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수인이 "그 돈으로는 못 산다"고 버티는데, 계약서에 정한 잔금일은 다가옵니다. 원칙대로라면 상당한 기간을 정해 이행을 최고하고 그 기간이 지나야 해제할 수 있지만, 상대가 이미 안 하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굳이 시간을 더 줘야 하는지 답답하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민법은 상대가 미리 이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경우 최고 없이 바로 해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다만 그 문턱은 생각보다 높아서, 섣불리 해제 통보를 했다가 오히려 해제가 무효로 뒤집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최고 없이 해제할 수 있는 요건과 법원이 이행거절을 인정하는 기준을 판례로 짚어 드리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변호사
원칙 — 해제하려면 상당한 기간을 정한 최고가 먼저다
민법 제544조는 당사자 일방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상대방은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이행을 최고하고, 그 기간 내에도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즉 이행지체를 이유로 한 해제에서는 "언제까지 잔금을 지급하라"는 최고가 원칙적으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 최고는 상대에게 마지막으로 이행할 기회를 주는 절차이자, 나중에 해제의 적법성을 다툴 때 채권자가 절차를 지켰음을 입증하는 근거가 됩니다.
여기서 '상당한 기간'이란 채무자가 이행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데 통상 필요한 기간을 뜻합니다. 잔금 마련처럼 큰돈이 오가는 매매에서는 하루 이틀의 촉박한 기한을 정하면 최고 자체가 부적법해질 수 있어, 사안에 맞는 합리적 기간을 부여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또한 매매처럼 잔금 지급과 소유권이전등기가 동시이행 관계에 있는 계약이라면, 해제하려는 매도인은 원칙적으로 자기 채무(등기서류 준비 등)의 이행제공까지 갖춰야 상대를 이행지체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원칙은 '상당한 기간을 정한 최고 후 해제'입니다. 최고를 건너뛰려면 아래의 예외 요건을 스스로 입증해야 합니다.
최고 없이 해제되는 두 통로 — 이행거절과 정기행위
민법은 최고 원칙에 두 가지 예외를 둡니다. 첫째는 민법 제544조 단서로, 채무자가 미리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최고를 요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이미 "안 하겠다"고 못 박았다면 다시 기회를 줄 실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실무에서 말하는 '이행거절'에 의한 해제입니다.
둘째는 민법 제545조의 정기행위입니다. 계약의 성질이나 당사자의 의사표시에 의해 일정한 시일 또는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 그 시기를 놓치면 최고 없이 바로 해제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특정 행사 당일에 맞춰야만 의미가 있는 물품 납품처럼, 시기가 계약의 본질인 거래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일반적인 부동산 매매는 잔금일이 지나도 이행이 여전히 의미가 있으므로 정기행위로 보기 어렵고, 대개 이행거절 통로를 검토하게 됩니다.
이행거절(제544조 단서) — 상대가 이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표시한 경우. 최고 불요.
정기행위(제545조) — 시기를 놓치면 계약 목적 달성이 불가능한 거래에서 그 시기를 도과한 경우. 최고 불요.
이행불능 — 채무 이행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해진 경우로, 이 역시 최고 없이 해제가 가능합니다.
이행거절의 핵심 기준 — '명백하고 종국적'이어야 한다
가장 다툼이 잦은 것이 이행거절 인정 여부입니다. 대법원은 명시적으로 거절 의사를 밝힌 경우가 아니라, 계약 전후의 여러 사정을 종합해 묵시적 이행거절을 인정하려면 그 의사가 명백하고 종국적으로 표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대법원 2006. 11. 9. 선고 2004다22971 판결). 여기서 '종국적'이란 의사를 번복할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즉 상대가 잠깐 불평하거나 조건을 재협상하려는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제3자가 보아도 "저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의심 없이 받아들일 만한 확정적 태도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매수인이 "자금이 부족하니 잔금일을 며칠 미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이행 의사를 전제로 한 협상이므로 이행거절로 보기 어렵고, "이 계약은 없던 것으로 하겠다, 잔금은 절대 지급하지 않겠다"고 확정적으로 통보한 경우라야 이행거절에 가깝습니다.
