상속재산이 나뉘었는지에 따라 대응 방법이 크게 달라지는 만큼, 소를 제기하기 전에 자신의 상황부터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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