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판결을 소개합니다. 1964년, 19세 여성이 귀갓길에 처음 보는 21세 남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저항하는 과정에서 그는 가해자에게 상해를 입혔습니다.
그런데 처벌받은 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습니다. 경찰은 정당방위를 인정했지만 검찰 판단은 달랐고, 1965년 법원은 중상해죄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항소 없이 확정됐죠.
55년이 지난 2020년 그가 재심을 청구했고, 2025년 마침내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과거사 정리에 그치는 판결이 아닙니다.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현재의 기준이 담겨 있습니다.
이상협 변호사의 이력
[학력]
경찰대학 행정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원 건설환경공학부(교통공학 전공) 졸업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경력]
법무법인(유) 광장
법무법인(유) 지평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경위
경찰대학 교무과 경위
법률사무소 신임 대표변호사
경찰청 소송대리인
경찰청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자 법률지원 전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인증 형사전문변호사
무슨 일이 있었나
밤 8시경, 친구들을 따라 집에 온 낯선 남성에게 돌아가 달라 했더니 "초행길이고 밤이라 길을 모르니 함께 걸어달라"고 해 길을 안내하러 나섰습니다.
집에서 15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방향을 알려주고 돌아서는 순간, 그가 어깨를 잡아 넘어뜨리고 배 위에 올라타 강제로 입을 맞추려 했습니다. 밀치고 도망치려 했지만 같은 일이 반복됐고, 세 번째엔 코를 막아 숨을 못 쉬게 해 입을 벌리게 한 뒤 혀를 입속에 넣었습니다. 그 순간 피고인이 혀를 깨물어 약 1.5센티미터가 절단됐습니다.
이후 그 남성은 10여 명과 함께 집에 침입해 식칼을 들고 아버지를 죽이겠다 협박하고는 피고인을 중상해로 고소했습니다. 경찰은 피고인의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상대를 강간미수 등으로 송치했는데, 검사는 구속돼 있던 상대를 석방하고 강간미수는 불기소한 뒤, 오히려 불구속이던 피고인을 중상해로 구속했습니다.
관련 조문
형법 제257조 제1항(상해) : 7년 이하 징역, 10년 이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 벌금
형법 제258조(중상해) : 생명에 대한 위험, 불구, 불치·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하면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
형법 제21조(정당방위) : ①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벌하지 않음 ②정도를 초과하면 형 감경·면제 가능 ③야간이나 불안한 상태에서 공포·경악·흥분·당황 때문이면 벌하지 않음
중상해는 하한이 1년이라 단순 상해(7년 이하)와 무게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불구'인지가 결정적이죠.
첫째 — '불구'는 엄격하게 해석합니다
법원은 죄형법정주의에서 출발했습니다. 형벌법규는 엄격히 해석해야 하고,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장·유추해석하는 건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구'를 이렇게 한정했습니다. 단순히 신체 일정 부분의 완전성을 침해하는 걸 넘어, 사지절단 등 중요 부분의 상실·중대 변경이나 시각·청각·언어·생식기능 등 중요 기능의 영구적 상실처럼, 건강상태를 중대하고 불량하게 변경하는 중대한 불구만을 뜻한다고요.
다쳤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평생 사회생활에서 고통을 느끼게 하는 중대한 불구'여야 한다는 겁니다.
둘째 — 중상해 증명이 부족했습니다
이 기준으로 보니 60여 년 전 판단은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사건 직후 봉합 수술을 받아 절단 상태가 지속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단
이후 군 입대, 병역판정검사에서 신체 각 과 전부 1급인 '갑' 등급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요한 운전 특기병 복무, 해외 파병, 병장 만기 제대
지인 진술: "말은 거의 정상적", "대화하는 데 이상하지 않았다", "발음이 약간 안 좋은 정도"
근거였던 진단서·감정서는 현재 미제출, 상대는 사망해 확인 불가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 없으면 유죄의 의심이 가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셋째 — 상해죄도 안 됩니다: 정당방위
법원은 상해 구성요건엔 해당하나 정당방위로 위법성이 없다고 봤습니다. 근거는 다섯입니다.
1.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었고, 함께 걸은 건 길 안내 요청 때문이었을 뿐입니다.
2. 강제 입맞춤은 신체 및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입니다.
3. 시도 횟수와 물리력의 정도를 볼 때, 방어하지 않았다면 강간 등 추가 침해가 시도됐을 가능성이 다분했습니다.
