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건설 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공사대금 조정이 실제 분쟁 현장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 구체적 사례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최근 몇 년간 철근, 시멘트, 레미콘 등 주요 건설 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도급계약 당사자 간 분쟁이 폭증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정금액 계약(총액 도급계약)으로 체결된 공사에서 수급인이 막대한 손실을 떠안는 사례가 잦아, 조정 조항의 해석과 적용을 둘러싼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가상 사례]
경기도 화성에서 중소 건설사를 운영하는 A씨(48세)는 2023년 5월, 물류창고 신축공사를 총공사대금 27억 8천만 원에 도급받았습니다. 계약기간은 14개월. 그런데 착공 4개월 후부터 철근 가격이 톤당 약 23% 상승했고, 레미콘 단가도 17% 가까이 올랐습니다. A씨가 추가 부담한 자재비만 약 3억 4천만 원에 달했습니다.
A씨는 발주처 B법인(부동산 개발사)에 공사대금 증액을 요청했으나, B법인은 "총액 도급계약이므로 자재비 상승은 수급인이 부담해야 한다"며 거절했습니다. 계약서에는 별다른 물가변동 조정 조항이 없었고, 다만 "천재지변, 전쟁 등 불가항력 사유 발생 시 협의한다"는 일반 조항만 있었습니다. A씨는 어떤 법적 주장을 할 수 있을까요?
쟁점 1. 사정변경의 원칙 적용 가능성
첫째, A씨가 가장 먼저 검토할 법리는 사정변경의 원칙입니다. 이는 계약 체결 당시 예측할 수 없었던 사정이 발생하여 당초 계약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경우, 계약 내용의 변경이나 해지를 인정하는 법리입니다.
다만 판례는 사정변경의 원칙을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해 왔습니다. 단순한 자재 가격 상승은 "통상적인 경제 변동"으로 보아 사정변경 사유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 실무에서 자주 접하는 결론은, 가격 상승 폭이 비정상적으로 크고(통상 30~40% 이상), 그 원인이 당사자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외부 충격(전쟁, 국가적 자원 통제 등)일 때에만 예외적으로 인정된다는 점입니다.
A씨 사례 분석
철근 23%, 레미콘 17% 상승은 큰 폭이긴 하나, 사정변경 원칙으로 인정받기에는 다소 부족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부 요인을 입증하고, 동시 다발적 자재 동시 상승이라는 점, 통상적 변동 범위를 초과한다는 통계 자료를 함께 제출하면 부분 인용 가능성이 있습니다.
쟁점 2. 민간건설표준도급계약서 조항 준용 여부
둘째, 계약서에 명시적 물가변동 조항이 없더라도,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의 물가변동 조정 조항이 거래관행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가 쟁점입니다. 국토교통부 고시 표준계약서는 통상 "계약체결 후 90일 경과 시점부터 품목조정률이나 지수조정률이 3% 이상 변동하면 공사대금을 조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표준계약서는 어디까지나 권고 사항이고, 당사자가 이를 채택하지 않았다면 자동 적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A씨와 B법인이 과거에도 여러 차례 도급계약을 맺어왔고, 그 때마다 자재비 상승분을 분담해온 거래관행이 있다면, 해당 거래관행을 묵시적 합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106조 사실인 관습).
쟁점 3. 불가항력 조항의 확대해석 가능성
셋째, 계약서에 있는 "천재지변, 전쟁 등 불가항력 사유 발생 시 협의한다"는 조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입니다. 실무에서 보면 이 조항은 단순히 면책 사유에 그치지 않고, 대금 조정의 협의 의무를 발생시키는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A씨가 활용할 수 있는 입증자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또는 대한건설협회의 자재가격 통계
계약 당시와 자재 구매 시점의 거래명세서·세금계산서
발주처에 대금 조정을 요청한 공문·내용증명
거래관행을 입증할 과거 도급계약서 사본
자재 가격 급등의 외부 원인을 보여주는 객관적 자료(언론 보도, 산업통상자원부 발표 등)
특히 "전쟁 등"이라는 표현 속에 국제 정세 변화로 인한 원자재 수급 차질이 포함된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철강·시멘트 원료 가격 폭등은 단순한 시장 변동이 아닌 국제 분쟁의 직접적 결과라는 점에서, 이 조항을 통한 조정 협의 청구가 인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무적 결론과 대응 방향
정리하면, A씨가 취할 수 있는 단계적 대응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즉시 내용증명을 발송하여 대금 조정 협의를 공식 요청하고 협의 의무 위반의 증거를 남깁니다. 둘째, 자재비 상승 자료와 거래관행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합니다. 셋째, 협의가 결렬되면 공사대금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정변경의 원칙, 거래관행에 따른 묵시적 합의, 신의칙 위반을 함께 주장합니다.
특히 주의할 점은 계약 이행을 중단하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수급인이 자재비 상승을 이유로 공사를 중단하면, 오히려 채무불이행 책임을 부담하게 되어 손해배상까지 떠안을 수 있습니다. 공사는 계속 진행하면서, 별도로 추가 비용에 대한 법적 청구를 진행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마지막으로 향후 계약 체결 시에는 반드시 물가변동 조정 조항을 명시적으로 삽입해야 합니다. 조정 기준 시점, 조정률 산정 방식(품목조정률 또는 지수조정률), 최소 변동률, 조정 절차와 기한을 구체적으로 정해두면 추후 분쟁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김경숙 변호사의 코멘트
더감 법률사무소 · 경기도 수원시
건설업계 자재비 분쟁을 다루면서 실감하는 점은, 결국 사전에 조정 조항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약정했는지가 결과를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분쟁이 발생했다면 공사 중단 없이 내용증명부터 발송해 협의 의무 위반 증거를 확보하시고, 가능한 빨리 건설 전문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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