불만·재협상 요구와 '종국적 거절'은 다릅니다. 번복 가능성이 남아 있으면 이행거절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이행거절이 인정되면 요건이 크게 완화된다
이행거절이 인정되면 해제 요건이 눈에 띄게 가벼워집니다. 대법원은 이행거절로 인한 해제의 경우 채권자의 최고도 필요 없고,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자기 채무의 이행제공도 필요 없다고 판시합니다(대법원 2021. 7. 15. 선고 2018다214210 판결 취지). 이행지체를 이유로 한 해제와 비교할 때 요건이 완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매매를 예로 들면, 원래 매도인은 잔금 지급을 받으려면 등기서류를 갖춰 이행제공을 해야 매수인을 지체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수인이 잔금을 절대 지급하지 않겠다는 명백하고 종국적인 의사를 밝혔다면, 매도인은 그 번거로운 이행제공 없이도 곧바로 해제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완화된 효과는 어디까지나 이행거절이 인정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인정 요건이 엄격한 만큼 이 문턱을 넘는 것이 실제 관건입니다.
판례가 이행거절을 부정한 사례 — 무응답·대안 제시만으로는 부족
실제 사건을 보면 법원이 이행거절 인정에 얼마나 신중한지 알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21. 7. 15. 선고 2018다214210 판결은, 특약사항의 이행 여부를 묻는 상대방의 확인 문자에 즉시 답하지 않았고 다른 대안을 계속 제시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이행거절 의사가 명백하게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상대가 최종적으로 대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도 원래 의무를 거부하겠다는 뜻을 직접 표현한 부분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핵심 이유였습니다.
이 판결의 교훈은 분명합니다. 상대의 침묵, 소극적 태도, 대안 협상은 이행거절이 아니며, 이를 근거로 성급히 해제를 통보하면 오히려 해제한 쪽이 계약 위반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행거절을 이유로 최고 없이 해제했는데 법원이 이행거절을 부정하면, 그 해제는 효력이 없고 도리어 해제 통보자가 자신의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책임을 질 위험이 생깁니다.
확인 문자에 답이 없다고, 상대가 대안을 제시한다고 곧바로 이행거절로 단정하면 위험합니다.
실전 대응 — 애매하면 '최고'라는 안전판을 함께 쓴다
이행거절 여부가 조금이라도 애매하다면, 이행거절만 믿고 해제하기보다 상당한 기간을 정한 최고를 병행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상대에게 "언제까지 이행하지 않으면 최고 기간 만료로 계약을 해제한다"는 내용을 내용증명으로 통지해 두면, 훗날 이행거절이 부정되더라도 이행지체를 이유로 한 해제로 방어할 수 있습니다. 즉 최고는 예외 요건이 무너졌을 때를 대비한 안전판이 됩니다.
동시에 상대의 거절 의사를 뒷받침할 증거를 확보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자·이메일·통화 녹취처럼 "절대 이행하지 않겠다"는 확정적 표현이 담긴 자료가 있으면 이행거절 인정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반대로 상대가 조건 조정을 요구하거나 이행 시기를 늦춰 달라는 뉘앙스만 있다면, 그것은 이행거절 증거가 되기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최고 절차로 방향을 잡는 편이 낫습니다.
거절 표현 확보 — 확정적 거절 문구가 담긴 문자·이메일·녹취를 남긴다.
최고 병행 — 이행거절이 애매하면 상당한 기간을 정한 최고를 내용증명으로 함께 보낸다.
자기 채무 점검 — 이행거절이 부정될 때를 대비해 자신의 이행제공(등기서류 등) 준비 상태를 정리해 둔다.