4.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주거지에서 150미터 떨어진 논밭·풀숲의 인적 드문 곳, 건장한 21세 남성 vs 체구 작은 19세 여성 — 법원은 구호 요청이나 몸싸움으로 벗어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고 오히려 극도로 흥분한 상대를 자극해 추가 위험을 야기했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5. 입속에 들어온 혀를 깨문 건 즉각적이고 유효하게 침해를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넷째 — 설령 과잉방위라도 벌할 수 없습니다
법원은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설령 상당성을 결여해 정당방위가 아니라 해도, 밤에 성폭력 시도로 공포를 느끼거나 흥분한 상태에서 이를 멈추게 하려 한 것이니 형법 제21조 제3항의 면책적 과잉방위로 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당방위(위법성 조각)와 면책적 과잉방위(책임 조각)를 이중으로 검토한 구조는 방어 논리를 짤 때 참고할 만합니다.
재심은 어떻게 열렸나
열쇠는 실체가 아니라 절차였습니다.
법원은 수사 검사가 구속영장 없이 피고인을 체포·감금한 채 조사해 형법 제124조의 직권남용 체포·감금죄를 범했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그 죄는 공소시효가 완성돼 유죄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장애가 있었고, 이것이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제422조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1심이고, 확정 여부는 별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저항하면 무조건 정당방위인 건 아닙니다. 상당성이 필요하고, 이 사건은 고립된 장소, 현저한 체격 차이, 반복된 침해, 대안의 부재, 즉각적·유효한 방어가 모두 갖춰진 경우였습니다.
침해가 끝난 뒤의 보복은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아니라 정당방위가 아닙니다.
중상해가 부정된 건 이 사건의 증거 상태 때문입니다. 중요 기능의 영구적 상실이 증명되면 중상해가 성립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성폭력에 저항하다 다치게 하면 처벌되나요?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한 것으로 상당성이 인정되면 정당방위로 처벌되지 않습니다.
Q. 상당성은 어떻게 보나요? 침해되는 법익의 종류·정도, 침해 방법, 침해행위의 완급, 방위행위로 침해될 법익 등 일체의 구체적 사정을 참작합니다.
Q. 중상해의 '불구'가 뭔가요? 중요 부분의 상실·중대 변경이나 시각·청각·언어 등 중요 기능의 영구적 상실처럼 건강상태를 중대·불량하게 변경하는 중대한 불구입니다.
Q. 정당방위가 안 되면 무조건 처벌인가요? 아닙니다. 과잉방위로 감경·면제될 수 있고, 야간 등 불안한 상태의 공포·경악·흥분·당황 때문이면 벌하지 않습니다.
Q. 60년 전 판결도 재심이 되나요? 됩니다. 이 사건은 검사의 영장 없는 체포·감금이 재심사유로 인정됐습니다.
정리하며
두 가지를 말하는 판결입니다.
형벌법규는 엄격히 해석해야 합니다. '불구'는 평생 고통을 느끼게 하는 중대한 불구만을 뜻하고, 증명이 부족하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의 방어는 그 상황 속에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인적 없는 밤길, 체격이 훨씬 큰 상대가 반복해 덮쳐오고, 도움을 청할 수도 제압할 수도 없었다면 — 즉각적이고 유효한 방어는 상당성을 갖습니다. 법원이 "그런 시도는 오히려 상대를 자극해 추가 위험을 야기했을 것"이라고 본 대목은, 피해자에게 '더 안전한 저항'을 요구하는 게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보여줍니다.
61년이 걸렸습니다. 조문이 바뀐 게 아니라 그 조문을 읽는 눈이 바뀐 것입니다.
정당방위 사건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은 "왜 다른 방법을 쓰지 않았느냐"입니다. 뒤에서 보면 늘 더 나은 선택이 있어 보이니까요. 하지만 법은 그 순간, 그 장소에서, 그 사람에게 무엇이 가능했는지를 묻습니다.
제가 현장 자료·진단 기록·목격자 진술을 시간순으로 재구성해 그 순간을 되살리는 작업을 함께해 드리겠습니다. 방어하다 오히려 가해자로 지목되어 조사를 받고 계시다면, 로톡 상담 요청 또는 로톡 기재 연락처로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실제 선고된 판결과 관련 법령·대법원 판례에 기초한 일반적 법률정보로, 당사자는 익명 처리하였고 사실관계는 추상화하였습니다. 해당 판결의 확정 여부는 별도 확인이 필요하며, 구체적 사건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개별 사안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