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량보다 두려웠던 신상정보 공개·고지
"변호사님, 솔직히 집행유예는 감수하겠습니다. 그런데 제 얼굴 사진과 이름이 인터넷에 올라가고, 동네 주민들에게 통보된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렇게 되면 저는 물론이고 제 가족 전체가 끝입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가 없어요."
성범죄 혐의로 재판을 앞둔 의뢰인은 선고 결과보다 신상정보 공개·고지를 더 두려워했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습니다.
신상정보 공개·고지 제도는 성범죄자의 성명, 나이, 주소, 직장 주소, 실제 거주지, 신체 정보, 사진, 죄명, 선고 형량 등을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에 수년간 공개하고, 거주지 인근 주민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알리는 제도입니다. 신상정보 등록이 경찰 내부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되는 것과 달리, 공개·고지는 범죄자의 정보를 일반에 알리는 처분입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49조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신상정보 공개·고지 명령이 선고됩니다. 성인 대상 성범죄의 경우에도 강간, 강제추행, 카메라등이용촬영, 통신매체이용음란 등 대부분의 성범죄가 공개·고지 대상 범죄에 해당합니다.
법원은 검사의 청구가 있으면 원칙적으로 공개·고지 명령을 선고해야 합니다. 다만 법은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그 밖에 신상정보를 공개하여서는 아니 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공개·고지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변호인은 이 ‘특별한 사정’을 구체적인 자료와 논리로 설명해야 합니다.

‘특별한 사정’을 설득하는 방법
‘특별한 사정’은 법에 구체적으로 정의되어 있지 않습니다. 판례도 이를 좁게 해석하는 편입니다. 단순히 반성하고 있다거나 초범이고 가족이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형식적인 의견서만으로 결과를 바꾸기 힘든 이유입니다.
저는 사건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의뢰인에게 공개·고지 명령을 선고하지 않아야 할 사정이 무엇인지 검토했습니다.
의뢰인의 사건은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제추행이었고, 피해자와는 이미 합의한 상태였습니다. 의견서에는 재범 위험성, 공개·고지가 가족에게 미칠 피해, 피해자의 의사를 중심으로 논거를 구성했습니다.
가장 먼저 살핀 것은 재범 위험성이었습니다. 공개·고지 제도의 주된 목적은 재범 위험성이 높은 성범죄자로부터 지역사회를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의뢰인은 동종 전과가 전혀 없는 초범이었고, 사건 직후 자발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전문 기관의 성충동 조절 프로그램을 이수한 자료도 제출했습니다. 여기에 제휴된 임상심리상담사님으로부터 수령한 재범 위험성 평가 도구(KSORAS)를 활용한 전문가 의견서를 첨부해 의뢰인의 재범 위험성이 통계적으로 낮은 수준임을 수치로 설명했습니다.
공개·고지가 가족에게 미칠 피해도 따졌습니다. 의뢰인에게는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어린 자녀가 있었습니다. 신상정보가 공개되고 거주지 인근 주민들에게 고지되면 자녀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울 가능성이 컸습니다.
이 사정을 감정적인 호소에 그치지 않고 헌법상 비례의 원칙과 연결했습니다. 범죄자 본인에 대한 제재가 아무런 잘못이 없는 미성년 자녀에게 가혹한 피해를 전가한다면, 공개·고지 제도의 목적과 제재로 얻는 공익을 함께 따져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공개·고지 명령이 제외된 결과
법원은 의뢰인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고지 명령을 하지 아니하는 판결을 하였습니다. 판결문에는 "피고인에게 공개·고지 명령을 선고하지 않을 특별한 사정이 있다"는 문구가 명시되었습니다.

의뢰인은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받았지만, 얼굴과 이름이 인터넷에 공개되거나 동네 주민들에게 통보되는 상황은 피했습니다. 아이들은 기존의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고 가족의 일상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님, 형사처벌은 받았지만 가족만큼은 지킬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의뢰인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유죄가 인정되는 사건에서도 변호인이 부수처분에 관한 논거를 어떻게 구성하고 입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확인한 사건이었습니다.
유죄가 예상돼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성범죄 사건에서 이미 유죄가 확실하니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형사 사건에서 변호인의 역할은 무죄를 다투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유죄가 인정되는 상황에서도 신상정보 공개·고지, 전자발찌 부착, 취업 제한, 신상정보 등록 기간 등 부수적 처분을 줄이는 일은 의뢰인의 이후 삶과 직접 연결됩니다.
성범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앞두고 있는데 신상정보 공개·고지 명령이 청구된 경우, 미성년 자녀가 있거나 직업적 특성상 신상정보 공개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라면 대응 방안을 미리 검토해야 합니다. 피해자와 합의했는데도 검사가 공개·고지 명령을 청구했거나, 재범 위험성이 낮다는 점을 입증할 객관적 자료가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한 사정’은 추상적인 문구만으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재범 위험성, 비례의 원칙, 피해자의 의사, 가족에게 미칠 피해를 사건 기록과 객관적 자료에 맞춰 구성해야 합니다.
대한변호사협회 공인 형사전문변호사인 저, 안영진 변호사가 사건 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합니다. 유죄 판결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도 부수처분에 관해 다툴 여지가 있는지 상담을 통해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선고 기일이 정해지기 전, 공개·고지 의견서를 제출할 시간이 있을 때 연락 주십시오. 시간이 촉박할수록 선택지가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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