해제의 효과 — 원상회복과 손해배상
해제가 유효하게 성립하면 계약은 소급해 소멸하고, 각 당사자는 상대에게 원상회복 의무를 집니다(민법 제548조). 매도인이 받은 계약금·중도금이 있다면 이를 반환해야 하고, 반환할 금전에는 받은 날부터의 이자를 붙여야 합니다. 물건을 인도받은 쪽이라면 그 물건과 사용이익을 함께 돌려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해제는 손해배상 청구에도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상대의 채무불이행으로 계약이 깨졌다면, 해제와 별개로 그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계약서에 위약금이나 손해배상액의 예정 조항이 있으면 그 조항이 우선 적용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해제를 결정하기 전에 계약서의 위약금 조항과 원상회복 범위를 함께 검토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매수인이 전화로 "잔금 못 낸다"고 한 번 말했으면 바로 해제할 수 있나요?
A. 한 번의 감정적 발언만으로는 이행거절이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판례는 이행거절이 명백하고 종국적, 즉 번복 가능성이 없을 정도로 확정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자금 사정을 이유로 한 일시적 곤란 호소나 기한 연기 요청은 협상의 성격이 강해 이행거절로 보기 어려우므로, 확정적 거절인지 신중히 판단해야 합니다.
Q. 이행거절이라고 보고 최고 없이 해제했는데, 나중에 이행거절이 아니라고 하면 어떻게 되나요?
A. 그 해제는 효력이 없게 됩니다. 최고라는 요건을 건너뛴 해제였으므로 해제 자체가 무효가 되고, 오히려 성급히 해제를 통보한 쪽이 자기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애매한 사안에서는 이행거절만 믿지 말고 상당한 기간을 정한 최고를 함께 해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Q. 최고는 반드시 내용증명으로 해야 하나요?
A. 법이 최고의 방식을 특정하고 있지는 않아 구두로도 최고는 가능합니다. 다만 나중에 최고를 했다는 사실과 그 기간, 도달 여부를 입증하려면 내용증명 우편이 가장 확실합니다. 분쟁이 예상되는 계약이라면 처음부터 내용증명으로 기간을 명시해 통지하는 것을 권합니다.
Q. 부동산 매매도 정기행위로 보아 최고 없이 해제할 수 있나요?
A. 일반적인 부동산 매매는 정기행위로 보기 어렵습니다. 잔금일이 지나도 이행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정기행위는 특정 시점을 놓치면 계약 목적 자체가 달성될 수 없는 거래에 한정되므로, 매매에서 최고를 생략하려면 통상 이행거절 요건을 검토하게 됩니다.
Q. 상대가 대안을 제시하며 원래 약속은 못 지키겠다고 하면 이행거절인가요?
A.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법원은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정황만으로는 원래 의무의 이행을 종국적으로 거절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대안 협상이 최종 결렬된 뒤에도 원래 의무를 거부하겠다는 뜻이 분명히 드러나야 이행거절에 가까워지므로, 협상 단계와 결렬 이후를 구분해 판단해야 합니다.
맺음말
최고 없이 하는 해제는 '빠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문은 이행거절이나 정기행위라는 엄격한 요건을 넘어야만 열립니다. 특히 이행거절은 상대의 거절 의사가 명백하고 종국적이어야 인정되며, 침묵이나 대안 협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입니다. 요건을 잘못 판단해 성급히 해제하면 오히려 해제한 쪽이 책임을 지는 역전이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행거절 여부가 조금이라도 불분명하다면, 상당한 기간을 정한 최고를 병행하고 상대의 거절 표현을 증거로 남겨 두 갈래로 대비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계약 해제와 원상회복, 손해배상은 서로 얽혀 있어 초기 통지 문구 하나가 결과를 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원·경기 지역에서 매매·계약 해제 분쟁으로 통지 시점과 방법을 고민하고 계신다면, 사안의 사실관계를 정리해 전략을 세운 뒤 움직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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